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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위한 그림 상담소 - 소아과 의사가 들려주는 지친 마음을 위한 명화 처방전
장주희 지음 / 영진미디어 / 2026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공감은 좋은 것이지만, 긍정적인 반응만 해 주면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자기밖에 모르고 남들이 다 내 마음 같을 것으로 생각하게 되지요.
그래서 적당한 수준의 좌절도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좌절이란 안 되는 것을 안 된다고 말하거나, 아이의 욕구를 모두 채워주지 않고 남겨두는 것,
아이가 부모의 사소한 실수나 허점 등을 깨닫는 모든 과정입니다.
이제까지 쌓아온 모래 성에 조금씩 구멍을 내는 과정입니다.
한 번에 와르르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숨 쉴 구멍을 내주는 것입니다.
이 책의 차례를 훑어보고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부터 지긋지긋하게 싸우고 있는 자존감의 문제, 이 자존감이 해결되지 않으면 엄마가 돼서도 아이들에게 왜곡된 시선을 심어준다는 여러 책 때문에 만나는 사람이 없음에도 나는 자존감에 관한 책을 참 많이도 읽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여전히 나는 자존감과 싸운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낮은 자존감을 주입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괴로울 때도 많다.
지나가는 아이가 예뻐서 길을 멈추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이를 낳고 나면 모성애가 생길 거라는 예상과 달리 출산 후 3시간 간격으로 하는 수유도, 잠을 못 자 점점 폐인이 되어가고, 지독한 산후우울증에 하루에도 몇 번씩 베란다에 쭈구리고 앉아있었던 것도 나한테는 고통이었다. 왜 나는 아이가 마냥 예뻐 보이지 않을까?를 참 많이도 고민했었다. 오히려 내 모성애 보다 남편의 부성애를 여전히 더 쉽게 마주할 수 있다.
그런 내 고민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있다. 엄마가 된 게 마냥 기쁘지 않다는 제목 안에 처음 등장한 작품은 모나리자다. 모나리자와 모성이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을까? 다빈치가 그린 리자 부인은 피렌체의 부유한 직물 상인 프란체스코 델조콘의 아내였단다. 이 그림을 그렸을 당시 리자 부인은 출산을 한 지 오래지 않은 상태였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 눈썹이 갑상샘 기능 저하증 때문일 수도 있다는 저자의 의학적 설명을 듣고 보니, 모나리자의 표정과 분위기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지금보다 엄마의 일이 훨씬 많았을, 지금보다 더 많은 아이를 낳고 길러야 했던 리자 부인의 상황에 묘하게 공감이 갔다. 물론 그녀는 부유한 집안이어서 이렇게 그림까지 남겨졌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 가정의 엄마들은 과연 어땠을까? 저자의 설명이 함께 더해지니 비로소 그림 안에 담겨있는 감정들이 하나 둘 읽히기 시작한다.

책 안에는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켜켜이 담겨있다. 특히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청소년 도박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다. 그리고 그 도박에 관한 내용에는 카라바조의 그림이 등장한다. 카라바조 자체도 음주와 폭행, 도박 중독 등으로 결국 도망 다니며 살았다고 한다. 한편으로 현재 우리 사회 속에서 청소년 도박은 본인이 도박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출되게 된다. 웹툰을 보다가도 자연스레 도박에 노출될 수 있고, 친구와 게임을 하다가도 노출될 수 있다. 그들을 향한 색안경을 끼기보다 우선 사회의 정화 분위기가 꼭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책에는 자존감에 관한 부분도 등장한다. 근데 저자는 과연 자존감이 높은 게 마냥 좋은 것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같이 등장한 그림은 그리스 로마신화의 나르키스트에 관한 작품들이었다. 스스로에게 빠져, 타인의 고통이나 어려움에 반응하지 않고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자존감이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아이 스스로 좌절도 겪어보고, 부족함 또한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그와 함께 책에는 수잔 발라동의 작품과 그의 삶이 등장한다. 모델 출신이던 그녀는 연인이었던 르누아르에게 버림받고 그의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엄마의 역할을 한다. 그녀는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고 화가의 삶을 이어가며 아들을 키운다. 르누아르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굳건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자화상을 통해 그런 모습을 다시금 발견하게 된다.
명화를 마주하며 당시의 아픈 마음들과 생각들에 공감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명화의 깊이를 마주하게 된다. 엄마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부터 나를 좀 놓아주어야겠다. 그리고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 주어야겠다. 곁들여진 의학 지식과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을 마주하고 보니 그림이 또 다르게 다가온다. 그림을 통한 위로를 마주한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