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잡지 -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
진경환 지음 / 소소의책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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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득공은 조선 후기 북학파 계열의 실학자로, 경도잡지는 그가 기록한 조선의 세시풍속 책이다. 상권에는 의복·음식·주택·시화 등 풍속을 19항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하권에서는 서울 지방의 세시를 19항으로 분류하여 기록했다. 저자는 현재 한국 전통문화대학교 교양기초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경도잡지를 강독하며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많이 보게 되어 이 책을 기획했다고 했다. 2003년부터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으나 그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그중 풍속 편을 중심으로 엮어 <조선의 잡지>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잡지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모습은 가판대에 진열된 종이책이었다.  <조선의 잡지>라는 제목 때문에 책을 선택한 사람도 적지 않을 듯하다. 만화에서 나올법한 '조선 월간지'를 기대했다면 실망했을 수도 있지만, 조선시대 음악과 춤, 음식, 의복의 유행을 알려준다는 의미로는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한국사에 18~19세기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사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은 때였다. 신분제가 변화하고 개인의 행복이 중요하게 생각되면서 변화하는 세상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계층은 아무래도 여유가 있었던 양반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이라는 부제는 그 시절에 유행을 선도했던 '셀러브리티'들의 일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유득공이 핵심만 기술한 내용을 저자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덧붙이고 이야깃거리를 보충해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눈여겨볼 특징은 <경도잡지>의 원전 내용을 그대로 읽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역사 토론하듯 원전 글을 함께 읽고 새로운 사실을 찾고 싶은 저자의 소망이 담겼다고 생각한다.  천 원짜리 지폐에 등장하는 퇴계 이황이 쓴 복건은 역사적 고증과는 다르다는 의견처럼 사람들에게 흔히 알려진 것과 다른 내용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도 함께 담았다고 했다. 그러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읽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책이었다. 수년 동안 수집한 풍부한 도감과  관련 자료를 보는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가독력을 떨어뜨리는 한자 병기가 익숙하지 않았지만, 뜻을 전달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 생각했다.   

책을 읽고 알게 된 바로잡고 싶었던 부분 중에 일상적으로 쓰면서도 알지 못했던 결혼과 혼인의 차이는 조금 충격이었다. '혼인'에는 신랑은 장가들고, 신부는 시집 간다는 의미가 들어있지만, 결혼에는 그저 신랑이 장가 간다는 표현만 들어있다고 한다. 왜 혼인이라는 말보다 결혼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는지는 나와있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이제부터라도 구별해 쓰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릴 때 할아버지 앞에서 회초리를 맞아 가며 배웠던 천자문은 문장 구성이 시적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법을 구사하고 있어 단순한 한자 학습을 위한 교재 정도가 아니라는 점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신참자를 골탕 먹이는 신고식의 유래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고려 말, 실력으로 정당하게 합격하지 않고 소위 '빽'으로 합격한 귀족 자제들의 버르장머리를 잡는 데서 시작되었는데,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신고식의 시작은 좋았으나 요즘에는 새내기 대학생들이 신고식을 치르다 죽음에 이르렀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것이 현대에는 그 뜻이 오용되고 있는 점이 아쉽다.

 
남들보다 더 고급스럽고 특별한 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꺼려 해 소박한 척 꾸미려 단순하고 초라해 보이지만 실은 값비싼 물건들을 선호했다고 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을 중하게 여겼던 풍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 모양이다. 시대만 달라졌을 뿐 그대로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허세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었다. 말을 끄는 견마 잡이들도 덩달아 허세를 부렸다. 더 좋은 고삐를 가지려 한 나머지 매끈한 가죽으로 고삐를 만들어 거들먹거렸는데 ‘거덜 났다’라는 말이 여기서 생겨났다고 한다. 늘 쓰고 있는 말이었는데 어원을 알게 되니 더욱 재미있었다.  
 
근대화의 바람을 타고 등장한 개인화 현상은 각종 마니아를 양상 했다고 한다. 화훼 재배와 정원 경영은 지금도 골수 마니아가 있는 편이라 이해했는데, 비둘기를 위해  여덟 칸짜리 '용대장'을 지었다는 얘기는 정말 놀라웠다. 먹을 수 있는 달걀 하나 낳지 못하는 비둘기에 대한 비판으로 유행은 금세 사그라들었지만, 지금 거리에서 쓰레기를 주워 먹는 비둘기의 삶을 보니 인생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시대에 태어나는지는 동물도 예외가 없는 모양이다.  
 
책은 이처럼 조선 후기 양반들의 취향을 엿보며 사람 사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별반 다를 것 없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있고, 사라진 것이 있다. 그것은 좋고 나쁨, 옳고 그름에 따라 취하고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누리는 모든 것에는 욕망이 깃들어 있다.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욕망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나날이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계층 간의 갈등과 각자가 누리는 삶의 격차는 옛날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양반들이 누리는 호사를 곁눈질이라도 하며 꿈꿔 보기라도 했을 텐데, 이제는 갈수록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라 생각하니 책을 다 읽은 뒤에도 뒷맛은 왠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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