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소년은 없다
월터 딘 마이어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책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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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척하지만 괜찮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는 모든 청소년들에게 지지와 응원을"

뉴베리 아너상을 두 번, 코레타 스콧 킹 상을 다섯 번이나 수상한 작가 월터 딘 마이어스의 자전적 회고록 형식의 책이다. 월터는 두 살 때 어머니를 잃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양부모 밑에서 자랐다. 언어 장애로 놀림을 당하며 걸핏하면 싸움을 하고,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열여섯 살 때 학교를 중퇴하고 열일곱 살 때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스무 살 때 사회로 복귀하고 작가의 길을 선택, 한 번도 글을 써서 돈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한 소년은 그렇게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쁜 소년은 없다>는 책 제목은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목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프로그램에는 혈통과 종에 상관없이 다양한 문제를 가진 개들이 등장한다. 한 가지 특이했던 점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던 개들보다 견주에게 더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저마다 각자의 삶을 사는 거라고 해도 먼 과거에 있었던 일, 즉 내력은 언제나 우리에게 영향력을 발휘한다."라고 시작하는 첫 장에서 월터는 자신의 문제가 오롯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항상 무엇인가가 맴돌았다. 상상 속의 삶, 내가 읽은 책에서 나온 세상이었다. 책을 읽고 있으면 일종의 안도감이 느껴졌다. 책을 몰랐을 때는 경험한 적 없는 감정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무조건 뭔가로 메우려고 덤벼들었던 빈 공간을 이제는 책이 채워 주었다. p57

월터는 온갖 문제를 일으키는 소년이었다. 흑인의 주거지로 분류된 '할렘'에서 자란 월터에게 매를 맞고 때리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인종 간의 차별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히며 자라는 모습은 요즘 아이들이 경제적 차이에 따라 차별에 익숙해지는 것과 비슷했다. 절대로 백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인종과는 상관없는 존재가 되고 싶었고, 검둥이와 결부시키지 않으려 일부러 관련 책을 읽지 않았던 월터의 이유 있는 방황이 공감되었다. 청소년기의 방황은 기존의 나를 거부하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고 싶은 열망에서 시작된다. 월터는 아빠, 엄마처럼 백인들의 공간을 청소하는 예정된 '검둥이'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청소년기의 방황 속에 그를 지켜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그의 현재의 겉모습보다 미래의 모습을 보고 지지해 주었던 주변 사람들이었다. 월터의 엄마는 글을 읽고 싶은 욕망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월터의 거짓말과 장난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믿음으로 그를 기다려 준다. 아버지는 삶에서 뭔가 얻어 내고 싶다면 스스로 구해야 한다는 말로 현실감각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해준다. 레셔 선생님은 말하기 교정 치료를 받게 해주고, 무슨 일이든 책임지는 연습을 하게 한다. 따라야 할 계율만 지키면 천국행이 보장될 것이라 생각했던 천진한 소년 월터는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자신이 사실은 세상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천천히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의 곁에서 묵묵히 그를 지켜봐 준 사람들 덕분에 버텨낼 수 있었다.

내 안의 무언가는 싸움이라는 것에 끌렸다. 삼대일의 싸움이라든가, 상대가 체인을 들었다든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싸울 때 느낌이 중요했다. 싸움을 시작하면 나를 집어삼킬 것 같던 무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특별한 삶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삶에는 사고와 사람이 있어야 했고 사람은 사고를 받아들여 힘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하루하루 고립되어 갈수록, 그런 삶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내 존재라는 대로에서 한쪽으로 비켜서 있는 느낌이었다. 쇼윈도 너머로 좋은 삶이 보이는데 들어가는 문을 찾을 수 없었다. 유리창을 깨면 환영은 못 받지만 적어도 내가 거기 있다는 것은 알릴 수 있었다. p137

애초에 자신을 반기지 않는 사회라는 것을 적시했을 때 아이들은 미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애써 괜찮다고 말하고 있지만 전혀 괜찮지 않은 상황과 이상에 맞지 않는 세상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까지 방황하며 군대에 자진 입대하고 방황하는 모습이 걱정되면서도 그의 무모함이 한없이 부러웠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다시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계기였다. "상황이 어찌 되든, 글은 계속 써라."라고 말해 주었던 국어선생님 말 한마디가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누군가의 지지와 응원은 언젠가 그 빛을 발하게 된다. 연일 말썽을 피우고 거짓말을 일삼는 아이를 책망 없이 기다려 준 엄마와 그의 주변에서 그를 이끌어 주었던 많은 사람들의 말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날 가슴에서 피어나는 순간이 꼭 찾아온다는 것을 월터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수많은 위인전을 읽으며 그들과 비슷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녹록지 않은 현실의 벽에 좌절하며 자랄수록 꿈은 현실에 맞춰 변형된다. 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는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월터는 글을 쓰며 현실 세계에서는 존중받을 수 없었던 자신을 존중하게 된다. 작가 월터 딘 마이어스의 자전적 소설 <나쁜 소년은 없다>는 방황하는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내가 선택한 일들이 모여 삶이 되듯, 나를 떠나서는 어떤 글도 쓰지 못한다. 삶이 주는 경험에서 나는 무엇을 찾을 것인가. 대체로 멋진 여정이었다는 마지막 장을 보니 힘겨워 보이기만 했던 그의 인생도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분명한 사실은 좋은 말들은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 힘을 발휘한다는 것과 좋은 것을 선택하려고 노력하면 삶은 정말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덧붙임>> 중간중간 월터가 어릴 때 읽었던 책 목록이 나오는데 <작은 아씨들>을 최악으로 꼽는 걸 보니 남자아이들의 세계는 여자아이들과는 또 다른 모양이다. 그가 읽었던 책 목록을 보는 재미도 꽤나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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