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탄생 비룡소 그래픽노블
안네테 헤어초크 지음, 카트린 클란테 그림, 김영진 옮김 / 비룡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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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2017 독일 청소년 문학상 후보

* 2017 독일 룩스 상

*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덴마크 문화 상

* 핑 상 ‘최고의 어린이 청소년 만화’

타인이 바라보는 나는 알쏭달쏭해.

도대체 알 수 없는 ‘나’라는 존재의 궁금증!

열두 살 비올라는 '존재 없음'에서 '존재 있음'이 될까?

“탁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늘 쓸 데가 있으니까.”

 

이랬다저랬다, 나도 내가 왜 이런지 잘 모른다고 소리치며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알고 싶었던 사춘기. 잘하는 것도 없고, 예쁘지도 않고... 주변 사람들의 평가도 제각각이다. 나에 대해 알기도 벅찬데 별안간 새엄마와 남동생, 또 새아빠가 생기는 복잡한 현실이다. 1학년 때에는 5학년 정도 되면 어른처럼 모두 다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비올라는 오리무중이다.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

 

'고민은 그만! 보이지 않는 내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아무도 내 진짜 모습에 관심이 없는 걸.' 예상대로 멋지게 차려입고 보이는 겉모습에만 집중하니 금방 효과가 나타났다. 비올라는 단숨에 ‘인싸’로 인식된다. 하지만 멋져 보였던 인싸 안에서도 그들과 다른 마음이 꿈틀대며 요동쳤다. 따돌림당하는 아이와 함께 있어주고 싶은 마음의 목소리를 따르면 다시 ‘아싸’의 세상으로 밀려나기에 선택은 늘 갈팡질팡이다. 누군가 나 대신 해답을 준다면 좋을 텐데! 새로 산 풍선이 예쁜 시간은 아주 짧다. 금세 바람이 빠지고 쭈글쭈글 힘이 빠진다. 비올라는 풍선이 날다 바람이 빠져 떨어졌을 때, 쭈글쭈글 못생긴 풍선을 눈여겨보고 쪽지를 읽어 줄 누군가에게 쪽지를 적어 보낸다.

 

‘반짝거리던 반딧불이를 잡아 병에 넣으니 곧 빛을 잃고 죽었어. 난 스스로 자유롭게 빛나야 해.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찾아가고, 내 안의 꿈틀대는 욕망과 광광 거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쿵쾅대는 심장 깊숙한 곳, 그곳엔 또 다른 아이가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어. 이건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야.’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더니 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내가 만약’ 슈퍼 영웅이 된다면! 내가 만약 유명한 가수가 된다면! 또 내가 만약....' 문득 할아버지가 늘 쓸 데가 많은 탁자를 만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누군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해보는 것이었다.

 

껍질 속에서 숨죽여 살던 애벌레는 스스로 걸어 나와야 할 때가 되었어. 껍데기 밖으로 나오면 멋진 나비의 날개가 펼쳐질까? 그리고 지긋지긋한 존재의 물음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껍데기 밖은 완전히 다른 세상일까? 그런데 말이야. 껍데기를 부수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어. 좀 더 모험을 해 봐. 그럼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거야.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 따라 내 모습을 정의 내리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필요할까. 움직일 수 없는 종이 인형에 입힐 수 있는 옷은 모두 같은 자세일 수밖에 없다. 많은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화려하고 멋져 보이지만 나로 살 수 없다. 파티 복장으로 나무 위를 오르는 비올라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껍데기를 뚫고 나온 나비는 또 다른 나비를 만나 인생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나는 늘 새롭게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 또한 늘 쓸 데가 있다. 환영합니다. 당신의 탄생을!

뭘 변화시키고 싶으면 길이나 비켜.

그것만 해도 큰 변화니까.

그다음에도 무언가 하고 싶다면

늘 쓸 데가 많은 탁자를 만들어.

함께 앉아 이야기 나눌 진짜 친구가 찾아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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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등대 비룡소의 그림동화 259
소피 블랙올 지음,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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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 꺼지지 않는 연탄불 아궁이는

삶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해준 마음속 등대였다

"여기예요! 여기예요! 여기 내가 있어요!"

등대 내부 모습을 보니 연탄아궁이가 생각났다. 밤새 태엽을 감고 심지를 다듬어주는 등대지기가 매일 밤 연탄불 꺼뜨리지 않으려 밤잠을 설치는 엄마 같았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풍랑 속에서, 안갯속에서, 꽁꽁 얼어붙은 찬 바람 속에서도 등대불은 꺼지지 않는다. 자명종 없이 새벽녘이면 어김없이 일어났던 엄마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았던 엄마의 바지런함 덕분에 한겨울도 거뜬했다.

연탄불 아궁이는 운동화도 바짝 말려주고, 고구마도 맛있게 구워냈다. 연탄아궁이는 등대지기가 아내에게 보낸 유리병 속 편지처럼 켜켜이 쌓인 기억 속 일기장이었다. 등대가 밤하늘을 비출 때 꺼지지 않고 타던 연탄아궁이가 떠올랐다. 등대지기에게 등대는 아내를 기다리고, 아이가 태어났던 기억의 탑이었을 것이다.

전기로 대체된 등대처럼 연탄아궁이는 보일러로 대체되었다. 연탄불 꺼뜨릴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했던 엄마는 그 후에도 한동안 밤에 일어나서 서성였다. 자신의 손길을 주고 싶은 것처럼. 자동주문 기계는 내게 말을 걸어 주지 않는다. 나와 손잡은 아이의 이름을 묻지도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해 주지도 않는다. 요즘에는 연탄불 꺼뜨리지 않으려 동동거렸던 엄마 덕분에 따뜻한 겨울을 지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없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쓸쓸하다.

위에서 바라본 그림의 구도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한 사람의 인생을 신의 망원경을 빌려 슬쩍 바라본 듯하다. 신은 내게 보여준다.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바다를 여행하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불을 밝히는 한 사람의 인생을. 그리고 등대에서 함께 지냈던 가족의 추억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들만의 것이라는걸. 그들은 등대를 바라보며 그 속에서 서로 웃고 울었던 날들을 생각하겠지. 내가 연탄아궁이를 보며 엄마를 떠올리는 것처럼.

 

책을 읽어주는데 아내가 도착하는 장면에서 아이가 손뼉을 쳤다. 함께 있을 때 행복하다는 것을 아이도 아는 것일까. 이제는 연탄불 걱정을 안 해도 되지만 나는 여전히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으려 했던 엄마의 사랑을 추억하며 그리워한다. 그 시절의 행복은 연탄아궁이 속에 남아있으니까. ‘안녕! 안녕! 안녕, 나의 등대야!’ 하는 인사는 시간의 색을 입혀 단단한 추억의 등대가 될 것이다.

파도 모습이 낯이 익는다 생각했는데 일본 우키요에 판화에서 보던 물결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수채화 물감과 먹을 함께 사용해 수채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음영의 맛이 있었다. 잔잔했다가 휘몰아치듯 일렁이는 파도의 다양한 모습이 꿋꿋이 서 있는 등대와 비교되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늘 변화하는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꿋꿋이 서 있는 추억의 힘일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본다. 꺼지지 않는 연탄불처럼 마음에 오래 남을 책이다.

덧붙임.. 그림이 다른 별도의 겉표지가 따로 제작된 매력적인 책이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인식 라벨 작업을 하면서 보관상의 이유로 겉표지를 없애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잔잔한 파도 속 낮의 등대 모습과 휘몰아치는 파도 속 밤의 등대 모습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 준다. 불빛을 비추는 듯 등대 주변에 세운 제목도 글자 이상의 의미를 비춘다. 아이들이 겉표지를 꼭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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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생쥐 줄리앙
조 토드 스탠튼 지음, 서남희 옮김 / JEI재능교육(재능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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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으면 조금 더 행복해져

혼자 있는 건 편하다.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위험한 적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다. “엄마, 줄리앙의 집으로 가는 길에는 아무도 없어!” 생쥐 줄리앙은 언제나 혼자다. 어느 날, 배고픈 여우가 줄리앙의 땅속 집에 불쑥 얼굴을 들이민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줄리앙을 삼키려 했지만 창문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여우는 줄리앙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 줄리앙도 여우 얼굴을 보며 살 수 없으니 도와주려 한다. 하지만 여우는 구멍에서 나오지 못하고, 둘은 어쩔 수 없이 함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배가 고픈 여우의 눈빛에 마음 약해진 줄리앙은 먹을 것을 나눠주고 함께 이야기하며 누군가 함께 있는 시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튿날, 줄리앙은 숫가락을 지랫대처럼 이용해 여우를 구멍에서 꺼내주고 둘은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나뭇가지를 놓쳐서 원숭이 올빼미에게 딱 걸린 줄리앙!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는 순간 여우가 나타나 줄리앙을 덥석 한 입에 먹어 버린다.

여우에게 먹힌 줄리앙은 어떻게 되었을까. 반전없이 모두의 예상대로 여우는 은혜를 갚는다. 그러나 그들은 금방 친한 친구가 되지 않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 후 여우는 가끔 줄리앙의 집에 와서 저녁을 함께 먹는 친구가 된다. 동물들은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먹고 먹히는 존재다. 처음 여우가 처음 줄리앙을 또록또록 지켜보던 눈빛과 원숭이 올빼미에게 잡아먹힐 뻔한 순간에 지켜보던 눈빛은 변함이 없다. 여우의 마음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간도 보이지 않는 약육강식의 삶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살아남기 위한 경쟁과 생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은 마음에 행복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어울리며 사는 법을 배운다. 아이는 무뚝뚝하게 일자로 그려진 줄리앙의 입이 웃는 모습으로 바뀐 부분을 금방 알아챈다. 으르렁거리던 여우도 웃는다.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새들이 원숭이 올빼미에게 날아가 시끄럽게 하는 통에 낮에 자야 하는 올빼미의 눈은 또록또록하다. 낮잠 못 자는 원숭이올빼미 이야기로 기대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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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세계 -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지음, 변선희 옮김 / 연금술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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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지만, 나는 원하지 않는다

<푸른 세계> p.34

왜 사는지 물었다. 아이들은 태어났으니 사는 거라고 했다.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기에, 가끔은 삶을 원하지 않았다. 이유 없이 살아가는 삶은 때때로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신의 말씀에 따른 삶이나, 가족에게 헌신하는 삶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사는 것이 나를 위한 삶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아프면 덜컥 겁이 났다.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지만, 결코 다시 잠들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죽음은 언제든 닥쳐올 수 있는 미래라는 사실을 자주 잊고 산다.

<푸른 세계>는 열여덟 살이 되기 하루 전, 죽음을 선고받고 치료를 거부한 그가 '그랜드호텔'로 향하는 이야기다. 그랜드 호텔은 마지막 순간에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람에게 목가적인 장소에서 마지막을 보낼 수 있게 도와주는 재단이다. 한 살 때 입양된 그에게는 부모도 형제도 없었고, 자신이 열한 살 때 자살한 아버지가 남긴 절벽 위, 집 열쇠뿐이었다. 쉽게 결정 내리지 못하고 이끌린 삶을 증명하듯 그랜드 호텔로 향하는 죽음의 여정 속에서도 일상의 물음은 쏟아졌다. 그의 모습이 내 모습 같아 움찔했다.

죽음에 임박한 순간은 어떨까. 나에게 죽음은 스스로 선택했을 때에만 직면할 수 있는 먼 이야기일 뿐이었다. 치매에 걸리거나, 병고에 몸부림치며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다고만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는 그랜드 호텔에 가기 전 도착한 낯선 섬에서 한 소년이 이끄는 대로 항상 하고 싶었고 이루고 싶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선형 계단 아래 놓인 침실을 차례대로 밟아 오르며 삶의 윤회,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바라보았다. 나흘의 시간 동안 그동안 하고 싶었고 이루고 싶었던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했다. 돌아보니 세상은 가장 큰 놀이마당이었다.

우리의 혼돈을 억누르는 대신 사랑해야 한다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너의 다름을 사랑하라, 너를 유일한 존재로 만드는 것을 사랑하라

<푸른 세계> p.126

'역할을 생각하지 않고 한계에 이를 때까지 놀면 모든 게 나아지지.' 낯선 섬에서 생활은 어린 시절의 한 토막 같았다. 놀이를 하며 눈을 마주쳤을 때 까르르 터졌던 웃음소리, 솜털 같은 부드러움과 심장의 떨림, 털어주고 닦아주고 안아주며 스쳤던 모든 작고 소중한 순간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는 몸통 소년과 놀이를 하며 다시 살아난 느낌을 갖는다. 내 안의 텅 빈 공간을 채워주며 행복하게 한 것은 누군가와 함께 체온을 나누고 얼굴을 마주할 때였다. 눈앞에 존재하는 너와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을 나누었던 시절의 충만함이 햇살처럼 쏟아졌다. 그렇게 몸을 부대끼며 함께 놀았던 친구의 부재는 삶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걱정만큼 강렬하지 않다는 걸 이해하게 했다. 그는 죽어가는 중이었지만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소년이 데려다준 북쪽 끝 집에는 어쩌면 그가 가장 필요했던 사람이 있었다. 입양되어 볼 수 없었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한 번쯤 보고 싶었던 '누군가'의 엄마 얼굴이었다. 예전의 나는 죽어가는 중이었지만 그녀 품에서 잠자고 있는 아기는 새로운 생명이었다. 그의 깨달음은 한 세대를 이어가는 증표이자 새롭게 태어난 것이었다. 그가 죽음을 선고받고 가고 싶어 했던 ‘그랜드’호텔의 이름처럼 세대를 이어가는 순환의 증표! 한 사람의 삶은 소멸과 탄생을 거듭하며 거대한 세계를 떠받치고 있었다. 그의 죽음을 향한 마지막 여정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 양아버지를 잃었던 곳이었다.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 길은 행복했던 찰나의 순간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죽어가는 자연의 법칙이다. 그래, 삶은 단지 사는 것이다.

나의 푸른색을 찾으러 돌아왔네.

나의 푸른색, 그리고 바람,

나의 광채,

내 삶을 위해 언제나 꿈꾸어온

파괴할 수 없는 빛.

나의 소곤거림, 나의 음악이

여기 남아 있네.

파도의 포말에 너울거리는 나의 첫 마디,

고요한 바다, 심연이 없는 순수한 바다

전설 이전에 태어난 나의 심장.

어쩌면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음은 더 사는 것, 이 바람의 무덤에서,

아직 부르지 못한 내 노래의 숨결로

푸른색을 더욱 짙게, 유랑하라.

나는, 나는 한없이 투명함을 노래하는 시인,

비록 피 흘릴지라도 아직 노래할 수 있네,

나와 함께, 내 목소리로 소생을 원하는

깊은, 선명한 상처를 입은 채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이 가득한 곳.

그렇게 말했더라도 죽는 것, 나는 죽고 싶지 않아,

그렇게 죽더라도 바다는 죽지 않기 때문이지.

저 넘어, 시대를 넘어

나의 목소리, 나의 노래, 너희들과 함께해야만 해.


마음의 통증은 그와 정반대다. 통증이 처음 나타날 때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고통이 얼마나 커질지 전혀 상상할 수 없다. 12

문제란 단지 사람이나 인생에 기대하는 것과 그로부터 실제로 얻는 것 사이의 차이일 뿐이다 15

모든 것의 기본은, 오늘이 죽을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이 전부다. 24

당신이 천년을 살 것처럼 생각하기 원하는 사람들의 규칙을 따르면 당신은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한다. 26

너는 항상 어린아이인 동시에 어른이어야 한다. 상상을 하는 어린아이면서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힘을 끌어내는 어른! 74

하나의 큰 문제가 다른 큰 문제를 해결한다. 117

행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매일이 존재할 뿐이야. 124

생각하면서 문제가 생기고, 춤을 추면서 문제가 해결된다. 127

당신 세대가 없으면 당신은 빨리 꺼져가요. 그들이 당신의 힘이고 당신이 그들에게 한 약속이 당신 자신에게 힘을 주는 원동력이지요. 바람이 약속들을 쓸어간다는 걸 기억하고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늘 피해야 해요. 134

삶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걱정만큼 강렬하지 않다는 걸 이해했다. 죽음은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의식하게 하고 생명을 흐르게 한다. 우리를 열광시키는 모든 것들을 싹 틔운다. 145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하거나 자신이 원치 않은 사람이 되고 나서야 정말로 자신이 누구이고 이 세상으로부터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된다는 것을. 146

두려움의 상처는 애무를 잃어버린 결과다. 155

추구한다는 것은 목표를 필요로 할 뿐 최종 목적지 자체는 아니야. 164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너의 다름을 사랑하라, 너를 유일한 존재로 만드는 것을 사랑하라.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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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 한나 아렌트의 삶과 사상을 그래픽노블로 만나다
켄 크림슈타인 지음, 최지원 옮김, 김선욱 감수 / 더숲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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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다닐 때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다. ‘난 시스템은 믿지만, 사람은 믿지 않는다.’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보다 예측 가능하며 실수하지 않는 컴퓨터 시스템이 효과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읽고 지금껏 내가 가졌던 생각은 효율성과 경제성에만 초점을 맞춘 주입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이 만든 결과물은 예상 밖이지만 전혀 다른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독창성을 갖는다. 생명을 가진 모든 인간은 영속성 있는 자기 세계를 갖고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과 정체성을 말과 행동으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그녀의 예언과 같은 선언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산업혁명은 눈부신 발전을 가져다주었지만, 경제성과 연결되지 않으면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사회 전반적으로 뿌리내리게 했다. 수많은 아이들의 목숨을 가져간 세월호 사건도 누가 얼마나 보상을 받는 게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유대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했던 아이히만의 재판에서 그가 그저 명령에 잘 따른 한 인간일 뿐이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최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도 경제적인 가치가 모든 것에 우선하며 나의 이익이 아니라면 상관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에 익숙해지고 있다. 개인이 초래하는 악의 평범함을 현실로 목도하고 실질적으로 분노했던 정권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 때 그녀의 철학은 새롭게 조명되었다.

그녀에게 3이란 숫자는 특별한 의미다. 삼각뿔 바닥의 세 꼭짓점이 새로운 꼭짓점을 향하는 이야기 방식을 즐겼다. 세 번의 탈출은 어떤 꼭짓점을 향하고 있을까. 첫 번째 탈출은 과거로부터의 유산과, 태어난 곳에서의 탈출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탈출이었지만 불가피한 상황과 협상한 탈출이었다. 두 번째 탈출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함몰된 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망망대해 위에서 역사의 바람(진보)에 따라 떠밀린듯한 탈출이었다. 마지막 탈출은 그녀가 거울처럼 본받고 영향받았던 연인’하이데거'의 그림자에서 탈출이었다. 마지막 탈출은 어쩌면 스스로 굴레를 씌워 옴짝달싹 못했던 자신에 대한 용서였다. 그녀는 세 번의 탈출로 하나의 진리를 주장하는 철학 대신 난간 없는 사유의 세계로 나아간다.

 

 

 

"세상에서 우리를 이끌어 줄 유일한 진리나 이해를 위한 묘책 같은 건 없다. 영광스럽고 결코 끝나지 않는 난장판이 있을 뿐이다.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위한 끝없는 난장판 말이다. "237

격동과 수난의 시대 속, 동시대의 철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인간의 조건>과 <악의 평범함>을 이야기했던 한나 아렌트의 일대기를 그래픽 노블로 읽게 되어 설렜다. 그래픽 노블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책에 총망라되어 있었다. 어려운 철학 얘기부터 끈적끈적한 증권가 지라시 같은 내용까지 예술로 승화하여 멋들어지게 읽을 수 있었다. 뿌연 담배연기처럼 뭉뚱그린 배경 속에 어지럽게 흩어졌다 모아지는 날카롭고 유연한 선들의 조합! 끝날 것 같지 않은 수난을 겪으면서도 자신과 끝없는 대화를 하며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그녀의 행적들이 그림 속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였다. 그녀는 평생 손에서 놓지 못했던 담배의 연기 속 환영처럼 인간이 끝없은 자유를 위한 난장판이 멈추지 않기를 희망했다. 삶은 철저한 사유 속에서 끊임없이 탄생하는 각자의 이야기다. 자기와의 대화 속에서 답을 찾아가는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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