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소멸
한동일 지음 / 그린스트로우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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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소멸_한동일

 

요즘 소설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소설가로서 소설을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소설을 접하면서 나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렇다.

특히 ‘축하의 말’에 나태주 시인께서 직접 쓰신 글이 있어 살짝 놀랐고, 뼈 때리는 말씀이 주옥같아 또 한 번 놀랬다.

‘청춘의 소멸’은 소설가가 소설을 리뷰한다는 것도 참 이색적이긴 하다.

그럼에도 소설의 구도나 스토리를 이끄는 구성이 참 탄탄하다는 생각을 읽는 내내 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너무 타이트해서 독자의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고 할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소설가가 의도한 것일 수도 있다. 한편에선 전반적인 소설 작품을 쓰는 작가의 본질일 수도 있겠다. 그만큼 소설가의 눈에는 참으로 탐탐하고 촘촘한 소설이라는 평가다.

삶에 어디 정답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조금은 독자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과 여유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한 톤으로 긴 소설을 한결같이 유지한다는 것은 소설가에게도 커다란 시도였으리라.

결론은 한동일 소설가의 정체성인 것 같다는 판단이다. 사실 소설을 일주일 동안 틈틈이 본 책이라 그런가 보다. 한편, 소설가가 소설을 읽고 이런 면에서 부럽고 닮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중에 나태주 시인의 축하 말씀을 읽고 한동일 작가의 작품을 조금, 한층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듯하다. 다음 책이 출간된다면 이번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천천히 한동일 소설가의 작품세계에 풍덩 빠지고 싶다. 모처럼 좋은 소설 같은 소설집을 만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 그녀는 나와 비슷했지만 달랐다. 그녀는 여유가 없었다. 갓 도시로 정착했을 때 그들은 서툴렀지만, 날것의 화려함이 존재했다. 하지만 도시는 청춘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도시가 원하는 틀에 끼워졌다. 튀어나온 모서리는 갈려 나갔다. 수반되는 고통은 참으라고 강요되었다. 고통마저 무뎌지자, 도시가 원하는 형태로 재포장되었다. 공산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간추려졌다._P20

 

▷ 도시에서의 행복은 평범한 삶 단 하나였다._P83

 

▷ 〈축하의 말 : 길고도 먼 축원_나태주(시인)〉 ‘글은 곧 사람이다.’ ‘모든 글은 자서전이다.’이 두 가지 말을 나는 철저히 믿는 사람이다. 한동일의 글, 한동일의 소설은 한동일 그 사람의 인생, 그 사람의 인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 다시금 특색을 말한다면 단순 명쾌 그 자체일 것이다. (…) 그는 지금 조바심하지는 말아야 한다. 혹여 쉽게 유명해지고 싶어 하거나 책이 많이 팔리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거나 그런 부수적인 소망은 당분간 내려놓는 게 좋을 것 같다. (…) 아직은 멀었다. 멀리 가라. 가서 더 좋은 것을 보고 더 좋은 것을 듣고 돌아와 이야기해 달라. 그대 인생은 아직 멀었다. 날마다 새로운 날이고 시작의 날이다._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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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페디큐어
최세운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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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페디큐어_최세운

 

어찌어찌하여 최세운의 시집 〈페디규어〉 열 권이 내 손에 왔다. 문우에게 선물을 주려고 마음을 먹었다. 최소한 내가 먼저 읽어 보고 전해주어야 예의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맛은 쓴지, 단지, 무맛인지. 그래야 전해주며 무슨 말이라도 할 것이 아닌가.

 

최세운의 시집 〈페디규어〉은 고약하다. 악취가 난다. 끝맛이 씁쓸하다.

내가 이런 평을 하는 이유는 이 시집을 들고 끝까지 읽어낼, 의미를 찾아낼 용의가 있다면 말이다.

나는 웬만하면 적어도 한 권 책을, 시집이 되었든 끝까지 읽는 편이다.

몇 페이지를 읽고 ‘참 특이한 시네.’ 했다. 그래도 용기를 갖고, 이내 용기는 오만을 불러일으켰다.

약이 올랐다. 적어도 시인이 무슨 말은 해야 했다. 적어도 하루를 꼬박 투자한 독자에게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중간쯤 되어 책을 덮고 끝을 펼쳤다. 왜냐하면 시집의 끝 부분엔 작품 해설이 있기 때문이다. 임지훈 문학평론가가 해설을 담당했다.

지금 아래의 두 개의 단이 작품 해설에서 요지를 추려냈다.

결론은 임지훈 문학평론가도 혀를 내두른다. 문구, 문장 하나하나를 훑고, 맛을 보았다. 열 번을 읽었다. 원래 평론가들이 말하는 해설은 적어도 맛에 대한 평가가 있기에. 그가 전한 맛은 ‘고약하다’이다. 사실 이 말은 해설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심전심이라는 것을.

 

최세운의 시집 〈페디규어〉은 참으로 위험하고 고단한 시어를 갖고 있다. 특히 반복의 힘을 빌려 독자의 힘을 빼고, 중반 이후에는 힘을 빼는 것을 넘어 영혼을 갉아먹는다. 나는 바닥나고 배신당한 인내심을 다독이며 생각했다. 세상엔 이런 류 시도 있구나.

도한 세상에는 예쁜 꽃도 있지만 못난 꽃도 있음을. 그래서 그것이 숲을 이루고 산을 이룬다는 사실을 꼭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저러나 문우들께 이 시집을 짧고 강력하게 소개하며 선물을 굳은 마음으로 전해야 할 텐데.

살짝 겁은 나지만, 세상사, 이런 날도 잇고 저런 날도 있는 법이다. 굳이 내가 이런 말하는 이유는 시인에게 같은 말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 최세운의 시집 〈페디규어〉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통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마련된 ‘객관’의 지평 위에서 다시 한번 주관으로 세계를 끄집어내야 한다. 쇠락하고 퇴락한 세계속에서 마찬가지로 쇠락하고 퇴락한 주체의 상을 마련하는 것이다. 등장하는 객관과 주관의 대비 속에서, 주체 또한 세계와 마찬가지로 쇠락하고 퇴락하였다는 그 동일성을 발견하는 것이 최세운의 세계를 여는 첫 과정이다._P136

 

▷ 〈페디규어〉는 세계를 무너뜨린다. 단지 그것뿐이다. 다만 그것이 중요하다. 진실로 실패한다는 것이. 그러니 함께, 실패하자, 철저하게, 무능하게, 비관적이게, 어떤 희망도 없이._P141

 


 

#페디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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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 - 출간10주년 개정판 ㅣ 야생초 편지 1
황대권 글.그림 / 도솔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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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야생초 편지_황대권


내 나이 삼십 대 초반에 MBC 느낌표에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에 책에 부흥을 끌어내던 시기가 있었다. 그 당시에 읽었던 책이다. 그런데 다시 삼십 년을 두고 내 눈앞에 ‘떡’ 허니 나타난 책이다.

그러니 반가운 마음에 다시 정독하게 되었다. 꼭 시간을 서둘러 볼 필요가 없었기에 차근차근 보게 되었다.

만약 인생에 시간이 주어진다면, 적어도 그럴 계획을 품고 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고향에 내려가 2~3년 고향 산천을 글로 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중에는 대부분 야생초, 즉 들풀이 존재한다.

야초는 때때로 돈이 되었고 먹거리가 되었으며 약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열심히 준비 중인데. 기회가 된다면 이란 조건을 내 달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일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황대권 선생님의 일만 봐도 그러하다. 소위 말하는 ‘간첩’, ‘빨갱이다’라는 죄명으로 감빤 생활을 한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그래서 이런 글을 만날 수 있는 것이련만. 그러나 역지사지하며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라. 멀쩡한 사람을 간첩, 빨갱이로 몰아 무기징역으로 감방에, 그것도 독방에 가두어 놓으면.

우리가 그런 세상에 살았다. 적어도 같은 하늘에 두고 같은 지역에서 벽을 하나 두고 말이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나도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신원이 복권되셨다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이후 기사를 통해 최근의 모습을 뵈니 사람이 야생초 같다는 생각을 무심히 했다. 황대권 선생의 건강과 무탈을 기원한다.




 

▷ 하루는 시어미가 밭을 매다가 갑자기 뒤가 마려워 밭두렁 근처에 주저앉아 일을 보았겠다. 일을 마치고 뒷마무리하려고 옆에 뻗어 나 있는 애호박잎을 덥석 잡아 뜯었는데, 아얏!하고

따가워서 손을 펴 보니 이와 같이 생긴 놈이 호박잎과 함께 잡힌 게야. 뒤처리를 다 끝낸 시어미가 속으로 꿍얼거리며 하는 말이 “저놈의 풀이 꼴 보기 싫은 며느리 년 똥 눌 때나 걸려들지 하필이면….” 해서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상리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다네그려._P34

 

▷ 다도의 형식과 조건을 갖출 수 없는 곳에서라도 성과 정으로써 다도를 즐길 수 있노라고. 이런 말이 있다. 배고픔이야말로 최고의 식욕이라는. 거친 음식일지라도 정갈치 못한 물과 재료로 끊임 차일지라도 갈급한 자에겐 그것이 최고의 차인 걸 어쩌리!_P66

 

▷ 오늘은 이놈을 보고 있다가 문득 우리 재소 형제들의 처지가 이와 같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전과자라고 찍히면 생전 꽃 한 번 피우지 못한 채 사회에 나가서 짤리고 짤리고 하는 것이 너무도 흡사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이 사회로부터 아주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둠의 자식들이 되어 땅속에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그러다가 여건만 맞으면 언제라도 밝은 세상으로 비집고 나오는 것이다._P229

 

▷ 잡초를 한자로 풀면 ‘잡스러운 풀’이 됩니다. 학술서적을 뒤져 보면 영어로의 정의가 수십 가지가 나와요.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정의를 한두 가지 들어보면, ‘원치 않는 장소에 난 모든 풀들’, 또는 ‘잘못된 자리에 난 잘못된 풀’ 데게 이렇습니다. 이것은 풀에 대한 철저히 인간 중심주의적 정의입니다._P264

 

▷ “이상적인 잡초는 쓸데없이 크고, 생장 속도가 빠르고, 못생겼고, 쓸모가 없고, 끌이 없고, 야생적 가치가 없고, 숫자가 많고, 쉽게 번식하고, 맛이 없고, 가시가 많고,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독성이 있고, 역겨운 냄새를 내고, 잎이 금방 무성해지고, 재배하기 까다롭고, 제초제에 내성이 강하고, 뿌리가 울퉁불퉁하다.” 하여간 잡초에다 나쁜 말은 다 갖다 붙였어요. 이렇게 잡초에다 나쁜 말을 다 갖다 붙이고, 잡초는 싹 죽여 버리고, 그 자리에 희멀건 야채만 키워 먹었어요. 이것이 오늘날의 농업이에요.(…) 그래서 저는 잡초라는 말을 안 씁니다. 대신에 저는 야초(野草)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_P270



 


#야생초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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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 보호받지 못한 이들에 대하여
모먼트 지음 / 바른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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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14 〈장편소설〉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_모먼트



정말 우연한 일이었다. ‘노숙자’에 대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먼트 작가의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어쩜 이렇게 시기적절하게 딱 맞아떨어진다는 말인가.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마치고 기승전결과 반전에 반전까지 준비했다. 그러나 언제나 마찬가지지만 쓰기 시작했다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즉 마음만 갖고 열정으로 밀어붙일 수 없는 게 작가의 숙명인 셈이다.

계획대로 틈틈이 사색의 시간을 갖고 모먼트 작가의 장편소설을 읽었다.

나는 “유레카”를 외쳤다. 바로 모먼트 작가께서 옆에서 함께 해주고 심지어 조언까지 해준다는 상상을 했다.

놀라운 일이다. 보름 넘게 자료조사를 하고 공부를 했는데 부족한 게, 이야기의 허점에 구멍이 숭숭 보였다.

근데. 그런데 내게도 이런 조언자 같은 행운이 있다니. 내겐 독서의 시간이 흥분하게 만들었다.

 

모먼트 작가의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는 법으로 소외당한 사람들, 고통받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듣고 함께 공감하며 일을 풀어가는 다양한 사례를 소설로 풀어낸 이야기다.

적어도 사례가 열 가지 이상이다. 각각의 이야기는 또다시 뭉쳐져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해결해 간다.

문득 작가의 전적이 궁금했다. 네이버 검색했다. 아~ 브런치 작가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등단 시인, 출간 자가였다. 반갑다. 몹시.

이제야, 장편소설의 사례와 이야기의 깊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보통 이 정도의 이야기는 자료조사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겼다. 여하튼 이 자리를 빌어 도움에 감사함을 전한다.

굳이 ‘이럴 것이다.’라는 편견과 선입감을 버리고 글 쓰는 작가를 포함해 일반 독자도 꼭 읽어 보시길 권한다. 작가 모먼트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그 속에 있는 따듯한 온기를 함께 느껴보길 강권한다.





▷ 감옥이 아니라 마치 ‘교도소’ 같았다. 아이들을 교화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했지만, 내 눈에는 감옥과 다르지 않았다. 수용동 복도를 지나 스쳐 지나간 아이들의 눈빛엔 서늘한 기운이 묻어 있었다. 무표정, 혹은 지나치게 날카로운 표정. (소년원을 방문한 김지안)_P25

 

▷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세상은 때때로 ‘의도 없는 행동’에 가장 가혹한 처벌을 내린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_P38

 

▷ 한 번의 ‘범죄’가 평생의 낙인이 되는 세상에서, 아이는 다시 ‘보통의 사람’이 되고 싫어했을 것이다._P44

 

▷ 아동복지법은 보호 대상 아동의 연령이 만 18세에 이르면 대통령령으로 정한 절차에 따라 보호조치를 종료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 퇴소와 함께 아동에게는 자립정착금 500만 원과 최대 간 월 30만 원의 일정 기간 지급되는 자립 수당을 받았다. 그러나 삶을 버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_P68

 

▷ 그들이 겪은 아픔을 통해 더욱 강해졌고,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변화를 이루기 위해 힘을 합쳤다. 그들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었다._P185

 

▷ 사회복지는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학문이 아니라,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제도 언어로 번역하는 실천이었다. (…) 기록의 유실은 인간의 존엄이 사라지는 지점이며, 복지의 실천은 그 존엄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_P193

 

 

#빛이닿지않는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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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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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_신경숙

 

마음이 뭉클했다. 마음이 답답해졌다. 어느새 신경숙 작가의 페이스에 말린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아내의 얼굴과 오버랩 되었다.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부탁해’는 서울역 지하철에서 노부부가 아내를 잃어버리면서 발생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다.

근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면서 꼭 내 이야기, 내 미래의 이야기 같아 마음 한구석이 계속 절여왔다.

부모 관점에서 풍족하지 않은 현실, 당장 먹고사는 것이 우선이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그 시절이 행복했노라고 자식들은 생각한다. 그리고 고향을 그리워한다. 나도 그렇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고향에 일이 년 머물며 고향 산천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욕심이 있다. 사실 이미 많은 준비를 해 놓은 상태이기는 하다.

이 소설은 아버지와 어머니, 성장한 자식 간의 심리묘사와 기억을 재소환해서 각자의 입장에서 아내와 엄마를 기억하려 애쓴다.

그 속에서 아내와 엄마의 존재에 대한 심층적인 사실들을 인식하고 소중함에 대한 일깨워 간다.

그리고 아내, 엄마라는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지. 그리고 소중한지. 알게 된다. 사실 내가 그랬다. 이건 내 이야기라고.

소설이라 만만하게 보다가 마음이 복받쳐 일주일 내내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이미 떠나신 엄마를 심층적으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신경숙 작가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 끝이 보여야 말이지. 그래두 농사일은 봄에 씨앗 뿌리믄 가을에 거두잖여. 시금치를 뿌린 곳에선 시금치가 나고 옥수수씨를 뿌린 디선 옥수수가 나고…… 한디 그놈의 부엌일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어야. 아침밥 먹음 곧 점심때고 또 금세 저녁때고 날 밝으면 또 아침이고…… 반찬이라도 뭐 다른 것을 만들 여유가 있음 덜했것는디 밭에 심은 것이 똑같으니 맨 그 나물에 그 반찬. 그걸 끝도 없이 해대고 있으니 화딱증이 날 때가 있었지. 부엌이 감옥 같을 때는 장독대에 나가 못생긴 독 뚜껑을 하나 골라서 담벼락을 향해 힘껏 내던졌단다. 내가 그랬다는 것을 니 고모는 모른다. 알면 미친년이라고 하지 않았겄냐, 멀쩡한 독 뚜껑을 집어던지곤 했으니. 너의 엄마는 이삼일 안에 새 뚜껑을 구해다가 독을 덮어 놓았다고 했다._P74

 

▷ 그는 검사가 되지 못했다. 엄마는 그에게 니가 하고 싶어 하는 것, 이라고 했지만 그는 그것이 엄마의 꿈이기도 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청년 시절에 꾼 꿈을 이루지 못한 그것이라고만 생각했지, 그가 엄마의 꿈을 좌절시킨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는 일평생 그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한 게 엄마 자신이라고 여기며 살았다는 것을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_P136

 

▷ 아내를 지하철 서울역에서 잃어버리기 전까지 당신에게 아내는 형철 엄마였다. 아내를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당신에게 형철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였다. 베어지거나 뽑히기 전에는 어딘가로 떠날 줄 모르는 나무. 형철 엄마를 잃어버리고 당신은 형철 엄마가 아니라 아내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오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잊고 지낸 아내가 당신의 마음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라지고 난 뒤에야 손을 만질 수 있는 것처럼 육감적으로 다가왔다._P149

 

▷ “감은 금방 열린다. 칠십 년도 금방 가버리더라.” 그래도 가져가지 않으려는 나에게 엄마가 또 그랬지. “나 죽고 없으면 감 따 먹으며 내 생각하라는 뜻이여.”._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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