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 식당 (청소년판) 특서 청소년문학 4
박현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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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일주일 뒤에 내가 죽는다고 알려준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냥 어제와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며 시간을 죽이고 있을 것 같다. 일주일이란 시간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그다지 '긴' 시간이 아닐 테니까. 어제처럼, 지금처럼, 늘 하던 대로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테지. '구미호 식당(박현숙 글, 특별한 서재 펴냄)'은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된 도영이와 아저씨가 불사신을 꿈꾸는 서호라는 여우에게 '뜨거운 피 한 모금'을 준다고 약속하고 유예한 죽음 후 49일간의 이야기다.

49라는 숫자를 보자마자 불교에서 지내는 49재 제사가 떠올랐다. 49재는 사람이 죽은 뒤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의례로 죽은 이가 불법을 깨닫고 다음 세상에서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비는 제례의식이다. 그래서 여우가 준 49일의 시간은 그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더해 주거나,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생태계가 순환하듯 모든 죽음은 끝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떤 이에게는 그 시간이 필요치 않고, 또 어떤 이에게는 절실히 필요하다. 죽음보다 못한 삶이라 생각하며 살았던 도영이가 전자라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집착을 끊을 수 없었던 이민석이라는 아저씨는 후자였다.

나중에 천천히 얘기하자. 우리에겐 '사십일이 넘는' 시간이 있으니까.

아저씨의 흥정으로 죽음 뒤에 다시 사는 49일 동안의 모습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곳에는 차고 넘치는 음식과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단, 바깥에 나가면 죽을 만큼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는 주의사항이 있었다. 이미 한 번 죽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이래야 별것 아니겠지 하고 바깥에 나갔던 아저씨는 발가락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고 돌아온다. 잘 알지 못한 채 같은 공간에서 49일의 삶을 허락받은 두 사람은 잠깐잠깐 서로의 삶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닫아 버린다. 서로 모르는 이들에게 다시 주어진 사십여 일의 시간은 절실함이 사라진 '긴'시간이었다.

전직 셰프였던 아저씨는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죽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딱히 할 일이 없던 도영이는 아저씨를 돕기로 한다. 바깥출입을 할 수 없는 아저씨는 찾고 싶은 사람이 제 발로 걸어올 묘안을 생각해 냈는데, 그것은 아저씨가 찾는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음식을 만들어 직접 오게 만드는 것이었다. 때마침 여우가 데려다준 공간에는 식당 일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재료가 있었고, 우연의 일치인지 그들이 함께 지내야 할 곳의 이름은 <구미호 식당>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전설에서 여우는 500년을 수행할 때마다 꼬리가 둘로 갈라지며 꼬리가 아홉 개가 되면 불사의 존재가 된다고 했다. 어쩌면 <구미호 식당>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잠시 죽음을 유예한 그들의 삶을 되살려 불사의 존재로 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저씨는 손님들에게 '크림 말랑'이라는 음식에 대해 소문을 내달라 부탁한다. 그러나 요즘 같은 인터넷이 발달된 세상에 입소문으로 사람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점점 일이 신통치 않게 돌아가자 식당에서 일할 알바를 구했는데 공교롭게도 도영이의 형이었다. 얼굴이 바뀐 도영이를 형은 알아보지 못한다. 잘못한 일을 모두 도영이에게 뒤집어 씌우고, 쓸데없는 데 돈을 낭비하는 형은 도영이의 기억 속에 최악으로 남아있었다. 도영이는 자신을 미워하는 할머니와 형을 보지 않아 좋았는데 죽음을 유예한 기간 동안 다시 형의 모습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기가 막혔다.

벌써 이십일이 지났네. 아, 사십구일은 긴 시간이 아니었어. 무슨 수를 써야겠어. 이러다 남은 날들을 장사나 하면서 그저 흘려보내면 큰일이야.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는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영원한 줄 알았어. 그런데 새털처럼 가볍게 휙휙 날아가는구나.

 

 

책은 끝까지 사랑에 연연하는 아저씨의 모습과 삶에 어떤 의미나 가치를 갖지 못했던 도영이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며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 삶은 어떠냐고 자꾸 말을 걸어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살아온 내 삶을 되돌이켜 생각해 봤다. 어떤 것도 좋다, 나쁘다 할 수 없이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때는 씁쓸했고, 어느 때는 달큼했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부질없는 사랑의 저울질이나 키재기는 인생의 다양한 맛을 느끼게 해주었고, 그 맛을 느끼는 매 순간에는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다양한 맛을 느끼게 해준 '우리'는 서로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도영이는 자신을 눈곱만큼도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할머니가 자신의 죽음 후 쓰러져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자 이상하기만 했다. 한 번도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 '나 같은 것은 없어도 그만이겠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게 서호가 나타나 49일의 시간을 준다고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꼭 대면해야 할 누군가의 얼굴이 얼핏 스쳤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만나게 되겠지. 얘기할 수 있게 되겠지 하고 미루고 미뤘던 일을 그때가 되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한 번 지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지만 아직 내게는 다시 되돌리고 싶은 시간 따위는 없다. 나도 도영이처럼 사람들을 오해하고 있는 것일까. 천일동안 살아 있는 사람의 뜨거운 피를 먹으면 영원히 불사의 존재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여우. '뜨거운 피' 그것은 실제 인간의 몸에 흐르는 피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뜨겁게 사랑했던 시간이었다. 그 기억만으로도 인간은 죽어서도 죽지 않는 불사의 몸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미 죽었는데 죽을 것 같은 고통은 다시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다. 자신의 마지막 요리를 사랑하는 그녀가 먹는 모습을 보았을 때,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그들의 기억 속에 내 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죽을 것 같은 고통, 즉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삶의 욕구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구미호 식당에서 보냈던 49일의 시간은 도영이와 아저씨의 삶을 온기로 충만하게 만들어주었던 시간이었다. 책 속에는 영화 대사로 여러 프로그램에서 패러디 되었던 "뭣이 중한 디"에 버금가는 대사가 등장한다. "그게 뭐라고" 내게 죽음 전 일주일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가족들에게 남은 시간 동안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 내 삶은 너희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그게 뭐라고' 여태 말해 주지 않았는지. <구미호 식당>은 청소년문학이라 한정하기에는 아쉬운 책이다. 점점 죽음의 문 앞에 다가서는 어른들이 읽어야 할 소설이 아닐까. "불사의 존재로 살 수 있는 삶의 진수가 담긴 <구미호 식당>, 서점에서 절찬리 판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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