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부모 수업 - 흔들리는 우리 아이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장희윤 지음 / 보랏빛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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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자연스러운 시대다. 사람도 태어나면서 많은 변화를 거쳐 어른이 된다. 부모라면 아이가 처음 기었을 때, 잡고 섰을 때,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의 희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내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아이는 늘 새롭다. 기적 같은 시간을 거쳐 겨우 사람 모습과 비슷해져 이야기가 통한다 싶었을 때 다시 아이가 낯설게 느껴지는 시간이 사춘기인듯하다.

 

아이를 키우며 힘들지 않은 순간은 단 한순간도 없다. 양육자가 좀 적응하다 싶으면 아이는 또 다른 과제를 내어주며 아이의 성장과 발맞춰 자라게 한다. 아이가 본격적으로 사춘기에 접어들기 시작하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 밖에서는 인사도 잘하고 싹싹한듯한데, 집에 오면 오만상을 찌푸리고 매사 짜증을 낸다. 어릴 때 수없이 많은 육아책을 읽으며 그 시절을 보냈듯 부모 수업이 필요한 때가 찾아온 것이다. <사춘기 부모 수업>은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비법이 담긴 책이다.

 

 

원래 부모 수업 효력은 최대 3일 정도라서 제목처럼 뻔하지 않는 내용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강연이나 수업에서 듣고 느꼈던 희열은 아이의 버릇없음과 말대답에 순식간에 우르르 무너지기 십상이다. 쉽고 재미있게 기억하기 내용이라면 더더욱 환영! 한 가지라도 실생활에 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 정도로 읽기 시작했다. 아이들 마음을 읽어내는 부분에서 기억에 남는 몇 가지 문장을 써 본다.

 

 

"자녀를 배려하는 것과 모든 것을 맞추는 것은 차이가 있다. 자녀가 원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신경을 써주는 것은 '배려'요, 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맞춰주는 것은 '헌신'이다. 필요하면 아이는 직접 부모에게 요청할 것이다. 물론 부탁을 들어줘도 되지만 모두 들어줄 필요는 없다." p. 73

 

"아이들이 삐딱하게 말을 할 때 어른들은 아이들의 진심이 무엇인지를 빨리 파악해야 한다. 사춘기 아이들은 아몰랑 화법을 쓰며 김첨지 말투를 쓰는 경향이 있다." p. 81

 

“아이들은 감정을 절제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른이란 이런 존재구나 하는 감정을 느낀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아이들이 더욱 잘 안다. 그런데 마치 잘 모르는 것처럼 우긴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솔직하게 얘기하면 지는 것 같고 알면서도 그려냐며 어른들이 화를 낼 것 같기 때문이다.” p. 89

 

 

헌신하면 헌신짝처럼 된다는 얘기는 육아에서도 통용되는 문장인가 보다. 늘 형제, 자매 사이에서 치열하게 내 것을 획득하며 살았던 다둥이 세대였던 우리 세대에게는 생소한 얘기다. 부모님은 먹고살기 바빠 아이들에게 신경 쓰지 못했고 형제자매 사이에서 내 몫은 내가 챙겨야 했던 시절.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그런 결핍이 인간의 성장에 꼭 필요한 것이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조금 모자란 듯 키워야 건강한 아이로 자란다는 것을.

 

 

아몰랑 화법과 김첨지 말투는 모든 아이들의 공통된 화법인 것 같다. 이제 어른이 된 척 ‘내게도 신경을 써주세요’라고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어린애 같은 마음을 숨기는 것이다. 아이들의 진심을 알기 위해서는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마음에 박혔던 문장은 감정을 절제하는 사람을 어른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이었다. 일반 성인들이 경지에 다다른 도인의 모습을 볼 때 경외심을 갖는 것처럼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모라서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열심히 본 부분은 사춘기 아이들과 잘 지내는 비범이 담긴 대화법과 내면 코칭 편이었다. 전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내용이었지만 실제로 아이와 대화할 때 책대로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첫째, 설교 대신 대화하기. 일방적인 문제 해결이 아닌 자녀가 답을 찾아가는 대화를 유도한다는 것이 포인트다. 둘째, 감정적이 될 때 한 걸음 물러서기. 메시지보다 감정에 집중하는 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 칭찬보다 인정하기. 넷째, 감시자가 아닌 안내자가 되기. 알지 못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고 스스로 실천해 볼만한 것은 마지막 장에 나온 말이었다. "가정에서 엄마가 사춘기 자녀와 함께 성장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꿈을 가지는 것이다. 엄마가 꿈을 가지는 순간, 놀랍게도 자녀의 삶과 엄마의 삶은 완벽하게 분리된다. 이를 통해 엄마와 자녀의 관계가 재정립될 수 있다." 아이들 육아에 치여 스스로 잊고 있었던 꿈을 찾는다는 것은 즐겁게 시도해볼 만하지 않을까. 꿈을 찾으며 양육자는 자식에게 쏟는 에너지를 분산시킬 수 있고, 과도한 관심과 감시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는 틈이 생길 것이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다. 마흔을 넘기고 중년이 되면 남은 인생의 반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삶에 진지한 물음을 던져야 하는 시기가 온다. 그 물음에 대한 답 속에 아이들이 전부가 된다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아이를 보며 울부짖는 드라마 속 주인공의 모습이 내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아이가 짊어져야 하는 몫은 온전히 아이에게 넘겨주고, 양육자는 인내하며 기다리는 역할에 충실할 때 사춘기의 험난한 파도를 현명하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다 알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일들을 책을 읽으며 다시금 마음에 새겨 넣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쏟는 에너지의 반을 내 꿈을 위해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파도를 한 물결이 되어 유연하게 넘는 비법은 각자의 꿈을 향해 달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춘기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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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깨닫는 주역 - 4상으로 쉽게 이해하는 주역
한수산 외 지음 / 삶과지식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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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혁명> 개정판 <하룻밤에 깨닫는 주역>이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인 동시에 가장 난해한 글로 일컬어지는 주역을 하룻밤만에 깨닫는다니, 눈이 번쩍 뜨이는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주역>은 일반 사람들에게 '점'을 치는 도구쯤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공자가 받들고 주희가 ‘역경(易經)’이라 이름하여 숭상한 이래로 오경의 으뜸으로 손꼽히게 된 '학문'이다. 주역이 점을 치는 도구가 된 것은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역’의 성격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역의 원리에 따라 흉한 기운을 막고 길한 기운을 찾았다. 한대의 학자 정현은 “역에는 세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으니 이간(易簡)이 첫째요, 변역(變易)이 둘째요, 불역(不易)이 셋째다”라고 하였다. 이간이란 알기 쉽고 따르기 쉽다는 뜻이고, 변역이란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뜻이며, 불역은 변하는 것 중에서도 하늘의 높고 땅의 낮음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주역>은 점을 치는 도구를 넘어 한 세계를 아우르는 철학이 담긴 대경대법인 것이다.

주역은 8괘(八卦)와 64괘, 괘사(卦辭)·효사(爻辭)·십익(十翼)으로 되어 있다. 역은 양(陽)과 음(陰)의 이원론으로 이루어진다. 하늘은 양, 땅은 음, 해는 양, 달은 음, 강한 것은 양, 약한 것은 음, 높은 것은 양, 낮은 것은 음 등 상대되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을 양·음 두 가지로 구분하고 천지만물은 그 위치나 생태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 주역의 원리이다. 일반적인 주역의 해석은 8괘가 두 번 겹쳐(8x8) 64괘가 생성되었다고 보는 반면, 4상으로 쉽게 이해하는 주역에서는 강한 것을 양효( ― ) 약한 것을 음효( ­­‥ )로 표현해 4상으로 표현하고, 4상이 세 번 겹쳐(4x4x4) 64괘가 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4상으로 나눠서 설명하는 방법은 엠페도클레스가 주장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지했던 '4원소설'과 묘하게 비슷했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물, 불, 공기, 흙의 4가지 원소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의미의 '4원소설'은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4원소 가변설'로 변형되었는데, 물질의 특유한 성질인 건, 습, 온, 냉이 배합되어 만물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4상의 태양, 소양, 소음, 태음의 성격을 자세히 살펴보면 4원소설과 4기질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는 현재를 이룰 수 있는 기반이며, 미래는 현재의 연장선상이다. 현재의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며 '역'의 의미처럼 늘 변화하고 있다. 선인들은 과거와 현재를 두루 살핌으로써 미래를 예측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현재, 미래의 3가지 모습으로 변화(4x4x4) 하여 하나의 괘를 완성한다는 4상 주역의 64괘는 4상의 양괘가 세 번 연속되는 것을 뜻한다. 기존에 주역 책을 몇 권 보았으나 중간에 읽기를 그만둔 이유는 8괘의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는데 4상으로 나눠서 살펴보니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주역 카드가 있어서 예를 들어 설명해 본다. 올해는 제가 일할 수 있을까요?라는 물음에 아래 사진과 같은 괘가 나왔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주역 타로>

뽑은 괘는 17번 수괘(隨掛)다. 수(隨)는 따르다, 추종하다, 뒤쫓는다는 뜻으로 실력을 쌓아가는 상황에서 행운이 찾아와 실력과 능력 이상으로 대박을 터트리지만, 이후 운의 기운이 사라진다. 엇박자이고 중간의 행운이 미래 행운까지도 가져다 쓴 것으로 볼 수 있다. 재능이 있으면서 자존심이 강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섬으로써 행운과 멀어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p.194

4상의 괘가 세 번 겹치는 모양으로 생각해보면 과거는 ‘소음’의 상태로 실력에 비해 운이 따르지 않아 때를 기다리며 정진에 힘썼고, 실력보다 인정받고 있는 현재 ‘소양’은 드디어 일할 때가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겸손함을 잃지 않아야 하며, 운이 다하여 제자리인 소음의 상태로 돌아가는 미래를 대비해 더욱더 실력 기르기에 정진해야 함을 보여주는 카드라 생각되었는데 책 속의 해석을 보니 비슷했다. 억지로 괘를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4상이 세 번 겹치는 방식으로 이해하니 쉽게 이해되었다.

주역에 관한 책을 읽으려고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한 사람이라면 이 책은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책 판매를 위한 과장된 문구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책을 읽어보니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로 하룻밤에 다 읽을 수 있었고 쉽게 이해되었다.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에도 4괘가 들어가 있다. 우리는 태극을 중심으로 음과 양이 변화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국기로 삼은 민족인 것이다. 점을 치는 것을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에 중점을 두면 미래는 불안한 것이 된다. 그러나 나의 운명의 흐름을 알고 시시각각 일어나는 일을 '순리'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면 불안해하며 운명을 따라가는 삶과는 분명히 다른 삶이 될 것이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그저 눈앞에 있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닌, 내가 선택하고 걸어가는 삶. 하룻밤만에 읽는 주역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줄 것이다. 더 이상 남에게 자신의 인생을 묻지 마라. 각자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은 다르며 그 누구도 내 삶에 정답을 줄 수는 없다. 내 삶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기반이 되어야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삶이 주는 메시지를 제대로 읽고 따라가기만 해도 다행인 것이 인생이다. 어쩌면 모든 학문은 내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주역을 읽으며 올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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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년은 없다
월터 딘 마이어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책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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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척하지만 괜찮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는 모든 청소년들에게 지지와 응원을"

뉴베리 아너상을 두 번, 코레타 스콧 킹 상을 다섯 번이나 수상한 작가 월터 딘 마이어스의 자전적 회고록 형식의 책이다. 월터는 두 살 때 어머니를 잃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양부모 밑에서 자랐다. 언어 장애로 놀림을 당하며 걸핏하면 싸움을 하고,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열여섯 살 때 학교를 중퇴하고 열일곱 살 때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스무 살 때 사회로 복귀하고 작가의 길을 선택, 한 번도 글을 써서 돈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한 소년은 그렇게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쁜 소년은 없다>는 책 제목은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목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프로그램에는 혈통과 종에 상관없이 다양한 문제를 가진 개들이 등장한다. 한 가지 특이했던 점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던 개들보다 견주에게 더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저마다 각자의 삶을 사는 거라고 해도 먼 과거에 있었던 일, 즉 내력은 언제나 우리에게 영향력을 발휘한다."라고 시작하는 첫 장에서 월터는 자신의 문제가 오롯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항상 무엇인가가 맴돌았다. 상상 속의 삶, 내가 읽은 책에서 나온 세상이었다. 책을 읽고 있으면 일종의 안도감이 느껴졌다. 책을 몰랐을 때는 경험한 적 없는 감정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무조건 뭔가로 메우려고 덤벼들었던 빈 공간을 이제는 책이 채워 주었다. p57

월터는 온갖 문제를 일으키는 소년이었다. 흑인의 주거지로 분류된 '할렘'에서 자란 월터에게 매를 맞고 때리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인종 간의 차별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히며 자라는 모습은 요즘 아이들이 경제적 차이에 따라 차별에 익숙해지는 것과 비슷했다. 절대로 백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인종과는 상관없는 존재가 되고 싶었고, 검둥이와 결부시키지 않으려 일부러 관련 책을 읽지 않았던 월터의 이유 있는 방황이 공감되었다. 청소년기의 방황은 기존의 나를 거부하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고 싶은 열망에서 시작된다. 월터는 아빠, 엄마처럼 백인들의 공간을 청소하는 예정된 '검둥이'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청소년기의 방황 속에 그를 지켜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그의 현재의 겉모습보다 미래의 모습을 보고 지지해 주었던 주변 사람들이었다. 월터의 엄마는 글을 읽고 싶은 욕망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월터의 거짓말과 장난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믿음으로 그를 기다려 준다. 아버지는 삶에서 뭔가 얻어 내고 싶다면 스스로 구해야 한다는 말로 현실감각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해준다. 레셔 선생님은 말하기 교정 치료를 받게 해주고, 무슨 일이든 책임지는 연습을 하게 한다. 따라야 할 계율만 지키면 천국행이 보장될 것이라 생각했던 천진한 소년 월터는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자신이 사실은 세상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천천히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의 곁에서 묵묵히 그를 지켜봐 준 사람들 덕분에 버텨낼 수 있었다.

내 안의 무언가는 싸움이라는 것에 끌렸다. 삼대일의 싸움이라든가, 상대가 체인을 들었다든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싸울 때 느낌이 중요했다. 싸움을 시작하면 나를 집어삼킬 것 같던 무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특별한 삶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삶에는 사고와 사람이 있어야 했고 사람은 사고를 받아들여 힘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하루하루 고립되어 갈수록, 그런 삶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내 존재라는 대로에서 한쪽으로 비켜서 있는 느낌이었다. 쇼윈도 너머로 좋은 삶이 보이는데 들어가는 문을 찾을 수 없었다. 유리창을 깨면 환영은 못 받지만 적어도 내가 거기 있다는 것은 알릴 수 있었다. p137

애초에 자신을 반기지 않는 사회라는 것을 적시했을 때 아이들은 미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애써 괜찮다고 말하고 있지만 전혀 괜찮지 않은 상황과 이상에 맞지 않는 세상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까지 방황하며 군대에 자진 입대하고 방황하는 모습이 걱정되면서도 그의 무모함이 한없이 부러웠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다시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계기였다. "상황이 어찌 되든, 글은 계속 써라."라고 말해 주었던 국어선생님 말 한마디가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누군가의 지지와 응원은 언젠가 그 빛을 발하게 된다. 연일 말썽을 피우고 거짓말을 일삼는 아이를 책망 없이 기다려 준 엄마와 그의 주변에서 그를 이끌어 주었던 많은 사람들의 말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날 가슴에서 피어나는 순간이 꼭 찾아온다는 것을 월터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수많은 위인전을 읽으며 그들과 비슷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녹록지 않은 현실의 벽에 좌절하며 자랄수록 꿈은 현실에 맞춰 변형된다. 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는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월터는 글을 쓰며 현실 세계에서는 존중받을 수 없었던 자신을 존중하게 된다. 작가 월터 딘 마이어스의 자전적 소설 <나쁜 소년은 없다>는 방황하는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내가 선택한 일들이 모여 삶이 되듯, 나를 떠나서는 어떤 글도 쓰지 못한다. 삶이 주는 경험에서 나는 무엇을 찾을 것인가. 대체로 멋진 여정이었다는 마지막 장을 보니 힘겨워 보이기만 했던 그의 인생도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분명한 사실은 좋은 말들은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 힘을 발휘한다는 것과 좋은 것을 선택하려고 노력하면 삶은 정말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덧붙임>> 중간중간 월터가 어릴 때 읽었던 책 목록이 나오는데 <작은 아씨들>을 최악으로 꼽는 걸 보니 남자아이들의 세계는 여자아이들과는 또 다른 모양이다. 그가 읽었던 책 목록을 보는 재미도 꽤나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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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아이 옆에 또 이상한 아이 - 떠드는 아이들 2 노란 잠수함 4
송미경 지음, 조미자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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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알아요. 우리 반에는 이상한 아이들만 모였으니까요. p.82

"별별 이상한 사람들이 다 모여서 살고 있어서 더욱 재미있는 지구별"

"엄마, 쟤 좀 이상한 것 같아."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는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쟤는 더럽게 코딱지를 파서 먹어. 또 얘는 파는 절대로 먹지 않고."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면 특별히 이상한 행동이 아닌데도 아이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너도 당근만 빼고 먹잖아? 엄마가 듣기에는 다른 애들이 보기에 너도 만만찮을 것 같은데?"라고 말하니 금세 입이 쌜쭉해져서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상한 아이 옆에 또 이상한 아이>는 자신과 달라서 이상하게 보이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유리'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 하는 언니와 자기를 괴롭힐 궁리만 하는 남동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리는 이모네 늦둥이 딸 시하와 같은 달에 태어나고 함께 자라 뭐든지 시하와 함께 한다. 그런데 늘 자신만 쫓아다니는 시하 때문에 학교에서 자유롭게 놀지 못하게 되자, 쉬는 시간만 되면 자신의 근처를 맴돌고 껌 종이 구길 때 내는 작은 소리로 웃는 시하를 모른체하고 싶은 때가 점점 많아진다. 또 한가지 고민은 학교 입학식 날 도움을 준 우성이를 좋아하기로 결심했는데, 우성이는 소꿉놀이를 좋아해서 쉬는 시간마다  소꿉놀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2학년 때도 우성이와 같은 반이 되었지만 인형놀이를 좋아하는 우성이와 시하 때문에 인형놀이 노예가 된 유리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우성이는 다정하게 말하며 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유리는 그렇게 놀기가 싫다. 간신히 우성이의 좋은 점을 생각하며 그 순간을 견뎌 보지만 유리는 점점 착하고 잘생긴 우성이가 싫어지고 같이 놀면 놀수록 기분이 나빠진다. 하기 싫은 인형놀이를 해야 하는 쉬는 시간보다 수업 시간이 기다려지는 이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유리는 아프다고 보건실에 누워버릴까 하고 생각하거나, 우성이가 전학을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성이 덕분에 훌륭한 배우가 될지도 모른다. 기쁘지도 않은데 상냥한 말투와 표정 짓는 법을 익혀 버렸기 때문이다. p.38"


곤드레 선생님은 유리가 영어를 못 알아듣는 줄 알면서도 영어 잘하는 애들을 놔두고 언제나 유리에게 말을 건다. 서로 다른 생각과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내뱉는 말은 영어 선생님과 나누는 대화와 같다. "What's your name?"이라고 말했는데 상대는 "Thank you"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영어 선생님은 언젠가는 말이 통하는 날을 희망한다는 듯 전혀 다른 대답을 하는 유리에게 자꾸 말을 건다. 시하와 우성이 때문에 훌륭한 배우가 되어가는 유리 입장이었으면 차라리 상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일부러 상대에게 맞추려는 마음을 내기 위해 힘들이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함께 어울려 지내는 것은 아이들 세계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유리에게는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죄다 이상하게 보인다. 간섭하기 좋아하는 이현빈, 언제나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는 영혜. 하지만 선생님이 뒤를 봤다는 이유로 뒤로 나가 서 있으라고 했을 때 영혜가 창밖을 보며 한숨을 쉬는 이유를 이해하듯 살짝 비스듬히 들여다보면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찾아내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한다. 전학 갔으면 했던 우성이가 실제로 전학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듯 슬퍼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형 놀이는 싫었지만 우성이는 지우개가 없을 때 선뜻 지우개를 반으로 잘라 빌려주고, 싫어하는 반찬도 먹어주고, 화장실에서 휴지도 가져다준 좋은 친구였던 것이다.

유리네 교실에는 알 수 없는 일만 일어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처럼. 개성은 '나눌 수 없는 것(indivisible)'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체로 보았을 때 다른 것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개성을 갖고 있다. <이상한 아이 옆에 또 이상한 아이>를 보며 유리의 눈에 비친 아이들의 모습이 비단 아이들만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 씹어 먹는 아이>에서는 다소 무겁고 숨길 수밖에 없었던 각자의 개성이 학교생활로 옮겨지면서 가볍고 산뜻한 이야기로 펼쳐진 듯하다. 조금 더 연기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차이가 있을 뿐 어른들 세상도 마찬가지다. 자기답게 웃고, 자기답게 침묵하고, 자기답게 투덜거리는 아이들 모습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게 되고 그 속에서 또 다른 나와 만난다. 별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기에 더욱 재미있는 지구별 속에서 아이들이 자신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힘을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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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춤추고 싶다 - 좋은 리듬을 만드는 춤의 과학
장동선.줄리아 크리스텐슨 지음, 염정용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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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기어갈 때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기 시작하지만 누워있던 아이가 기어가기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불완전한 다리의 흔들림에 따라 머리도 함께 흔들린다는 것이다. 기어갈 때 머리가 규칙적으로 흔들리면서 뇌가 발달하기에 아기에게 기어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뇌는 춤추고 싶다>라는 제목을 봤을 때 열심히 바닥을 기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기기 시작한 것이 춤을 추기 위한 워밍업 같았다고 할까.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장동선 작가는 디제잉을 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알려진 사람이다. 최근에는 안쓸신잡에서 뇌과학자로 얼굴이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전작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에서 개개인의 뇌 속에는 타인, 즉 '사회적 뇌'를 갖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연구한다고 했다. 개인의 뇌는 온전히 개인의 것이 아닌, 주변 사람들과 상호 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었다. <뇌는 춤추고 싶다>라는 책 제목과 표지를 바라본 순간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는 책 제목이 동시에 연상되었다. 서로 다른 색깔로 움직이고 있는 다리는 신경전달 물질을 가진 뉴런의 가지돌기처럼 보였고 그것은 춤으로 융합된 하나의 뇌처럼 보였다.

 
책 내용은 온통 춤에 대한 찬양으로 도배되어 있다. 뇌과학자가 왜 춤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모든 뇌의 행복이 '리듬'에 있기 때문이다. 서로 함께 하기를 원하지만 또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수많은 뇌를 가진 사람들의 관계에 윤활유가 되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춤이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할지가 중요해져서 부끄러움 속에 감춰버린 숨겨진 내면의 리듬을 찾는 유일한 비법이 바로 '춤'을 추는 것이다. 저자는 삶 속에서 좋은 리듬을 만들고 행복해지기 위해 춤추기를 강력하게 권하고 있었다.

 
호두를 쥐는 사람의 움직임만을 보고도 원숭이의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되었다면 움직이는 누군가를 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신경세포는 활성화될 수 있다. "당신의 몸동작은 당신의 기분이 어떤지를 나에게 보여 준다. 나의 뇌가 당신의 상태를 내 몸속에 반영해서 보여 주고, 그 때문에 나는 당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p.86" 내 몸을 움직이는 것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며, 움직이는 상대의 몸을 바라보며 상대를 이해하려는 뇌의 움직임은 뇌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한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이다.

아이와 엄마의 따뜻한 접촉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신뢰하는 틀을 제공한다. 그리고 사랑이 깃든 모든 신체 접촉은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여러 물질들을 발산하도록 해 준다. 사회적 유대를 촉진하고, 기분을 좋게 해 주고, 면역 기능을 높여주는 물질들은 오직 춤을 통한 신체 접촉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춤은 생명의 묘약이자 생명수인 것이다.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위해 불로초를 찾아 나섰는데 저자의 춤에 대한 예찬을 읽고 나니 당장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몸 따로 음악 따로라도 춤을 춰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쓸쓸하고 무기력한 일상이라면 당장 춤을 추러 나가라.

 
책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줌바댄스를 배웠던 적이 있다. 그야말로 첫 수업은 혼돈의 도가니였다. 머리에서 생각하고 상상하던 동작들은 무참히 거울 속에서 산산이 부서져 사라졌다. 그렇지만 몸치 중에 몸치도 차차 리듬에 익숙해지게 되었고 슬슬 리듬을 타게 되었다. 리듬에 익숙해지고 음악에 따라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게 되었을 때 거울 속 나는 예전의 나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심장이 일정한 리듬으로 뛰고, 숨을 내쉬고 들이쉬며 서서히 몸의 감정을 추스르고 다른 사람의 호흡을 주시하는 모든 활동은 뇌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연결 회로를 불러온다고 한다.  독서, 십자말풀이, 카드놀이, 악기 연주와 비교했을 때 오직 춤만이 치매를 효과적으로 막아 주었다고 하니 어찌 춤추지 않을 수 있을까.

"감정을 움직임으로 바꾸는 법을 많이 배울수록 다른 사람의 움직임에 포함된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더 정교하게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p.81"라는 말은 자신의 몸이 감정에 충실해지면 타인의 몸에서 풍기는 감정을 잘 인식할 수 있음을 뜻한다. 책 속의 다양한 사례에서 춤을 추는 것은 몸이 감정에 충실해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임이 분명하며, 춤을 통해 공감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책에는 내게 맞는 춤을 고르는 법부터 다양한 춤의 종류까지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제대로 리듬감을 익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게 맞는 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내게 맞는 춤을 선택하는 것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고 나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당신! 지금 당장 춤을 추기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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