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원, 은, 원
한차현.김철웅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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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책 띠지에서 SF라는 글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추리소설일 거라 생각했을 정도로 책 속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했다. 35살의 은원은 7살 연하의 남자친구 차연을 만나고 있다. 직장을 다니는 은원이 연차를 내서 둘은 만난 지 600일을 기념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다. 함께 둘레길을 걷고, 차를 마시며 여행을 즐기는 은원과 차연. 우연히 은원이 과거 다니던 직장의 대표의 가족을 만나면서 약간의 어색함이 감돌기는 했지만 그래도 둘의 여행은 즐거웠다. 둘 다 제주도 여행이 처음이라는 공통점까지 발견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공항에서 헤어지고 난 후, 은원이 사라진다. 차연의 문자에도, 전화에도 답이 없다. 바쁠 때는 연락이 없긴 했지만, 이 정도로 연락이 안 된 적은 없었는데... 왠지 모를 불안감이 차연을 감싸고돈다. 결국 은원의 오피스텔로 향하지만, 그곳에도 은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은원이 사라진 지 일주일. 결국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경찰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혹시 싸운 것은 아닌지를 먼저 묻는 걸 보면, 그저 연인 간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차연의 이야기를 듣고 달려온 수이와 민규는 그런 차연을 위로하며 은원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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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와 민규의 위로 때문일까? 연락이 온다. 은원의 어머니라는 차진선과 고모 소현정은 차연에게 시간을 내달라고 한다. 사실 은원이 베르니크 코스타로프 증후군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기억이 몽땅 사라지는 병. 과거에 두 번 정도 은원은 그런 경험을 했고, 이번에도 역시나 은원에게 기억이 사라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런 은원임에도 아끼고 이해해 줄 수 있냐는 물음에 차연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을 한다. 그리고 몇 주 만에 다시 은원을 만나게 되는 차연. 하지만 은원에게 뭔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녀의 손가락에 새겨진 타투에서 그 이질감을 정확히 느끼게 되는 차연. 도대체 은원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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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은원과 차연이 처음 만났던 시점과 현재를 오고 가며 둘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야간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만나게 된 둘은 "저녁"이라는 매개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서로의 존재를 문득 떠오리는 순간이 잦아진다. 그렇게 둘은 연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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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차연과 은원은 차연의 기억을 바탕으로 과거를 조금씩 곱씹게 된다. 신기한 것은, 차연이 사진을 찍듯이 모든 상황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은원과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이다. 그랬기에 차연은 은원의 손가락의 타투의 위치와 모양을 떠올릴 수 있었고, 은원의 손가락을 보는 순간 이질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게 되는 차연. 전에 만났던 은원의 고모 소현정이었다. 그녀에게 어떤 이유도 묻지 말고 은원을 데리고 와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날 은원은 아주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하지만, 가야 할 것 같았다. 소현정이 실제 은원의 고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했기 때문이다. 소현정, 이인태와 함께 도착한 그곳은 여의도의 CL23생명 연구소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차연은 은원과 똑같은 모습을 한 나체의 여인들이 캡슐 안에 들어있는 것을 마주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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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은원들의 존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과연 그녀들은 사람이 맞는 걸까? 내가 차연이라면 그런 은원 중 하나인(그의 옆에 있는 은원은 그중 두 번째 은원이다.) 그녀를 과거처럼 받아들이고 사랑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기 위해 또 다른 가공의 무언가를 만들고, 만들어진 그를 통해 필요한 부분을 떼어내 사랑하는 사람을 좀 더 내 곁에 머무르게 하는 것. 과연 그게 옳은 것일까? 잘 모르겠다. 그건 어쩌면 내 욕심이 아닐까? 이별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이별이 있기에 현재 내 옆에 있는 이 존재가 더 빛이 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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