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김소연진아일 동안 황선미 선생님이 들려주는 관계 이야기
황선미 지음, 박진아 그림, 이보연 상담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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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다는 말은 이렇게 난처하고 한심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꼼짝도 못 하게. 생각도 없는 애처럼 보이게. 25

 

착한 사람 콤플렉스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내면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심리적 장애를 뜻한다. 책 속 진아는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이 소연이라는 친구의 도우미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 전까지 그저 착한 아이였다. 그런데 하고 싶지 않았는데 거절하지 못한 도우미 역할은 진아의 마음을 점점 옭아매고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도 끝까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진아. <내가 김소연진아일 동안>은 선생님의 말을 지키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진아의 내면을 통해 '착한 아이'라는 꼬리표가 아이의 마음에 얼마나 큰 생채기를 내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황선미 작가는 이미 <나쁜 어린이표>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의 내면의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책의 머리말에는 아이들의 외롭고 억울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오롯이 어른의 몫이라 했다. <내가 김소연진아일 동안>에서도 속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내면을 알아봐 줘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은 계속된다. 진아가 억눌린 감정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곁에서 진아를 자세히 바라봐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아는 최대한 조용히 내 할 일만 하는 소심한 학생이다. 열 살 전에 엄마를 여의고 새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속으로 엄마를 그리워한다. 장난꾸러기 정우가 수돗가에서 장난치는 바람에 웃옷이 젖었을 때, 아무 말없이 수건으로 몸을 가려주었던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을 잊지 못해 진아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선생님께 칭찬받기 위해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아이이기도 하다.

진아 반에는 다른 아이들과 약간 다른 소연이라는 친구가 있다. 선생님은 진아에게 소연이를 도와줄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진아는 소연이 '도우미'가 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좋아하는 선생님의 말을 끝내 거절하지 못한다. 소연이의 도우미가 되는 일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잊어버린 준비물을 대신 챙겨주고, 같이 등교하고, 웬만하면 숙제도 같이해야 한다. 스물여덟 명의 친구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도우미'가 된 진아에게 반 아이들은 소연이와 관련된 모든 일을 떠넘긴다. "너 김소연 도우미잖아. 그러니까 네가 해."

그래도 진아가 묵묵히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수건으로 몸을 가려주었던 따뜻한 선생님이 자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훈이가 단지 소연이와 함께 오카리나 연주를 하기 싫다고 했을 때 선생님은 자신이 얼마나 연습했는지, 얼마나 잘하고 싶어 하는지 묻지 않고 소연이와 함께 연주하도록 한다. 그래서 진아는 싫다는 말 대신 가장 소극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이른다. 소연이와 함께 하는 오카리나 연주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를 악물고 부들거리는 모습은 진아의 내면 모습이었다.

내가 이러는 건 나 때문이다. 순전히 나 때문에. 이렇게라도 심통을 부려야 속이 풀리는 것 같아서. 아무도 반응하지 않으니 벽에 대고 분풀이하는 셈이지만 52

소연이 도우미를 하는 일은 그 무게만큼, 선생님을 실망시키기 싫은 만큼 진아는 점점 삐딱하게 변해 갔다. 그러나 곪았던 상처는 터지기 마련이다. 진아의 억눌린 감정은 결국 도우미를 거절했던 하나가 도우미가 해야 할 일을 운운하자 폭발한다. "싫으니까 거절해 놓고, 말까지 그렇게 하니? 이럴 자격도 없어. 너." 그렇지만 여전히 진아는 거기서 한 발자국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고 말로 쏟아내는 대신 그런 자신의 감정을 모두 비밀일기장에 기록해 둔다. 그런데 비밀일기장을 새엄마가 보게 된 사실을 알게 되고 무척 화가 난다. 착한 진아는 새엄마에도 투정을 부리거나 화를 내 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긴장하고 억눌린 감정을 집에서도 풀지 못하고 다시 억눌러야 하는. 진아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한폭탄이 되어간다.

그렇게 모든 감정을 마음에 담아두고서도 고작 소연이네 마당에 있는 꽃을 꺾는 것으로 자신의 분노를 소심하게 표현한다. 입으로 해소되지 못한 감정은 손으로 가서 소연이를 꼬집고 괴롭히기도 한다. 이게 최선이라고 변명하면서. 그저 누군가 점점 변해가는 자신을 붙잡아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책을 읽는 내내 진아 곁에 있는 엄마, 선생님, 다른 친구들이 진아 마음을 좀 알아줬으면 했다. 과학실에서 유리가 깨졌을 때 소연이를 위해 달려가는 진아는 여전히 착한 아이였으니까. 원래 진아가 가졌던 아름다운 마음씨까지 잃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아이들도 선생님의 말 앞에서는 쉽게 자신의 감점을 드러내지 못한다. 3학년 부회장을 맡았던 내내 부회장이라는 역할보다 큰 책임으로 힘겨워했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릴 적 나는 참는 게 익숙했기에 아이가 불평할 때마다 선생님을 바꿀 수는 없으니 네가 참아라고 얘기했다. 열심히 자신의 감정을 얘기하는 아이에게 역설적이게도 네 감정을 숨기는데 최선을 다하는 '착한 아이'가 되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 눈 밖에 날까 진아 엄마처럼 학교에 찾아가 아이의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해결하지 못한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그렇게 대를 이어 연명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참 편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면서 아이들을 멋대로 판단해도 되니까. 소연이를 부탁할 때 담임 선생님도 내 어깨에 손을 댔다. 착하다면서. 36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기 능력을 넘어서는 애를 쓰고 있다면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언제든지 발병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최근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나답게 살기 위한 책들이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자리매김하는 것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감정의 노예처럼 끌려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하는 엄마가 없었다면, 장난꾸러기이지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정우가 없었다면 진아는 여전히 홀로 모든 시간을 견디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아의 상황을 선생님께 편지로 전달해 준 정우의 용기에 박수와 갈채를. 오늘도 현명한 아이들에게 한 수 배운다.

 
일부러 세게 눌러야 다친 데가 확인될 만큼 살짝 베인 거였다. 상처는 그랬다. 그런데 왜 계속 아픈 기분일까. 아픈 데를 말하라고 하면 어디를 짚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몸뚱이 여기저기가 멍든 것처럼 아프다. 그냥 아프다. 꼭 꾀병처럼.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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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식당 (청소년판) 특서 청소년문학 4
박현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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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일주일 뒤에 내가 죽는다고 알려준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냥 어제와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며 시간을 죽이고 있을 것 같다. 일주일이란 시간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그다지 '긴' 시간이 아닐 테니까. 어제처럼, 지금처럼, 늘 하던 대로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테지. '구미호 식당(박현숙 글, 특별한 서재 펴냄)'은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된 도영이와 아저씨가 불사신을 꿈꾸는 서호라는 여우에게 '뜨거운 피 한 모금'을 준다고 약속하고 유예한 죽음 후 49일간의 이야기다.

49라는 숫자를 보자마자 불교에서 지내는 49재 제사가 떠올랐다. 49재는 사람이 죽은 뒤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의례로 죽은 이가 불법을 깨닫고 다음 세상에서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비는 제례의식이다. 그래서 여우가 준 49일의 시간은 그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더해 주거나,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생태계가 순환하듯 모든 죽음은 끝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떤 이에게는 그 시간이 필요치 않고, 또 어떤 이에게는 절실히 필요하다. 죽음보다 못한 삶이라 생각하며 살았던 도영이가 전자라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집착을 끊을 수 없었던 이민석이라는 아저씨는 후자였다.

나중에 천천히 얘기하자. 우리에겐 '사십일이 넘는' 시간이 있으니까.

아저씨의 흥정으로 죽음 뒤에 다시 사는 49일 동안의 모습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곳에는 차고 넘치는 음식과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단, 바깥에 나가면 죽을 만큼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는 주의사항이 있었다. 이미 한 번 죽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이래야 별것 아니겠지 하고 바깥에 나갔던 아저씨는 발가락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고 돌아온다. 잘 알지 못한 채 같은 공간에서 49일의 삶을 허락받은 두 사람은 잠깐잠깐 서로의 삶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닫아 버린다. 서로 모르는 이들에게 다시 주어진 사십여 일의 시간은 절실함이 사라진 '긴'시간이었다.

전직 셰프였던 아저씨는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죽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딱히 할 일이 없던 도영이는 아저씨를 돕기로 한다. 바깥출입을 할 수 없는 아저씨는 찾고 싶은 사람이 제 발로 걸어올 묘안을 생각해 냈는데, 그것은 아저씨가 찾는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음식을 만들어 직접 오게 만드는 것이었다. 때마침 여우가 데려다준 공간에는 식당 일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재료가 있었고, 우연의 일치인지 그들이 함께 지내야 할 곳의 이름은 <구미호 식당>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전설에서 여우는 500년을 수행할 때마다 꼬리가 둘로 갈라지며 꼬리가 아홉 개가 되면 불사의 존재가 된다고 했다. 어쩌면 <구미호 식당>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잠시 죽음을 유예한 그들의 삶을 되살려 불사의 존재로 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저씨는 손님들에게 '크림 말랑'이라는 음식에 대해 소문을 내달라 부탁한다. 그러나 요즘 같은 인터넷이 발달된 세상에 입소문으로 사람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점점 일이 신통치 않게 돌아가자 식당에서 일할 알바를 구했는데 공교롭게도 도영이의 형이었다. 얼굴이 바뀐 도영이를 형은 알아보지 못한다. 잘못한 일을 모두 도영이에게 뒤집어 씌우고, 쓸데없는 데 돈을 낭비하는 형은 도영이의 기억 속에 최악으로 남아있었다. 도영이는 자신을 미워하는 할머니와 형을 보지 않아 좋았는데 죽음을 유예한 기간 동안 다시 형의 모습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기가 막혔다.

벌써 이십일이 지났네. 아, 사십구일은 긴 시간이 아니었어. 무슨 수를 써야겠어. 이러다 남은 날들을 장사나 하면서 그저 흘려보내면 큰일이야.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는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영원한 줄 알았어. 그런데 새털처럼 가볍게 휙휙 날아가는구나.

 

 

책은 끝까지 사랑에 연연하는 아저씨의 모습과 삶에 어떤 의미나 가치를 갖지 못했던 도영이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며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 삶은 어떠냐고 자꾸 말을 걸어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살아온 내 삶을 되돌이켜 생각해 봤다. 어떤 것도 좋다, 나쁘다 할 수 없이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때는 씁쓸했고, 어느 때는 달큼했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부질없는 사랑의 저울질이나 키재기는 인생의 다양한 맛을 느끼게 해주었고, 그 맛을 느끼는 매 순간에는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다양한 맛을 느끼게 해준 '우리'는 서로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도영이는 자신을 눈곱만큼도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할머니가 자신의 죽음 후 쓰러져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자 이상하기만 했다. 한 번도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 '나 같은 것은 없어도 그만이겠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게 서호가 나타나 49일의 시간을 준다고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꼭 대면해야 할 누군가의 얼굴이 얼핏 스쳤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만나게 되겠지. 얘기할 수 있게 되겠지 하고 미루고 미뤘던 일을 그때가 되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한 번 지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지만 아직 내게는 다시 되돌리고 싶은 시간 따위는 없다. 나도 도영이처럼 사람들을 오해하고 있는 것일까. 천일동안 살아 있는 사람의 뜨거운 피를 먹으면 영원히 불사의 존재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여우. '뜨거운 피' 그것은 실제 인간의 몸에 흐르는 피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뜨겁게 사랑했던 시간이었다. 그 기억만으로도 인간은 죽어서도 죽지 않는 불사의 몸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미 죽었는데 죽을 것 같은 고통은 다시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다. 자신의 마지막 요리를 사랑하는 그녀가 먹는 모습을 보았을 때,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그들의 기억 속에 내 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죽을 것 같은 고통, 즉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삶의 욕구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구미호 식당에서 보냈던 49일의 시간은 도영이와 아저씨의 삶을 온기로 충만하게 만들어주었던 시간이었다. 책 속에는 영화 대사로 여러 프로그램에서 패러디 되었던 "뭣이 중한 디"에 버금가는 대사가 등장한다. "그게 뭐라고" 내게 죽음 전 일주일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가족들에게 남은 시간 동안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 내 삶은 너희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그게 뭐라고' 여태 말해 주지 않았는지. <구미호 식당>은 청소년문학이라 한정하기에는 아쉬운 책이다. 점점 죽음의 문 앞에 다가서는 어른들이 읽어야 할 소설이 아닐까. "불사의 존재로 살 수 있는 삶의 진수가 담긴 <구미호 식당>, 서점에서 절찬리 판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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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 - 2018 칼데콧 대상 수상작 비룡소의 그림동화 254
매튜 코델 지음 / 비룡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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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세요? 이 책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제목만 봐서는 용감함 한 소녀의 이야기 같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동물과 사람 모두 지구를 빌려 쓰고 있는 여행자일 뿐입니다. 하지만 외투의 색깔처럼 아빠의 안전을 위한 노력과 엄마의 따스한 사랑 속에 연민이 생겨날 수 있었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늑대도 제 무리에서 그렇게 자라납니다. 다시 책의 맨 앞으로 돌아가 개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개는 늑대와 유전적으로 가족이라 할 수 있으면서 인간 사회에 적응한 동물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아마도 그런 세상이 아닐까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는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랑, 연민의 마음을 지키는 소녀의 용기를 배울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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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로그 - 2018년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우희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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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Blog,
Love log,
Novel log.

네가 만나는 건 내가 아닌 나야. 네가 원하는 게 사랑이 아닌 사랑인 것처럼 사랑은 서로 아는 게 많아서가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성립해.
사람을 알면 사랑을 하지 않을 테니.

모든 것은 주인공의 원고가 만들어낸 이야기였다. 주인공은 지난 일 년 동안 상품성과 유리되고 작품성마저 결여된 글 무덤을 만든 장본인으로 <더 위트>라는 코미디 월간지의 작가다. 경쟁사에 떠밀려 갈수록 어려워지는 회사 형편에 편집장은 10주년 특집호에 글이 실리지 않으면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작가 수명을 지속할 수 있을지 재계약을 앞둔 7일 전. 주인공은 자신의 모든 희망을 공들여 쓴 원고에 걸지만, 원고는 사라진다. 현실과 꿈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자신의 원고를 찾아가는 7일이 여정, 혹은 잠깐의 꿈이 이 책의 이야기다.  

 

속았다. 띠지에 기록된 웃기지 못하는 코미디 작가와 커플이 되지 못하는 커플매니저의 사랑 이야기는 도대체 언제쯤 나오는 것인지. 세상에서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하는 건 내 눈이었음을 소설은 끊임없이 증명한다. 이미 뇌리에 각인된 커플매니저와의 사랑 얘기가 될 실마리를 습관적으로 찾아 헤매었지만 중반을 넘어서도 스토리를 알 수 없는 막막함이 엄습한다. 목적지도, 바로 앞의 상대방도, 내 모습도 그릴 수 없는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더 위트>지에 소속 작가인 주인공의 말장난은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다. B급 코미디와 아재 개그를 연상시킨다는 얘기는 불편했다. 대체 A급과 B급의 기준이 무엇인가. 드립 커피를 마시는 사람만 제대로 된 드립을 할 줄 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문장의 걸림 아닌 결림을 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말장난은 전염성이 대단하다) 작위적인 우연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지점을 끊임없이 부유하며 그와 그녀의 이야기를 찾아 헤매었다. 언어의 마술로 기존 질서는 무너지고 새롭게 재편된 세계에서 꿈과 현실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식상한 것이 상식이라면 신선한 것은 무엇일까. 그의 개인기는 독보적이었다. 

 

그럼 도대체 어디에서 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까요?
눈을 감고, 눈을 한번 떠봐.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번 찾아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시간 간격의 측정은 그 측정을 행하는 기준틀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어떤 기준틀에서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 이 기준틀에 대해 움직이는 다른 기준틀에서는 동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원고는 '왜' 행방이 묘연해진 것일까. 이야기가 사라지면 주인공도 사라진다. 독자들이 읽지 않으면 종이 뭉치가 되듯,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는 현실 속 끝맺음을 위해서라도 원고를 꼭 찾아야만 했다. 현실의 무게를 더 이상 버텨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와 그녀의 중첩된 궤도는 어느 지점이었을까. 그의 꿈처럼, 그녀의 블로그처럼 그 지점은 한없이 불투명한 안갯속이다. 그의 사랑 찾기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사랑은 단순한 욕망의 실현을 넘어 어떤 운명적 가치로 그럴듯하게 설명이 되어야만 해. 달에만 존재하는 신념 같은 거지. 사랑을 하는 건지. 사랑한다고 믿는 건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여기에는 없어. 이곳에는 가져갈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어. 돈과 소유에만 괘념하는 개념 없는 사람도 없지.

쉽게 넘어가지 않는 문장과 문장 사이, 주인공이 찾고 싶었던 원고와 아직 끝맺지 못한 원고 사이에서 찾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운명 같은 사랑 이야기였을 것이다. 우연을 가장했다고 해도 운명이라 믿고 싶은. 그러나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교집합은 언제나 누군가 손을 내밀 때 완성된다. 그 누군가는 그일까, 그녀일까. 말장난 같은 어희(語戱)에 얼굴 표정만으로 무대를 장악했던 심형래의 개그를 떠올렸지만,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는 찰리 채플린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소설. "이 소설이 당신의 Novel log가 되겠군요.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당신이 개척한 코미디 문학 장르의 애독자가 되겠어요.” 끝.
   

코미디는 도태되지 않는 태도야. 웃길 때만 웃는 것이 아니라, 슬프거나 힘들 때도 웃음을 잃지 않겠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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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그림을 이해하는 법 - 교사와 부모를 위한
르네 발디 지음, 강현주 옮김, 끌로드 퐁티 서문 / 머스트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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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떻게 완전한 이목구비를 갖춘 사람을 그리게 되는 것일까. 아이들의 그림이 발달되는 과정은 비선형적 사고를 선형적 사고로 이끌어내는 마법 같은 과정이다. 머릿속에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르네 발디는 '사람 그림'을 찾아 연구하는 탐험가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그림이 어떻게 성장하고 발달하는지 연구한다. <아이의 그림을 이해하는 법>은 아이의 그림이 어떤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되짚어 보며 아이마다 각자의 속도로 자라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언어 적령기를 놓치면 말을 못하게 되는 늑대 소년의 일화처럼 그림 역시 주변 환경에 따라 발달할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함께 알려준다.

첫째 아이는 미술에 재능이 있었다. 5살 때 이미 옆모습을 그리기 시작했고 보이지 않는 책상다리를 그릴 정도로 관찰력이 뛰어났다. 첫째 아이 그림을 보다가 둘째 아이의 그림을 보니 그림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는 듯 느껴졌다. 다리가 없는 두족인에서 졸라맨으로 이어지는 그림은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두족인을 시작으로 점차 사람다운 모습을 만들어간다고 한다. 둘째 아이도 5살을 기점으로 두족인에서 벗어나 몸통이 있는 사람을 그리고 있다. 아이의 그림이 이상하다고 해서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부모의 독려는 무척 중요하게 작용했다. 아이들은 자유로운 사고 과정이 표상화되는 과정 속에서 나름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목과 몸통이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목의 존재를 인식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렇지만 목걸이랑 세트로 등장한 귀걸이 덕분에 귀의 존재가 드러나게 되었다는 점은 기대하지 못했던 놀라운 발전이었다. 이 밖에도 책 속에는 부모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다양한 질문과 조언이 가득하다. 이제 부모는 아이의 그림을 보며 어떤 부분에 집중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미술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들이라면 선생님께 부족한 부분을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미술심리지도사처럼 아이들의 그림 속에 내포되어 있는 감정과 상처가 알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오히려 이 책을 통해 아이들 그림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자라고 있다. 서로 어울리며 모방을 통해 자신의 속도에 가속도를 내기도 하고, 한동안 같은 그림만 그리는 침체기에 들어설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은 아이의 그림은 늘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엄마는 아이의 부족한 부분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조금씩 변하는 그림이 아이가 심리적으로 안정된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말이 많은 위로를 주었다. 첫째 아이처럼 둘째 아이도 그림 파일을 만들어주어야겠다. 책에 나온 두족인 졸라맨의 모습을 보니 그때 그림들도 모아 놓았으면 좋은 자료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부터 할 일은 아이의 그림을 잘 모아 관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꾸로 된 그림을 그려본다던지, 역동적인 사진을 그려보는 활동을 통해 아이의 시점을 조절해주고 융통성을 길러 주어야겠다.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는 참 놀랍고 신기하다. 불안을 내려놓으니 아이의 그림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이 머릿속 생각을 맘껏 세상에 꺼내놓게 될 그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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