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생쥐 줄리앙
조 토드 스탠튼 지음, 서남희 옮김 / JEI재능교육(재능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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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으면 조금 더 행복해져

혼자 있는 건 편하다.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위험한 적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다. “엄마, 줄리앙의 집으로 가는 길에는 아무도 없어!” 생쥐 줄리앙은 언제나 혼자다. 어느 날, 배고픈 여우가 줄리앙의 땅속 집에 불쑥 얼굴을 들이민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줄리앙을 삼키려 했지만 창문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여우는 줄리앙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 줄리앙도 여우 얼굴을 보며 살 수 없으니 도와주려 한다. 하지만 여우는 구멍에서 나오지 못하고, 둘은 어쩔 수 없이 함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배가 고픈 여우의 눈빛에 마음 약해진 줄리앙은 먹을 것을 나눠주고 함께 이야기하며 누군가 함께 있는 시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튿날, 줄리앙은 숫가락을 지랫대처럼 이용해 여우를 구멍에서 꺼내주고 둘은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나뭇가지를 놓쳐서 원숭이 올빼미에게 딱 걸린 줄리앙!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는 순간 여우가 나타나 줄리앙을 덥석 한 입에 먹어 버린다.

여우에게 먹힌 줄리앙은 어떻게 되었을까. 반전없이 모두의 예상대로 여우는 은혜를 갚는다. 그러나 그들은 금방 친한 친구가 되지 않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 후 여우는 가끔 줄리앙의 집에 와서 저녁을 함께 먹는 친구가 된다. 동물들은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먹고 먹히는 존재다. 처음 여우가 처음 줄리앙을 또록또록 지켜보던 눈빛과 원숭이 올빼미에게 잡아먹힐 뻔한 순간에 지켜보던 눈빛은 변함이 없다. 여우의 마음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간도 보이지 않는 약육강식의 삶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살아남기 위한 경쟁과 생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은 마음에 행복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어울리며 사는 법을 배운다. 아이는 무뚝뚝하게 일자로 그려진 줄리앙의 입이 웃는 모습으로 바뀐 부분을 금방 알아챈다. 으르렁거리던 여우도 웃는다.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새들이 원숭이 올빼미에게 날아가 시끄럽게 하는 통에 낮에 자야 하는 올빼미의 눈은 또록또록하다. 낮잠 못 자는 원숭이올빼미 이야기로 기대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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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세계 -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지음, 변선희 옮김 / 연금술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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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잠에서 깨지만, 나는 원하지 않는다

<푸른 세계> p.34

왜 사는지 물었다. 아이들은 태어났으니 사는 거라고 했다.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기에, 가끔은 삶을 원하지 않았다. 이유 없이 살아가는 삶은 때때로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신의 말씀에 따른 삶이나, 가족에게 헌신하는 삶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사는 것이 나를 위한 삶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아프면 덜컥 겁이 났다.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지만, 결코 다시 잠들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죽음은 언제든 닥쳐올 수 있는 미래라는 사실을 자주 잊고 산다.

<푸른 세계>는 열여덟 살이 되기 하루 전, 죽음을 선고받고 치료를 거부한 그가 '그랜드호텔'로 향하는 이야기다. 그랜드 호텔은 마지막 순간에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람에게 목가적인 장소에서 마지막을 보낼 수 있게 도와주는 재단이다. 한 살 때 입양된 그에게는 부모도 형제도 없었고, 자신이 열한 살 때 자살한 아버지가 남긴 절벽 위, 집 열쇠뿐이었다. 쉽게 결정 내리지 못하고 이끌린 삶을 증명하듯 그랜드 호텔로 향하는 죽음의 여정 속에서도 일상의 물음은 쏟아졌다. 그의 모습이 내 모습 같아 움찔했다.

죽음에 임박한 순간은 어떨까. 나에게 죽음은 스스로 선택했을 때에만 직면할 수 있는 먼 이야기일 뿐이었다. 치매에 걸리거나, 병고에 몸부림치며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다고만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는 그랜드 호텔에 가기 전 도착한 낯선 섬에서 한 소년이 이끄는 대로 항상 하고 싶었고 이루고 싶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선형 계단 아래 놓인 침실을 차례대로 밟아 오르며 삶의 윤회,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바라보았다. 나흘의 시간 동안 그동안 하고 싶었고 이루고 싶었던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했다. 돌아보니 세상은 가장 큰 놀이마당이었다.

우리의 혼돈을 억누르는 대신 사랑해야 한다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너의 다름을 사랑하라, 너를 유일한 존재로 만드는 것을 사랑하라

<푸른 세계> p.126

'역할을 생각하지 않고 한계에 이를 때까지 놀면 모든 게 나아지지.' 낯선 섬에서 생활은 어린 시절의 한 토막 같았다. 놀이를 하며 눈을 마주쳤을 때 까르르 터졌던 웃음소리, 솜털 같은 부드러움과 심장의 떨림, 털어주고 닦아주고 안아주며 스쳤던 모든 작고 소중한 순간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는 몸통 소년과 놀이를 하며 다시 살아난 느낌을 갖는다. 내 안의 텅 빈 공간을 채워주며 행복하게 한 것은 누군가와 함께 체온을 나누고 얼굴을 마주할 때였다. 눈앞에 존재하는 너와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을 나누었던 시절의 충만함이 햇살처럼 쏟아졌다. 그렇게 몸을 부대끼며 함께 놀았던 친구의 부재는 삶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걱정만큼 강렬하지 않다는 걸 이해하게 했다. 그는 죽어가는 중이었지만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소년이 데려다준 북쪽 끝 집에는 어쩌면 그가 가장 필요했던 사람이 있었다. 입양되어 볼 수 없었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한 번쯤 보고 싶었던 '누군가'의 엄마 얼굴이었다. 예전의 나는 죽어가는 중이었지만 그녀 품에서 잠자고 있는 아기는 새로운 생명이었다. 그의 깨달음은 한 세대를 이어가는 증표이자 새롭게 태어난 것이었다. 그가 죽음을 선고받고 가고 싶어 했던 ‘그랜드’호텔의 이름처럼 세대를 이어가는 순환의 증표! 한 사람의 삶은 소멸과 탄생을 거듭하며 거대한 세계를 떠받치고 있었다. 그의 죽음을 향한 마지막 여정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 양아버지를 잃었던 곳이었다.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 길은 행복했던 찰나의 순간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죽어가는 자연의 법칙이다. 그래, 삶은 단지 사는 것이다.

나의 푸른색을 찾으러 돌아왔네.

나의 푸른색, 그리고 바람,

나의 광채,

내 삶을 위해 언제나 꿈꾸어온

파괴할 수 없는 빛.

나의 소곤거림, 나의 음악이

여기 남아 있네.

파도의 포말에 너울거리는 나의 첫 마디,

고요한 바다, 심연이 없는 순수한 바다

전설 이전에 태어난 나의 심장.

어쩌면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음은 더 사는 것, 이 바람의 무덤에서,

아직 부르지 못한 내 노래의 숨결로

푸른색을 더욱 짙게, 유랑하라.

나는, 나는 한없이 투명함을 노래하는 시인,

비록 피 흘릴지라도 아직 노래할 수 있네,

나와 함께, 내 목소리로 소생을 원하는

깊은, 선명한 상처를 입은 채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이 가득한 곳.

그렇게 말했더라도 죽는 것, 나는 죽고 싶지 않아,

그렇게 죽더라도 바다는 죽지 않기 때문이지.

저 넘어, 시대를 넘어

나의 목소리, 나의 노래, 너희들과 함께해야만 해.


마음의 통증은 그와 정반대다. 통증이 처음 나타날 때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고통이 얼마나 커질지 전혀 상상할 수 없다. 12

문제란 단지 사람이나 인생에 기대하는 것과 그로부터 실제로 얻는 것 사이의 차이일 뿐이다 15

모든 것의 기본은, 오늘이 죽을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이 전부다. 24

당신이 천년을 살 것처럼 생각하기 원하는 사람들의 규칙을 따르면 당신은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한다. 26

너는 항상 어린아이인 동시에 어른이어야 한다. 상상을 하는 어린아이면서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힘을 끌어내는 어른! 74

하나의 큰 문제가 다른 큰 문제를 해결한다. 117

행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매일이 존재할 뿐이야. 124

생각하면서 문제가 생기고, 춤을 추면서 문제가 해결된다. 127

당신 세대가 없으면 당신은 빨리 꺼져가요. 그들이 당신의 힘이고 당신이 그들에게 한 약속이 당신 자신에게 힘을 주는 원동력이지요. 바람이 약속들을 쓸어간다는 걸 기억하고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늘 피해야 해요. 134

삶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걱정만큼 강렬하지 않다는 걸 이해했다. 죽음은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의식하게 하고 생명을 흐르게 한다. 우리를 열광시키는 모든 것들을 싹 틔운다. 145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하거나 자신이 원치 않은 사람이 되고 나서야 정말로 자신이 누구이고 이 세상으로부터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된다는 것을. 146

두려움의 상처는 애무를 잃어버린 결과다. 155

추구한다는 것은 목표를 필요로 할 뿐 최종 목적지 자체는 아니야. 164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너의 다름을 사랑하라, 너를 유일한 존재로 만드는 것을 사랑하라.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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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 한나 아렌트의 삶과 사상을 그래픽노블로 만나다
켄 크림슈타인 지음, 최지원 옮김, 김선욱 감수 / 더숲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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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다닐 때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다. ‘난 시스템은 믿지만, 사람은 믿지 않는다.’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보다 예측 가능하며 실수하지 않는 컴퓨터 시스템이 효과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읽고 지금껏 내가 가졌던 생각은 효율성과 경제성에만 초점을 맞춘 주입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이 만든 결과물은 예상 밖이지만 전혀 다른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독창성을 갖는다. 생명을 가진 모든 인간은 영속성 있는 자기 세계를 갖고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과 정체성을 말과 행동으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그녀의 예언과 같은 선언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산업혁명은 눈부신 발전을 가져다주었지만, 경제성과 연결되지 않으면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사회 전반적으로 뿌리내리게 했다. 수많은 아이들의 목숨을 가져간 세월호 사건도 누가 얼마나 보상을 받는 게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유대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했던 아이히만의 재판에서 그가 그저 명령에 잘 따른 한 인간일 뿐이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최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도 경제적인 가치가 모든 것에 우선하며 나의 이익이 아니라면 상관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에 익숙해지고 있다. 개인이 초래하는 악의 평범함을 현실로 목도하고 실질적으로 분노했던 정권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 때 그녀의 철학은 새롭게 조명되었다.

그녀에게 3이란 숫자는 특별한 의미다. 삼각뿔 바닥의 세 꼭짓점이 새로운 꼭짓점을 향하는 이야기 방식을 즐겼다. 세 번의 탈출은 어떤 꼭짓점을 향하고 있을까. 첫 번째 탈출은 과거로부터의 유산과, 태어난 곳에서의 탈출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탈출이었지만 불가피한 상황과 협상한 탈출이었다. 두 번째 탈출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함몰된 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망망대해 위에서 역사의 바람(진보)에 따라 떠밀린듯한 탈출이었다. 마지막 탈출은 그녀가 거울처럼 본받고 영향받았던 연인’하이데거'의 그림자에서 탈출이었다. 마지막 탈출은 어쩌면 스스로 굴레를 씌워 옴짝달싹 못했던 자신에 대한 용서였다. 그녀는 세 번의 탈출로 하나의 진리를 주장하는 철학 대신 난간 없는 사유의 세계로 나아간다.

 

 

 

"세상에서 우리를 이끌어 줄 유일한 진리나 이해를 위한 묘책 같은 건 없다. 영광스럽고 결코 끝나지 않는 난장판이 있을 뿐이다.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위한 끝없는 난장판 말이다. "237

격동과 수난의 시대 속, 동시대의 철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인간의 조건>과 <악의 평범함>을 이야기했던 한나 아렌트의 일대기를 그래픽 노블로 읽게 되어 설렜다. 그래픽 노블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책에 총망라되어 있었다. 어려운 철학 얘기부터 끈적끈적한 증권가 지라시 같은 내용까지 예술로 승화하여 멋들어지게 읽을 수 있었다. 뿌연 담배연기처럼 뭉뚱그린 배경 속에 어지럽게 흩어졌다 모아지는 날카롭고 유연한 선들의 조합! 끝날 것 같지 않은 수난을 겪으면서도 자신과 끝없는 대화를 하며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그녀의 행적들이 그림 속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였다. 그녀는 평생 손에서 놓지 못했던 담배의 연기 속 환영처럼 인간이 끝없은 자유를 위한 난장판이 멈추지 않기를 희망했다. 삶은 철저한 사유 속에서 끊임없이 탄생하는 각자의 이야기다. 자기와의 대화 속에서 답을 찾아가는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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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뭐가 좋아? 민트래빗 일본 전국학교도서관협의회 선정 도서
하세가와 사토미 지음, 김숙 옮김 / 민트래빗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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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뭐가 좋아?"

제목 그대로 아이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친구들이 해달라고 했던 일을 가장 먼저 챙깁니다.

“이건 00가 빌려달라고 했고... 00는 로봇이 좋다는데 우리 집에는 없어. 어떡하지?

그리고 00이 생일은 10월인데 뭘 주면 좋아할까?”

“우아~ 우리 00는 친구들 정말 많구나. 그런데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도 좋지만 네가 좋아하는 것을 줘도 괜찮아.”

“안 돼! 00 이는 핑크색 안 좋아해.”

“꼭 친구들이 좋아하는 걸 주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좋아하는 것을 줘도 친구들은 널 좋아한단다.”

"..... 엄마, 고마워...."

아이가 고맙다는 말을 했을 때 입술을 질근 씹고 울음을 꾹 참았습니다. 아이 모습이 꼭 어릴 적 제 모습 같았습니다. 아이는 상대의 기분과 욕구를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모습이 답답합니다. 왜 (엄마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냐고 다그치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늘 제 몫을 챙기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그래서 책 제목을 보자마자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내가 찾던 책이구나! 내가 늘 묻고 싶었던 말!

창밖을 바라보는 오소리. 오소리는 집 앞 뜰에 뭔가 심어서 요리를 하고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꼬마 돼지가 좋아하는 감자를 심으려고 씨감자를 사러 마을로 갑니다. 마침 꼬마 돼지를 만났는데 꼬마 돼지가 감자를 오소리에게 선물로 줍니다. 감자를 가지고 온 오소리는 또 무엇을 심어야 하나 생각합니다. 사과를 좋아하는 다람쥐를 위해 사과를 심기로 합니다. 그런데 다람쥐가 잔뜩 딴 사과를 오소리에게 선물합니다. 감자도 사과도 아니라면 무엇을 심을까 생각이 많아집니다. 토끼가 좋아하는 당근이 제격입니다. 그런데 길가에서 만난 토끼가 당근 밭에서 당근을 쑥 뽑아 줍니다. 오소리는 마지막으로 나무딸기를 좋아하는 고슴도치를 위해 나무딸기를 심으려 합니다. 막 딸기 모종을 심으려 길을 나서려는데 고슴도치와 부딪힙니다. 고슴도치에게는 나무 딸기밭이 없지만 나무딸기를 듬뿍 딸 수 있는 곳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서 딴 나무딸기로 주스를 만들어 오소리에게 줍니다.

“뭐야 뭐야. 왜 그래. 다들. 그러면 내 뜰에 나무딸기도 안 된다는 말이잖아.”

“큰맘 먹고 너희들이 좋아하는 걸 만들려고 했더니 감자고 사과도 당근도 나무딸기도 내 친구들이 좋아하는 건 전부 안 되고, 내 뜰에는 대체 뭘 만들어야 하냐고. 뭘 만들어야 네가 기뻐하겠냐고?”

“그렇다면 오소리야, 넌 뭐가 좋아? 뭐든지 네가 좋아하는 걸 만들면 되잖아. 그리고 말이야, 넌 내가 갖고 온 이 주스를 맛있게 마시면 돼. 그러면 나는 정말 기쁠 거야.”

오소리는 뜰 안에 무엇을 심을까요? 동화를 읽어줄 때 앞뒤 표지를 보여주는데 그게 힌트가 되어 아이는 뒷얘기를 금방 알아맞힙니다. 꼭 친구가 좋아하는 것을 주지 않아도 서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고슴도치가 나무딸기 주스를 마셔주면 좋겠다는 것처럼요. 친구가 좋아하는 것은 내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고슴도치의 나무딸기 주스는 오소리에게 따뜻한 마음과 용기를 전해 줍니다. 때로는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친구에게 큰 기쁨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피터래빗이 연상되는 수채화 그림이 봄의 느낌을 물씬 풍기네요. 내 마음에 자라고 있는 것들을 살펴 주세요. 내 마음에 무엇을 심을지 살펴 주세요. "넌 뭐가 좋아?" 하고 넌지시 물어보면 됩니다. 내 마음이 따뜻하고 풍성해지면 친구들도 좋아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물해도 친구들은 행복합니다. 자신보다 주변에 신경을 쓰는 마음이 강한 소극적인 성향의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동화입니다. “봄이 오면 00은 뭐가 좋아?”, “맛있는 요리를 준비하려고 하는데 뭐가 좋을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자꾸 물어봐 주세요. 대답하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될 테니까요. (*)

블루레빗 인스타그램에서 이벤트를 하네요~

참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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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숲에는 누가 살까 웅진책마을 96
송언 지음, 허지영 그림 / 웅진주니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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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0야~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알지?”

“응”

“무슨 이야기인데?”

“토끼랑 거북이랑 달리기하는데 게으름뱅이 토끼가 잠자다가 거북이가 이겨.”

“그래? 그 뒷얘기 들려줄까?”

“응!”

“달리기 경주에서 이긴 거북이는 으뜸 거북이가 됐대. 빠른 토끼를 이겼으니까~ 그리고 온 동네에 소문이 나서 결혼까지 하게 됐어. 그런데 토끼는 멍청한 토끼가 되었단 말이지. 억울했던 토끼는 으뜸 거북이에게 가서 다시 시합을 하자고 해. 그리고 이번에는 낮잠을 자지 않고 힘껏 달려야지 생각하고 정신 바짝 차리고 연습을 했단다. 그런데 으뜸 거북이는 연습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했지. 으뜸 거북이 색시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 그런데 으뜸 거북이가 귓속말로 뭔가 얘기하니 배꼽을 잡고 웃는 거야. 그리고 달리기 시합하는 날이 되었지. 토끼는 달리기 시작했어. 한참을 달려도 거북이 모습이 보이지 않자 이쯤에서 잠이나 자고 갈까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끝까지 열심히 뛰었지. 그런데 저 멀리 결승선 앞에 거북이가 보이는 거야.”

“진짜?”

“토끼도 궁금해서 거북이에게 물어봐. 그러자 거북이는 네가 헐레벌떡 뛰어올 때, 나는 한순간에 하늘을 날아서 왔지~ 하는 거야.”

“거북이가 어떻게 날아?”

“사실은 결승선에 있던 거북이는 으뜸 거북이 색시였대. 토끼는 원래 눈이 나빠서 잘 안 보이거든. 세 번째 경주도 있는데 그건 한~참 뒤에 했대. 토끼가 너무 충격을 받아서 토끼의 손자와 거북이 손자들이 시합을 하게 된단다.”

마지막 세 번째 경주는 어떻게 되었을까. 원래 이야기는 적당한 때에 끊어야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법이라 내일 밤 나머지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송언 우화집 거북이의 지혜(?)가 탐탁지 않은 분도 있을 것이다. 큰 아이는 대번에 거북이가 정정당당히 시합한 것이 아니라고 얘기했다. 어른의 시선에도 송언 작가가 얘기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고개가 갸우뚱할 것이다. 그러나 토끼와 거북이는 전혀 다른 종이다. 그들의 경주는 시작부터 공정한 게임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동화에서나마 느림보 거북이를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 경주에서 으뜸 거북이 손자는 재치를 넘어 상상을 현실화하며 멋진 승리로 대미를 장식한다. 타고난 능력만 믿고 있던 토끼의 완패였다.

송언 작가는 '2학년 3반 아이들과 털보 선생님' 시리즈 중 <잘한다 오광명>을 읽고 책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를 살펴보며 관심을 가졌던 작가였다. <이야기 숲에는 누가 살까>는 털보 선생님이 주는 이야기 선물 보따리다. 놀이를 좋아하는 아이, 친구가 필요한 아이, 가족을 아끼는 아이,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 상상력이 뛰어난 아이, 새 세상으로 향하는 아이. 털보 선생님 반에도 똑같이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으니 각각의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책을 만든 것 같았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 편에 나오는 메꽃과 나팔꽃 이야기가 좋았다. 메꽃보다 늦게 피는 나팔꽃은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니라, 메꽃이 주목받을 시간을 주며 느긋하게 핀다는 얘기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만약 메꽃보다 나팔꽃이 먼저 핀다고 혀 봐. 훨씬 예쁜 나팔꽃을 본 다음에 어떤 밝은 눈이 있어 덜 예쁜 메꽃을 보고 반기겠는가 말이여.”

집에서도 밖에서도 늘 주목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기다림과 배려의 의미를 먼저 피는 메꽃과 늦게 피는 나팔꽃으로 깨닫게 해 주었다. 식물은 저마다 필 시기를 알고 꽃을 피우는데 사람은 더 크고, 더 빨리 피우려 애쓴다. 사람처럼 고단하게 살아가는 이는 아마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털보 선생님이 곁에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책 내용도 읽고 들려주기에 부담 없는 양이라 한 편을 읽으면 옆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어졌다. 옛이야기는 익숙지 않아 잘 기억나지 않는데 한번 읽었어도 들려주기 어렵지 않은 내용이었다.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는 겨울바람이 아직고 차갑지만 꽃은 꽃망울을 터트리고 봄을 맞이한다. 아이들도 그렇다. 실컷 놀고먹고 자고 이야기하면서도 쑥쑥 자라고 있다. 이제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도 괜찮다는 아이의 말이 귓가에 매미소리처럼 앵앵거린다. 나도 그런 마음을 가질 때가 있었는데. 매일 밤 이야기가 고파 잠들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밤참으로 들려주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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