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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를 떠나면
크리스털 하나 김 지음, 허선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해미는 아름다웠고, 지수의 것이었다. 그녀는 그런 표현과 그 진실을 싫어했다.
몇 년 전 파친코를 읽었다. 이야기 속 시대도, 배경도, 책을 흐르는 특유의 정서도 낯설었다. 아마 그 낯섦에는 재미교포라는 작가의 위치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 이후로 한국의 정서가 담긴 번역된 소설들이 인기를 얻고 봇물 터지듯 나왔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렇게 몇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 책. 흰색 한복을 입은 여성의 뒷모습이 담긴 표지를 보면서 어떤 내용일지 너무 궁금했다. 근데 첫 장부터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북에 살다가 6.25 전쟁 때문에 부산으로 피난 온 해미와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 현기. 다행이라면 어머니의 친척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 초가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폐결핵을 앓는 동생 현기를 돌보는 해미. 현기의 상태가 괜찮은 밤이면 몰래 집을 빠져나가 고향 소꿉친구였던 경환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둘은 술을 파는 곳을 전전하면서 매일 밤을 술을 마시면서 지낸다.
해미와 경환은 서로 마음이 있다. 하지만 경환의 사촌 형 지수의 등장으로 이 둘의 사이는 애매해진다. 해미에게 반한 지수는 적극적으로 구애를 시작한다. 지수는 돈이 많았다. 지수에게 관심이 없지만, 지수처럼 적극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경환의 모습에 속이 상한 해미. 결국 지수는 자신이 가진 돈으로 해미의 가족들을 휘어잡는다. 음식을 사 오고, 아픈 현기의 약까지 지어오는 정성에 해미의 엄마도, 현기도 지수가 좋아진다. 얼마 후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지수는 해미에게 청혼을 한다. 마음속에 경환이 있지만, 아픈 동생 현기를 살리기 위해 결국 해미도 지수와의 결혼을 승낙한다. 그리고 지수는 군 입대를 한다.

해미를 좋아하긴 했지만, 사실 지수에게 해미라는 존재는 군에 갔다 왔을 때 자신을 기다릴 가족의 역할을 할 사람이었다. 거기에 자신의 뒷바라지를 하고 아들을 낳아 줄 여자. 바로 그 정도의 의미밖에 없었다. 하지만 해미는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로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이해 미라는 여성으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시대가, 지수가, 아이들이 그녀에게 그런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수의 재력 덕분에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해미의 마음에는 여전히 경환의 자리가 남아있었다. 두 딸을 낳은 해미는 더 이상 임신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수는 해미에게 계속 아들을 낳기를 강요한다. 해미가 지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지수 역시 알고 있었고, 그렇게 그는 바람을 피우고 밖으로 나돌기 시작한다. 그런 해미를 찾아오는 경환.

현대사의 시간 속에 해미 가족의 이야기가 들어가면서 그녀의 삶이 자꾸 눈에 밟힌다. 지금의 모습에서 보자면 해미의 삶은 너무 안타깝다. 그러면서도 해미는 그 시대의 전통적인 아내이자 엄마의 모습과는 괴리가 있다.
불행한 부모의 삶을 목격하는 딸들과 경환의 출현으로 해미도 지수도 경환도 불편한 관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게 된다. 과연 해미의 뱃속의 아이의 친부는 누구일까? 가 어느 순간 궁금해지기도 한다.
쉽게 읽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왠지 모를 불편한 감정이 책을 읽는 내내 올라와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리고 결말을 읽으며 책 표지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고 이야기 하기에는, 물론 그게 가장 큰 이유가 되겠지만 그럼에도 안타깝고 아픈 이야기다. 남자는 되고, 여자는 안 되는 것이 그시대의 분위기였겠지만,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