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세계 -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지음, 변선희 옮김 / 연금술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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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잠에서 깨지만, 나는 원하지 않는다

<푸른 세계> p.34

왜 사는지 물었다. 아이들은 태어났으니 사는 거라고 했다.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기에, 가끔은 삶을 원하지 않았다. 이유 없이 살아가는 삶은 때때로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신의 말씀에 따른 삶이나, 가족에게 헌신하는 삶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사는 것이 나를 위한 삶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아프면 덜컥 겁이 났다.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지만, 결코 다시 잠들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죽음은 언제든 닥쳐올 수 있는 미래라는 사실을 자주 잊고 산다.

<푸른 세계>는 열여덟 살이 되기 하루 전, 죽음을 선고받고 치료를 거부한 그가 '그랜드호텔'로 향하는 이야기다. 그랜드 호텔은 마지막 순간에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람에게 목가적인 장소에서 마지막을 보낼 수 있게 도와주는 재단이다. 한 살 때 입양된 그에게는 부모도 형제도 없었고, 자신이 열한 살 때 자살한 아버지가 남긴 절벽 위, 집 열쇠뿐이었다. 쉽게 결정 내리지 못하고 이끌린 삶을 증명하듯 그랜드 호텔로 향하는 죽음의 여정 속에서도 일상의 물음은 쏟아졌다. 그의 모습이 내 모습 같아 움찔했다.

죽음에 임박한 순간은 어떨까. 나에게 죽음은 스스로 선택했을 때에만 직면할 수 있는 먼 이야기일 뿐이었다. 치매에 걸리거나, 병고에 몸부림치며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다고만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는 그랜드 호텔에 가기 전 도착한 낯선 섬에서 한 소년이 이끄는 대로 항상 하고 싶었고 이루고 싶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선형 계단 아래 놓인 침실을 차례대로 밟아 오르며 삶의 윤회,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바라보았다. 나흘의 시간 동안 그동안 하고 싶었고 이루고 싶었던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했다. 돌아보니 세상은 가장 큰 놀이마당이었다.

우리의 혼돈을 억누르는 대신 사랑해야 한다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너의 다름을 사랑하라, 너를 유일한 존재로 만드는 것을 사랑하라

<푸른 세계> p.126

'역할을 생각하지 않고 한계에 이를 때까지 놀면 모든 게 나아지지.' 낯선 섬에서 생활은 어린 시절의 한 토막 같았다. 놀이를 하며 눈을 마주쳤을 때 까르르 터졌던 웃음소리, 솜털 같은 부드러움과 심장의 떨림, 털어주고 닦아주고 안아주며 스쳤던 모든 작고 소중한 순간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는 몸통 소년과 놀이를 하며 다시 살아난 느낌을 갖는다. 내 안의 텅 빈 공간을 채워주며 행복하게 한 것은 누군가와 함께 체온을 나누고 얼굴을 마주할 때였다. 눈앞에 존재하는 너와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을 나누었던 시절의 충만함이 햇살처럼 쏟아졌다. 그렇게 몸을 부대끼며 함께 놀았던 친구의 부재는 삶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걱정만큼 강렬하지 않다는 걸 이해하게 했다. 그는 죽어가는 중이었지만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소년이 데려다준 북쪽 끝 집에는 어쩌면 그가 가장 필요했던 사람이 있었다. 입양되어 볼 수 없었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한 번쯤 보고 싶었던 '누군가'의 엄마 얼굴이었다. 예전의 나는 죽어가는 중이었지만 그녀 품에서 잠자고 있는 아기는 새로운 생명이었다. 그의 깨달음은 한 세대를 이어가는 증표이자 새롭게 태어난 것이었다. 그가 죽음을 선고받고 가고 싶어 했던 ‘그랜드’호텔의 이름처럼 세대를 이어가는 순환의 증표! 한 사람의 삶은 소멸과 탄생을 거듭하며 거대한 세계를 떠받치고 있었다. 그의 죽음을 향한 마지막 여정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 양아버지를 잃었던 곳이었다.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 길은 행복했던 찰나의 순간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죽어가는 자연의 법칙이다. 그래, 삶은 단지 사는 것이다.

나의 푸른색을 찾으러 돌아왔네.

나의 푸른색, 그리고 바람,

나의 광채,

내 삶을 위해 언제나 꿈꾸어온

파괴할 수 없는 빛.

나의 소곤거림, 나의 음악이

여기 남아 있네.

파도의 포말에 너울거리는 나의 첫 마디,

고요한 바다, 심연이 없는 순수한 바다

전설 이전에 태어난 나의 심장.

어쩌면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음은 더 사는 것, 이 바람의 무덤에서,

아직 부르지 못한 내 노래의 숨결로

푸른색을 더욱 짙게, 유랑하라.

나는, 나는 한없이 투명함을 노래하는 시인,

비록 피 흘릴지라도 아직 노래할 수 있네,

나와 함께, 내 목소리로 소생을 원하는

깊은, 선명한 상처를 입은 채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이 가득한 곳.

그렇게 말했더라도 죽는 것, 나는 죽고 싶지 않아,

그렇게 죽더라도 바다는 죽지 않기 때문이지.

저 넘어, 시대를 넘어

나의 목소리, 나의 노래, 너희들과 함께해야만 해.


마음의 통증은 그와 정반대다. 통증이 처음 나타날 때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고통이 얼마나 커질지 전혀 상상할 수 없다. 12

문제란 단지 사람이나 인생에 기대하는 것과 그로부터 실제로 얻는 것 사이의 차이일 뿐이다 15

모든 것의 기본은, 오늘이 죽을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이 전부다. 24

당신이 천년을 살 것처럼 생각하기 원하는 사람들의 규칙을 따르면 당신은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한다. 26

너는 항상 어린아이인 동시에 어른이어야 한다. 상상을 하는 어린아이면서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힘을 끌어내는 어른! 74

하나의 큰 문제가 다른 큰 문제를 해결한다. 117

행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매일이 존재할 뿐이야. 124

생각하면서 문제가 생기고, 춤을 추면서 문제가 해결된다. 127

당신 세대가 없으면 당신은 빨리 꺼져가요. 그들이 당신의 힘이고 당신이 그들에게 한 약속이 당신 자신에게 힘을 주는 원동력이지요. 바람이 약속들을 쓸어간다는 걸 기억하고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늘 피해야 해요. 134

삶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걱정만큼 강렬하지 않다는 걸 이해했다. 죽음은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의식하게 하고 생명을 흐르게 한다. 우리를 열광시키는 모든 것들을 싹 틔운다. 145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하거나 자신이 원치 않은 사람이 되고 나서야 정말로 자신이 누구이고 이 세상으로부터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된다는 것을. 146

두려움의 상처는 애무를 잃어버린 결과다. 155

추구한다는 것은 목표를 필요로 할 뿐 최종 목적지 자체는 아니야. 164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너의 다름을 사랑하라, 너를 유일한 존재로 만드는 것을 사랑하라.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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