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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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고통 속에서도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면,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출근길 지하철 연착과 그 소식을 들은 시민들의 짜증과 불만이 뒤섞인 표정들 그리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며 감동을 주는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장애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이 두 가지가 머릿속에 자동으로 연상된다. 전자는 최근 들어 자주 접하게 되는 장애인 집회와 시위 관련 풍경이었고, 후자는 마치 한 번도 본 적은 없는 유니콘과 같은 존재로 장애인을 그려내는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렇게 여전히 이 세상의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의 일상을 침해하거나 아니면 역경을 딛고 일어선 신화적인 이야기를 통해서만 등장한다. 그런 가운데 작가 생활을 하다가 뜻밖의 사고로 후천적 장애를 입은 저자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우리가 모르는 그 이야기가 이 책의 첫 장에서부터 펼쳐졌다.



 

 지금으로부터 십년 전 봄 어느 날, 강원도 원주에서 두 번째 장편을 준비하던 도중 밤길을 산책하다 작은 다리에서 추락한 것이 이유였다. 그 사고로 척주가 부러져버린 저자는 하반신 마비가 되었고 신경병증성 통증을 앓게 되었다고 한다. 재활병원에서 꼬박 2년이라는 시간을 치료하는데 보냈지만 사고 이전의 몸 그리고 삶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소설집을 내기까지 숨통을 조여 오는 그 시간들을 견뎌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더 이상 남들처럼 두 발로 서서 걷거나 뛸 수 없는 상황에서 저자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학교와 군대를 가고 결혼과 출산을 했을 그 십년이라는 시간동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견디는 일을 했던 것이다.



 

 똑같은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 그저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상대방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오만에 불과하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어설픈 이해를 시도하려는 이들을 위해 이 책의 첫 장부터 저자는 장애 후 대소변을 보는 일에 대해 담담하게 그리고 자세히 써내려갔다. 하루에도 여러 번 누구나 하는 그 일을 더 이상 스스로 할 수 없다는 자괴감 그 이상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저 활자들이었을 뿐인데도 마치 저자가 눈앞에서 그 상황을 설명해주는 것처럼 느껴져서 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저자는 이 이야기를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우리들에게 들려주었다. 지금 자신이 어떤 고통을 끌어안고 사는가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였다.



 

 잠결에도 수시로 찾아오는 극심한 통증과 더 이상 타인이 누리는 평범한 일상을 가질 수 없는 분노만이 저자의 삶을 채웠던 것은 아니다. 속이 헛헛한 저자를 위해 치킨 한 마리 배달 시켜 먹자는 어머니, 그저 달리고 싶어서 혼자 운동을 달렸던 보물 1호 조카 그리고 묵묵히 저자의 휠체어를 밀며 전시회와 식당을 갔던 친구가 그녀의 시간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 그녀의 수많은 남아 있는 나날을 지탱해줄 글쓰기라는 존재가 있었다. 더 이상 두발로 걸을 수 없게 되었지만, 어느 곳에서나 두 손으로 쓰고 싶은 문장을 써내려갈 수는 있다. 아무도 자신의 글을 읽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과 읽은 사람마저도 실망하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지만 결국 그녀는 계속 글을 쓸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불의의 사고를 겪은 후 자신의 모습을 희망의 전도사로 포장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자신을 연민이나 동정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허용하고 있지도 않다. 다만 우리가 전혀 몰랐거나 어설프게 추측하고 있었던 장애인의 불편함을 담담하게 이야기할 뿐이다. 더 나아가 조금은 그 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드러냈다. 이것이야말로 저자가 자신의 삶을 마주하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오만방자한 말은 그만두고,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저자 역시 아득바득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우리에게 들려주었으면 한다. 미국의 작가이자 사회 운동가인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눈을 돌린다면 더 이상 우리라는 말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남겼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마음먹은 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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