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미술관 - 잠든 사유를 깨우는 한 폭의 울림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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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가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지식과 정보를 흥미진진하게 소개해 주는 도슨트를 볼 수 있다.  요즘에는 기술의 발달로 미술관 앱을 설치하면 어디에서나 미술작품과 작품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미술관 앱처럼 어디에서나 들고 다니면서 철학과 미술을 두루 섭렵할 수 있도록 구성된 <생각의 미술관>.  아침에 배운 지식이 저녁에 가물거리는 요즘, 철학이라는 상찬을 먹기 전 모양도 예쁘고 오감을 자극하는 애피타이저를 먹는 느낌.  열 개의 장에서 철학의 애피타이저를  맛본 후 메인 요리에 대한 기대감은 극도로 상승하게 된다.  훌륭한 애피타이저를 맛본 후 우리가 기대하는 철학이라는 메인 요리는 어떤 모습일까.

"엄마, 이 그림 이상해요."
"뭐가 이상하게 보이는데?"
"그림 속에 또 그림이 있어요."
"왜 그러면 안 되는 거야?"
"글쎄요... 이런 그림은 본 적이 없어서요."
"본 적이 없다고 이상한 것은 아니지 않아?"
"그래도 이상해요."
"너도 가끔 엉뚱한 생각하잖아.  그런 걸 화가들은 그림으로 표현한 거지."
"엄마, 생각하는 것이 뭐예요?"
"우리 일상이지, 우리는 매일 생각하고 살고 있으니까."
"그런데 매일 하는 생각을 왜 또 해야 한다고 하는 거죠?"
"글쎄, 사람들이 생각한다라고 했을 때 하는 생각이랑 좀 다른 생각을 해보라는 뜻 아닐까?"  
 "에이, 그게 뭐예요... 생각에도 차이가 있다는 건가요?"

아이와 끝이 없는 말장난 같은 이야기를 몇 차례 거듭하면서 나는 왜 <생각의 미술관>이라는 미묘한 애피타이저를 맛보며 스스로 사유의 늪으로 걸어가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철학이란 나를 포함한 세계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을 말한다.  생각이 가치관으로 격상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   '이상한 생각'이 '철학'이라는 가치 있는 생각이 되는 단계를 머릿속에서 마인드 맵 그리듯 연습해 본 것이다.   굳이 말로 다시 표현해 보면 첫째, 일관성을 가져야 하고 둘째, 언어를 통한 체계화와 객관화가 동반되어야 하며, 셋째 자기반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그리트의 기묘한 그림을 보고도 아무런 지각이 일렁이지 않는다면 인간인 나와 기계가 다른 점이 무엇이겠는가.  <생각의 미술관>은 지금까지 녹슬어 있었거나 딱딱해져버린 뇌의 생각하는 감각을 말랑하게 해준다.  

각 분야에서 만들어진 구분은 세월의 경과와 함께 고정화된다. 마치 이 세상이 생기면서부터 그러한 구별이 주어져있었던 듯이 각각 확고부동한 자리가 주어진다. 한번 특정한 범주에 속하면 그 안에 있는 것들은 항상 동일한 성격으로 분류된다. 개별 사물이나 현상, 개별 특징이나 요소로서의 의미는 사라지고 오직 해당 범주 안의 고정된 의미로만 우리에게 다가온다. p170



외부 사물과 내적 지각이 맞물려 한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생각이 외부 사물과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의 개별적 독자적 가치를 만들어 갈 때 비로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하나의 가치를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의 미술관> 북 도슨트는 미술 작품 속 숨겨진 뜻을 통해 우리는 왜 철학을 배워야 하는지, 철학이 어떻게 삶에 자리 잡고 있는지 알기 쉽게 설명해 엉뚱한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 준다.  철학카페에서 00 읽기 시리즈를 좋아해서 여러 권을 읽었는데 이 책에 소제목을 붙인다면 <철학카페에서 미술 읽기>라고 하고 싶은 이유다.  사고의 문을 여는 각 장은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으로 시작된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미술동호회 활동을 하던 시절 좋아했던 작가다.  흔히 철학을 하나의 이미지로 함축해 놓았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찬사를 받는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이전의 미술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깊은 사유의 만찬으로 초대하는 훌륭한 애피타이저이자 초대장이다.    


4차 산업혁명까지 얘기하지 않더라도 바야흐로 변화의 물결이 넘치는 시대다.  로봇에게 다른 행동을 인식시키는 것은 알고리즘을 입력해야 하는 복잡한 단계만 거치게 되면 금방 새로운 체계를 인식한다.  그러나 인간은 새로운 사고에 매우 취약한 대뇌 회로를 갖고 있다.  우리는 늘 우리가 생각했던 방식대로 사고하고 판단하며 살아왔다.  변화가 없는 세상이 어떤 고통을 안겨주는지 몸소 겪었던 지난 10년의 세월은 조용한 촛불 혁명의 주춧돌이 되어 역사를 새 시대의 큰 변화의 흐름 앞에 가져다 놓았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의 미술관>의 저자는 마그리트의 그림으로 기존의 사고방식의 틀에서 벗어나라고 주문을 걸고 있다.  강제되고 고정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야, 상상력을 통한 인식 지평의 확대를 할 수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  멀리 가서 철학을 찾을 필요도 없다.  내 삶 가까이에 있는 현실적인 문제로부터 먼저 철학적 사고를 해야 한다.  많은 현대인들이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들어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말할 것을 미리 대비하듯 책의 말미에 시간의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 나온다.  현실적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시간에 익숙해지며 시간의 노예로 살게 되었는지 말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자본을 잠식하듯 다가오는 미래에는 시간 또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잠식당할 것이다.  시간의 주인이 되어 나만의 철학을 하고 나아가  넓은 세상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사유와 철학의 힘이 꼭 필요하다.  한사람 한 사람의 정신적 변화는 물질적 힘으로 승화되어 놀라운 힘이 될 수 있다.  보이는 것에 집중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해 생각할 때다.  찾아가는 길이 어렵다면 <생각의 미술관> 북 도슨트의 힘을 빌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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