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정된 전쟁 -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그레이엄 앨리슨 지음, 정혜윤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1월
평점 :
'아, 일이 이렇게 될 줄 진작 알았더라면."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미용실 아줌마들의 입에 아파트값이 오르내리면 가격이 정점을 찍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요즘 들어 주변 나라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작년 초 초판이 나온 이래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는 그레이엄 엘리슨의 <예정된 전쟁>은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 질서에 도전하며 점점 세력을 넓히고 있는 중국과 그를 견제하려는 미국이 마치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과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저자는 대학교 1학년 때 고대 그리스 과목을 수강하며 투키디데스를 강독하게 된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수십 년 평화로이 공존했던 국가들이 종국에는 파국을 맞는 전쟁을 했다 기록했다. 저자는 신흥세력이 지배 세력에 도전한 16가지 사례에서 12가지가 전쟁과 연결되었다는 것을 근거로 중국의 부상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신흥 세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원치 않은 전쟁으로 귀결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미국과 중국에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한다.
16가지 사례 중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을 보면 강대국과의 전쟁이 늘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신흥 세력의 패권 다툼의 시작과 결과를 토대로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게 만드는 이유는 두려움과 명예, 이해관계라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3부에서는 중국과 미국은 문명의 발생지부터 다른 국가로 이해와 공감이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도 추가로 서술했다. 이러한 사실은 트럼프 정부의 중국에 대한 인식 제고를 강력하게 요구하며 보다 현실적인 관점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미중 무역 협상은 9월에 차관급 회담에서 중국의 농산물 추가 수입과 미국의 관세 부과 연기 등을 논의하고 10월 초 워싱턴에서 장관급 회담을 잠정 합의했다. 5월 초부터 시작된 미중 무역 협상은 트럼프 정부의 추가 관세 예고를 시작으로 중국의 미국산 농산물 수입 거부 및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인상 등의 대응 조치로 험난한 랠리를 하는 중이다. 세계 증시는 미국과 중국의 대응에 따라 출렁이는 양상이며 총만 들지 않았을 뿐 실제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무역 제재 다음 차례는 금융 부분에 대한 추가 제재가 기다리고 있어 보이지 않는 세력 다툼의 긴장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미국도 중국도 아닌 한국에서 왜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가. 수출액 3/4를 중국에 의지하는 경제 구조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북한과의 전쟁 위험성에 대해서는 미국과 안보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정도가 아니라 사소한 빌미를 제공하여 큰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사실 미국이 고립주의를 버리고 유럽에 손 내밀고 아시아 국가들의 지킴이를 자처했던 이유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보호를 감사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의 이해관계를 위한 희생양을 자처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4부 전쟁은 필연적이지 않다를 보면 평화를 열어 줄 12개의 비밀 열쇠를 볼 수 있다. 비밀 열쇠에 근거해 보면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대북관계에 화해 모드를 조성하고 있는 정부의 외교는 매우 적절한 대응이라 볼 수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멀리 바라보며 협상의 통로는 열어 두는 평화 정책이다. 비핵화를 추진하며 화해의 몸짓을 하면서도 자주국방에 힘쓰며 외부의 침략에 대비하는 모습은 이 책의 저자가 강조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하는 방법일 것이다. 작은 전쟁은 없다.
서양 사람의 관점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3부 폭풍 전야 전쟁 시나리오 검토 부분이라 생각한다.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5천 년 역사와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을 인식하고 위험성을 재고하게 된다. 중국 국호의 의미가 하늘과 땅 사이에 유일무이한 나라라는 것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지만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모르는 사실이다. 시진핑은 디보스에서 분별력을 가지고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말했다. 그러나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우주의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 지켜 나갈 것인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생각해 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