검은 바이올린 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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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그것을 가졌지만 그 순간 모든 것을 잃었다, <검은 바이올린>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특출한 이들의 유별난 천재성이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독보적인 재능을 선보이는 이들을 바라보는 평범한 이들의 시선은 부러움과 질투가 뒤섞여 있다. 막상스 페르민의 색채 삼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인 이 <검은 바이올린>에 등장하는 세 인물 역시 그런 천재적 재능을 가진 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먼저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요하네스 카렐스키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황홀하게 듣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의 바이올린 연주를 한다. 거의 신적인 천재로 묘사되는 그의 목표는 지극히 숭고한 오페라를 작곡하는 것이었다. 31세에 나이에 전쟁에 소집된 이 청년은 잊지 못할 이 시기 동안 삶을 위로해주던 음악 대신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탐욕을 체험한다. 큰 부상을 입고 1797년 베네치아에 입성한 카렐스키는 이곳에서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오페라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운명과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



 

 카렐스키가 머물기로 한 저택의 주인은 에라스무스라는 이름을 가진 노인이었는데, 그는 바이올린을 만드는 장인이었다. 이 장인에게는 묘한 소리를 내는 검은 바이올린 한 대와 마법에 걸렸다고 말하는 장기판 하나, 그리고 오래된 증류주 한 병이 있었다. 이 노인이 음악에 취해 있을 않을 때에는 술에 취해 있었고, 술에 취하지 않을 때에는 장기에 취해 있었다. 그 정도로 바이올린 연주와 장기 놀이 그리고 음주가 이 노인의 시간을 채우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일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요하네스 카렐스키는 산자카리아 성당의 저녁 미사에 참석했다가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 숭고한 영혼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에라스무스에게 전하자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젊은 시절, 그는 베네치아에서 멀리 떨어진 크레모나라는 도시에서 살고 있었다. 바이올린 제작을 하던 그에게 어느 날 베네치아의 페렌치 공작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온다. 사실 에라스무스가 제작할 바이올린은 공작이 아닌 공작의 딸 카를라에게 줄 생일선물이었다. 그녀에게 사로잡힌 장인은 베네치아에서 지내는 마지막 밤에 카를라로부터 공연 초대를 받는다. 베네치아 청년들이 다수 모인 그 자리에서 사소한 언쟁이 시작되고 결국 에라스무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이올린을 만들겠다고 공언한다. 하지만 결국 그 검은 바이올린을 완성하게 되자 영혼의 음색을 가졌던 카를라의 목소리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다. 그 이야기를 전한 후 에라스무스 역시 말을 잃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베네치아를 떠나기 며칠 전, 요하네스는 작업장에 들어가 노인의 검은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그러다 문득 분노에 휩싸여 땅에 내던지고, 바이올린은 여자의 비명소리 같은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난다. 베네치아를 떠나 다시 파리로 돌아온 요하네스는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않았고 오페라 작곡에 전념한다. 마침내 완성된 수많은 음표가 적힌 노트를 불길에 내던지며 그 역시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어떻게 보면 백일몽 같기도 하고 천재들의 허무한 동화 같기도 한 이 작품이 주는 허무함의 깊이는 대단하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약속한 너무나도 훌륭한 바이올린이 결국 그녀가 가진 재능을 빼앗자 상실감에 젖게 된 에라스무스와 그토록 꿈꾸고 희망하던 최고의 오페라 작곡을 성공해냈지만 결국 스스로의 손으로 없애버린 요하네스의 삶에서 천재가 아닌 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다소 복잡할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이루고 완성하고 소유해야만 끝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막상을 손에 쥔 순간 느끼는 감정은 온전한 성취감이나 만족은 아니다. 누군가는 이것으로 정말 끝인가라는 허무함이 들 수도 있고 더 이상 이룰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인가라는 두려움이 들 수도 있다. 아름다고 고요한 도시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한 천재들의 이야기라서 온전히 감정 이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그 느낌을 우리가 완전하게 이해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스산한 가을 저녁 분위기와 비슷한 감성을 가진 이 색채 삼부작 두 번째 소설을 읽고 나서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 여운을 남겨 보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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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알아서는 안 되는 학교 폭력 일기 쿤룬 삼부곡 2
쿤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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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나를 그만 괴롭혔으면 좋겠어, <선생님이 알아서는 안 되는 학교 폭력 일기>

 

 


얼마 전 공개된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의 <글로리>가 아시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학교 폭력을 당한 학생이 교사가 되어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한다는 이 내용이 세대, 성별, 국가를 가리지 않고 보편적으로 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우리 현실에서 학교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씁쓸한 증거이기도 하다. 대만의 인기 작가 쿤룬이 쓴 이 소설 역시 수많은 폭력을 당하고 있던 한 여학생의 처절한 응징을 그려 내고 있어서 현지 독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교사였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주인공 페이야와 남동생은 각각 아버지의 자매들에게 맡겨진다. 문제는 고모와 고모부 부부가 자신이 학교에서 끔찍한 괴롭힘을 당하고 있음에도 무관심하게 일관한다는 것이었다. 페이야에게 있어서 유일한 위안은 집 근처 편의점에서 우연히 만나 알게 된 촨환이라는 청년이었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그녀가 겪고 있는 아픔을 발견해준 그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점점 더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게 되고, 페이야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선다.



 

이 소설의 전개는 앞서 언급한 우리나라 드라마의 전개 방식과는 많이 다르게 처절하고 폭력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을 정도로 주인공 장페이야는 벼랑 끝까지 몰린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촨환이라는 중심인물이 중요하면서도 변수가 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어쨌든 가해자들에게 응징을 가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후련함과 통쾌함을 일부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게 된 그 상황 자체가 매우 안타깝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부모 역할을 하는 고모 부부와 학교 담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조금만 더 천천히 그녀를 바라봤으면 다른 해결책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을 한참 예민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사소한 다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가해자들의 입장에서는 심심한 일상에서 행한 일탈이나 장난일수도 있겠지만 피해자에게는 평생의 상처로 남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교 폭력 피해자들은 대학 입시나 취업에서 실패하고 대인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등 장기적인 피해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 모두의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쿤룬 삼부곡이라는 이름의 시리즈 두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이미 국내에 출간된 전작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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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
S. A. 코스비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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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러운 과거를 가진 두 아버지들의 처절한 복수, <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문장은 낳고 기른 자녀가 떠나고 난 뒤 세상에 남겨진 모든 부모들의 고통을 의미하다. 전 재산은 물론이고 자신의 목숨이라도 바쳐서 떠난 자식을 되살릴 수 있다면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이 그렇게 할 것이다. 생전에 화목한 시간만 보냈어도 이별의 고통이 큰데, 그마저도 해주지 못한 부모의 마음은 더욱 아플 것이다. 제대로 된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만들어낸 형벌 속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재작년 출간된 <검은 황무지>로 국내 스릴러 독자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 잡은 S.A. 코스비 작가의 최신작 <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에 나오는 두 아버지들 역시 그런 십자가를 지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사돈 지간인 아이크와 버디 리는 한 날 한 시에 하나 뿐인 아들들을 끔찍한 사건으로 잃고 만다. 자신들보다 한참 더 살아가야할 시간이 많았던 아들들을 잃었지만 온전하게 애도의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다. 이 두 아버지들에게는 자신의 아들들이 동성애자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말과 주먹으로 폭력을 행사한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 수사가 활발하게 진행되지도 않고, 자식들의 묘지마저 참혹하게 훼손되자 아이크와 버디 리는 직접 범인을 잡아 응징하기로 결심을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두 사람에게는 교도소에서 징역살이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그런 부끄러운 자신들의 이력과 경험을 최대한 활용해서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지난 12월 동성결혼 보호 법안이 미국에서 통과되었지만 여전히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은 존재한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의 폭언과 주먹질보다 더 큰 상처가 되는 것이 바로 가족들의 외면일 것이다. 세상과 타인으로부터 보호해주어야 할 가족들이 가장 먼저 등을 돌릴 때 그들이 느낄 모멸감과 애통함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두 아들을 죽인 이들을 추적하는 아이크와 버디 리의 심정이 복잡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범죄자들은 따로 있지만 이들 역시 상처를 준 과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성소수자 가족들만 헤아릴 수 있는 복잡한 감정을 복수극이라 장르 안에서 섬세하게 풀어가고 있다. 단순히 희생된 가족을 대신에 악을 처단한다는 카타르시스를 뛰어 넘는 사회적 메시지까지 함께 담아내고 있다는 뜻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뿐만이 아니라 미국 내 흑백 갈등과 차별에 대한 문제 역시 짚어주고 있다는 점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이크와 버디 리가 자식들을 위해 복수에 성공을 한다고 해도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살아있을 때 아이지아와 데릭에게 퍼부었던 모진 말들을 주어 담지도 못할 것이고, 미안하다는 말도 직접 건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아들들이 겪었을 어려움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고, 앞으로 살아가며 만나게 될 또 다른 아이지아와 데릭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할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딱 하나만 덧붙이자면, 원래 제목인 면도날 같은 눈물을 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는 시적인 제목으로 바꾼 것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의 초반과 결말에서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눈물을 작가가 어떻게 표현했는가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이 가진 가치는 충분하다.  









※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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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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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고통 속에서도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면,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출근길 지하철 연착과 그 소식을 들은 시민들의 짜증과 불만이 뒤섞인 표정들 그리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며 감동을 주는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장애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이 두 가지가 머릿속에 자동으로 연상된다. 전자는 최근 들어 자주 접하게 되는 장애인 집회와 시위 관련 풍경이었고, 후자는 마치 한 번도 본 적은 없는 유니콘과 같은 존재로 장애인을 그려내는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렇게 여전히 이 세상의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의 일상을 침해하거나 아니면 역경을 딛고 일어선 신화적인 이야기를 통해서만 등장한다. 그런 가운데 작가 생활을 하다가 뜻밖의 사고로 후천적 장애를 입은 저자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우리가 모르는 그 이야기가 이 책의 첫 장에서부터 펼쳐졌다.



 

 지금으로부터 십년 전 봄 어느 날, 강원도 원주에서 두 번째 장편을 준비하던 도중 밤길을 산책하다 작은 다리에서 추락한 것이 이유였다. 그 사고로 척주가 부러져버린 저자는 하반신 마비가 되었고 신경병증성 통증을 앓게 되었다고 한다. 재활병원에서 꼬박 2년이라는 시간을 치료하는데 보냈지만 사고 이전의 몸 그리고 삶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소설집을 내기까지 숨통을 조여 오는 그 시간들을 견뎌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더 이상 남들처럼 두 발로 서서 걷거나 뛸 수 없는 상황에서 저자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학교와 군대를 가고 결혼과 출산을 했을 그 십년이라는 시간동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견디는 일을 했던 것이다.



 

 똑같은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 그저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상대방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오만에 불과하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어설픈 이해를 시도하려는 이들을 위해 이 책의 첫 장부터 저자는 장애 후 대소변을 보는 일에 대해 담담하게 그리고 자세히 써내려갔다. 하루에도 여러 번 누구나 하는 그 일을 더 이상 스스로 할 수 없다는 자괴감 그 이상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저 활자들이었을 뿐인데도 마치 저자가 눈앞에서 그 상황을 설명해주는 것처럼 느껴져서 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저자는 이 이야기를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우리들에게 들려주었다. 지금 자신이 어떤 고통을 끌어안고 사는가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였다.



 

 잠결에도 수시로 찾아오는 극심한 통증과 더 이상 타인이 누리는 평범한 일상을 가질 수 없는 분노만이 저자의 삶을 채웠던 것은 아니다. 속이 헛헛한 저자를 위해 치킨 한 마리 배달 시켜 먹자는 어머니, 그저 달리고 싶어서 혼자 운동을 달렸던 보물 1호 조카 그리고 묵묵히 저자의 휠체어를 밀며 전시회와 식당을 갔던 친구가 그녀의 시간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 그녀의 수많은 남아 있는 나날을 지탱해줄 글쓰기라는 존재가 있었다. 더 이상 두발로 걸을 수 없게 되었지만, 어느 곳에서나 두 손으로 쓰고 싶은 문장을 써내려갈 수는 있다. 아무도 자신의 글을 읽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과 읽은 사람마저도 실망하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지만 결국 그녀는 계속 글을 쓸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불의의 사고를 겪은 후 자신의 모습을 희망의 전도사로 포장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자신을 연민이나 동정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허용하고 있지도 않다. 다만 우리가 전혀 몰랐거나 어설프게 추측하고 있었던 장애인의 불편함을 담담하게 이야기할 뿐이다. 더 나아가 조금은 그 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드러냈다. 이것이야말로 저자가 자신의 삶을 마주하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오만방자한 말은 그만두고,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저자 역시 아득바득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우리에게 들려주었으면 한다. 미국의 작가이자 사회 운동가인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눈을 돌린다면 더 이상 우리라는 말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남겼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마음먹은 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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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욘더
김장환 지음 / 비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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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어서 나이순으로 매길 순 있지만 죽음의 순간은 그 순서대로 찾아오지 않는다. 평온하게 잠이 든 상태에서 세상을 뜨는 경우도 있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게 또는 고통스럽게 사랑하는 누군가와 이별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4회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인 <굿바이. 욘더>의 주인공 김홀 역시 젊은 나이에 아내와 사별한다. 암에 걸릴 유전자를 안고 있다는 것을 결혼 전에 알았음에도 이 둘은 결혼을 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시간을 마음껏 보낸다. 하지만 아내 차이후가 예측 가능했던 암에 걸리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김홀은 뉴 서울에 홀로 남겨진다. 소설은 김홀이 아내 이후를 떠내 보내는 임종의 순간을 보여주는 것으로 문을 연다.

 


가상공간과 현실이 함께 만나며 이루어지는 새로운 개념의 공간을 뜻하는 사이버네틱 스페이스를 비롯해서 예측진단이나 네트워크 웨어인 핸디가 일상화된 그리 멀지 않은 미래가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다. 물론 이 책이 십년 전에 나왔기 때문에 지금은 어느 정도 상용화나 대중화 직전 단계까지 온 최첨단 기술들도 등장한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흥미롭고 놀라운 근미래 기술 환경들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작가는 단순히 기술 문명의 혜택만을 그리지 않고 그것을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욕망과 연결시킨다. 그 욕망이란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의 내면에 자리를 잡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을 말한다.


 

아내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홀은 바이앤바이라는 회사를 알게 되고, 아내가 그 회사에 데이터를 넘겨 인공지능 아바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왠지 모를 망설임 끝에 아내와 똑같은 아바타를 만나게 되지만 어색함과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피치라는 한 해킹 전문가 소녀를 만나게 된다. 피치 역시 아버지의 아바타가 바이앤바이에 있어 방문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피치가 죽게 되면서 김홀은 욘더라는 미지의 공간을 알게 된다. 최근 뉴 서울에서 발생하고 있는 몇몇 자살사건과 피치의 죽음이 이 욘더와 연관이 있다고 직감한 김홀은 서서히 새로운 세계로 접근을 한다.


 

너무나도 빨리 찾아온 누군가의 죽음이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순간들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불안정한 생활을 보내기도 하고 스스로 사회적 격리를 선택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처럼 떠나보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갈망 하나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욘더라는 공간에 강렬하게 끌린다는 설정이 그리 황당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자신의 삶에서 큰 의미였던 누군가를 갑작스럽게 잃게 되고 나서 느끼는 감정들은 오로지 동일한 경험자들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욘더로 향했거나 들어가려고 하는 선택들이 올바른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똑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등장인물들과 같은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고통과 좌절 그리고 상실 역시 모두 인생이 주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매순간 행복할 수 없고 매순간 웃을 수 없는 우리의 삶에서 여전히 배워가야 할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책을 읽는 내내 이런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고민할 수 있어서 더욱 의미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과 가까운 미래에 등장할 최첨단 기술을 적절하게 결합한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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