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츠와 고양이 책이 좋아 1단계 6
히코 다나카 지음, 요시타케 신스케 그림, 고향옥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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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코 다나카 작가와 요시타케 신스케가 다시 만났다. <아이라서 어른이라서>,<아홉 살 첫사랑>에 이어 세 번째 만남이다. 요시타케 신스케 작품 속 인물 표정을 좋아한다. 몇 개의 선과 점 만으로 여러 가지 표정을 만들어낸다. 히코 다나카 작가는 아이들의 언어로 글을 쓴다. 그냥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늘어놓는 느낌이다. <레츠와 고양이>는 지금 일곱 살인 레츠가 다섯 살 때를 기억하며 쓴 책이다. 앞으로 6살, 7살 이야기가 차례로 출간 예정이라 점점 자라는 레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곱 살은 좋고 싫음이 분명해지는 나이다. 하루 생활이 익숙해져 스스로 행동할 수 있다. 그리고 자아가 형성된다. 일곱 살의 눈에는 다섯 살이 '아주아주 오래전'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레츠가 아주 오래오래 전, 다섯 살 때 가장 큰 사건은 고양이가 생긴 일이었다. 엄마는 길에서 고양이를 주워왔다. 레츠가 처음 고양이를 보았을 때 까만 덩어리의 눈이 초록빛으로 빛났다. 엄마는 레츠에게 이 동물은 '고양이'라고 가르쳐준다. 레츠에게 처음 고양이로 인식된 동물을 엄마는 '까망이'라 부르자고 한다. 레츠는 ‘얘는 고양이지 까망이가 아니야’라고 생각한다.

고양이는 레츠의 손가락을 문다. 그런데 그 느낌이 싫지 않다. 그래서 싫어하는 사람을 무는 버릇을 고친다. 고양이는 좋아하는 사람을 무는데 싫어하는 사람이 좋아한다고 오해하면 안 되니까. 그렇지만 좋아한다고 무는 것도 안되는 일이었다. 고양이는 이제 더 이상 깨물지 않고 볼을 핥아준다. 그렇지만 고양이 혀는 아프다. 레츠는 자신의 혀도 아픈지 시험해 보고 아프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후 좋아하는 친구들을 핥아주기로 한다.

 

다섯 살이었던 레츠는 장난감 방이 자기 방이 될 줄 몰랐다. 장난감이 있는 방은 언제까지나 장난감 방이라고만 생각했다. 그저 장난감 방이었던 방이 내 방이 되었을 때 다른 의미가 되는 것처럼, 고양이도 레츠의 고양이가 되었을 때 다른 의미가 되는 것이었다. "큐우리(오이)"라고 이름을 짓는 모습에서 까만 덩어리에 오이 같은 눈빛을 가진 고양이와 첫 만남을 떠올렸다.  "고양이는 오늘부터 고양이를 그만둡니다. 까망이도 그만둡니다. 이제 큐우리입니다."라는 선언은 누군가의 무엇이 되어 이름이 불리는 순간이었다. 반전은 엄마는 '큐우리'가 아니라 '키위'로 들었다는 것!!!  
 
아무리 고양이라 불러도 대답이 없는 고양이를 보고 이름을 떠올리는 레츠의 모습은 존재론적 의미를 떠올리게 했다. 내 이름이 없다면, 타인이 인식하는 나를 표현하는 말이 없다면,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얘, 쟤, 걔가 아닌 키위로 불러주는 순간, 그 고양이는 진짜 ‘레츠의 고양이’가 된다. 김춘수 님의 ‘꽃’이 떠오른다. 누군가의 무엇이 되는 것은 소유격이 아닌 주격이 완성된 후라는 것.
 
레츠가 꿈꾸는 방처럼 레츠의 고양이 키위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갈 것이다. 높은 캣타워, 그물망, 대롱거리는 쥐 인형이 있는 멋진 공간을. 그 혼자만의 공간에 누군가의 침입을 허용하고, 어울리고 그로 인해 마음 아프고 눈물짓게 되는 것이 인생이겠지. 레츠의 여섯 살, 일곱 살의 공간에는 무엇이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요즘에는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어린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다섯 살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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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칸의 대단한 모험 탐정 칸
하민석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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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이 꿈은 웹툰 작가다. 학교 도서관 사서 봉사를 하면 단연 인기 있는 책은 만화책들이다. 와이 시리즈, 그리스 로마신화, 윔피키드 등 이런 책들은 겉장이 제대로 붙어있는 책이 없을 정도다. 종이책뿐만 아니라 컴퓨터나 휴대 전화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많은 아이들이 빠르게 인터넷 만화 세계를 접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우리 창작 만화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탐정 칸의 대단한 모험>은 도깨비가 훔쳐 간 옛이야기, 안녕, 전우치?, 정신 차려 맹맹꽁 등을 그린 하민석 작가의 창작 만화다. 그는 <개똥이네 놀이터>에 어린이 창작 만화 '두근두근 탐험대'의 김홍모 작가와 독자 엽서 1,2위를 다투는 인기 작가다. 탐정 칸의 대단한 모험은 만화를 좋아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유명한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 중인 단편을 모아 출판한 책이다.


"어이없는 것 같지만 논리적이네." 단숨에 앉은 자리에서 읽어버린 아이가 책을 덮으며 얘기한 말이다. 키득거리는 아이와 다르게 나는 좀 심심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이미 현란한 일본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림의 인상은 고바우 영감의 4컷 만화 느낌이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만화가들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작가들이 피고름으로 글을 쓰듯 자신들도 뼈를 깎아 그림을 힘들게 그린다고 하는데 정말 쉽게 그린 느낌이다. 게다가 다른 만화를 찾아봤는데 같은 작가의 그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탐정 칸의 대단한 모험>은 첫째, 자극적인 말투나 그림이 없다. 둘째, 아이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아이들에게 직접 사건을 해결하고 싶은 욕구를 갖게 한다. 셋째, 작은 단편들 속에 있는 작은 실마리가 다음 사건과 연결되어 단편이면서도 장편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아이들이 만화를 꼼꼼히 보면서 앞 뒤 개연성과 맥락을 글처럼 추리하는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종이 질감과 색감, 그리고 글씨체였다. 옛날 문방구 앞에서 사 먹던 껌 만화책이 생각났다. 그거 모으려고 껌을 샀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 아이들은 그런 재미를 모르겠지? 아이들이 우리 창작 만화를 많이 읽고 우리만의 감성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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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소연진아일 동안 황선미 선생님이 들려주는 관계 이야기
황선미 지음, 박진아 그림, 이보연 상담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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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다는 말은 이렇게 난처하고 한심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꼼짝도 못 하게. 생각도 없는 애처럼 보이게. 25

 

착한 사람 콤플렉스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내면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심리적 장애를 뜻한다. 책 속 진아는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이 소연이라는 친구의 도우미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 전까지 그저 착한 아이였다. 그런데 하고 싶지 않았는데 거절하지 못한 도우미 역할은 진아의 마음을 점점 옭아매고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도 끝까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진아. <내가 김소연진아일 동안>은 선생님의 말을 지키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진아의 내면을 통해 '착한 아이'라는 꼬리표가 아이의 마음에 얼마나 큰 생채기를 내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황선미 작가는 이미 <나쁜 어린이표>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의 내면의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책의 머리말에는 아이들의 외롭고 억울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오롯이 어른의 몫이라 했다. <내가 김소연진아일 동안>에서도 속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내면을 알아봐 줘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은 계속된다. 진아가 억눌린 감정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곁에서 진아를 자세히 바라봐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아는 최대한 조용히 내 할 일만 하는 소심한 학생이다. 열 살 전에 엄마를 여의고 새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속으로 엄마를 그리워한다. 장난꾸러기 정우가 수돗가에서 장난치는 바람에 웃옷이 젖었을 때, 아무 말없이 수건으로 몸을 가려주었던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을 잊지 못해 진아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선생님께 칭찬받기 위해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아이이기도 하다.

진아 반에는 다른 아이들과 약간 다른 소연이라는 친구가 있다. 선생님은 진아에게 소연이를 도와줄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진아는 소연이 '도우미'가 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좋아하는 선생님의 말을 끝내 거절하지 못한다. 소연이의 도우미가 되는 일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잊어버린 준비물을 대신 챙겨주고, 같이 등교하고, 웬만하면 숙제도 같이해야 한다. 스물여덟 명의 친구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도우미'가 된 진아에게 반 아이들은 소연이와 관련된 모든 일을 떠넘긴다. "너 김소연 도우미잖아. 그러니까 네가 해."

그래도 진아가 묵묵히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수건으로 몸을 가려주었던 따뜻한 선생님이 자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훈이가 단지 소연이와 함께 오카리나 연주를 하기 싫다고 했을 때 선생님은 자신이 얼마나 연습했는지, 얼마나 잘하고 싶어 하는지 묻지 않고 소연이와 함께 연주하도록 한다. 그래서 진아는 싫다는 말 대신 가장 소극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이른다. 소연이와 함께 하는 오카리나 연주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를 악물고 부들거리는 모습은 진아의 내면 모습이었다.

내가 이러는 건 나 때문이다. 순전히 나 때문에. 이렇게라도 심통을 부려야 속이 풀리는 것 같아서. 아무도 반응하지 않으니 벽에 대고 분풀이하는 셈이지만 52

소연이 도우미를 하는 일은 그 무게만큼, 선생님을 실망시키기 싫은 만큼 진아는 점점 삐딱하게 변해 갔다. 그러나 곪았던 상처는 터지기 마련이다. 진아의 억눌린 감정은 결국 도우미를 거절했던 하나가 도우미가 해야 할 일을 운운하자 폭발한다. "싫으니까 거절해 놓고, 말까지 그렇게 하니? 이럴 자격도 없어. 너." 그렇지만 여전히 진아는 거기서 한 발자국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고 말로 쏟아내는 대신 그런 자신의 감정을 모두 비밀일기장에 기록해 둔다. 그런데 비밀일기장을 새엄마가 보게 된 사실을 알게 되고 무척 화가 난다. 착한 진아는 새엄마에도 투정을 부리거나 화를 내 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긴장하고 억눌린 감정을 집에서도 풀지 못하고 다시 억눌러야 하는. 진아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한폭탄이 되어간다.

그렇게 모든 감정을 마음에 담아두고서도 고작 소연이네 마당에 있는 꽃을 꺾는 것으로 자신의 분노를 소심하게 표현한다. 입으로 해소되지 못한 감정은 손으로 가서 소연이를 꼬집고 괴롭히기도 한다. 이게 최선이라고 변명하면서. 그저 누군가 점점 변해가는 자신을 붙잡아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책을 읽는 내내 진아 곁에 있는 엄마, 선생님, 다른 친구들이 진아 마음을 좀 알아줬으면 했다. 과학실에서 유리가 깨졌을 때 소연이를 위해 달려가는 진아는 여전히 착한 아이였으니까. 원래 진아가 가졌던 아름다운 마음씨까지 잃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아이들도 선생님의 말 앞에서는 쉽게 자신의 감점을 드러내지 못한다. 3학년 부회장을 맡았던 내내 부회장이라는 역할보다 큰 책임으로 힘겨워했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릴 적 나는 참는 게 익숙했기에 아이가 불평할 때마다 선생님을 바꿀 수는 없으니 네가 참아라고 얘기했다. 열심히 자신의 감정을 얘기하는 아이에게 역설적이게도 네 감정을 숨기는데 최선을 다하는 '착한 아이'가 되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 눈 밖에 날까 진아 엄마처럼 학교에 찾아가 아이의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해결하지 못한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그렇게 대를 이어 연명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참 편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면서 아이들을 멋대로 판단해도 되니까. 소연이를 부탁할 때 담임 선생님도 내 어깨에 손을 댔다. 착하다면서. 36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기 능력을 넘어서는 애를 쓰고 있다면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언제든지 발병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최근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나답게 살기 위한 책들이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자리매김하는 것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감정의 노예처럼 끌려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하는 엄마가 없었다면, 장난꾸러기이지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정우가 없었다면 진아는 여전히 홀로 모든 시간을 견디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아의 상황을 선생님께 편지로 전달해 준 정우의 용기에 박수와 갈채를. 오늘도 현명한 아이들에게 한 수 배운다.

 
일부러 세게 눌러야 다친 데가 확인될 만큼 살짝 베인 거였다. 상처는 그랬다. 그런데 왜 계속 아픈 기분일까. 아픈 데를 말하라고 하면 어디를 짚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몸뚱이 여기저기가 멍든 것처럼 아프다. 그냥 아프다. 꼭 꾀병처럼.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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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식당 (청소년판) 특서 청소년문학 4
박현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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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일주일 뒤에 내가 죽는다고 알려준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냥 어제와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며 시간을 죽이고 있을 것 같다. 일주일이란 시간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그다지 '긴' 시간이 아닐 테니까. 어제처럼, 지금처럼, 늘 하던 대로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테지. '구미호 식당(박현숙 글, 특별한 서재 펴냄)'은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된 도영이와 아저씨가 불사신을 꿈꾸는 서호라는 여우에게 '뜨거운 피 한 모금'을 준다고 약속하고 유예한 죽음 후 49일간의 이야기다.

49라는 숫자를 보자마자 불교에서 지내는 49재 제사가 떠올랐다. 49재는 사람이 죽은 뒤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의례로 죽은 이가 불법을 깨닫고 다음 세상에서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비는 제례의식이다. 그래서 여우가 준 49일의 시간은 그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더해 주거나,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생태계가 순환하듯 모든 죽음은 끝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떤 이에게는 그 시간이 필요치 않고, 또 어떤 이에게는 절실히 필요하다. 죽음보다 못한 삶이라 생각하며 살았던 도영이가 전자라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집착을 끊을 수 없었던 이민석이라는 아저씨는 후자였다.

나중에 천천히 얘기하자. 우리에겐 '사십일이 넘는' 시간이 있으니까.

아저씨의 흥정으로 죽음 뒤에 다시 사는 49일 동안의 모습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곳에는 차고 넘치는 음식과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단, 바깥에 나가면 죽을 만큼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는 주의사항이 있었다. 이미 한 번 죽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이래야 별것 아니겠지 하고 바깥에 나갔던 아저씨는 발가락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고 돌아온다. 잘 알지 못한 채 같은 공간에서 49일의 삶을 허락받은 두 사람은 잠깐잠깐 서로의 삶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닫아 버린다. 서로 모르는 이들에게 다시 주어진 사십여 일의 시간은 절실함이 사라진 '긴'시간이었다.

전직 셰프였던 아저씨는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죽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딱히 할 일이 없던 도영이는 아저씨를 돕기로 한다. 바깥출입을 할 수 없는 아저씨는 찾고 싶은 사람이 제 발로 걸어올 묘안을 생각해 냈는데, 그것은 아저씨가 찾는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음식을 만들어 직접 오게 만드는 것이었다. 때마침 여우가 데려다준 공간에는 식당 일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재료가 있었고, 우연의 일치인지 그들이 함께 지내야 할 곳의 이름은 <구미호 식당>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전설에서 여우는 500년을 수행할 때마다 꼬리가 둘로 갈라지며 꼬리가 아홉 개가 되면 불사의 존재가 된다고 했다. 어쩌면 <구미호 식당>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잠시 죽음을 유예한 그들의 삶을 되살려 불사의 존재로 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저씨는 손님들에게 '크림 말랑'이라는 음식에 대해 소문을 내달라 부탁한다. 그러나 요즘 같은 인터넷이 발달된 세상에 입소문으로 사람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점점 일이 신통치 않게 돌아가자 식당에서 일할 알바를 구했는데 공교롭게도 도영이의 형이었다. 얼굴이 바뀐 도영이를 형은 알아보지 못한다. 잘못한 일을 모두 도영이에게 뒤집어 씌우고, 쓸데없는 데 돈을 낭비하는 형은 도영이의 기억 속에 최악으로 남아있었다. 도영이는 자신을 미워하는 할머니와 형을 보지 않아 좋았는데 죽음을 유예한 기간 동안 다시 형의 모습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기가 막혔다.

벌써 이십일이 지났네. 아, 사십구일은 긴 시간이 아니었어. 무슨 수를 써야겠어. 이러다 남은 날들을 장사나 하면서 그저 흘려보내면 큰일이야.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는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영원한 줄 알았어. 그런데 새털처럼 가볍게 휙휙 날아가는구나.

 

 

책은 끝까지 사랑에 연연하는 아저씨의 모습과 삶에 어떤 의미나 가치를 갖지 못했던 도영이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며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 삶은 어떠냐고 자꾸 말을 걸어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살아온 내 삶을 되돌이켜 생각해 봤다. 어떤 것도 좋다, 나쁘다 할 수 없이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때는 씁쓸했고, 어느 때는 달큼했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부질없는 사랑의 저울질이나 키재기는 인생의 다양한 맛을 느끼게 해주었고, 그 맛을 느끼는 매 순간에는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다양한 맛을 느끼게 해준 '우리'는 서로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도영이는 자신을 눈곱만큼도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할머니가 자신의 죽음 후 쓰러져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자 이상하기만 했다. 한 번도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 '나 같은 것은 없어도 그만이겠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게 서호가 나타나 49일의 시간을 준다고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꼭 대면해야 할 누군가의 얼굴이 얼핏 스쳤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만나게 되겠지. 얘기할 수 있게 되겠지 하고 미루고 미뤘던 일을 그때가 되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한 번 지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지만 아직 내게는 다시 되돌리고 싶은 시간 따위는 없다. 나도 도영이처럼 사람들을 오해하고 있는 것일까. 천일동안 살아 있는 사람의 뜨거운 피를 먹으면 영원히 불사의 존재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여우. '뜨거운 피' 그것은 실제 인간의 몸에 흐르는 피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뜨겁게 사랑했던 시간이었다. 그 기억만으로도 인간은 죽어서도 죽지 않는 불사의 몸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미 죽었는데 죽을 것 같은 고통은 다시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다. 자신의 마지막 요리를 사랑하는 그녀가 먹는 모습을 보았을 때,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그들의 기억 속에 내 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죽을 것 같은 고통, 즉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삶의 욕구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구미호 식당에서 보냈던 49일의 시간은 도영이와 아저씨의 삶을 온기로 충만하게 만들어주었던 시간이었다. 책 속에는 영화 대사로 여러 프로그램에서 패러디 되었던 "뭣이 중한 디"에 버금가는 대사가 등장한다. "그게 뭐라고" 내게 죽음 전 일주일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가족들에게 남은 시간 동안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 내 삶은 너희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그게 뭐라고' 여태 말해 주지 않았는지. <구미호 식당>은 청소년문학이라 한정하기에는 아쉬운 책이다. 점점 죽음의 문 앞에 다가서는 어른들이 읽어야 할 소설이 아닐까. "불사의 존재로 살 수 있는 삶의 진수가 담긴 <구미호 식당>, 서점에서 절찬리 판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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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 - 2018 칼데콧 대상 수상작 비룡소의 그림동화 254
매튜 코델 지음 / 비룡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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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세요? 이 책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제목만 봐서는 용감함 한 소녀의 이야기 같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동물과 사람 모두 지구를 빌려 쓰고 있는 여행자일 뿐입니다. 하지만 외투의 색깔처럼 아빠의 안전을 위한 노력과 엄마의 따스한 사랑 속에 연민이 생겨날 수 있었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늑대도 제 무리에서 그렇게 자라납니다. 다시 책의 맨 앞으로 돌아가 개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개는 늑대와 유전적으로 가족이라 할 수 있으면서 인간 사회에 적응한 동물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아마도 그런 세상이 아닐까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는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랑, 연민의 마음을 지키는 소녀의 용기를 배울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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