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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3년 12월
평점 :

대학원을 다니는 딸이 공지영의 산문을 다 읽었다며 집에 놓고 갔다. 이제 순서가 되어 책을 집어 들었다.
산책하며 매번 로사리오 기도를 드리는데, 그리스도에 대해 선명함을 안겨주는 산문이라는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매번 걸음에 맞추어 묵상하는 데 명화들이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뿐이었다.
마침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공지영 작가의 산문이 단순한 유명 그림에 친절히 설명을 곁들인 큐레이터 역할을 받는 느낌이었다. 이것 또한 하나의 은사이리라.
꼭 종교적 믿음을 떠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성모 마리아의 삶을 통해 우리를 반추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종교적인 신념이 나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 관한 생각을 깊게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예루살렘에 대한 구체적이고 복잡한 속사정을 엿볼 좋은 기회가 되었다.
더불어 종교적으로 평화를 주창하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상징의 그곳에 정작 ‘평화’만 빼고 다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종교적 신념으로 포장한 적의를 가지고 사람의 목숨을 하루에서 앗아가는 현실이 무엇인가 이율배반적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이익을 위해 타인이 도움이 되지 않고 힘이 있으면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고 빼앗고 이익을 탐하는 세상. 그들은 정녕 두렵지 않은 것일까. 오늘도 그곳 인근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었다.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도 팩트는 ‘휴전 국가’이다. 언제든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런 이유로 공지영의 산문이 살짝 혼란스럽고 조금은 선명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공지영 작가와 동거 중인 동백의 인연과 크고 작은 사건들을 들으며 작가의 길고 긴 산문의 여운을 생각한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소소한 정보를 다시 읽고 묵상에 풍부한 영감을 얻는 계기 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누군가 이 도서에 관심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추천해주고 싶다. 적어도 내가 느낀 여운이 함께하길 소망한다.
▷ 언어의 독화살을 피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약간 더 행복했다. 다시 글을 쓴다면 정말 쓰고 싶어서, 생계가 아니라 정말 그러고 싶어서 쓰고 싶었다._P26
▷ 그때 나는 알았다. 새것이 오기 전에 옛것을 반드시 버려야 하는 때가 있는데 이 버리는 데도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만두고 포기하는 것, 멀리 보내고 이별을 해내는 것도 힘이 있어서라는 것을.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제가 이루어낸 과거의 꽃 같은 영화로움이든._P34
▷ 또 하나 재미있었던 것은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의 위치와 고도였다. 예루살렘은 해발고도 800미터, 사해는 –430미터이다. 예루살렘에서 사해까지는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이니 그 가파름이 새삼 놀라웠다. 예루살렘을 조금 더 지나 유다 산지에서 사해까지는 직선거리로 20~24킬로미터인데 고도 1,200미터를 내려오는 여정이었던 것이다. 이건 대관령을 지나 강릉으로 내려가는 길보다 더 가팔랐다._P88
▷ 자기를 알아봐 준다는 것, 이름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_P97
▷ 그때 겨우 열여섯 살이었다고 전해진 마리아. 그녀는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채 임신하면 심한 경우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천사의 예고에 “예”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용기인데,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소식을 들은 마리아가 자신의 약혼자인 요셉에게 알리지도 않고 사촌 언니인 엘리사벳을 보러 먼 길을 떠났다는 것이다. (…) 마리아는 정말로 먼 길을 왔다. 자동차로 두 시간, 직선거리로 140키로미터이다._P112
▷ 우리 모두 알다시피 인간은 이상하게도 남이 나로 인해 행복해지면 덩달아 행복해지는 존재가 아니던가._P117
▷ 그 벽, 통곡의 벽이었다. 지금은 서쪽 벽이라고도 불리는 이 벽은 유대인이나 유대교에 관한 기사에서 사람들이 붙들고 바라보고 있는 바로 그 벽이다. (…) 이곳은 유대인들의 전통상 남자와 여자가 기도하는 곳이 구분되어 있었고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우리가 보는 벽은 그 높이가 약 18미터, 길이가 80미터이지만, 그 아래로 커다란 돌의 단이 지하로 17단이나 더 들어가 있다고 한다. (…) 통곡의 벽은 이 성전이 두 번째로 지어진 후에 다시 파괴되어 버릴 때 유일하게 남은 그 한 조각이다. (…) 예언한 대로 로마인들은 서기 70년경 유대인의 반란을 진압하여 이 성전을 완전히 파괴했다. 완전히 파괴하는 데 5개월이 걸렸다고 하니 성의 규모가 어떠했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_P159
▷ 약간 깨달은 것 가지고는 삶은 바뀌지 않는다. (…) 삶은 존재를 쪼개는 듯한 고통 끝에서야 바뀐다. 결국 이렇게, 이러다 죽는구나 하는 고통 말이다. 변화는 그렇게나 어렵다. (…) 그러므로 고통이 오면 내게 원하는 바를 묻고, 반드시 변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은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틀이 이젠 작아지고 맞지 않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가 한낱 미물이라고 여기는 매미도 허물을 벗어야 더 큰 성충이 된다. 매미는 그 허물을 벗기 전 제 껍질을 키우면서 그것을 벗어 던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겨우겨우 얻은 먹이로 그 껍질을 키웠을 것이다. 그래도 매미는 그것을 버린다. 잠시나마 엄청나게 연약한 피부로 모든 위험에 노출된 채로 새로운 껍데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모든 성장은 위험하다. 성장은 일종의 변형이고 변형은 딱딱하고 강한 것에서가 아니라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것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_P198
▷ ‘불확실성’이야말로 인간의 숙명이자 에너지의 원천일 것이다. 내게도 그것은 참이다. 내 스무 살 때 “당신은 세 번 이혼할 것이며, 결혼 생활은 기억도 하기 싫게 불행할 것이며, 성이 다른 세 아이를 두는데 그 아이들이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며, 당신은 돈을 좀 벌긴 하지만 당신 손에는 한 번도 쥐어 보지 못할 것이고, 당신의 안티들이 당신이 책을 낼 때마다 따라다니며 악다구니를 쓸 것이다”라는 예언을 들었다면 나는 온전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나는 모든 희망을 잃고 글을 쓰려고 시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가오는 남자란 모두 배척해 버리고, 혹은 사귄다 해도 마음 한구석으로 날마다 이별을 준비했을 것이다. 내가 어렵게 번 돈 같은 것들을 그들이 사업한다고 가져갈 때 절대 내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안전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_P268
▷ 고립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을 닫아걸고 자발적으로 자신을 고립시킨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절벽 같던 외로움은 창작에의 벼랑길로 변한다. 그녀가 그것을 당하지 않고 택했기 때문이다. 당하면 외로움이고 택하면 고독 아니던가._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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