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강민호 지음 / 턴어라운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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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것은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모두 특별하다는 말은 아무도 특별하지 않다는 말과 같다"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자신이 남들과 다른 특별함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특별함'이란 더 이상 특별함이 될 수 없는, 그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똑같은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모두를 위한 선택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결정의 순간에 더 많은 사람에게 선택받기 위해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이 책의 첫 번째 깨달음은 자신만의 특별함이 무엇인지 되돌이켜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나와 타인을 구별하는 기준은 특별함 외에 지속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두 번째 깨달음은 인간은 끊임없이 인간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기계로 측정할 수 있는 수많은 데이터의 정보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마지노선은 '인간성'이었다. 얼굴 근육의 미세한 변화나 목소리만으로도 감지할 수 있는 인간의 동물적 본능은 내게 득이 될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할 때 지식이 아닌 인간성에 기대어 결정한다.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철학은 거시적으로는 한 나라의 이념과 정책을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미시적으로는 기업의 주력 상품의 결정, 더 세분화하면 가정 경영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가치와 철학은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제외하고 포기할 것인지 결정하면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거래보다 관계, 유행보다 기본, 현상보다 본질이라는 기본을 강조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가장 마음에 와닿은 마지막 깨달음은 책 속 한 문장을 그대로 가져와 써 본다. " 누군가를 사랑할 때, 단 한 번이라도 사랑하는 대상의 단점이 비교적 적다는 이유로 사랑해보신 적이 있나요? 단점이 상대적으로 적은, 덜 나쁜 상품으로 서비스로 고객을 사랑에 빠지게 만들 수 있을까요? 지금 가지고 있는 강점과 기회에 집중하세요.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문제가 아니라 기회, 단점이 아니라 강점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던 문장이었다. 잠시 남편과 결혼에 이르게 했던 순간을 기억해 보았다. 수많은 단점 중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던 강점 때문에 그를 선택했었다. 그의 강점은 수많은 단점들보다 단연 돋보였다. 강점은 선택을 쉽게 한다.그리고  놀랍게도 인생의 큰 결정은 늘 강점에 집중하며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세계는 지금도 쉬지 않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 앞에 자신이 다른 것을 포기하면서 지켜야 할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이 책이 남겨준 숙제다. 수요가 공급에 미치지 못하는 지금, 무엇을 선택할 때 우리는 내 안에 없는 무엇인가를 선택한 것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욕망하는가. 그 질문의 답이 숙제를 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내가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내가 지키고 싶은 (  )을 위해 결정하고 선택한다.  마케팅 책이라기 보다 인문학 책에 가깝다는 평가는 과언이 아니었다. 책을 읽는 독자들도 빈칸을 꼭 채워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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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 Studioplus
존 클라센 그림, 맥 버넷 글, 서남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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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떻게 됐을까요.
네모는 세모를
어떻게 골탕 먹였을 것 같나요?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보면 볼수록
네모가 처한 상황이 재밌어요.
아이들은
세모처럼 '깨득깨득' 웃네요.
서로 장난치는 모습이 재밌다고 말이죠.

 

어머~!!
처음 봤을 땐 몰랐었는데
오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살펴보니
얘네들 팔이 있었네요!!!
서로 다른 방향에
솟아오른 팔처럼
다른 모양인 서로를 바라보며
우정도 자라날 것 같아요.
연둣빛 면지는
왠지 이제 갓 피어난 새싹 같은 느낌이에요.

세모를 읽고 <개구리와 두꺼비는 친구>에서
'개구리'가 떠올랐어요.
개구리는 늘 두꺼비에게 뭔가 제안을 하죠.
놀고 싶어 겨울잠을 깨우기도 하면서요.
그래도 두꺼비는 개구리를
싫어하지 않고 잘 받아줍니다.
서로 좋아하는 것이 다른 데도
늘 함께 있지요.

세모가 총총걸음으로 네모에게 장난을 치러 갈 때는
개구리의 힘찬 발걸음이 떠올랐어요.
오늘은 두꺼비와 무엇을 하고 놀까하는,
그야말로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는 기분이죠.
원문에는 총총걸음이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궁금하네요.
무엇인가 일이 생겨야 움직이는 네모의 발걸음은
우다다다... 도망치는 건지, 쫓아가는 건지.
뭔가 안절부절하고 긴박한 기분.

유투브 영상을 살펴보면 앞으로 나올 책들을 살짝 볼 수 있어요.
네모는 역시 눈치가 꽝이네요.
세 번째 책에 등장할 동그라미도 살짝 보여요.
얘는 다리가 없고 둥둥 떠다니는군요!!
네모와 동그라미 이야기도 궁금해서
아마 다른 시리즈도 모을 것 같아요.
다른 존 클라센 책처럼요.
책을 읽는 시간에 나도 모르게
아이가 되어버리는 마법 같은 그림책.

모양 친구들 3부작 첫 번째 책!
<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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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잡지 -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
진경환 지음 / 소소의책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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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득공은 조선 후기 북학파 계열의 실학자로, 경도잡지는 그가 기록한 조선의 세시풍속 책이다. 상권에는 의복·음식·주택·시화 등 풍속을 19항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하권에서는 서울 지방의 세시를 19항으로 분류하여 기록했다. 저자는 현재 한국 전통문화대학교 교양기초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경도잡지를 강독하며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많이 보게 되어 이 책을 기획했다고 했다. 2003년부터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으나 그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그중 풍속 편을 중심으로 엮어 <조선의 잡지>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잡지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모습은 가판대에 진열된 종이책이었다.  <조선의 잡지>라는 제목 때문에 책을 선택한 사람도 적지 않을 듯하다. 만화에서 나올법한 '조선 월간지'를 기대했다면 실망했을 수도 있지만, 조선시대 음악과 춤, 음식, 의복의 유행을 알려준다는 의미로는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한국사에 18~19세기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사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은 때였다. 신분제가 변화하고 개인의 행복이 중요하게 생각되면서 변화하는 세상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계층은 아무래도 여유가 있었던 양반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이라는 부제는 그 시절에 유행을 선도했던 '셀러브리티'들의 일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유득공이 핵심만 기술한 내용을 저자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덧붙이고 이야깃거리를 보충해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눈여겨볼 특징은 <경도잡지>의 원전 내용을 그대로 읽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역사 토론하듯 원전 글을 함께 읽고 새로운 사실을 찾고 싶은 저자의 소망이 담겼다고 생각한다.  천 원짜리 지폐에 등장하는 퇴계 이황이 쓴 복건은 역사적 고증과는 다르다는 의견처럼 사람들에게 흔히 알려진 것과 다른 내용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도 함께 담았다고 했다. 그러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읽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책이었다. 수년 동안 수집한 풍부한 도감과  관련 자료를 보는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가독력을 떨어뜨리는 한자 병기가 익숙하지 않았지만, 뜻을 전달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 생각했다.   

책을 읽고 알게 된 바로잡고 싶었던 부분 중에 일상적으로 쓰면서도 알지 못했던 결혼과 혼인의 차이는 조금 충격이었다. '혼인'에는 신랑은 장가들고, 신부는 시집 간다는 의미가 들어있지만, 결혼에는 그저 신랑이 장가 간다는 표현만 들어있다고 한다. 왜 혼인이라는 말보다 결혼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는지는 나와있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이제부터라도 구별해 쓰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릴 때 할아버지 앞에서 회초리를 맞아 가며 배웠던 천자문은 문장 구성이 시적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법을 구사하고 있어 단순한 한자 학습을 위한 교재 정도가 아니라는 점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신참자를 골탕 먹이는 신고식의 유래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고려 말, 실력으로 정당하게 합격하지 않고 소위 '빽'으로 합격한 귀족 자제들의 버르장머리를 잡는 데서 시작되었는데,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신고식의 시작은 좋았으나 요즘에는 새내기 대학생들이 신고식을 치르다 죽음에 이르렀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것이 현대에는 그 뜻이 오용되고 있는 점이 아쉽다.

 
남들보다 더 고급스럽고 특별한 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꺼려 해 소박한 척 꾸미려 단순하고 초라해 보이지만 실은 값비싼 물건들을 선호했다고 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을 중하게 여겼던 풍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 모양이다. 시대만 달라졌을 뿐 그대로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허세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었다. 말을 끄는 견마 잡이들도 덩달아 허세를 부렸다. 더 좋은 고삐를 가지려 한 나머지 매끈한 가죽으로 고삐를 만들어 거들먹거렸는데 ‘거덜 났다’라는 말이 여기서 생겨났다고 한다. 늘 쓰고 있는 말이었는데 어원을 알게 되니 더욱 재미있었다.  
 
근대화의 바람을 타고 등장한 개인화 현상은 각종 마니아를 양상 했다고 한다. 화훼 재배와 정원 경영은 지금도 골수 마니아가 있는 편이라 이해했는데, 비둘기를 위해  여덟 칸짜리 '용대장'을 지었다는 얘기는 정말 놀라웠다. 먹을 수 있는 달걀 하나 낳지 못하는 비둘기에 대한 비판으로 유행은 금세 사그라들었지만, 지금 거리에서 쓰레기를 주워 먹는 비둘기의 삶을 보니 인생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시대에 태어나는지는 동물도 예외가 없는 모양이다.  
 
책은 이처럼 조선 후기 양반들의 취향을 엿보며 사람 사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별반 다를 것 없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있고, 사라진 것이 있다. 그것은 좋고 나쁨, 옳고 그름에 따라 취하고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누리는 모든 것에는 욕망이 깃들어 있다.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욕망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나날이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계층 간의 갈등과 각자가 누리는 삶의 격차는 옛날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양반들이 누리는 호사를 곁눈질이라도 하며 꿈꿔 보기라도 했을 텐데, 이제는 갈수록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라 생각하니 책을 다 읽은 뒤에도 뒷맛은 왠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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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함이라는 무기 - 자극에 둔감해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롤프 젤린 지음, 유영미 옮김 / 나무생각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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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각형의 한 꼭짓점이 뾰족하게 솟아오른, 어딘가 모난 구석 같기도 하고 떨어지는 눈물 같기도 한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뭉툭한 곳을 그러쥐면 뾰족한 곳이 돌쩌귀 같아 무기 같다. 원래 모양과 다르게 뾰족하고 길게 뻗은 안테나 같은 꼭짓점, 이것은 예민함이다. 독일 최고의 관계 심리학자인 롤프 젤린은 자신이 예민하다는 것을 깨닫고, 예민한 기질을 다루기 위한 방법을 연구해 예민한 사람들이 삶을 충분히 누리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이 책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예민함이라는 무기>에는 예민한 사람들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 예민하다고 하면 떠올리는 불편함을 예리함이나 기민함으로 바꿔 줄 롤프 젤린의 노하우가 가득 담겨있다.

 

스스로를 제때에 지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하고, 삶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다. 그러면 외부 세계와 접촉할 때마다 에너지를 잃게 되고, 자기 색깔을 내고 선을 긋는 데 문제가 생긴다. 반면 의식적으로 지각하고, 중심을 잡고, 자기 정체성과 경계를 분명히 항 수 있는 사람은 에너지가 충만하다. 18

 


1장과 2장에서는 자신과 아이의 예민 지수를 진단해 볼 수 있다. 전혀 기질이 다른 두 아이는 각자 다른 형태로 예민함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3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예민함을 지각하고 적당한 방어막을 만드는 법이 나온다. 적당한 방어막은 의식적으로 지각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스스로 지각할 때 어떤 과정을 겪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주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지각을 억누른다. 그래서 바깥 세계로 향한 지각을 내부로 향하게 하면서도 완전히 무시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무의식적으로 자극들을 강화시키는 경우가 많으니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정신적 성숙을 갖춰 자신의 지각이 내부로 흐르도록 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타인보다 자신의 신체 느낌, 자신의 동작, 자신의 에너지 수준 등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둘째, 자신을 보호하는 보호막, 경계를 짓는 것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스스로 지나친 부담을 주거나, 지나치게 주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고 몸에 이상이 나타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을 인식한다. 예민한 사람의 경계는 지식으로 구분 짓지 않고 신체의 반응에 주의를 기울여 정한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왠지 모르게 명치끝이 꽉 막힌 듯한 답답하고 불편한 느낌.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한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나의 한계였던 것이다. 예민한 사람일수록 지속적으로 몸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머리는 자꾸 당위성을 이야기하거나,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는다. 지금까지도 잘해왔지 않냐고 다그치거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만든다. 이런 식의 생각은 우리의 경계를 무시하는 사고방식이다. 138

 

왜 나는 공감을 잘 해주다가 갑자기 화가 날까?  아이의 행동에 벌컥 화를 내고 나서 잠든 아이들 보며 속죄의 눈물을 흘리던 때가 있었다. 내가 예민한 엄마인지 내 경계는 어느 지점인지조차 몰랐던 시절, 인내심은 금세 바닥나고 긴장과 분노가 폭발했다. 거울에 비친 잔뜩 찌푸린 얼굴은 내가 알던 내 모습이 아니었다. 후회하고 아이에게 더 잘해주려 노력했지만 늘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아이들은 쉽게 경계를 넘나든다. 아이라서 무조건 허용하고 수용하다 보니 나도 아이도 서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자존감은 떨어지고 내 감정에 확신을 갖기 어려웠다. 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시점에 당면하게 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부모가 명확한 경계가 주는 안정감을 경험하지 못하면 부모의 혼란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유전된다고 한다. 그래서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의식적인 활동이 필요하다.

경계가 두려워 먼 발치서 바라만 보는 사람들은 진정한 상대와의 만남을 갖지 못한다. 평화주의자인 예민한 사람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 혼자 남겨질 각오가 필요하다.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적절한 자신의 경계를 신호하고 방어할 수 있다. 어떤 것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면 내 경계는 만들어지지 않으며, 상대에게 무엇을 베풀 때는 내가 자발적으로 준다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하는데 너는 왜 그렇지 않냐고 말할 필요가 없다. 예민한 사람들만의 감성은 세상의 기쁨과 슬픔을 다채롭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은 기계화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다. 매 순간 자신의 지각을 조절하고 자신의 경계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질수 있을 때 예민한 사람들만이 가지는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매일 감정 일기를 쓰며 어렵게 경계를 인식하는 중이었는데, 이 책에 소개된 의식적으로 지각하는 방법들이 그 여정을 좀 더 빠르고 쉽게 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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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라 그린 1 - 청결의 여왕 시공 청소년 문학
버네사 커티스 지음, 장미란 옮김 / 시공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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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장애는 강박 및 관련 장애의 하나로서,
강박적 사고 및 강박 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질환이다.
잦은 손 씻기(hand washing),
숫자 세기(counting),
확인하기(checking),
청소하기(cleaning) 등과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함으로써 강박적 사고를 막거나 그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려고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일시적인 편안함을 제공할 뿐 결과적으로 불안을 증가시킨다.

- 네이버 지식백과



"네 엄마는 침대맡 탁자에서 <전원 하이킹>이라는 잡지를 집어 들었어. 눈을 감고 잡지를 휘리리릭 넘기다가 아무 데나 짚었지."

"엄마가 눈을 떠 보니 손가락 끝에 '젤라'라는 단어가 있었어. 그렇게 된 거란다. 그래서 네 이름이 젤라가 된 거야."

"미안하지만 그렇단다. 캠핑은 간 적도 없어. 네 그 유치한 환상들을 깨뜨려서 미안하다만, 사실 널 갖게 된 곳은 뎃퍼드의 눅눅한 임대 아파트란다. 바퀴벌레도 있었지.”


정체감은 주관적 경험이다. 그것은 세상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 개인으로서 존재한다는 자각으로부터 시작된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나만의 소망, 사고, 기억과 외모를 갖는다는 것. 이름은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된 정체성의 일부다.  젤라 그린. 열두 살까지만 해도 이국적이면서도 낭만적인 환상을 갖게 해 주었던 이름. 그러나 자신의 탄생에 대한 진실과 맞닥뜨린 순간, 소녀의 정체성은 산산조각 난다. 낯선 도시에서 마법처럼 나타났던 존재는 사라지고, 바퀴벌레가 출몰하는 눅눅한 임대 아파트에서 잉태되어 잡지 속 '아무 데나' 짚었던 곳이 이름이 된 한 소녀의 강박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세균 경보, 오염 경보, 간격 유지, 확인 또 확인. 왼손과 오른손을 31번씩 씻고, 머리카락을 31번 빗질한다. 계단 맨 위 꼭대기에서 128번 뛰고, 옷장 속 옷의 간격은 4cm로 유지한다. 그리고 주전자 불은 꺼져 있는지, 뒷문이 잠겨있는지, 조리대에 음식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는지 10번씩 확인한다. 강박증은 그저 어떤 생각에 얽매어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 않으면 불안의 낭떠러지에 내몰리는 심각한 장애였다. 그러나 젤라 곁에는 안전 기지가 되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31살에 암으로 죽었고, 엄마의 죽음 뒤 새엄마와 재혼한 아빠는 어느 날 사라지고, 새엄마는 늘 외출 중이다. 늘 불안에 떨며 손을 씻고, 뜀뛰기를 하고, 옷의 간격을 유지해야만 하는 젤라는 허공에 부유하는 먼지 같은 존재였다.

열네 살. 새엄마의 손에 떠밀려 꼼짝없이 정신병원 신세를 져야 할 뻔한 젤라를 구해 주었던 것은 옆집에 사는 헤더 아줌마였다. 아버지의 학대로 자해를 일삼는 카로, 신경안정제가 필요한 리브, 거식증이 있는 앨리스, 그리고 아버지의 차에 치여 엄마를 잃은 후 말을 잃어버린 소년 솔. 젤라는 병원 대신 가게 된 '포레스트 힐 하우스'에서 자신처럼 다양한 강박증세를 갖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젤라는 그곳에서 친구들과 울고 웃으며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 주고받는다.

우리는 상대의 아픔을 생각하다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리고 상실의 아픔을 나눠야 할 시간에 서로를 위한다는 이유로 문제를 회피하거나 외면한다.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후에 생기는 것은 어느 것으로도 메울 수 없는 마음의 구멍이다. 사람들이 엄청난 양의 음식물이나 약물, 술, 따위로 메워보려 해도 점점 그 구멍은 메울 수 없게 된다. 젤라는 강박 증세가 완화되어 포레스트 힐에서 나와 자신처럼 치료를 받으려 떠난 아빠와 재회하고 엄마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을 나누며 엄마를 맘껏 그리워한다. 하지만 한 번 생긴 강박증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1권이 젤라가 강박증이라는 문제를 인식하는 단계였다면 2권은 강박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꿋꿋이 꾸려나가는 젤라의 모습이 그려진다. 젤라는 이성에 호기심이 왕성해지는 사춘기 여느 아이들처럼 인터넷 채팅 사이트 '마이소터스페이스'에 가입해 메일을 주고받으며 설렌다. 그리고 이성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절교했던 프랜과의 재회 역시 그 나이 또래 여자아이들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조금은 평온해진 젤라의 삶이 다시 수렁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갑작스러운 카로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카로의 정제되지 않은 감정은 여전히 젤라 가족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요소를 밖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한 번 상처를 드러냈다고 해서 가족의 슬픔이 치유되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상처투성이 인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내면에 상처를 들추고, 패배감에 휩싸이며, 유혹 앞에 무너지면서도 자신의 정신과 몸을 통제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렇지만 젤라가 솔과 아빠에게 손을 내밀듯, 다시 내 손을 뻗어야 하는 순간은 나를 위한 순간이 아니었다. 이상한 기분이다. 내게 병을 준 것도 사람이고, 내 병을 극복하게 하는 것도 사람이라니. 결국 슬픔은 사랑으로 치유된다. 문득 젤라가 남들하고 똑같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인간이 나눌 수 있는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 젤라는 그런 일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나약해서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은 그래서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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