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 에프 그래픽 컬렉션
닉 아바지스 지음, 원지인 옮김 / F(에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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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가 지배를 받는 것이라 생각할 때 그 지배하는 필연적이고 초인간적인 힘을 운명이라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운명을 지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금부터는 저 위를 올려다보게 될 거야...... 그리고 그 너머까지." 동정심이 지나치다고 미친 여자라 불리는 시대, 우주 정복까지 꿈꾸는 인간에게 하지 못하고 이루지 못할 일은 없는 듯 보인다.

운명을 지배하는 사람, 세르게이 파블로비치 수석 설계자 동무는 스탈린에 의해 대숙청 대상에 속해 굴라크에서 수개월을 보내다 살아남는다. 자신이 시련 속에 살아남은 이유를 불굴의 의지라 생각하겠지만, 만약 길거리에 놓인 빵 한 조각이 없었다면 살아남았을까. 그는 역경을 극복해 가며 운명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리한 개발을 요구하는 계획에 동참한다.

세계는 2차 세계대전 후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미국과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이 냉전의 중심이었다. 소련의 인공위성 개발은 전후 냉전시대의 국력 과시였다. 1950년대 미국과 소련은 우주에서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험용 우주선에 동물을 실어 우주로 날려 보낸다. 라이카는 떠돌이 개 생활을 하다 모스크바 항공의학 연구소에 투입된다. 이 책은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우주로 보내졌던 개, 라이카의 이야기다.

러시아 혁명 40주년 기념일 직전 1957년 11월 4일 스푸트니크 2호는 라이카와 함께 발사된다. 지구로 생환시키는 기술이 전무한 상태였다. 인간이 운명을 지배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너무 많았다. 현재까지도 인간의 안전을 위해 시행되는 동물시험이 윤리적이지 않다는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무한한 욕망으로 지식 너머를 쫓는 수많은 수석 설계자 동무들이 있는 한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모든 인간들이 가지고 싶은 만큼 다 가지게 되었을 때 인간에게서 찾을 수 없는 것은 동정심과 같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훈련사 옐레나와 올레그는 모든 사람들이 욕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과 같은 사람이 있어 세상은 따뜻하다는 것을, 인간의 욕망이 머물러야 할 자리는 우주 밖 너머가 아니라 온기를 잃어가는 인간의 가슴이라는 것을 작가 닉 아바지스는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 읽었던 방정환 정본 속 동화 <귀여운 희생>은 라이카와 공교롭게도 같은 선상에 있었다. 미술가가 되기 위해 나비를 해부하려고 했던 소년과 불쌍한 나비를 지키려고 자신의 손으로 막아내다 손이 베이는 누이. 분석과 실증의 세계 속 인간의 욕망을 경고하는 작품이었다. 인간의 욕망은 한계가 없다. 때때로 욕망은 문명을 앞당기기도 하지만 인간성은 문명 아래 매몰되기 쉽다.

라이카 이야기로 출판된 책 제목 중에 '별이 된 라이카'라는 제목을 보았다. 인간의 욕망이 아름다운 별빛에 교묘히 희망으로 희석되어 보였다. 그래픽 노블로 보는 라이카에는 다른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은 곱슬이 쿠드랴프카, 라이카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라이카의 희망은 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에게 사랑받는 개로 돌아가는 것이었을 것이다. 끝없이 쌓아올려야 하는 문명의 탑보다 한 사람의 마음에 닿는 게 소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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