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말이 들리나요? - 숲으로 떠나는 작은 발견 여행 지식은 내 친구 18
페터 볼레벤 지음, 장혜경 옮김 / 논장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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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바깥 활동이 줄어들자 새소리가 조용해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잦아드니 크게 울어 자신의 영역을 주장하지 않아도 된단다. 나무는 어떨까? 소리 낼 수 없는 나무도 말할 수 있을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궁금증인데 <나무의 말이 들리나요?>라고 물으니 생각하게 된다. 줄기차게 나무에 대한 책을 펴내며 나무의 언어 통역자를 자청하는 페터 볼레벤의 어린이를 위한 나무 책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나무는 맛을 느낄 수 있어요. 어떤 동물이 나무껍질이나 잎이나 가지를 베어 물면 그 상처로 동물의 침이 들어가게 되는데 그 침이 동물의 종류에 따라 다 다르거든요. 그래서 나무는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정확히 알아낼 수 있는 거예요. 나무는 상처가 난 자리로 쓴맛이 나거나 독성을 띤 액체를 흘려보내요.

침엽수는 상처가 난 곳으로 송진을 밀어 보내요. 물론 나무는 입이 없으니까 이 말을 향기로 전해요. 그 향기가 주변 나무한테 닿으면 친구들이 알아차리고 딱정벌레의 공격에 대비해 미리 송진을 만들기 시작하지요.

<나무의 말이 들리나요?> 30쪽

 

나무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할 수 있다는 사실도 새로웠지만 무엇보다 일방적인 의사 표현이 아니라는 점에 고무되었다. 잎을 먹는 것을 막을 수 없지만 잎을 먹는 동물의 침으로 존재를 파악하고 쓴맛을 내보내는 것으로 자신의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다. 부드러움 속에 단호함이 느껴졌다. 자신의 위험을 알려 다른 나무들이 대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부분도 따뜻하다. 가만히 서 있는 듯 보여도 제각각의 모습으로 조화롭게 살아간다.

활엽수는 나뭇가지의 마디 하나가 한 살이었다. 바깥쪽으로 시작해서 세어 나가는데 마디가 뚜렷한 너도밤나무가 적당하다고 한다. 나이테로 나무의 나이를 짐작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지만 나뭇가지 마디로 나이를 알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아쉽게도 침엽수의 가지는 겹겹이 자라 확인하기 어렵다고 한다. 아이랑 숲 놀이 갈 때 나무 나이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잘 조성된 공원이 여러 동물을 데려다 둔 동물원과 다름없다는 얘기가 조금 충격이었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을 볼 때 가졌던 측은지심이 왜 나무에게는 생기지 않았을까. 늘 제 자리에 있기에 배경화면처럼 느껴질 뿐 나무의 생활을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책을 읽어보니 공원의 나무들은 다양한 수종이 각각 한 그루씩 심어져 있어 외롭다고 한다. 책을 읽고 공원에 심어진 나무들을 보니 잘 정돈되어 있지만 허전했다.

나무도 제각각 성격이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겨울에 깊은 잠을 위해 조심성이 많은 나무는 10월 초만 되어도 잎을 버리지만, 용감한 나무는 조금 더 기다린단다. 재밌는 사실은 아기 나무들은 겨우내 깨어있다는 사실이었다. 원래 숲에서 자라는 어린 나무는 엄마 나무의 그늘 밑에서 햇볕을 쬐지 못하고 천천하고 튼튼히 자라는데 잎을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엄마가 자는 동안에는 햇빛을 맘껏 받을 수 있단다. 갑자기 첫눈이 내리면 잎을 떨어뜨릴 수 없어 허리가 휠 수 있는데 줄기의 탄력이 좋아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니 읽을수록 사람 육아와 어쩜 이렇게 닮았는지 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잘 관리받은 공원의 나무는 빨리 자라지만 오래 살지 못하는 것 같다.

초등 고학년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버섯의 이중성이었다. 나무의 연락을 도와주는 동시에 나무를 죽게 만들 수도 있다고 하니 컴퓨터랑 똑같다고 했다. 버섯이 인터넷망 사용료로 나무가 만든 당분 1/3을 청구한다는 부분에서는 서로 얼굴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 공짜 없네’라고 말해 웃음을 터트렸다. 버섯이 나무와 당분을 나누며 나무의 소식통 역할을 하면서 나무에 기생하다 결국 나무의 상처에 파고들어 메말라 죽는 부분은 엄숙한 기분이 들었다. 관을 끌어올리려 힘을 내는 여름에는 어떤 얘기를 하는지, 메말라 죽어갈 때에는 어떤 말을 하는지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고 싶다.

코로나 때문에 강제 집콕 생활을 하다 보니 인간이 보호받기 위해 자연을 보호했나 싶을 정도로 자연이 그리웠다. 여름내 내리는 비로 축축하고 상쾌한 나무의 땀 냄새를 맡아본지도 오래된 것 같다. 외국 작가의 책이라 우리나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나 꽃으로 꾸민 책도 보고 싶다. 학교 하굣길에 잠시 공원에 들렀다. 잘 관리되어 있는 공원의 나무들은 아이들이 잎을 먹어볼 수도 없고 쓰다듬어 볼 수도 없어 장식품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아 이내 마음이 쓸쓸해졌다. 우연히 올려다 본 하늘 아래 소나무와 감나무가 나란히 가지를 드리운 모습이 책을 읽고 나니 참 안쓰러웠다. 서로 햇볕을 차지하기 위해 부지런히 가지를 드리운 것 같은데 사람이 다툼을 조장한 느낌이랄까.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아이들과 숲 놀이부터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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