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되고 싶은 날 비룡소의 그림동화 261
인그리드 샤베르 지음, 라울 니에토 구리디 그림, 김현균 옮김 / 비룡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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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집 짓기를 시작하시겠습니까?!

김춘수 시인의 <꽃>을 그림책으로 본 듯하다. ‘그녀가 나를 보아 주기 전에는 나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보았을 때 나는 그녀에게로 날아가 새가 되었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책 <새가 되고 싶은 날>이다.

나는 학교에 간 날 사랑에 빠졌어요. 바로 첫사랑!

집에서 그 아이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속에는 무언가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조금씩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어요.

그것은 칸델라가 좋아하는 새였지요.

칸델라의 바지와 치마, 머리핀과 공책, 책가방에도 빠지지 않는 새.

나는 새가 되고 싶었답니다.

 

잠잠한 호수에 띄운 물수제비처럼 통통 튀어

새로 가득 찬 칸델라의 마음에 한 마리 새가 되고 싶었어요.

칸델라가 무언가 유심히 보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새 일 테니까요!

나는 주저 없이 새가 되었어요.

이미 예고한 대로 말이죠. 

 

갑자기 새가 된 나를 보고

친구들은 웅성웅성 킥킥대며 웃었지만

상관없어요.

내 몸짓이 그저 뒤뚱거리는 얼간이처럼 보여도

괜찮아요.

비에 흠뻑 젖어 개털 냄새가 나도

좋아요.

나는 칸델라가 좋아하는

새가 되었으니까요.

깃털이 다 빠져버릴 때까지

칸델라의 눈에 띄지 못했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지 않았어요.

언젠가 새가 된 나를

볼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그녀가 날 봤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김춘수 시인의 꽃과 함께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았을 때 받았던 책 <꼬마돼지 레옹이 사랑에 빠졌어요>가 생각났다. 꼬마돼지 레옹은 예쁜 암탉 꼬꼬를 좋아해 어떻게 하면 꼬꼬의 눈에 띌 수 있을까 고민하다 친구들에게 조언을 받는다. 목청껏 노래를 불러주라는 수탉, 춤이면 다 된다는 토끼, 몸단장을 열심히 하라는 칠면조, 힘자랑하라는 황소, 멋지게 다이빙하라는 오리. 친구들의 조언대로 이리저리 노력해도 꼬꼬의 마음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레옹과 친구 가스통이 진흙에서 신나게 놀고 있으니 친구들도 오고, “레옹, 너랑 같이 노니까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 우리 앞으로도 같이 놀자”며 어느덧 꼬꼬도 놀러와 있었다. 레옹이 친구들에게 묻기 전에 꼬꼬를 좀 더 살펴봤다면 조금 더 일찍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새를 좋아하는 칸델라를 위해 새가 되어 기다린 주인공 ‘나’처럼.

라울 니에토 구리디의 그림은 사랑이 시작될 때 만들어진 틀은 바라보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틀이 부서지기 전에 칸델라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수많은 틀을 만들었다 부수었지만 만나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다. 내 사랑은 몸짓에 지나지 않거나 비 맞은 개털 냄새에서 끝나기 일쑤였다. 주인공 ‘나’의 몸짓에 새의 날개를 달아 날게 해준 칸델라의 따뜻함이 뼛속까지 새겨진 개털 냄새를 훌훌 털어 날려 보내 주었다. 사랑의 집 짓기를 다시 하고 싶어지는 책 <새가 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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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와 맥스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60
데이비드 위즈너 지음, 박보영 옮김 / 시공주니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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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다'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언뜻 생각해 보면 책 표지 그림처럼 연필과 붓을 가지고 무엇인가 나타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사전을 찾아보니 보다 많은 뜻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지를 떠올려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것도 모두 그린다는 것에 포함된다. <아트와 맥스>는 아서의 그림 그리는 능력을 ‘맥스(Max=Full)’하게 이끌어 '아트(Art)'가 되는 과정을 역동적으로 '그린' 그림책이다.

 

데이비드 위즈너는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를 새롭게 각색한 <아기 돼지 세 마리>로 신선한 충격을 준 작가다. 이야기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이야기를 찾은 돼지들처럼 <아트와 맥스>에서는 자유로운 도마뱀 맥스를 통해 캔버스에서 벗어나 세상을 그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아서 옆에서 자기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하는 맥스! 종알종알 귀찮은 맥스를 떼어버리려 “응... 나를 그려 봐.”라고 말하자 맥스는 아서를 진짜로 그리기 시작한다!

                             

태초에 신이 인간을 만드는 것처럼, 모든 색과 형태를 부숴버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서를 다시 만들어 낸다. 제목처럼 아서의 아트를 맥스 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라고 할까? 아서의 겉껍질이 불꽃놀이처럼 팡팡 터질 때 아이는 환호성을 질렀다. 새롭게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데이비드 위즈너의 책은 유머와 속도감이 만화 영화를 보는 듯하다. 이미지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비주얼 스토리텔링에 관심을 갖다 그림책 작가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저절로 이해된다.

물과 바람으로 색을 쏙 빼놓은 모습은 수채화의 물맛 내는 과정과 비슷하다. 그림을 보면 사람들의 색깔도 투명하게 만들고 싶을 정도로 그럴싸하다. 이제 남아있는 선으로 면을 만들고 새로운 색을 넣으면 아서의 새로운 아트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색의 조합으로 색을 표현한다는 것도 색깔 물총 한 방에 알게 해주다니!! 하지만 역동적으로 전개되다 뚝 끊어져 버린 책의 마지막이 조금 아쉽다. 조금 더 욕심내 '아트'의 세계에 입문한 아서가 움직이는 영상을 만들어 분신을 만드는 것까지 보고 싶어진다.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 설명 없이 단박에 알게 해주는 그림책으로 이만한 그림책이 또 있을까 싶다.

 

그의 책에서 깊이를 느낄 수 없어서 아쉽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의미를 파악해서 넓고 깊게 이해해야 하는 책보다 글을 읽지 않아도 단숨에 알게 되는 책이 좋다. 책을 읽는다는 생각을 잊고 그림에 머물러 있게 해준다. 우리가 그릴 수 있는 것은 보이는 대상만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이미지만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 <아트와 맥스>! 현대 어린이책 미술관에서 그의 전시가 있을 예정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전시 관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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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탄생 비룡소 그래픽노블
안네테 헤어초크 지음, 카트린 클란테 그림, 김영진 옮김 / 비룡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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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2017 독일 청소년 문학상 후보

* 2017 독일 룩스 상

*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덴마크 문화 상

* 핑 상 ‘최고의 어린이 청소년 만화’

타인이 바라보는 나는 알쏭달쏭해.

도대체 알 수 없는 ‘나’라는 존재의 궁금증!

열두 살 비올라는 '존재 없음'에서 '존재 있음'이 될까?

“탁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늘 쓸 데가 있으니까.”

 

이랬다저랬다, 나도 내가 왜 이런지 잘 모른다고 소리치며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알고 싶었던 사춘기. 잘하는 것도 없고, 예쁘지도 않고... 주변 사람들의 평가도 제각각이다. 나에 대해 알기도 벅찬데 별안간 새엄마와 남동생, 또 새아빠가 생기는 복잡한 현실이다. 1학년 때에는 5학년 정도 되면 어른처럼 모두 다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비올라는 오리무중이다.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

 

'고민은 그만! 보이지 않는 내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아무도 내 진짜 모습에 관심이 없는 걸.' 예상대로 멋지게 차려입고 보이는 겉모습에만 집중하니 금방 효과가 나타났다. 비올라는 단숨에 ‘인싸’로 인식된다. 하지만 멋져 보였던 인싸 안에서도 그들과 다른 마음이 꿈틀대며 요동쳤다. 따돌림당하는 아이와 함께 있어주고 싶은 마음의 목소리를 따르면 다시 ‘아싸’의 세상으로 밀려나기에 선택은 늘 갈팡질팡이다. 누군가 나 대신 해답을 준다면 좋을 텐데! 새로 산 풍선이 예쁜 시간은 아주 짧다. 금세 바람이 빠지고 쭈글쭈글 힘이 빠진다. 비올라는 풍선이 날다 바람이 빠져 떨어졌을 때, 쭈글쭈글 못생긴 풍선을 눈여겨보고 쪽지를 읽어 줄 누군가에게 쪽지를 적어 보낸다.

 

‘반짝거리던 반딧불이를 잡아 병에 넣으니 곧 빛을 잃고 죽었어. 난 스스로 자유롭게 빛나야 해.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찾아가고, 내 안의 꿈틀대는 욕망과 광광 거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쿵쾅대는 심장 깊숙한 곳, 그곳엔 또 다른 아이가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어. 이건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야.’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더니 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내가 만약’ 슈퍼 영웅이 된다면! 내가 만약 유명한 가수가 된다면! 또 내가 만약....' 문득 할아버지가 늘 쓸 데가 많은 탁자를 만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누군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해보는 것이었다.

 

껍질 속에서 숨죽여 살던 애벌레는 스스로 걸어 나와야 할 때가 되었어. 껍데기 밖으로 나오면 멋진 나비의 날개가 펼쳐질까? 그리고 지긋지긋한 존재의 물음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껍데기 밖은 완전히 다른 세상일까? 그런데 말이야. 껍데기를 부수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어. 좀 더 모험을 해 봐. 그럼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거야.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 따라 내 모습을 정의 내리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필요할까. 움직일 수 없는 종이 인형에 입힐 수 있는 옷은 모두 같은 자세일 수밖에 없다. 많은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화려하고 멋져 보이지만 나로 살 수 없다. 파티 복장으로 나무 위를 오르는 비올라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껍데기를 뚫고 나온 나비는 또 다른 나비를 만나 인생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나는 늘 새롭게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 또한 늘 쓸 데가 있다. 환영합니다. 당신의 탄생을!

뭘 변화시키고 싶으면 길이나 비켜.

그것만 해도 큰 변화니까.

그다음에도 무언가 하고 싶다면

늘 쓸 데가 많은 탁자를 만들어.

함께 앉아 이야기 나눌 진짜 친구가 찾아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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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등대 비룡소의 그림동화 259
소피 블랙올 지음,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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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 꺼지지 않는 연탄불 아궁이는

삶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해준 마음속 등대였다

"여기예요! 여기예요! 여기 내가 있어요!"

등대 내부 모습을 보니 연탄아궁이가 생각났다. 밤새 태엽을 감고 심지를 다듬어주는 등대지기가 매일 밤 연탄불 꺼뜨리지 않으려 밤잠을 설치는 엄마 같았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풍랑 속에서, 안갯속에서, 꽁꽁 얼어붙은 찬 바람 속에서도 등대불은 꺼지지 않는다. 자명종 없이 새벽녘이면 어김없이 일어났던 엄마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았던 엄마의 바지런함 덕분에 한겨울도 거뜬했다.

연탄불 아궁이는 운동화도 바짝 말려주고, 고구마도 맛있게 구워냈다. 연탄아궁이는 등대지기가 아내에게 보낸 유리병 속 편지처럼 켜켜이 쌓인 기억 속 일기장이었다. 등대가 밤하늘을 비출 때 꺼지지 않고 타던 연탄아궁이가 떠올랐다. 등대지기에게 등대는 아내를 기다리고, 아이가 태어났던 기억의 탑이었을 것이다.

전기로 대체된 등대처럼 연탄아궁이는 보일러로 대체되었다. 연탄불 꺼뜨릴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했던 엄마는 그 후에도 한동안 밤에 일어나서 서성였다. 자신의 손길을 주고 싶은 것처럼. 자동주문 기계는 내게 말을 걸어 주지 않는다. 나와 손잡은 아이의 이름을 묻지도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해 주지도 않는다. 요즘에는 연탄불 꺼뜨리지 않으려 동동거렸던 엄마 덕분에 따뜻한 겨울을 지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없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쓸쓸하다.

위에서 바라본 그림의 구도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한 사람의 인생을 신의 망원경을 빌려 슬쩍 바라본 듯하다. 신은 내게 보여준다.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바다를 여행하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불을 밝히는 한 사람의 인생을. 그리고 등대에서 함께 지냈던 가족의 추억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들만의 것이라는걸. 그들은 등대를 바라보며 그 속에서 서로 웃고 울었던 날들을 생각하겠지. 내가 연탄아궁이를 보며 엄마를 떠올리는 것처럼.

 

책을 읽어주는데 아내가 도착하는 장면에서 아이가 손뼉을 쳤다. 함께 있을 때 행복하다는 것을 아이도 아는 것일까. 이제는 연탄불 걱정을 안 해도 되지만 나는 여전히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으려 했던 엄마의 사랑을 추억하며 그리워한다. 그 시절의 행복은 연탄아궁이 속에 남아있으니까. ‘안녕! 안녕! 안녕, 나의 등대야!’ 하는 인사는 시간의 색을 입혀 단단한 추억의 등대가 될 것이다.

파도 모습이 낯이 익는다 생각했는데 일본 우키요에 판화에서 보던 물결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수채화 물감과 먹을 함께 사용해 수채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음영의 맛이 있었다. 잔잔했다가 휘몰아치듯 일렁이는 파도의 다양한 모습이 꿋꿋이 서 있는 등대와 비교되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늘 변화하는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꿋꿋이 서 있는 추억의 힘일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본다. 꺼지지 않는 연탄불처럼 마음에 오래 남을 책이다.

덧붙임.. 그림이 다른 별도의 겉표지가 따로 제작된 매력적인 책이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인식 라벨 작업을 하면서 보관상의 이유로 겉표지를 없애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잔잔한 파도 속 낮의 등대 모습과 휘몰아치는 파도 속 밤의 등대 모습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 준다. 불빛을 비추는 듯 등대 주변에 세운 제목도 글자 이상의 의미를 비춘다. 아이들이 겉표지를 꼭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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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생쥐 줄리앙
조 토드 스탠튼 지음, 서남희 옮김 / JEI재능교육(재능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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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으면 조금 더 행복해져

혼자 있는 건 편하다.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위험한 적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다. “엄마, 줄리앙의 집으로 가는 길에는 아무도 없어!” 생쥐 줄리앙은 언제나 혼자다. 어느 날, 배고픈 여우가 줄리앙의 땅속 집에 불쑥 얼굴을 들이민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줄리앙을 삼키려 했지만 창문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여우는 줄리앙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 줄리앙도 여우 얼굴을 보며 살 수 없으니 도와주려 한다. 하지만 여우는 구멍에서 나오지 못하고, 둘은 어쩔 수 없이 함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배가 고픈 여우의 눈빛에 마음 약해진 줄리앙은 먹을 것을 나눠주고 함께 이야기하며 누군가 함께 있는 시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튿날, 줄리앙은 숫가락을 지랫대처럼 이용해 여우를 구멍에서 꺼내주고 둘은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나뭇가지를 놓쳐서 원숭이 올빼미에게 딱 걸린 줄리앙!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는 순간 여우가 나타나 줄리앙을 덥석 한 입에 먹어 버린다.

여우에게 먹힌 줄리앙은 어떻게 되었을까. 반전없이 모두의 예상대로 여우는 은혜를 갚는다. 그러나 그들은 금방 친한 친구가 되지 않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 후 여우는 가끔 줄리앙의 집에 와서 저녁을 함께 먹는 친구가 된다. 동물들은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먹고 먹히는 존재다. 처음 여우가 처음 줄리앙을 또록또록 지켜보던 눈빛과 원숭이 올빼미에게 잡아먹힐 뻔한 순간에 지켜보던 눈빛은 변함이 없다. 여우의 마음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간도 보이지 않는 약육강식의 삶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살아남기 위한 경쟁과 생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은 마음에 행복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어울리며 사는 법을 배운다. 아이는 무뚝뚝하게 일자로 그려진 줄리앙의 입이 웃는 모습으로 바뀐 부분을 금방 알아챈다. 으르렁거리던 여우도 웃는다.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새들이 원숭이 올빼미에게 날아가 시끄럽게 하는 통에 낮에 자야 하는 올빼미의 눈은 또록또록하다. 낮잠 못 자는 원숭이올빼미 이야기로 기대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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