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 -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지 마라
얀 드로스트 지음, 유동익 옮김 / 연금술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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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로 살 때 가장 행복하다"

‘기대다’라는 뜻은 근거와 이유를 둔다는 것이다. 생각에 온전히 기대려면 모호함이 아닌 분명함이 되도록 생각에 다가서야 한다. 나로 산다는 것은 내 생각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관점과 개성은 생각 속에 드러나며 나로 살 때 인간은 행복하다. 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여러 경계에 부딪혀 생각해야 한다. 모호한 경계를 분명하게 만드는 것은 치열하게 나만의 생각을 분리해 내게 맞는 인생철학을 세우는 것이다. <생각에 기대어 철학 하기>에서는 여섯 갈래로 나누어진 철학자의 삶의 철학과 행복을 들여다보며 생각의 경계를 세우는 연습을 할 수 있다.

534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에 총 6강으로 구성된 책에는 에피쿠로스 학파, 스토아학파,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샤르트르, 푸코의 철학이 소개되어 있다.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학파는 삶의 목적은 행복이라 주장하면서도 서로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은 달랐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행복은 곧 쾌락에 있다고 주장한 반면, 스토아학파는 금욕적인 덕의 생활에 행복이 있다고 말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두려움의 이유를 알면 행복할 수 있다 생각하고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두려움을 없애려 했다. 스토아학파는 일원론을 주장하며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어 선, 행복, 자연을 따르는 삶은 이성과 동일하다 보았다. 이성을 따르지 않고 감정대로 살아가는 행위는 행복과 멀어지는 행위라 여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토아학파와 달리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이성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현재 있는 것만을 보지 않고 될 것, 될 수 있을 것을 동시에 보았다. 그는 행복이란 우리의 인간 됨을 바로잡는 것이며, 선한 삶을 위한 근본은 우리 본성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스피노자는 삶의 필연을 이해할 때 행복해질 수 있다는 범신론 일원론을 수립했다. 그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이성이며 정신이며 신이다 생각했으며, 결정된 인생에 대해 고통을 겪는 자세는 현명하지 못하다 보았다. 샤르트르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자유는 비정립적 자기의식 상태를 일컫는데, 이는 인간을 진정한 자유의 세계에 눈뜨게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이 욕망을 쫓아 이루어진 삶인지, 정말 행복한 삶인지 물어보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라는 말이 인간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준다. 철학은 곧 생각하는 능력과 의심하는 능력을 키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길러 준다. 인간만이 자신에게 묻고 답하며 새로운 길을 끊임없이 찾아 나설 수 있다. 각각의 철학자들의 생각에 맞닥뜨리면 나의 경계를 알게 된다.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은 철학자들도 모두 삶에 의문과 해답을 찾아가며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었다. 그 대답은 각자가 다르며 누구도 자신의 행복에 대한 기준을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다. 생각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이미 철학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철학이 없다 해도 사는 데 큰 지장은 없다. 반대로 인생철학을 세운다고 행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내 생각이 기초가 되지 않은 삶은 공허하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가꾸는 데 선택권이 있으며 바람직한 삶이란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자유를 돌보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저자의 말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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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다른 나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9
임현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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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에 넣는 필러를 녹일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며 피부 조직에 흡수되어 변형된다고 한다. 주입된 필러는 무게 때문에 뼈에 구멍을 만들 수 있다. 문득 완전히 제거할 수 없으며 평생 내 몸의 일부가 되어 무게를 가진 필러가 책 속의 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사람들의 생각을 환기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가기도 하니까 말이다.

어떤 이야기가 진짜 이야기인가. 책을 덮자마자 ‘이게 뭐지?’하고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 읽어야 하는 이야기였다. 두 가지 이야기는 피부에 삽입된 필러처럼 묘하게 얽히고설키어 어느 것이 주입된 필러이고 실제 피부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책은 소설가가 펼쳐 놓은 상상과 허구의 세계가 결코 상상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평생토록 무게를 가지고 뼈까지 내려앉게 만드는 필러처럼.

“그게 정말 있는지 없는지 같은 건 당시의 내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이 우리에게 몹시 의미 있는 장면이 되었다는 점이에요." p.65

“당신이 무얼 기억하든 그런 사람은 없어. 연구실 같은 건 없어. 당신이 기억하는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그냥 그것 모두 다 이 소설일 뿐이잖아. 내가 아니라, 그냥 당신이 그렇다고 믿는 이야기들일 뿐이라고.” p.109

두 이야기는 순서를 두고 교차로 진행된다. 첫 번째 이야기는 신약개발사업을 하고 있는 남편을 둔 아내의 독백에서 시작된다. 그녀의 남편은 키우지도 않는 개를 찾는 전단지를 만들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결혼을 앞둔 여행에서 찍은 사진 속 까만 점을 고래라고 말하는 남자와 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믿어 주는 것이, 아니 믿기로 결정한 여자의 모습은 뭔가 부자연스럽다. 인간은 합리성에 따라 논리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심을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키우지도 않는 개를 찾는 남편을 위해 비슷한 개를 사 온다. 그러나 남편은 그녀가 남편의 약이라 말했던 약을 보며 그녀의 약이라 말하며 그녀는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라 말한다. 뒤늦게 뭔가 놓친 부분이 있었는지 첫 페이지로 돌아가 보았지만, 이야기 속에는 두 등장인물의 정상과 비정상을 가늠할 수 있는 근거는 보이지 않았다. 둘 중 누구의 이야기가 진실일까.

“실은, 당신이 모르는 비밀이 있어.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그건 실수였지. 당신에게는 말해줘야 할 것 같았어……. 내가 말하면, 그게 무엇이 됐든 미양은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 미양은 나를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그런 일을 저지를 만큼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세상 누구보다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미양은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 지금 내 감정이 진짜라는 걸, 내 사랑에 하나도 거짓이 없다는 걸, 미양은 그걸 어떻게 아는 걸까. 지금 내가 진짜 나라는 걸 당신이 어떻게 알 수 있지?”p.58

두 번째 이야기는 한 소설가와 그의 아내 미양에 대한 이야기다. 미양은 양산에 사는 선배네 집을 방문한 뒤부터 집안의 가구가 성에 차지 않는다. 함께 가구점에 들러 가구를 살펴보는 동안 가지 않을 여행지와 있지 않는 가구를 들먹이며 점원의 눈치를 끊임없이 살피는 소설가와 무심한 아내의 모습은 여느 부부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소설가를 닮은 사람을 남편이라며 찾는 광고가 스치듯 지나간다.

미양은 결혼 전에 도박은 안 된다는 것과 소설 속에 자신을 등장시키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소설가의 책 속에 주변인들의 이야기는 조금씩 각색되어 들어가게 마련이다. 미양은 소설가의 책 속에 등장하는 자신의 부분들이 모두 자신으로 여겨질까 염려한다. 소설가가 중고서점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독자를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묘하게 흘러간다. 그녀는 소설가로서 그를 알아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남편으로 알아본 것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도망쳤지만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게 된다.

소설가의 소설인지 실제 상황인지 두 이야기의 접점은 그곳에서 시작된다. 소설의 시작은 늘 그랬을 것이다. 누군가의 입에서 전해진 이야기의 조각들이 파편처럼 조각난 상태로 있다가 붙여지고 잘라내어 재탄생 되는 것이다. ‘그이의 얼굴이 무척 낯설더라고요.’라는 말이 ‘맹세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의 얼굴’이 되고, 제약회사에 다닌다던 남편은 신용불량자로 탈바꿈되었다. 소설가는 이런저런 살을 붙여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그런데 인터넷 게시판에 등장한 글에서 소설가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쓴 이야기와 비슷했다. 마치 자신이 짜깁기해 생성한 새로운 이야기가 도용된 느낌이 든 것이다. 더구나 남편을 찾는다는 인터넷 게시글 댓글에는 자신의 사진과 자주 가는 중고서점의 주소가 올라와 있었다. 소설가는 급기야 게시글의 전화번호로 연락하게 된다. 소설가는 글이 아닌 진짜 현실 속 사건으로 빠져든다.

소설가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달인이다. 그들이 지어내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는 어디일까. 그의 작품 <엿보는 손>에서는 누군가가 써준 자서전의 글을 자신의 삶이라 믿고 살았던 아버지가 나온다. 한권의 책을 읽은 뒤 달라진 삶은 누가 부담하느냐는 작가의 외침은 끝나지 않고 <당신과 다른 나>를 출판해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어 다시 묻고 있었다. 관심 품목을 클릭할 때마다 소셜 웹 광고창에 뜨는 광고들처럼 내가 읽는 책들이 집계되어 미래의 일상을 결정하게 된다면 소설가의 책무가 조금 무거워질까.

툭. 책표지의 전체 그림이 엽서 크기로 따로 제작되어 끼워져 있었는데 바닥에 떨어졌다. 전체 그림을 보았을 때 생경함. 내가 보고 경험하는 내 현실도 표지로 선택된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부분을 들춰보고 맞춰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현실 앞에 경계는 무의미해 보인다. 소설가는 삶의 부분을 섬세하게 발췌하고 오려내어 극한으로 몰아가 즐기는 사람이다. 독자는 소설가의 장단에 맞춰 진흙탕에 빠지기도 하고 늑대를 만나기도 하며 현실의 극한에 다가가 보는 것으로 족하다. 오늘 내가 열어 볼 상자는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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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에프 그래픽 컬렉션
닉 아바지스 지음, 원지인 옮김 / F(에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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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가 지배를 받는 것이라 생각할 때 그 지배하는 필연적이고 초인간적인 힘을 운명이라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운명을 지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금부터는 저 위를 올려다보게 될 거야...... 그리고 그 너머까지." 동정심이 지나치다고 미친 여자라 불리는 시대, 우주 정복까지 꿈꾸는 인간에게 하지 못하고 이루지 못할 일은 없는 듯 보인다.

운명을 지배하는 사람, 세르게이 파블로비치 수석 설계자 동무는 스탈린에 의해 대숙청 대상에 속해 굴라크에서 수개월을 보내다 살아남는다. 자신이 시련 속에 살아남은 이유를 불굴의 의지라 생각하겠지만, 만약 길거리에 놓인 빵 한 조각이 없었다면 살아남았을까. 그는 역경을 극복해 가며 운명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리한 개발을 요구하는 계획에 동참한다.

세계는 2차 세계대전 후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미국과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이 냉전의 중심이었다. 소련의 인공위성 개발은 전후 냉전시대의 국력 과시였다. 1950년대 미국과 소련은 우주에서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험용 우주선에 동물을 실어 우주로 날려 보낸다. 라이카는 떠돌이 개 생활을 하다 모스크바 항공의학 연구소에 투입된다. 이 책은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우주로 보내졌던 개, 라이카의 이야기다.

러시아 혁명 40주년 기념일 직전 1957년 11월 4일 스푸트니크 2호는 라이카와 함께 발사된다. 지구로 생환시키는 기술이 전무한 상태였다. 인간이 운명을 지배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너무 많았다. 현재까지도 인간의 안전을 위해 시행되는 동물시험이 윤리적이지 않다는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무한한 욕망으로 지식 너머를 쫓는 수많은 수석 설계자 동무들이 있는 한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모든 인간들이 가지고 싶은 만큼 다 가지게 되었을 때 인간에게서 찾을 수 없는 것은 동정심과 같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훈련사 옐레나와 올레그는 모든 사람들이 욕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과 같은 사람이 있어 세상은 따뜻하다는 것을, 인간의 욕망이 머물러야 할 자리는 우주 밖 너머가 아니라 온기를 잃어가는 인간의 가슴이라는 것을 작가 닉 아바지스는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 읽었던 방정환 정본 속 동화 <귀여운 희생>은 라이카와 공교롭게도 같은 선상에 있었다. 미술가가 되기 위해 나비를 해부하려고 했던 소년과 불쌍한 나비를 지키려고 자신의 손으로 막아내다 손이 베이는 누이. 분석과 실증의 세계 속 인간의 욕망을 경고하는 작품이었다. 인간의 욕망은 한계가 없다. 때때로 욕망은 문명을 앞당기기도 하지만 인간성은 문명 아래 매몰되기 쉽다.

라이카 이야기로 출판된 책 제목 중에 '별이 된 라이카'라는 제목을 보았다. 인간의 욕망이 아름다운 별빛에 교묘히 희망으로 희석되어 보였다. 그래픽 노블로 보는 라이카에는 다른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은 곱슬이 쿠드랴프카, 라이카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라이카의 희망은 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에게 사랑받는 개로 돌아가는 것이었을 것이다. 끝없이 쌓아올려야 하는 문명의 탑보다 한 사람의 마음에 닿는 게 소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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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구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돈지갑 권정생 문학 그림책 6
권정생 지음, 정순희 그림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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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권정생 문학 그림책이라는 타이틀로 다시 만나게 된 권정생 선생님 그림책 시리즈다. 놀라운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깜장 병아리 <빼떼기>, 어머니의 삶을 보여준 <사과나무 밭 달님>은 2019 볼로냐 라가차 상을 받은 작품이다.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농부가 진짜 장군이었던 <장군님과 농부>. 권정생 선생님의 이야기에 정성스러운 그림이 덧입혀진 그림책은 매번 또 다른 느낌과 감동을 준다. 그래서 책 한권이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작품이 그림책으로 나올까 기대된다. 여섯 번째 책은 <만구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돈지갑>이다.

 

아저씨는 기분 좋게 무언가 새끼줄로 엮어 끌고 가는데 지켜보는 고양이 모습은 꼬리가 힘껏 올라가 잔뜩 경계하는 모습이다. 책을 펼치면 새끼줄에는 송아지 한 마리가 묶여 있고 나무 뒤에 누군가 아저씨를 엿보고 있다.

 

표지 그림은 이 책의 후일담을 한 장면에 담아냈다. 만구 아저씨는 드디어 장에서 송아지를 사 온다. 아저씨 돈으로 똥을 닦았던 꼬마 톳제비(도깨비)가 나무 뒤에서 빼꼼히 내다보는 모습이 눈에 띈다. 똥 묻은 돈으로 진짜 송아지를 살 수 있을지 궁금했을까. 아니면 똥 묻은 돈이라는 사실이 들통날까 걱정됐을까.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로 송아지를 쳐다보는 중이다.

아저씨와 톳제비의 만남은 고추 한 부대를 팔았던 어느 장날이었다. 만구 아저씨는 고추 한 부대를 판 돈으로 막걸리를 한잔 마셨다. 낡은 지갑 속에는 고추 판 돈이 두둑하게 들어 있어 기분이 좋았다. 빈 부대에는 소고삐로 쓸 밧줄과 검정 고무신 한 켤레, 아줌마 통치마 하나, 간고등어 한 손이 들어 있었다.

 

한잔 술에 거나하게 취한 만구 아저씨는 집에 가는 길에 똥이 마려웠다. 한길에서 스무 걸음 들어간 곳에 똥을 누고 마른 떡갈나무로 뒤를 쓱쓱 닦았다. 그 때 잠바 호주머니에 든 비닐 지갑이 빠졌다. 아저씨는 저녁밥을 먹고 나서야 잠바 호주머니를 보고 지갑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곰바위 골짜기에 사는 톳제비들은 똥 무더기 옆에 있는 지갑 때문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들어있는 종이쪽이 신기해서 각자 나눠서 살펴봤다. 제일 작은 손자 톳제비는 똥을 누고 똥구멍을 닦아 버린다. 그런데 아버지 톳제비가 아저씨가 장에 나가 고추 판 값이라며 도로 지갑에 넣어 두어야 한다고 한다.

꼬마 톳제비는 똥을 닦아 버린 돈 때문에 울상이 된다. 할머니 톳제비가 억새풀에 닦아내어 똥 닦은 돈을 돈 한가운데 끼워 넣었지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습이다. 지갑을 제자리에 두고 가는데 작은 꼬마 톳제비 두 마리는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만구 아저씨는 똥을 눈 곳에 그대로 놓인 지갑을 보자 뛸 듯이 기뻤다. 약간 구린내가 나는 듯하지만 돈은 원래 구린내가 나는 법이다. 꼬마 톳제비가 똥 닦은 돈은 상자 깊숙이 들어갔다. 다음 장날 송아지 살 돈이다.

옛날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이 자주 쓰는 물건이 도깨비가 된다는 말이 있다. 절굿공이나 빗자루는 오래 쓰다 보면 밑이 닳아 못 쓰게 되는데 그게 도깨비가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우리 옛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책이다. 뿔 달린 일본 도깨비를 우리 도깨비라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도깨비를 소개해 줄 기회다.

정순희 선생님의 그림은 글을 더욱 맛깔스럽게 만든다. 한지에 은은하게 채색화로 그려진 그림책 속에는 옛날 시골집에서 보던 물건들이 보인다. 삼베 천으로 감싼 자수 베게, 방안의 요강, 머리가 뭉뚝해진 싸리 빗자루, 가마솥, 한복을 보관하던 종이 상자. 그림 속에도 이야기가 가득하다. 고등어 한 손이 고등어 두 마리라는 것도 그림을 보며 알려주고, 다양한 단위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다.

장터에 있는 사람들 중에 만구 아저씨는 어디 있을까? 아이들은 말하지 않아도 아저씨를 찾아낸다. 이야기를 듣고 인물을 찾는 것은 윌리를 찾는 것과 다르다. 장터에서 강아지와 병아리를 파는 모습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손에 쥐면 바스러질 것 같았던 병아리를 만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한바닥 그림 속에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꼬마 톳제비는 제 똥이 묻은 돈을 제자리에 두면서 계속 신경 쓴다. 아저씨가 지갑을 잘 가지고 가는지 집 앞까지 따라나서고, 진짜 송아지를 사서 끌고 오는 모습까지 놓치지 않고 바라본다. 끝까지 아저씨 뒤를 따라온 꼬마 톳제비의 호기심과 순수한 마음이 톳제비의 아우라처럼 서서히 미소로 번진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한다. 하지만 제 잘못이라는 걸 깨달으면 쭈뼛거리며 찾아와 용서를 빌고,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울음을 그치고 또 다른 재미있는 것을 찾는다. 꼬마 톳제비가 아저씨 집 앞에서 서성일 때 멀리서 지켜보는 엄마 톳제비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이의 마음을 알아봐 주고 멀리서 지켜주는 것은 부모의 몫인듯하다.

어스름 어둠이 내려앉은 산골짜기에 톳제비들의 은은한 불빛이 따스한 빛을 발한다. 좋은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고, 풍성한 읽을거리가 가득한 책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아이와 주거나 받거니 이야기 나눌 수 있어 두고두고 꺼내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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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시 수아레스, 기어를 바꾸다 - 2019년 뉴베리 대상 수상작 미래주니어노블 3
메그 메디나 지음, 이원경 옮김 / 밝은미래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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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이란 불가사의하거든”

파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주인공 머시의 모습이 보이는 정면 표지를 펼치면 뒷면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빠와 엄마, 오빠 그리고 고모와 쌍둥이 조카까지 표지를 꽉 채우고 있다. 머시의 가족들은 마치 씨앗 하나가 땅을 뚫고 나와 햇빛을 보기까지 땅속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는 잔뿌리 같다. 겉표지 속 노란색 두꺼운 양장본 표지 색깔이 주는 느낌은 따뜻하다.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은 튼튼한 줄기로 자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머시 수아레스, 기어를 바꾸다>는 삼대가 함께 살아가며 보여주는 다양한 삶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머시의 할머니는 잔소리 걱정 대마왕이다. 살아온 세월의 경험은 다가올 앞날의 두려움을 예상하고 준비하게 만드는 법이다. 아버지는 현실주의자다. 아직 아이들을 골치 아픈 생활 속에 발 들여놓고 싶지 않다. 물리치료사인 엄마는 너그러운 이상주의자이면서 실천가다. 혼자되어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고모와 말썽꾸러기 쌍둥이 조카들까지. 주인공 머시 수아레스를 둘러싼 가족들을 작은 나라 같다. 그들은 지붕이 평평한 분홍색 세 집이 나란히 붙어 있는 '수아레스 단지'에서 함께 살고 있다.

이제 중학교에 입학한 11살 머시는 세상 모든 일이 새롭고 호기심 넘친다. 달리기나 축구처럼 땀을 흠뻑 쏟고 도전하는 일을 좋아한다. 하지만 삼대가 이웃처럼 가까운 공간에서 제집 드나들듯 살아가니 힘든 일이 많다. 끔찍한 것은 일하는 고모 대신 조카들을 봐줘야 하기 때문에 축구부에 지원할 수 없다는 것! 머시는 좋은 집에 살지도 않고, 방학 때 여기저기 갈 형편도 안 된다. 그래서 시워드 아카데미 같은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기 위해 자원봉사를 해야 한다. 시워드에는 새로 전학 온 학생들에게 '햇살 친구'라는 이름으로 한동안 친구를 해주는 봉사가 있다. 머시에게는 '마이클'이라는 남자아이가 배정된다.

머시의 햇살 친구였던 에드나는 남들에게 주목받기 좋아한다. 에드나는 햇살 친구 중 유일하게 남자아이를 배정받게 된, 그것도 훤칠한 키에 새하얀 얼굴을 가진 마이클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머시의 햇살 친구라는 사실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사실이 아닌 소문을 퍼트려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은 둘 사이를 어색하게 만든다. 머시는 체육시간에 마이클과 치기 어린 경쟁에서 비롯된 실수로 마이클에게 야구공을 던져 큰 상처를 입힌다. 머시가 상처의 대가로 마이클의 가을 축제 의상 만드는 것을 도와주게 되면서 에드나와 친구들과의 관계는 더욱 꼬이게 된다.

자칫 미궁에 빠질 수 있었던 마이클 가을 축제 의상 훼손 사건은 우연찮게 무덤 만드는 에피소드에서 밝혀진다. 석고로 에드나의 얼굴 본을 뜨다 실수로 어쩔 수 없이 잘라낸 눈썹을 상상하자 웃음이 터졌다. 에드나의 거짓된 모습이 가면과 함께 벗겨지는 듯해 통쾌하고 시원했다. 에드나가 제 무덤을 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의 조언을 새겨듣고 함부로 친구를 의심하지 않았던 머시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머시는 자신의 얘기라면 무엇이든 귀담아 들어주던 할아버지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알츠하아머에 걸렸다는 사실에 이중적인 감정을 느낀다. 내 얘기에 귀 기울여주는 유일한 사람인 할아버지를 이해하고 챙겨드려야 한다는 생각과 친구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다른 친구들에게 소문내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어 할아버지를 외면하고 싶은 양가감정이다. 양가감정은 나를 나로 보지 못하는 두려움을 만들어 낸다. 두려움은 타인의 기대에 따라 행동하는 가짜를 만든다. 그러나 가족들은 머시가 처음 친구들을 집에 초대했는데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행동한다. 친구들은 서로 말하기 전에는 몰랐던 각자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머시는 양가감정을 인정하고 내면의 두려움도 서서히 극복해 나간다. 

양가감정은 마이클과 에드나와 겪는 사건에서도 등장한다. 아동기에서 청소년기로 들어선다는 것은 삶에 흑백으로 가릴 수 있는 뚜렷한 감정과의 이별을 의미한다. 이제 중학생이 된 11살 머시 수아레스는 그 알 수 없는 감정이 주는 모순과 환상을 암호처럼 풀어내고 읽어 내는 신비로운 일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할아버지 이야기로 사랑과 미움에 대한 가족 사랑의 모순을 이야기했다면 지루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11살 또래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친구들과의 사건과 갈등을 적절히 버무려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수많은 기호들과 사건들이 내뿜은 메타포는 정교한 퍼즐 조각처럼 정확하게 맞춰진다.

우리 눈에 먼저 보이는 것은 새싹이지만 씨앗이 발아되어 지상으로 나오기 전에 먼저 자라야 하는 것은 뿌리다. 뿌리의 영양분을 충분히 받아야 비로소 무거운 흙을 거슬러 지상으로 나올 수 있다. 삼대가 함께 살아가는 작은 사회 속 인간이 가지는 두려움은 배가 된다. 하지만 두려움만큼 기쁨과 사랑도 배가 된다. 대가족의 일원이 된 아이의 삶은 가족들 때문에 기회가 상실되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이기 일쑤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다져진 근육은 또 다른 작은 사회인 학교에서 생기는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발돋움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정말 사람의 마음이란 불가사의한 것이다. 단단한 뿌리를 내리면 어떤 곳에서든 올곧고 힘차게 자란다.

명심해라, 머시. 중요한 것은 삶을 대하는 자세란다. 39

수년 간 선생님이 보아온 바로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려면 대개 시간이 필요하더구나. 가끔은 오래 고민해야 너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찾을 수 있지. 80

사랑과 미움이란 감정은 의도적인 모순과 환상에 가려져 있거든. 컴퓨터에서 잡다한 정보를 뒤섞어 중요한 데이터를 숨기는 암호화 같은 거랄까. 거기에 진짜 뭐가 있는지 읽어 내려면 암호를 알아야만 해. 156

어차피 올 것은 오는 법이란다, 아가야. 강에 다다르기도 전에 물에 빠져 죽을 걱정부터 할 필요는 없잖니? 321

나도 두렵단다. 우리 모두 두려워. 324

‘늘 그대로’라는 것은 아네스 고모가 사이먼 아저씨를 사랑할 기회가 없을 거라는 뜻이다. 오빠가 대학에서 훨씬 더 똑똑해지지 못할 거라는 뜻이다. 내가 조금도 성장하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늘 그대로’라는 건 할아버지의 변화만큼 슬픈 일일지도 모른다.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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