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등대 비룡소의 그림동화 259
소피 블랙올 지음,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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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 꺼지지 않는 연탄불 아궁이는

삶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해준 마음속 등대였다

"여기예요! 여기예요! 여기 내가 있어요!"

등대 내부 모습을 보니 연탄아궁이가 생각났다. 밤새 태엽을 감고 심지를 다듬어주는 등대지기가 매일 밤 연탄불 꺼뜨리지 않으려 밤잠을 설치는 엄마 같았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풍랑 속에서, 안갯속에서, 꽁꽁 얼어붙은 찬 바람 속에서도 등대불은 꺼지지 않는다. 자명종 없이 새벽녘이면 어김없이 일어났던 엄마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았던 엄마의 바지런함 덕분에 한겨울도 거뜬했다.

연탄불 아궁이는 운동화도 바짝 말려주고, 고구마도 맛있게 구워냈다. 연탄아궁이는 등대지기가 아내에게 보낸 유리병 속 편지처럼 켜켜이 쌓인 기억 속 일기장이었다. 등대가 밤하늘을 비출 때 꺼지지 않고 타던 연탄아궁이가 떠올랐다. 등대지기에게 등대는 아내를 기다리고, 아이가 태어났던 기억의 탑이었을 것이다.

전기로 대체된 등대처럼 연탄아궁이는 보일러로 대체되었다. 연탄불 꺼뜨릴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했던 엄마는 그 후에도 한동안 밤에 일어나서 서성였다. 자신의 손길을 주고 싶은 것처럼. 자동주문 기계는 내게 말을 걸어 주지 않는다. 나와 손잡은 아이의 이름을 묻지도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해 주지도 않는다. 요즘에는 연탄불 꺼뜨리지 않으려 동동거렸던 엄마 덕분에 따뜻한 겨울을 지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없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쓸쓸하다.

위에서 바라본 그림의 구도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한 사람의 인생을 신의 망원경을 빌려 슬쩍 바라본 듯하다. 신은 내게 보여준다.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바다를 여행하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불을 밝히는 한 사람의 인생을. 그리고 등대에서 함께 지냈던 가족의 추억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들만의 것이라는걸. 그들은 등대를 바라보며 그 속에서 서로 웃고 울었던 날들을 생각하겠지. 내가 연탄아궁이를 보며 엄마를 떠올리는 것처럼.

 

책을 읽어주는데 아내가 도착하는 장면에서 아이가 손뼉을 쳤다. 함께 있을 때 행복하다는 것을 아이도 아는 것일까. 이제는 연탄불 걱정을 안 해도 되지만 나는 여전히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으려 했던 엄마의 사랑을 추억하며 그리워한다. 그 시절의 행복은 연탄아궁이 속에 남아있으니까. ‘안녕! 안녕! 안녕, 나의 등대야!’ 하는 인사는 시간의 색을 입혀 단단한 추억의 등대가 될 것이다.

파도 모습이 낯이 익는다 생각했는데 일본 우키요에 판화에서 보던 물결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수채화 물감과 먹을 함께 사용해 수채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음영의 맛이 있었다. 잔잔했다가 휘몰아치듯 일렁이는 파도의 다양한 모습이 꿋꿋이 서 있는 등대와 비교되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늘 변화하는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꿋꿋이 서 있는 추억의 힘일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본다. 꺼지지 않는 연탄불처럼 마음에 오래 남을 책이다.

덧붙임.. 그림이 다른 별도의 겉표지가 따로 제작된 매력적인 책이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인식 라벨 작업을 하면서 보관상의 이유로 겉표지를 없애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잔잔한 파도 속 낮의 등대 모습과 휘몰아치는 파도 속 밤의 등대 모습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 준다. 불빛을 비추는 듯 등대 주변에 세운 제목도 글자 이상의 의미를 비춘다. 아이들이 겉표지를 꼭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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