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가슴을 울리는 포크 음악 이야기 1
윤민 지음 / 마름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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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름돌 책이다. 윤민 님 책은 명상 카페에서 처음 보게 되었는데 관심 분야가 비슷해 자주 찾아보게 된다. 어렵게 출판사를 차려 포기하지 않는 점도 자꾸 책을 보게 되는 또 다른 이유인 것 같다. 이번 책은 텀블벅에서 크라우드 펀딩으로 진행된 책이다. 전통 포크 음악 50개를 엮는 방대한 작업을 구상한 점이 특이했다. 무려 503페이지다. 목차에서 관심 있는 노래부터 찾아봐도 좋겠지만 습관처럼 처음부터 읽었다. 생소한 포크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읽는 점이 참신했다. 포크 음악의 가사를 읽어보니 가사 속에 내재된 인생의 깊은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삽화가 있었지만 가사만으로도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 풍부한 감성의 소용돌이 속에 잠시 머물 수 있었다.

An Mhaighdean Mhara... 사랑하는 내 어머니, 바다를 마주하고 강기슭에 서 계신 어머니. 우리 어머니, 알고 보니 아름다운 인어였다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이 노래 때문이었다. 희미한 어머니 모습. 눈으로 뒤덮인 바다로 향하는 길. 어머니의 금발과 입술... 어머니는 아름다운 인어였다. 높게 떠오르는 파도 위, 그곳에서 영원히 헤엄치라고 하는데 눈물이 났다. 이제 나도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서였을까. 아름다운 인어였다는 가사가 가슴속에 작은 파도처럼 밀려와 사무쳤다. 자신이 선녀인 줄 잊지 않고 날개옷을 돌려받고 하늘로 간 선녀가 떠올랐다. 하지만 인어였던 엄마의 모습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다신 볼 수 없을 것만 같다. 선녀와 나무꾼 속 선녀는 아이들을 데려갔는데 인어인 엄마는 홀로 바다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이성복 시인의 '남해 금산'도 생각났다. 돌 속에 묻혀 있던 한 여자를 사랑해 자신도 돌 속에 들어갔는데 해와 달이 끌어주어 여인은 떠나고 남해 금산 푸른 물에 잠기어 있는 나. 선녀였던, 인어였던 여인은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홀로 남아있는 나. 남해 금산 푸른 물은 하늘 같고 바다 같다.

The Great Silkie of Sule Skerry는 애달프다. 바다표범 가죽을 입고 자유자재로 사람이 될 수 있는 셀키인 남자는 한 여인에게 자신이 아이의 아버지라 하며 찾아온다. 하지만 여인은 남자의 청혼을 거절한다. 7년의 세월 뒤에 남자는 다시 찾아오지만 또 여인은 거절한다. 남자는 아들의 목에 목걸이를 걸고 데려가면서 여인이 나중에 작살 총 사수와 결혼해 자신과 아들을 죽일 거라 말한다. 그리고 여인의 남편이 된 작살 총 사수는 바다에서 바다표범 두 마리를 잡아온다. 남자와 금목걸이를 한 자신의 아들이었다. 뒤늦게 소중한 것을 알아챈들 무엇할까. 가슴이 세 조각이 나도록 울어봤자 무슨 소용일까. 왜 진작 청혼을 받아주지 않았을까. 기껏 작살 총 사수와 결혼하려고 청혼을 거절했단 말인가. 셀키였던 엄마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동화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에서 아이는 바다로 돌아간 엄마를 보며 자신도 바다표범이 될 것이라 한다. 포크 음악 속 청혼을 거절한 여인은 바다표범으로 살 수 있었던 자신의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게 된 셈이었다. 인생의 선택은 미래를 알 수 없어 때때로 잔인하다.

 

음악은 이야기에 운율을 더한 것이다. 포크 음악은 옛이야기처럼 예부터 전해내려온 민속음악에 가깝다. 사람들은 왜 이런 노래를 불렀을까. 옛이야기 공부를 하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숨겨진 힘을 느꼈다. 비슷한 주제로 나열된 노래를 보며 비슷한 화소로 만들어진 다양하게 구전된 옛이야기 각편을 생각했다. 가사를 이야기처럼 읽으니 옛이야기와 교집합이 그려졌다. 전해내려온 모든 것에는 고유의 힘이 깃들어 있다. 포크 음악 속에도 그런 힘이 있었다.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숨죽여 놓았던 감정의 불씨를 되살리는 중이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처럼 감정의 물살에 몸을 실을 수 있어 좋았다. 수록된 음악은 마름돌 유튜브 채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장가로 마무리된 구성이 마음에 든다. 영원히 그 바람 속에, 꿈속에 머물고 싶어진다. 1권은 사랑 이야기가 주류였는데 하반기에 출시될 2권에서는 보다 확장된 삶의 얘기를 보고 싶다. 사랑은 인생의 시작일 뿐. 진짜 이야기는 그다음부터 시작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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