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흔들릴 때마다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 희망이 사치일 때 우리는 무엇으로 버티는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 닻 / 2026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금 도스토옙스키의 단편집을 읽고 있지만, 뛰어난 명성에 비해 내가 읽은 그의 책은 [가난한 사람들] 한 권뿐이다. 도스토옙스키 하면 떠올리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이 있지만, 워낙 두꺼운 페이지에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마주하고 나니 이 책에 등장한 책들을 한번 마주하고 싶어졌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실제 모습을 읽고 싶어졌다.
한참 대세를 이루었던 힐링 소설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따뜻하고 위로가 되고, 감동을 주는 한 줄을 마주하며 용기를 얻지만, 왠지 그런 힐링은 얕은 위로 같은 느낌이 들어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분명 감동을 받았는데, 그 감동이 오래 가지 못한다. 이런 표현이 맞을까 싶긴 하지만, 택배를 막 받았을 때의 기분이라고 할까? 막상 언박싱을 할 때의 기분 좋음처럼 그 기쁨이나 행복이 오래 가지 않는다. 찰나의 기쁨이라고 표현하면 맞겠다.
그런 면에서 현대의 우리는 얕은 힐링에 중독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계속되는 얕은 힐링에 더 이상 감동을 받지 못한다.
근데, 이 책은 결이 달랐다. 당근이 아닌 채찍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매서운 충고, 돌직구 충고 같았다. 근데 오히려 이 돌직구가 얕은 위로보다 더 깊은 위로를 선사해 준다. 그렇다고 내가 마조히스트는 아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에게 일생일대의 죽음이 눈앞에 온 적이 있었다. 바로 사형선고를 받고 5분 후면 목숨을 잃는 순간이었다. 그 시간이 그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 그는 삶에 다시금 눈을 뜨게 된다. 다행히 5분 후 황제의 사면령을 받았고(도스토옙스키 모르게 꾸며진 황제의 각본이었다.), 그렇게 죽음에서 삶으로 옮겨온 시간을 통해 그는 삶에 깊이를 발견하게 된다.
그 경험 때문인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그가 경험한 삶의 단면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들이 보이기도 하다. 하나같이 힐링이 되는 인물이라기 보다 각자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가 겪은 삶의 궤적이 결코 달콤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근데, 사실 맞다.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이 꽃길만 걸을 수 없다는 걸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칭찬과 위로만을 찾아다니는 이유에 대해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자유가 주는 고뇌와 책임이 두려워 스스로 자유를 반납하고, 아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실제 모습을 마주하기를 겁낸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실제 모습을 되찾기 위해 책은 여러 조언을 하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한 가지는 거절 연습이다. 내 속이 곪으면서, 착한 사람인 척하는 가면을 벗기 위해서는 거절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작은 것부터 솔직하게 거절하는 연습을 해보자. 물론 당연히 힘들다. 근데 우리가 거절을 힘들어하는 이유는, 그 거절 이후에 오는 불편한 감정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의 서운함과 내 평판의 흔들림을 이겨내야 내 실제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
우리는 도덕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자기 우월감에 취해 은밀한 쾌감을 즐긴다.
즉, 우리는 선을 베풀고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에게 가짜 훈장을 달아준다.
그 훈장이 무게에 중독되면, 우리는 점점 더 큰 희생을 자처하게 된다.
누군가는 그것을 헌신이라 부르지만, 나는 그것을 정직하게 자기도취라 부르고 싶다.
헌신과 자기도취는 외관이 똑같다. 다만 동기의 결이 다를 뿐이다.
책에는 참 흥미롭고, 찔리는 이야기가 많다. 내가 선이라 여기고, 도덕이라 여기는 행동들의 이면에 담긴 감정 하나하나까지를 까발려지니 민망하다. 근데 그런 감정들을 만나고 나니, 내가 그동안 숨겼던 감정들에 대해 정직하게 마주할 용기가 생긴다.
그는 좌절을 피하지도, 시련을 무찌르지도 않았다. 사랑하는 두 사람(형과 첫 아내)을 잃고 나서도, 형이 남긴 막대한 빚을 앞에 두고도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을 피하기 보다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 저자는 이 부분을 이렇게 표현한다. 삶은 오래 음미하고 씹는 것이라고 말이다. 오늘의 숙제처럼 삶의 무게를 조금씩 대하는 것. 그렇게 버텨내는 연습은 피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빛을 발한다.
책을 읽어가면서 도스토옙스키의 삶의 모습과 그의 작품을 통해 삶을 두 발로 살아내는 법을 마주하게 되었다. 오늘을 버티는 용기는 큰 뭔가가 아닌 일상의 평범한 반복이란다. 같은 시간 출근길에서 마주하는 얼굴, 카페를 지날 때 나는 커피향, 동네 빵집에서 새벽에 풍기는 빵 냄새, 친구가 건넨 문자 한 줄이 바로 그것이란다.
오늘 하루도 버티느라 힘들었던 당신. 혹시 당신이 버티는 그 무엇이 혹시 타인의 시선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가면을 찢어버리고 자유를 되찾은 당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묵묵히 오늘을 버티게 하는 그 힘은 내일도 당신과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