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
이지윤 지음 / 쌤앤파커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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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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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니...! 한편으로는 그 뜻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하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은 화가가 아무리 순수하게 창작을 하더라도, 특정 작가의 작품을 소유하고자 하는 소유욕의 결과로 붙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책을 읽으면서 꼭 그 의미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좀 당황스럽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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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서 미술의 순수성을 논했던 이유는 바로 "미술시장" 때문이었다. 미술시장이 생기면서 서로 작품을 사고팔고, 그에 대한 값이 매겨지는 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상업성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지 않아도, 그 작품이 시장의 맛(?)을 보면 자연히 상업성 된다는 의미일까? 싶었는데, 그러기에 미술시장이 생긴 때가 너무 오래되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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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우리가 고전미술이라고 일컬었던 때부터 이미 미술시장은 있었단다. 14세기 르네상스 초기부터 이미 미술시장이 있었고, 그런 면에서 볼 때 고전미술은 처음부터 상업적인 성격을 띠고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일반 대중에게도 기회가 주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미술의 주된 소비층이 상류층인 것은 사실이다.  또 놀라운 점 중 하나는 미술시장에서 한 작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작가를 지원하는 사람과 컬렉터가 일정하게(대략 200명 정도) 확보될 때라고 한다. 200명 정도의 컬렉터가 있다면 미술시장에서 웬만큼 작가가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럼에도  작품마다 그 작품이 지닌 가치는 제각각이어서, 상대적으로 시각적인 흡인력이 강하고 더 많은 컬렉터가 소유하길 원하는 작품일수록 가격이 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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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시장 가치와 미술사적 가치가 꼭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비평가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라고 꼭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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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미술 시장에서 살아남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력과 창의성을 기본으로 하고,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적 태도를 지니고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란다.




이 책을 읽으며 정물화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정물화(still life)는 정지된 생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꽃을 비롯해서 정물화의 주제가 되는 사물이나 물건들은 멈춰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린다. 결국 이 의미는 세상의 모든 것은 유한하다는 의미하는 것이다. 그 안에 담긴 메멘토 모리의 의미를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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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안에는 미술시장에 관한 이야기가 중반부 이후에 많이 나오는데, 덕분에 미술시장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많다. 흑사병 이후에 그림의 가격이 폭등했던 것과 얼마 전 코로나19 시절에도 미술 시장이 활기를 띄었다고 하는데 왜 그런지 역시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특히 경매시장과 한국 미술에 관한 이야기 또한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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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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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사랑의 기억이 담긴 강렬한 사랑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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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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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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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의 말미에서 다행히 윤소인은 폐암 수술이 잘 되었고, 이재이와 함께 요양을 떠나게 된다. 그들이 요양을 위해 떠난 곳은 전라도의 장흥이었다. 과거 이곳저곳을 돌며 여행을 했던 재이는 공기가 맑고 고즈넉한 곳을 찾았고, 그곳이 바로 장흥이었다. 그리고 가지산에 위치한 작은 사찰 보림사. 그곳에서 머물며 소인과 재이는 매일 예불을 드리고 숲속을 거닐며 매일의 삶을 채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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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간 덕분인지 소인의 병은 빠른 속도로 좋아진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 참 안타깝다. 몸을 회복한 소인은 재이에게 한 가지 청을 한다. 그 청은 바로 그동안 하고 싶어도, 집안 사정 때문에 그리지 못했던 그림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 1년을 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그림을 그리기도 어렵고 재이의 집안 사정(?) 또한 재이로부터 들었기에, 극심한 시집살이가 시작된다는 것도 알았기에 소인은 자신의 욕심을 그렇게 재이에게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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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순정남이자 직진남인 재이는 그런 소인의 청을 들어준다. 하지만 행복할 것 같은 그 시간들이 소인에게는 독이 되고 만다. 그렇게 소인은 다시금 암이 재발하는 것뿐 아니라 전이가 되는 상황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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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소인과 재이만큼 많이 등장한 인물은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다. 소인의 아버지가 좋아했던, 소인이 좋아했던, 그래서 재이도 좋아졌던 화가 반 고흐. 소인은 그렇게 빈 센트 반 고흐의 그림과 그의 흔적을 찾아 재이와 함께 네덜란드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소인에게 그 여행은 행복하지만, 또한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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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 서리꽃의 의미가 궁금했다. 유리창에 김이 서려 잠깐 피었다 사라지는 꽃 모양을 서리꽃이라고 한단다. 추운 겨울, 얼음이 결정처럼 유리창에 내려앉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 모습을 길게 볼 수 없었다. 차 안 온도와 차 밖 온도의 차이가 심할 때 나타나는 서리꽃은 온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금방 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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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가 생애 마지막 장편소설이라고 말하는 이 책의 제목을 서리꽃이라고 지은 이유가 무엇일까를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해 봤다. 그리고 그 의미는 마지막으로 재이에게 보낸 편지 속에 드러났다. 5년의 기다림 끝에 사랑을 마주한 재이와 소인의 짧은 사랑은 정말 서리꽃 같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불꽃처럼 강렬한 사랑을 했던 둘의 모습이 제목과 참 잘 어울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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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노 작가의 책 속에 담겨있는 표현이나 서로를 부르는 호칭, 대화들이 좀 진부하거나 요즘 쓰는 문체가 아니어서 몰입에 아쉬움이 있긴 했다. 차라리 시대 배경을 지금이 아니라 90년대 즈음으로 했다면 조금 덜 이질감이 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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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ㅣ 서양철학전집 하이엔드 고전 2
호메로스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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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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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가 개봉해서 인기를 얻었다. 오래전 오디세이아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우선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트로이전쟁을 마친 후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한 오디세우스의 10년의 고난의 이야기가 주요 내용이다. 전쟁의 영웅이었던 오디세우스는 왜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 10년이나 걸렸던 것일까? 바로 신들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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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오디세이아의 이야기를 정확히 알지 못해도 이 책을 읽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한편으로 오디세이아를 읽었지만, 그 의미와 깊이를 정확히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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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라운 것은 이 책의 저자인 호메로스가 시각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음악가에는 귀가, 작가에게는 눈이 생명일 텐데, 그런 불편함 속에서 그는 참 대단한 작품을 남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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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디세우스가 겪는 고난 역시 놀라웠다. 그는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포기할법한 순간이 계속 몰아치지만 그는 좌절하고 낙담하지 않았다. 스스로 뗏목을 만들고 노를 젓는 사람이었다. 오디세우스에게 뗏목은 단지 이동 수단이 아니라 이타카로 가는 여정의 시작이자 유일한 통로였다. 물론 무언가는 시작하고 꾸준히 하는 것은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들고 감정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중요한 한 가지를 알고 있었다.

남이 만들어준 것은 남이 가져갈 수 있지만, 내가 만든 것은 실패해도 내 안에 흔적으로 남는다.

그 흔적이 결국 나라는 사람의 뼈대가 된다.

 이타카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잠깐 한눈을 판 사이 결국 주머니를 열었던 부하들에 의해 다시 세상 끝으로 내쳐짐을 당하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 저자의 다른 해석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나도 그 부분을 읽으면서, 부하들을 탓하기 급급했었는데 저자는 그 부분을 마지막까지 긴장하지 않고 나태해졌던 마음가짐에서 문제를 찾았다. 우리 역시 그렇지 않은가?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이 나태함으로 변하여 중요한 순간을 놓치게 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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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의 각 내용과 함께 그 부분을 읽으며 깨닫게 되는 묵직한 교훈들이 꽤 많이 담겨있다. 식인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 안에서 부하 두 명이 죽고, 거인에 의해 처참하게 시신이 난도질 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는 무모하게 칼을 빼들지 않았다. 어찌 보면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 부분 역시 저자의 새로운 해석을 들으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무언가를 뒤집어야 할 순간에 필요한 것은 당장의 복수나 분노가 아니라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눈이라는 것. 오디세우스는 그 순간의 분노를 분로로 쓰기보다는 저장해두었다. 그리고 감정을 정확하게 써야 할 때 사용했다. 결국 그랬기에 오디세우스는 그 동굴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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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파이아케스에서 일 역시 그렇다. 모든 것을 잃고 처절히 밑바닥까지 추락한 오디세우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그 밑바닥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기 보다 그 고통을 뼈대 삼아 진정 자신의 것들을 채워나갈 줄 알았다. 내가 그 상황에 처했던, 타인이 그 상황에 처했던 섣부른 위로보다는 스스로 삶을 세워나갈 수 있도록 시간을 허락하자. 그리고 그 끔찍했던 기억이 언젠가는 내 삶의 진정한 뼈대를 세워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남이 만들어준 것은 남이 가져갈 수 있지만, 내가 만든 것은 실패해도 내 안에 흔적으로 남는다.

그 흔적이 결국 나라는 사람의 뼈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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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 - 아무도 나를 구원할 수 없을 때, 스스로 구원이 되어라
빅터 프랭클 지음 / 닻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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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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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는 변형을 남긴다. 

그리고 그 변형이 좋은 방향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 이후의 내 태도였다.

 얼마 전 빅터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 이후>라는 책을 읽었다. 사실 <죽음의 수용소>도 읽지 못한 상황이어서, 이 책을 읽으면서 빅터 프랭클 박사의 삶과 그의 이론에 대해 새롭게 마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 만나는 빅터 프랭클 박사의 책을 읽으며 여러 부분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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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놀라는 부분은 그가 있었던 곳이 결코 안락한 환경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 어떤 희망도 꿈꿀 수 없고, 어떤 미래도 떠올릴 수 없는 곳 말이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빅터 프랭클 박사의 경우도 부모를 비롯하여 아내와 가족들을 전부 떠나보냈다. 혼자만 살아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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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은 헌신의 몫이고, 결과는 결과의 몫이다.

이 둘을 분리해서 사고할 수 있는 사람만이, 표적의 강박에서 벗어나 부산물의 평온을 누릴 수 있다.

의외로 뭔가 원대한 꿈을 꾸어야 그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빅터 프랭클 박사는 먼 미래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인생의 목표들을 정했다고 한다. 가령 미뤄두었던 소소한 것들을 적어보고 실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 작은 것들이 모여서 결국 시간이 되고, 그 시간이 모여서 결국은 삶을 이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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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역시 수용소 문이 열리고 해방이 되었지만, 곧바로 환호하고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미 자유를 잃어버린 채 오랜 시간을 지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의 잣대를 빼앗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족도, 원고도, 인생의 일부 시간도 빼앗겼지만, 최종 판결을 누군가에게 맡기지 않았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삶을 책임질 줄 알았다. 물론 그 일은 쉽지 않다. 어쩌면 그 잣대와 판결을 타인에게 맡기고 살아가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잣대를 남에게 내주지 말자. 또한 그 잣대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계속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또한 스스로의 삶에 긍지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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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마지막을 넘기며 이 한 줄이 깊이 가슴에 박혔다. 지금 내 삶이 유쾌하지 않고, 매 순간이 고비처럼 생각될 때 이 문장을 떠올리고 곱씹어 보자. 삶의 생각보다 깊은 위로가 될 것이다.

시련의 밤이 깊을수록 실존의 별은 더욱 빛난다.


통과는 변형을 남긴다.

그리고 그 변형이 좋은 방향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 이후의 내 태도였다.

헌신은 헌신의 몫이고, 결과는 결과의 몫이다.

이 둘을 분리해서 사고할 수 있는 사람만이, 표적의 강박에서 벗어나 부산물의 평온을 누릴 수 있다.

시련의 밤이 깊을수록 실존의 별은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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