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관찰주의자 - 눈으로 차이를 만든다
에이미 E. 허먼 지음, 문희경 옮김 / 청림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


'보는 것'은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기록하는 과정이지만, 관찰은 똑같은 것을 보면서도 의식적이고 신중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기록하는 과정을 말한다.  저자는 인생의 대부분을 지금까지의 시선에 옭아매었던 사실을 상기시켜주기 위해 평가, 분석, 설명, 적용의 총 373쪽 4부로 구성된 책의 160쪽을 1부 '평가' 부분에 할애했다.  그리고 사진, 그림, 조각상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지금까지 '본다'라고 생각했던 사물의 실체를 전혀 '보지 못했음'을 끊임없이 증명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그림과 사진들은 실제로 미술 전시를 많이 다니며 그림 좀 봤다는 자만심에 허를 찔린듯한 느낌이었다.  왜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을까.  보고 있었지만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거나, 이미 알고 있다는 선입관, 편견, 귀찮음, 시간 없음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단순하고 일상적이며 낯익은 상황일수록 더욱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는 점이 적잖은 충격이었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관찰하는데 익숙하지 않았다. 


 


'관찰'과 '평가'



 

돌이켜보니 책의 시작 부분에서 허를 찔린 듯한 느낌을 예전에도 느꼈던 적이 있었다.  마셜 로젠버그 박사의 강의에서 누군가 목소리가 '너무 크다'라고 불만을 터트리던 때였다.  '너무 크다'라는 기준은 어디에도 없다.  각자 자신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따라 '평가'한 것을 객관적으로 '관찰'했다고 생각한다는 로젠버그 박사의 말은 갑자기 어디선가 찬물로 물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  그 후 한동안 나는 사실이라고 인지하고 기억하는 모든 상황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다.  '비폭력대화'의 교육책임자이자 심리학자인 마셜 로젠버그 박사는 관찰이 아닌 평가가 사람들과의 소통을 방해한다고 했다.  관찰은 사실을 연구하는 과정이다.  관찰은 개개인 간의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필요하다.  이 책을 육아서, 자기 계발서, 범죄 수사 기본서, FBI 관찰수업서, 소방안전기본서 등으로 바꿔 부를 수 있는 것도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 '관찰'이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멀티태스킹(multi-tasking) vs. 모노 태스킹(mono-tasking)

 

인터넷 작업 환경이 멀티태스킹이 된 것은 획기적인 발전이었다.  인간의 뇌 속에서 빛의 속도로 처리되는 일들을 눈앞에 구현한다는 사실은 인간도 로봇보다 월등한 속도로 과업을 처리할 수 있다는 증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6년 [타임]은 멀티태스킹으로 인해 뇌가 과부하 상태에 놓이게 되면 자신의 일에 적절한 사고를 하지 못하고 흑백논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말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발표하며 멀티태스킹 업무환경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뇌는 처리할 수 있는 양보다 많은 정보에 노출되므로 심리적 지름길을 만들어 자동으로 정보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정보를 걸러낸다. p329


컴퓨터 알고리즘에 명령어를 넣어 자동처리되는 로봇은 움직임의 모든 과정을 컴퓨터 언어로 일일이 변환하고 입력해 행동을 수정한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자동으로 정보를 조작하거나 임의로 삭제해 버린다.  과부하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 많은 정보가 걸러지지 않고 그냥 빠져나가며, 과도한 자극을 피하기 위해 바로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에 바로 길들여지는 것이다.  뇌 활용의 최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멀티태스킹보다 모노 태스킹을 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었다.  삶의 비밀은 아주 작은 세부 정보를 통해 숨겨진 모습을 드러낼 때가 많다.  지금 우리는 심리적 지름길이 아닌 거대하고, 낯설고, 거친 길에 발을 내디뎌야 한다.


회색 지대를 헤쳐나가는 방법


인생은 불확실한 사건의 집합체이다.  흑과 백, 정과 반으로 나눠지지 않는 회색 지대에 사는 인간은 모든 것을 관찰하고 흡수하며 주변과 내면의 가능성을 발견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자신의 삶에서 성공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 관찰'은 시간과 자원을 어디에 투입할지 결정하고 작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무것도 없다고 확신하던 곳에서 기회의 문을 여는 열쇠는 바로 우리들의 '눈'에 있다.  우리가 편향을 버리고 제대로 보는 법을 배운다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는 것처럼 우리들의 인생도 달라질 것이다.

공자는 나이 마흔이면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어 마흔이라는 나이를 불혹이라 칭했다.  서른아홉이었을 때의 세상과 마흔의 세상은 달라졌을까.  여전히 세상은 복잡하고 오리무중이다.  나는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나는 얼마나 능숙하게 소통하는가?  나는 얼마나 잘 관찰하는가?  나의 뒤와 주변과 내면에 무엇이 있는가?  저자의 물음에 머뭇거리고 있다면 내게 남은 삶도 속절없이 누군가에게 도둑질 당한 것처럼 금세 사라질 것이다.  회색 지대 안 불투명함과 불확실성이 기회다.  Visual Intelligence는 뇌 활용의 최대치를 끌어올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인생의 명장면을 선물해 줄 것이다.



http://blog.naver.com/ly6262/2210279587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을 바꾼 아주 멋진 여성들
케이트 팽크허스트 지음, 니모 옮김 / 머스트비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자아이를 기르는 엄마들이라면 늘 고민하는 문제가 있다. 여성으로서 암암리에 받고 있는 차별과 무시로부터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혼자 받는 고통인 줄 알았는데 모두가 공감한 <82년생 김지영>.  나는 내 딸이 나와 같은 전철을 밟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런 책이 이슈가 되는 것이 여성들의 현실이라니.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켜낼수록 뭔가 씁쓸했다.  내가 못나고 부족해서 혼자 당한 일들이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만연한 일들이라는 점이 우울했다.

나의 엄마가 그러했고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렇다고 해서 같은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내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달라야 한다.  제도적 뒷받침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여성 스스로도 모험과 개혁의 중심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배우지 못한 것을 아이에게 전해주기는 힘들지만 먼저 세상을 살았던 위인들의 행적을 살펴보다 보면 아이도 또 다른 세상을 향한 꿈을 꿀 수 있다.  아주 오래전 지금보다 더 척박한 현실에서도 세상을 바꾸기에 주저하지 않았던 멋진 여성들을 소개한 책 <세상을 바꾼 아주 멋진 여성들>을 지금 내 딸에게 읽어주어야 하는 이유다.  그녀들의 공통점은 주변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다른 삶의 방식에 용감하게 도전한 것이었다.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을 필두로 미술에 관심 많은 큰 아이가 좋아하는 코코 샤넬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달라고 했던 에멀린 팽크허스트까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능력으로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멋진 여성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등장한 <제인 오스틴>. 얼마 전 EBS 세계문학기행 마지막 편에 등장한 제인 오스틴은 책에 대한 명성만큼 대단한 여성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결혼만이 오직 자신을 수렁에서 구해줄 수 있다고 믿었던 때, 여자는 수를 놓거나 피아노를 치고 불어를 배우는 정도의 교육만 허락되었던 시대에 작가의 길을 택한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훗날 아이가 읽어봤으면 했던 <오만과 편견>에 대한 내용을 살짝 엿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지금 초등 3학년이면 필수로 배우는 수영.  학원에서 수영을 배우고 있어서인지 영국 해협을 자신만의 영법으로 최초로 건너는 여성 '거트루트 에이덜리'에 대해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수영이 얼마나 힘든 운동인지 알기 때문이다.  또 여성이 민주주의의 참정권을 행사하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는 사실도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민주주의 참정권이 이루어진 시간은 150년이 채 되지 않았고, 여성의 참정권은 그보다 훨씬 뒤에 이루어졌다.  세계적으로 여성의 참정권은 1893년 뉴질랜드에서 최초로 인정되었다.   그 뒤를 이어 1920년에 미국, 1928년에 영국, 1944년에 프랑스에서 인정되었고,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1948년의 일이다.   올바른 여성참정권의 역사는 아직 100년을 넘지 못했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요구한 에멀린 팽크허스트와 같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와 이야기할 것도 생각할 것도 많은 책이다.

 
미술에 관심 많은 아이가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코코 샤넬'.  끔찍한 사고로 병원에서 지내면서도 삶을 비관하는 대신에 그림을 그렸던 '프라다 칼로'.  어릴 때 위인전에서 보았던 여성들 중 단연 돋보였던 두 번의 노벨상 수상자 '마리 퀴리', 여성 최초 고생물학자 '메리 애닝', 비행기로 대서양 홀을 건넌 최초의 여성 '아멜리아 에어하트',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요구한 '에멀린 팽크허스트' 전쟁 중에도 희망과 절망의 일기를 끝까지 기록했던 '안네 프랑크'까지.  국적과 인종, 나이를 불문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 최초라는 이름을 남겼던 위인들의 모습을 본 아이의 눈빛은 지금까지와 다른 빛깔로 반짝였다. 위인들의 발자취를 좀 더 자세히 다루었으면 하는 마음에 조금 아쉬웠지만 아이들의 흥미를 위해서는 이 정도가 딱인듯하다.  좀 더 궁금한 사람은 찾아보는 걸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사가 속닥속닥 정치와 민주주의
이정화 지음, 성배 그림, 배성호 감수 / 북멘토(도서출판)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각 장마다 첨부된 '속닥속닥 정치 이야기'에서는 어디선가 들어봤지만 아직 개념 정립이 안된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해 두어 '시사 박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했다.   대통령 후보에 출마했다 사퇴한 반기문 전 유엔총장으로 인해 유엔에 대해 큰 아이가 물어 본 적이 있었는데 아이가 책을 읽다가 그 부분을 보고 이제야 유엔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 것 같다고 한다.  이제 네이버 지식인은 안녕~!

19대 대선은 청소년 모의투표도 실시되어 아이들에게 참정권의 기회를 가상체험해 보았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미리 국가와 정치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싶은 분들은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를 누리는 우리 아이들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용법을 배워야 한다.  지금은 어른도 아이들도 민주주의를 다시 배워야 할 시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낌없이 뺏는 사랑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어 마땅한 사람들>의 작가 피터 스완슨의 처녀작 <시계 심장을 가진 소녀>가 <아낌없이 뺏는 사랑/푸른숲>으로 출판되었다.  이미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죽어 마땅한 사람들>처럼 반어법을 사용한 제목은 아낌없이 '주는'사랑이 아닌 '뺏는' 사랑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며 흥미를 돋운다.  하지만 <시계 심장을 가진 소녀>라는 원제를 보고 나니 책 속에 담긴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간 느낌이다.  

               

대학 입학 첫날 처음 만났던 조지와 리아나.  <아낌없이 뺏는 사랑>은 20년 뒤 두 사람의 우연한 재회로 벌어지는 사건과 20년 전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의 사건들이 각각 다른 시간대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함께 근무했던 신입 편집자 아이린이 다른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는 동안 회사의 발전을 기대하는 신입사원의 열정 어린 패기도 절정에 다다르는 섹스에 대한 탐닉도 사라져버린 조지의 일상은 권태로움 자체였다.  20년 전 첫사랑 리아나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20년 전 조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리아나는 오드리 백이라는 여학생을 사칭해 대학교를 다니고 그 여학생과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명 수배된 그의 첫사랑이다.  믿고 싶지 않은 그녀의 실상 앞에 언젠가 자신 앞에 나와 핑계든 거짓말이든 해명할 리아나의 모습을 기대하며 대학생 조지는 '기다림'을 선택했다.  그러나 일말의 희망으로 남겨두었던 사건의 전모를 모두 밝혀 줄 그녀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는 갈등한다.  자신의 가슴에 봉인해버린 추억 상자를 다시 열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끝은 좀 이상했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다고 생각한 자신의 추억이 어쩌면 산산이 부서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사춘기의 열병처럼 젊음과 함께 시간 속에 침잠해 있던 미궁의 사건들은 그와 관련된 모든 현실세계가 권태로울 즈음 서서히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로 자신도 모르게 얽혀들어가게 된다.

20년 전 조지가 그녀의 실체의 끝에 다가가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에 찾아가 매 순간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 앞에서도 무모할 정도로 꿋꿋했던 그의 행적을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에게 용기가 부족해서 그만두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리아나와 함께 행복했던 시절, 그녀가 그에게 선물해 주었던 <레베카>의 한 구절처럼 진실의 끝에 언젠가 대면해야 할 그녀의 실체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닌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하지만 이번 생에서 멜로드라마는 충분히 겪었다. 그러니 현재의 평화와 안도감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오감을 버릴 것이다. 행복은 소중히 여겨야 할 소유물이 아니라 생각의 질이자 마음의 상태이다.
<레베카 중에서>



선택할 수 없었던 상황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들은 때때로 끔찍하다.  조지에게 오드리 백으로 존재했을 때 리아나는 마약에 중독된 아빠, 끔찍하게 가난한 집안의 리아나가 아닌 평범한 집안의 오드리 백으로 영원히 살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의 모습이 진짜 자기 모습이라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연장선 상에 있는 동일 인물이라는 조지의 말은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의 일생에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리아나는 처음 섹스를 하는 오드리 백의 모습을 더 이상 연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약에 중독된 아빠의 빚을 갚기 위해 성 상납을 하던 시절의 리아나로 돌아가 그를 만족시켜 준다.  그날의 섹스는 조지에게 무아지경의 황홀했던 추억이 아니었다.  서늘하고, 아프고, 어딘가 아련한.  그래서 자꾸 되뇌게 되는.  버니의 마취 총에 맞아 정신을 잃었을 때 그날의 기억이 꿈처럼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그날 그녀의 손목과 발목을 그녀가 선택하지 않았던 운명 속에 결박해버렸고, 그의 눈앞에 그렇게 결박당한 그녀가 같은 처지가 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 인정해. 알았으니까 진정하라고. 네 말에 극구 반대하는 건 아냐. 다만...... 어른이 됐을 때가 어릴 때보다 더 진정한 나에 가깝다는 말에는 완전히 동의할 수 없어. 잠깐만, 끝까지 들어봐. 난 두 모습 다 진정한 나라고 생각해. 사람의 태생은 무시할 순 없어. 아무리 그러고 싶다 해도 불가능해. 그건 늘 존재하고, 우리의 실체이기도 해. p. 288 

조지는 리아나의 부탁을 들어주는 일로 여러 사건에 휘말리게 되지만 매번 그녀 때문에 위험에 빠지게 되는 순간에도 그녀를 이해하고 싶어 했다.  조지가 아직 리아나를 오드리 백으로 알고 있었던 때, 멈춰버린 시계 심장을 가진 그녀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그녀의 일생이 지금보다 더 나아졌을까.  그렇지만 그로 인해 밝혀진 여러 상황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녀의 행동에 면죄부를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멈춰버린 시계를 되살리고 싶을 만큼.  그녀의 존재를 원하고 실제로 가까이 다가선 사람은 그녀의 일생에 그가 유일했다.  

리아나로 인해 일어나는 끊임없는 사건들은 조지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만들고 결국 그녀에 대한 그의 생각마저 '똥멍청이'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치부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는 기다림을 선택하고 추억으로 봉인했던 예전과는 달리 그녀의 실체를 찾기로 결심한다.  인생은 내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라는 확신과 <레베카> 6페이지, 마야의 유적지 사진이 담긴 빛바랜 엽서 한 장이 그녀를 찾을 유일한 단서다.  그녀의 새로운 삶을 위해 그녀의 죽음을 증명할 마지막 증인으로 선택된 조지.  다시 한번 시계 심장을 깨우러 가는 조지의 여정에 더 이상 빼앗길 사랑이 남아있을는지.  시계 심장을 가진 소녀 리아나는 그의 바람처럼 과연 진짜 살아 있을까.  '찾아야 할 물건이 뭔지는 모르지만 보면 알 거야.'  작가는 책의 시작과 끝을 미묘한 글귀로 아우르며 독자의 시간을 아낌없이 빼앗아 버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의 미술관 - 잠든 사유를 깨우는 한 폭의 울림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술관에 가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지식과 정보를 흥미진진하게 소개해 주는 도슨트를 볼 수 있다.  요즘에는 기술의 발달로 미술관 앱을 설치하면 어디에서나 미술작품과 작품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미술관 앱처럼 어디에서나 들고 다니면서 철학과 미술을 두루 섭렵할 수 있도록 구성된 <생각의 미술관>.  아침에 배운 지식이 저녁에 가물거리는 요즘, 철학이라는 상찬을 먹기 전 모양도 예쁘고 오감을 자극하는 애피타이저를 먹는 느낌.  열 개의 장에서 철학의 애피타이저를  맛본 후 메인 요리에 대한 기대감은 극도로 상승하게 된다.  훌륭한 애피타이저를 맛본 후 우리가 기대하는 철학이라는 메인 요리는 어떤 모습일까.

"엄마, 이 그림 이상해요."
"뭐가 이상하게 보이는데?"
"그림 속에 또 그림이 있어요."
"왜 그러면 안 되는 거야?"
"글쎄요... 이런 그림은 본 적이 없어서요."
"본 적이 없다고 이상한 것은 아니지 않아?"
"그래도 이상해요."
"너도 가끔 엉뚱한 생각하잖아.  그런 걸 화가들은 그림으로 표현한 거지."
"엄마, 생각하는 것이 뭐예요?"
"우리 일상이지, 우리는 매일 생각하고 살고 있으니까."
"그런데 매일 하는 생각을 왜 또 해야 한다고 하는 거죠?"
"글쎄, 사람들이 생각한다라고 했을 때 하는 생각이랑 좀 다른 생각을 해보라는 뜻 아닐까?"  
 "에이, 그게 뭐예요... 생각에도 차이가 있다는 건가요?"

아이와 끝이 없는 말장난 같은 이야기를 몇 차례 거듭하면서 나는 왜 <생각의 미술관>이라는 미묘한 애피타이저를 맛보며 스스로 사유의 늪으로 걸어가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철학이란 나를 포함한 세계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을 말한다.  생각이 가치관으로 격상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   '이상한 생각'이 '철학'이라는 가치 있는 생각이 되는 단계를 머릿속에서 마인드 맵 그리듯 연습해 본 것이다.   굳이 말로 다시 표현해 보면 첫째, 일관성을 가져야 하고 둘째, 언어를 통한 체계화와 객관화가 동반되어야 하며, 셋째 자기반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그리트의 기묘한 그림을 보고도 아무런 지각이 일렁이지 않는다면 인간인 나와 기계가 다른 점이 무엇이겠는가.  <생각의 미술관>은 지금까지 녹슬어 있었거나 딱딱해져버린 뇌의 생각하는 감각을 말랑하게 해준다.  

각 분야에서 만들어진 구분은 세월의 경과와 함께 고정화된다. 마치 이 세상이 생기면서부터 그러한 구별이 주어져있었던 듯이 각각 확고부동한 자리가 주어진다. 한번 특정한 범주에 속하면 그 안에 있는 것들은 항상 동일한 성격으로 분류된다. 개별 사물이나 현상, 개별 특징이나 요소로서의 의미는 사라지고 오직 해당 범주 안의 고정된 의미로만 우리에게 다가온다. p170



외부 사물과 내적 지각이 맞물려 한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생각이 외부 사물과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의 개별적 독자적 가치를 만들어 갈 때 비로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하나의 가치를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의 미술관> 북 도슨트는 미술 작품 속 숨겨진 뜻을 통해 우리는 왜 철학을 배워야 하는지, 철학이 어떻게 삶에 자리 잡고 있는지 알기 쉽게 설명해 엉뚱한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 준다.  철학카페에서 00 읽기 시리즈를 좋아해서 여러 권을 읽었는데 이 책에 소제목을 붙인다면 <철학카페에서 미술 읽기>라고 하고 싶은 이유다.  사고의 문을 여는 각 장은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으로 시작된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미술동호회 활동을 하던 시절 좋아했던 작가다.  흔히 철학을 하나의 이미지로 함축해 놓았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찬사를 받는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이전의 미술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깊은 사유의 만찬으로 초대하는 훌륭한 애피타이저이자 초대장이다.    


4차 산업혁명까지 얘기하지 않더라도 바야흐로 변화의 물결이 넘치는 시대다.  로봇에게 다른 행동을 인식시키는 것은 알고리즘을 입력해야 하는 복잡한 단계만 거치게 되면 금방 새로운 체계를 인식한다.  그러나 인간은 새로운 사고에 매우 취약한 대뇌 회로를 갖고 있다.  우리는 늘 우리가 생각했던 방식대로 사고하고 판단하며 살아왔다.  변화가 없는 세상이 어떤 고통을 안겨주는지 몸소 겪었던 지난 10년의 세월은 조용한 촛불 혁명의 주춧돌이 되어 역사를 새 시대의 큰 변화의 흐름 앞에 가져다 놓았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의 미술관>의 저자는 마그리트의 그림으로 기존의 사고방식의 틀에서 벗어나라고 주문을 걸고 있다.  강제되고 고정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야, 상상력을 통한 인식 지평의 확대를 할 수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  멀리 가서 철학을 찾을 필요도 없다.  내 삶 가까이에 있는 현실적인 문제로부터 먼저 철학적 사고를 해야 한다.  많은 현대인들이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들어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말할 것을 미리 대비하듯 책의 말미에 시간의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 나온다.  현실적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시간에 익숙해지며 시간의 노예로 살게 되었는지 말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자본을 잠식하듯 다가오는 미래에는 시간 또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잠식당할 것이다.  시간의 주인이 되어 나만의 철학을 하고 나아가  넓은 세상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사유와 철학의 힘이 꼭 필요하다.  한사람 한 사람의 정신적 변화는 물질적 힘으로 승화되어 놀라운 힘이 될 수 있다.  보이는 것에 집중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해 생각할 때다.  찾아가는 길이 어렵다면 <생각의 미술관> 북 도슨트의 힘을 빌려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