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말이 들리나요? - 숲으로 떠나는 작은 발견 여행 지식은 내 친구 18
페터 볼레벤 지음, 장혜경 옮김 / 논장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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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바깥 활동이 줄어들자 새소리가 조용해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잦아드니 크게 울어 자신의 영역을 주장하지 않아도 된단다. 나무는 어떨까? 소리 낼 수 없는 나무도 말할 수 있을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궁금증인데 <나무의 말이 들리나요?>라고 물으니 생각하게 된다. 줄기차게 나무에 대한 책을 펴내며 나무의 언어 통역자를 자청하는 페터 볼레벤의 어린이를 위한 나무 책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나무는 맛을 느낄 수 있어요. 어떤 동물이 나무껍질이나 잎이나 가지를 베어 물면 그 상처로 동물의 침이 들어가게 되는데 그 침이 동물의 종류에 따라 다 다르거든요. 그래서 나무는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정확히 알아낼 수 있는 거예요. 나무는 상처가 난 자리로 쓴맛이 나거나 독성을 띤 액체를 흘려보내요.

침엽수는 상처가 난 곳으로 송진을 밀어 보내요. 물론 나무는 입이 없으니까 이 말을 향기로 전해요. 그 향기가 주변 나무한테 닿으면 친구들이 알아차리고 딱정벌레의 공격에 대비해 미리 송진을 만들기 시작하지요.

<나무의 말이 들리나요?> 30쪽

 

나무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할 수 있다는 사실도 새로웠지만 무엇보다 일방적인 의사 표현이 아니라는 점에 고무되었다. 잎을 먹는 것을 막을 수 없지만 잎을 먹는 동물의 침으로 존재를 파악하고 쓴맛을 내보내는 것으로 자신의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다. 부드러움 속에 단호함이 느껴졌다. 자신의 위험을 알려 다른 나무들이 대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부분도 따뜻하다. 가만히 서 있는 듯 보여도 제각각의 모습으로 조화롭게 살아간다.

활엽수는 나뭇가지의 마디 하나가 한 살이었다. 바깥쪽으로 시작해서 세어 나가는데 마디가 뚜렷한 너도밤나무가 적당하다고 한다. 나이테로 나무의 나이를 짐작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지만 나뭇가지 마디로 나이를 알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아쉽게도 침엽수의 가지는 겹겹이 자라 확인하기 어렵다고 한다. 아이랑 숲 놀이 갈 때 나무 나이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잘 조성된 공원이 여러 동물을 데려다 둔 동물원과 다름없다는 얘기가 조금 충격이었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을 볼 때 가졌던 측은지심이 왜 나무에게는 생기지 않았을까. 늘 제 자리에 있기에 배경화면처럼 느껴질 뿐 나무의 생활을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책을 읽어보니 공원의 나무들은 다양한 수종이 각각 한 그루씩 심어져 있어 외롭다고 한다. 책을 읽고 공원에 심어진 나무들을 보니 잘 정돈되어 있지만 허전했다.

나무도 제각각 성격이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겨울에 깊은 잠을 위해 조심성이 많은 나무는 10월 초만 되어도 잎을 버리지만, 용감한 나무는 조금 더 기다린단다. 재밌는 사실은 아기 나무들은 겨우내 깨어있다는 사실이었다. 원래 숲에서 자라는 어린 나무는 엄마 나무의 그늘 밑에서 햇볕을 쬐지 못하고 천천하고 튼튼히 자라는데 잎을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엄마가 자는 동안에는 햇빛을 맘껏 받을 수 있단다. 갑자기 첫눈이 내리면 잎을 떨어뜨릴 수 없어 허리가 휠 수 있는데 줄기의 탄력이 좋아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니 읽을수록 사람 육아와 어쩜 이렇게 닮았는지 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잘 관리받은 공원의 나무는 빨리 자라지만 오래 살지 못하는 것 같다.

초등 고학년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버섯의 이중성이었다. 나무의 연락을 도와주는 동시에 나무를 죽게 만들 수도 있다고 하니 컴퓨터랑 똑같다고 했다. 버섯이 인터넷망 사용료로 나무가 만든 당분 1/3을 청구한다는 부분에서는 서로 얼굴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 공짜 없네’라고 말해 웃음을 터트렸다. 버섯이 나무와 당분을 나누며 나무의 소식통 역할을 하면서 나무에 기생하다 결국 나무의 상처에 파고들어 메말라 죽는 부분은 엄숙한 기분이 들었다. 관을 끌어올리려 힘을 내는 여름에는 어떤 얘기를 하는지, 메말라 죽어갈 때에는 어떤 말을 하는지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고 싶다.

코로나 때문에 강제 집콕 생활을 하다 보니 인간이 보호받기 위해 자연을 보호했나 싶을 정도로 자연이 그리웠다. 여름내 내리는 비로 축축하고 상쾌한 나무의 땀 냄새를 맡아본지도 오래된 것 같다. 외국 작가의 책이라 우리나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나 꽃으로 꾸민 책도 보고 싶다. 학교 하굣길에 잠시 공원에 들렀다. 잘 관리되어 있는 공원의 나무들은 아이들이 잎을 먹어볼 수도 없고 쓰다듬어 볼 수도 없어 장식품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아 이내 마음이 쓸쓸해졌다. 우연히 올려다 본 하늘 아래 소나무와 감나무가 나란히 가지를 드리운 모습이 책을 읽고 나니 참 안쓰러웠다. 서로 햇볕을 차지하기 위해 부지런히 가지를 드리운 것 같은데 사람이 다툼을 조장한 느낌이랄까.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아이들과 숲 놀이부터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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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하는 너에게 - 읽었을 뿐인데 인생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김환영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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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와 블로그를 기웃거리며 늘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한다. 유튜브는 내가 검색한 관심 주제에 대한 책을 인공지능이 알아서 선별해 주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실시간 업데이트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렇게 선별된 책을 찾다 보니 한정된 주제에 머무르게 된다. 내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보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책 선택은 늘 고민이다. <뭐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하는 너에게>는 책 제목이 참 근사하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 모두 같은 고민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가볍지만 매일 할 수 있는 단거리 조깅으로 책 읽기의 로드맵을 만들어보자는 책이다. 책 읽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단거리 조깅으로 느껴지지 않을 책들도 보였다. 두 번째 읽었을 때 로드맵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윤곽선은 잡히는 것 같았다.

어린이책 읽기 모임을 하고 있어 1장에 소개된 책들을 유심히 살폈다. 마지막에 소개된 새들의 회의를 제외하고 모두 인상 깊게 읽었던 책들이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마틸다>, 상상으로 분노를 다스리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 내게 가진 게 많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아낌없이 주는 나무>, 무의미한 삶에 희망을 준 <꽃들에게 희망을>. 모두 책장에 소장된 책들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여러 감정들을 다룰 힘이 더 필요하긴 하지만 아이들이 가진 무한한 상상력과 정제되지 않은 마음이 내가 알지 못하는 힘을 끌어모으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새들의 회의>도 꼭 읽어보고 싶다.

2장에서는 사랑을 얘기한다. 부와 성공보다 사랑이 먼저 나온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태어날 때 낳아준 부모를 사랑하고 성장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사랑을 나눈다. 세상의 모든 모순 속에는 공교롭게도 사랑이 있다. 2라는 숫자는 혼자서 만들 수 없는 숫자다. 세상의 모순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포기했는지 알아야 한다는 말과 사랑은 빠지는 게 아니라 하는 것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고백받았을 때 받았던 <사랑의 기술>. 지금 보면 다른 느낌이 들것 같다. 왜 그때는 사랑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셰익스피어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와 성공을 이야기하는 3장에 <갈매기의 꿈>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갈매기 조나단은 정말 아웃사이더일까? 좋아하는 책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늘 들어왔던 책인데 아웃사이더라는 말이 왠지 불편했다. 갈매기 조나단은 완벽성보다 열정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매체들이 그들의 열정을 엿보게 했고 열정이 가치로 환산되어 부와 성공에 가까워진 것 같지만 그들에게는 허상일 뿐이다. 바라보는 곳이 다르니까. 몇 번을 다시 읽어봐도 3장에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든다.

4장은 철학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는 장이다. 버틀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을 보니 요즘 즐겨듣는 정토회 법륜 스님의 행복 이론과 비슷했다. 주요 독자층이 일상적인 불행에 빠져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과 불행의 원인을 없애고 행복의 원인을 수용해 실천하는 점도 닮았다. 생존 경쟁 때문에 불행한 게 아니라 성공을 위해 경쟁하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말이 와닿았다. 하지만 성공을 추구할 때는 평화가 보이지 않으니 깨닫기 전에는 불행을 자초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마지막 장은 일상을 단단하게 만드는 삶의 기술이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되어있지만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아이디어 생산법>에 소개된 내용처럼 다시 새로워지는 비결은 '조합'에 있으며, 조합하는 능력은 관계를 볼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는 말이 이 책의 결론처럼 다가왔다. 5장까지 소개된 책으로 각각의 철학과 삶의 지혜를 창조해보라는 메시지를 담아놓은 것 같았다. 이쯤 되면 여태껏 내가 보고 읽고 느낀 것에 관계와 연결을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된다. 처음에는 뒷부분으로 갈수록 자기 계발서 느낌이라 거부감이 있었는데 덮어뒀다 다시 읽어보니 새로운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연결되는 부분만 가져가면 될 텐데 괜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와의 관계 맺음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내 책장에 남겨 둘 책은 어떤 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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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가슴을 울리는 포크 음악 이야기 1
윤민 지음 / 마름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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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름돌 책이다. 윤민 님 책은 명상 카페에서 처음 보게 되었는데 관심 분야가 비슷해 자주 찾아보게 된다. 어렵게 출판사를 차려 포기하지 않는 점도 자꾸 책을 보게 되는 또 다른 이유인 것 같다. 이번 책은 텀블벅에서 크라우드 펀딩으로 진행된 책이다. 전통 포크 음악 50개를 엮는 방대한 작업을 구상한 점이 특이했다. 무려 503페이지다. 목차에서 관심 있는 노래부터 찾아봐도 좋겠지만 습관처럼 처음부터 읽었다. 생소한 포크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읽는 점이 참신했다. 포크 음악의 가사를 읽어보니 가사 속에 내재된 인생의 깊은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삽화가 있었지만 가사만으로도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 풍부한 감성의 소용돌이 속에 잠시 머물 수 있었다.

An Mhaighdean Mhara... 사랑하는 내 어머니, 바다를 마주하고 강기슭에 서 계신 어머니. 우리 어머니, 알고 보니 아름다운 인어였다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이 노래 때문이었다. 희미한 어머니 모습. 눈으로 뒤덮인 바다로 향하는 길. 어머니의 금발과 입술... 어머니는 아름다운 인어였다. 높게 떠오르는 파도 위, 그곳에서 영원히 헤엄치라고 하는데 눈물이 났다. 이제 나도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서였을까. 아름다운 인어였다는 가사가 가슴속에 작은 파도처럼 밀려와 사무쳤다. 자신이 선녀인 줄 잊지 않고 날개옷을 돌려받고 하늘로 간 선녀가 떠올랐다. 하지만 인어였던 엄마의 모습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다신 볼 수 없을 것만 같다. 선녀와 나무꾼 속 선녀는 아이들을 데려갔는데 인어인 엄마는 홀로 바다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이성복 시인의 '남해 금산'도 생각났다. 돌 속에 묻혀 있던 한 여자를 사랑해 자신도 돌 속에 들어갔는데 해와 달이 끌어주어 여인은 떠나고 남해 금산 푸른 물에 잠기어 있는 나. 선녀였던, 인어였던 여인은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홀로 남아있는 나. 남해 금산 푸른 물은 하늘 같고 바다 같다.

The Great Silkie of Sule Skerry는 애달프다. 바다표범 가죽을 입고 자유자재로 사람이 될 수 있는 셀키인 남자는 한 여인에게 자신이 아이의 아버지라 하며 찾아온다. 하지만 여인은 남자의 청혼을 거절한다. 7년의 세월 뒤에 남자는 다시 찾아오지만 또 여인은 거절한다. 남자는 아들의 목에 목걸이를 걸고 데려가면서 여인이 나중에 작살 총 사수와 결혼해 자신과 아들을 죽일 거라 말한다. 그리고 여인의 남편이 된 작살 총 사수는 바다에서 바다표범 두 마리를 잡아온다. 남자와 금목걸이를 한 자신의 아들이었다. 뒤늦게 소중한 것을 알아챈들 무엇할까. 가슴이 세 조각이 나도록 울어봤자 무슨 소용일까. 왜 진작 청혼을 받아주지 않았을까. 기껏 작살 총 사수와 결혼하려고 청혼을 거절했단 말인가. 셀키였던 엄마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동화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에서 아이는 바다로 돌아간 엄마를 보며 자신도 바다표범이 될 것이라 한다. 포크 음악 속 청혼을 거절한 여인은 바다표범으로 살 수 있었던 자신의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게 된 셈이었다. 인생의 선택은 미래를 알 수 없어 때때로 잔인하다.

 

음악은 이야기에 운율을 더한 것이다. 포크 음악은 옛이야기처럼 예부터 전해내려온 민속음악에 가깝다. 사람들은 왜 이런 노래를 불렀을까. 옛이야기 공부를 하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숨겨진 힘을 느꼈다. 비슷한 주제로 나열된 노래를 보며 비슷한 화소로 만들어진 다양하게 구전된 옛이야기 각편을 생각했다. 가사를 이야기처럼 읽으니 옛이야기와 교집합이 그려졌다. 전해내려온 모든 것에는 고유의 힘이 깃들어 있다. 포크 음악 속에도 그런 힘이 있었다.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숨죽여 놓았던 감정의 불씨를 되살리는 중이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처럼 감정의 물살에 몸을 실을 수 있어 좋았다. 수록된 음악은 마름돌 유튜브 채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장가로 마무리된 구성이 마음에 든다. 영원히 그 바람 속에, 꿈속에 머물고 싶어진다. 1권은 사랑 이야기가 주류였는데 하반기에 출시될 2권에서는 보다 확장된 삶의 얘기를 보고 싶다. 사랑은 인생의 시작일 뿐. 진짜 이야기는 그다음부터 시작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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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너무 많아 김영진 그림책 12
김영진 지음 / 길벗어린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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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보다 그림이 더 익숙하다. 도서관에서 한 번 빌려보고 바로 서점에 가서 사줬던 지원이와 병관이 시리즈 김영진 작가의 그림책이다. 병관이라는 이름이 익숙해 ‘그린이’라는 이름이 처음에는 좀 낯설었다. 자세히 보니 그린이는 귀가 참 크다. 귀만 큰 게 아니고 귓구멍도 아주 깊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것 같다.

그린이는 걱정이 많다. 걱정하는 일을 계속 생각하니 마음은 점점 더 무겁다. 할머니 말씀대로 걱정을 나무에 매달아 버리면 끝날 줄 알았는데 걱정은 금방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친구 준혁이도,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도 모두 큰 귀를 갖고 있다. 어라? 좀 이상한데? 그린이만 귀가 큰 게 아니었네... 아니나 다를까. 걱정을 나무에 매달아 놓는다는 그린이의 사연을 들은 사람들이 나무에 매달아 놓은 걱정 괴물을 보니 누구나 걱정을 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나무에 걸린 걱정 괴물을 보며 둘째 아이가 말했다. “엄마, 괴물이 너무 귀여워~” 뒷장을 보기 전에 아이는 이미 걱정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둘째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후 걱정이 아주 많아졌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위생 보건 교육을 자주 받아 그런 줄 알았는데 본능적으로 엄마를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식품 유통기한을 일일이 찾아보고 카페인이 치매에 안 좋다고 하니 엄마가 매일 마시는 커피도 걱정한다. 그린이 아빠처럼 사소한 것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별것 아닌 걸 걱정하는 자신이 걱정된다는 그린이를 보니 아이맘을 제대로 헤아리고 공감해 주지 못한 것 같다. 사실 매일 걱정하며 살아 걱정 안 하는 방법을 모르니까 어물쩍 넘어간 것이기도 했다.

앞으로 세계는 환경 오염으로 인해 예측 가능하지 못한 질병과 자연재해로 어려움이 많을 거라고 한다. 걱정은 계속 진화하며 무게를 더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 아이들에게 부모는 무엇을 어떻게 해 줘야 할까. 할머니와 통화하며 텃밭의 따뜻한 기운이 그린이에게 전해지는 장면이 참 좋았다. 엄마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꾸 그 장면을 돌아보게 했다. ‘걱정할 만두 하지...’하며 만두를 걱정 괴물 위에 그린 게 처음에는 황당했는데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아 그 말 그대로 중얼거리게 된다.

단순한 위로나 눈속임으로 걱정을 안 할 수 없으니 걱정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 어른이 되어 불안의 근원을 찾아가려면 한참을 더듬어 가야 한다. 아이 때부터 천천히 찾는 연습을 하면 어렵지 않게 걱정과 동고동락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걱정 괴물을 신경 쓰지 않고 달려가는 그린이의 마지막 모습이 용기를 북돋아 준다. 김영진 작가 책에는 초기 스토리보드가 수록되어 있어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데 이번에도 재미있었다. 입학 전후 아이들이 걱정을 떨쳐 버릴 수 있는 방법이 무겁지 않게 진행되어 즐겁게 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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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플 땐 불교심리학
잭 콘필드 지음, 이재석 옮김 / 불광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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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교가 없다. 떨치지 못하는 괴로움에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깨달음과 믿음에 이르지 못했다. 머리가 굵어진 이후에는 심리학에 매달렸다. 신은 믿을 수 없었지만 학자들의 이론은 믿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론은 현실과 달랐다. 과거를 더듬는 시간은 괴로웠다. 과거 속에 힘든 내가 보였지만 선뜻 위로해 줄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통제되지 않는 아이를 보며 응어리진 마음속 괴로움과 불안은 더해 갔다. 우연히 비폭력대화를 배운 후 내 기억이 사실과 다르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두려움만큼 부풀려진 과거는 나약하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강화시켜 자유의지를 결박하고 있었다. 불쌍하고 가련한 소녀 딱지가 떨어지고, 만들어진 무대가 사라지니 등장인물이었던 나도 허상인 것 같았다. 구름이 모여 해를 가리면 괴로움도 어김없이 어둠처럼 모여들었다. 밝은 곳으로, 밝은 곳으로. 어둠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견디고 인내하는 일상이 지나갔다. 행복해지고 싶었다. 법률스님 강의를 들으면서 불교에 관심을 가졌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져야 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두꺼운 책을 보니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이 책은 단숨에 나를 책 속으로 이끌었다. 어릴 때 옥상으로 올라가는 층계참은 내 비밀 아지트였다. 그곳에서 매일 진짜 부모는 따로 있고 분명히 나를 찾으러 올 것이라 상상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잭 콘필드도 그런 상상을 했으며, 그는 그 환상을 '가치 있고 진실한 어떤 것에 속하고 싶은 갈망(p.28)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어떤 기억보다 확실하게 각인된 상상에 의문이 풀리며 현실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가 펼쳐 놓을 세계가 괴로움을 벗어던지고 희망을 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진흙으로 덮인 황금 불상 얘기는 어릴 적 환상을 대체해 줄 완벽한 이미지였다. 그의 이야기는 나를 온통 뒤흔들었다.

그는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가정불화의 상처를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 노력했다. 지나치게 애쓰다 도리어 자기 비하에 빠지는 수순도 똑같았다. 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연민의 마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심리학자가 알려주었고, 늘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와 함께 명상 훈련을 했던 사람들의 실제 경험담이 보여주듯 지식과 말로 꾸민 메마르고 단단한 마음의 민낯이 드러났다. 나는 나를 여전히 속이고 있었다. 나의 비극을 바라볼 용기가 없으니 타인의 비극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긴장과 불안으로 경직된 몸은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했다. 그가 리드하는 대로 괴로움을 덮었던 단단한 진흙 위에 따뜻한 물을 쏟아부었다. 물이 스며들고 단단해진 땅에서 기포가 하나 둘 생기더니 금세 뜨거운 감정이 용암처럼 솟아올랐다. 그의 말처럼 그대로 두었다. 그냥 두었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졌다. 생각처럼 끔찍한 일은 더는 일어나지 않았다. 잔뜩 긴장했던 몸이 이완되면서 머리끝이 살짝 저렸다. 괴로움은 내게서 떨어져 나가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몸이 조금씩 따뜻해졌다.

다음은 의식에 색을 입히는 단계다. 생각에서 물러나 정신적 상태가 일어나는 과정을 깨어있는 마음으로 살핀다.(p.89) 이 과정을 이해한다면 뒷부분을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생각한다. 내가 건강하지 못하다 느끼는 정신적 상태와 건강하다 느끼는 정신적 상태를 각각 세 가지씩 간추렸다. 정신은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다는 것에 주목하자. 건강했을 때 몸의 느낌을 기억하고 습관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바뀌는 생각과 몸의 변화를 살펴보면 고통을 줄일 수 있었다. 건강하지 못한 상태를 자꾸 되새김질하면 생각이 두려움을 강화시킨다. 과거에 자유의지를 결박하고 보호받기를 원했던 것은 최악의 방법이었다. 마음도 날씨처럼 매 순간 바뀌었다. 기상의 흐름을 살피듯 마음도 흐름을 살펴 챙겨야만 한다. 빠르게, 습관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변하는 몸과 정신의 변화를 살펴본다. 생각이 명료해지니 해가 비치지 않아도 서서히 마음이 밝아졌다. 일부러 밝은 곳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잠시였지만 신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내가 해를 비추고 구름을 몰고 와 비를 내리는 신 같았다.

"마음이 만든 깊은 나락을 건너는 것은 가슴이다." 생각하는 마음은 옳고 그름, 선과 악, 자기와 타인이라는 관점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깊은 나락이다. 생각이 오고 가더라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면 생각을 활용할 수 있다. 이때 우리는 가슴에 머문다. 가슴에는 순진무구함이 있다. 우리 모두는 영혼의 아이들이다. 타고난 지혜도 갖고 있다. 우리 자신이 고대에서 내려오는 오래된 지혜이다. 가슴에 머물 때 우리는 숨, 몸과 조화를 이루며 산다. 가슴에 머물 때 우리는 신뢰를 주는 존재, 용기 있는 존재가 된다. 그렇게 우리의 인내심은 커진다.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삶은 늘 주변에서 펼쳐지고 있다. 인도의 성자 카론 싱은 이렇게 말했다. "풀밭의 풀도 시간이 지나면 우유가 된다."p.226

괴로움의 더께가 하루 이틀 쌓인 게 아니듯 하루아침에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의 수련도 책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책 한 권 읽었다고 평생 따라다니던 괴로움을 떨칠 수 있다면 이런 책이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단지 나의 괴로움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다면 타인의 괴로움도 마주하며 공감할 수 있으며, 그곳에서 연민의 마음을 키워갈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을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은 상태다. 세상 모든 만물이 연결되어 있음을 마음으로 깨닫고 선의 파동을 일으키는 보살이 되는 때에 이르려면 많은 수련이 필요할 것이다.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날선 비판과 분석 대신 나를 바라보는 일에 좀 더 시간을 내고 집중해야겠다. 생각에 머물러 있을 때 신비의 순간들은 금방 사라진다. 저자가 쓴 명상에 관한 책을 찾아 구입했다. 지금, 여기 머물러 있는 법은 끊임없이 변하는 내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곳에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 작은 깨달음이 사라지기 전에 실제로 해보는 것. 이젠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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