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라이어티 - 오쿠다 히데오 스페셜 작품집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단편들의 콜라주로 완성된 기승전결


<남쪽으로 튀어>, <공중그네>의 오쿠다 히데오. 그의 단편과 대담을 엮은 책 <버라이어티>!

일본인 특유의 대놓고 거절하지 못하는(拒絶できない) 성격 때문에 쓴 글들을 엮었다.  '보람'보다는 '체면'이 인간을 괴롭게 한다는 말이 맞겠다.  재미있는 사실은 편집자의 능력인지 짧은 단편들이 만들어 낸 전체적인 메시지가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개별적 특성을 가진 물건들이 만나 멋진 콜라주(collage)를 만든 느낌?!   

이야기의 시작, 서론에 해당하는 <나는 사장이다>와 <매번 고맙습니다>에서는 처음 작가로 등단한 신인 작가의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작가도 글을 써야 먹고사는 1인 기업이다.  흔히 작가라고 하면 근사한 책상과 펜을 들고 글을 쓰는 모습을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은 직업이다.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자신만의 회사를 차린 가즈히로. 
거절하지도, 가격 흥정도 제대로 못하는 그는 기획기사나 잡지에 실릴 단편을 가볍게 거절하지 오쿠다 히데오를 연상시킨다.  두 편에서 중단된 단편 뒤에 곧이어 등장하는 잇세 오가타와의 대담에서는 그동안 작가로서 진짜 표현하고 싶은 것과 독자 혹은 편집자가 원하는 것에 대한 갈등, 그리고 진짜 말하고 싶은 속내를 슬쩍 드러낸다.

누구도 상처 입히고 싶지 않지만 그래서는 물건을 만들 수 없다, 단칼에 베어 내고 용서받을 수는 없지만 그때 생긴 피는 고스란히 내가 받아 내니까 좀 봐줘.

 

 

서론에서 슬쩍 내비친 속내는 전개 부분에 해당하는 <드라이브 인 서머>, <크로아티아 vs 일본>에서 보다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작가의 날 것 그대로의 심정이 읽힌다.  막힌 고속도로에서 우연히 히치하이커를 태우는 것으로 시작된 일련의 사건들에 짜증 나기 시작한 노리오와 그것을 개념치 않는 히로코의 대비, 맥줏집에서 월드컵을 보며 흥분하는 사람과 아무 말이 없는 주인장의 대비는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묘사하며 상황에 따른 스트레스가 신랄하게 전달된다.


 

모든 사람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더부살이 가능>에서 주목받는 큰 사건과 갈등의 중심은 교코 주변에서 일어난다.  이야기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듯 보이는 에이코는 교코 주변에서 서성이며 주변인인 듯 보이지만 결국 교코와 얽힌 관계로 더 큰 갈등을 예고하며 끝을 맺는다.  작가 스스로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야마다 다이치와의 대담은 '모든 사람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라는 명제를 던져주며 지금까지의 단편들에서 고조된 감정과 장면, 사상을 새롭게 전환시킨다.  주목받지 못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작가의 손에서 탄생했던 단편들.  당시에는 울며 겨자 먹기나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에 휩쓸려 써낸 단편들일지라도 얼마 남지 않은 작가의 수명을 소비해가며 써낸 글들이다.  베스트셀러만큼의 가치는 아니더라도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단편들은 인생에 작은 추억이 된다.  각본보다 훌륭하게 연출하고 연기해줘서 더 실력을 얻어 가는 연기자처럼 어쩌면 이마저도 편집자의 기획의도에 떠밀려 오래된 원고를 뒤적거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시대의 주인공이 아니었어도 그 추억을 독자들과 함께 한 번쯤 음미하고 싶은 것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앞으로 16년 정도 남은 작가 인생에서 태어난 작품에 사사로운 정이 없다면 거짓일 테니까.  그리고 그런 삶의 단편 같은 추억들이 작가를 조금씩 성장시킨다.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세븐틴>과 <여름의 앨범>은 설렘과 두려움, 아쉬움이 교차하는 인생의 순간들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존재했던 작지만 가슴 떨리는 아름답던 시기는 조각조각 붙여진 작품에 대미를 장식하며 마지막 여운을 남긴다.  사랑하는 사람과 첫날밤을 가지려고 하는 소녀의 결심과 그것을 바라보는 엄마, 
거추장스러운 보조바퀴를 떼어내고 두발자전거를 타기 위해 노력하는 소년의 작은 시작과 누군가의 끝을 알리는 죽음.  그의 단편들은 씨실과 날실이 되어 인생이라는 커다란 천을 완성해 간다.  '싫어, 싫어' 하면서도 누구나 한 번쯤 넘어야 하는 그때 그 순간들.  과도하게 보람을 찾아야만 하는 특별한 상황은 어쩌면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내게 익숙한 광경이기 때문에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는 그 평범한 일상의 순간.  그 순간들이 삶을 더욱 풍요롭고 다양하게 성장시킨다.  휩쓸리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나도 편집자의 기획과 의도에 맞장구치며 다양한 방식으로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어 버렸다.  내 삶의 버라이어티는 어떻게 엮어가야 할까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오쿠다 히데오의 삶의 조각들 <버라이어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 1.4킬로그램 뇌에 새겨진 당신의 이야기
김대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건명원은 <탁월한 사유의 시선>의 저자 최진식 교수를 통해 알게 된 예술 혁신 학교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도 건명원에서 했던 강의를 엮은 책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인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듯하다 Tvn <어쩌다 어른>에서 뇌과학 박사로 소개된 후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치른 김대식 교수.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이자 건명원의 과학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뇌는 우리의 ''이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은 결국 과학적인 검증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 같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는 아이를 가진다는 사실이 삶의 의미가 된다고 한다. 나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낳는 것이 자연의 숙제이자 숙명인 것이다. 내가 태어난 것은 나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닌데 삶의 의미까지 찾아야 하나? 헬조선 N포 세대에게 지금 한국에 태어난 사실만으로도 회의감과 짜증이 밀려온다. 실제로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을지라도 자신은 그렇다고 굳게 믿고 있는 인간을 설득하는 방법은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가장 설득력을 가진다. 신비한 뇌의 비밀은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마저 사실이 아닐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뇌에 대한 연구를 했던 수많는 과학자들의 실험과 그 결과는 앞으로 나의 뇌를 어떻게 프로그래밍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남겨준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결국 뇌의 다양한 해석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자연이 내준 숙제를 끝낸 지금, 왜 다시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는지에 대해 자문해 볼 수 있었다. 유튜브 강의를 듣고 책을 읽으면 뇌과학이 어떻게 삶의 의미를 갖게 해주는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삶의 해상도에 관심을 가져라

 

 

과거를 정량화하여 현재와 미래를 위한 아이디어로 바꾸는 사고과정을 추론이라고 한다. 인간의 뇌는 그런 추론 능력을 소유하고 있기에 온전한 삶의 기쁨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실험자가 나타날 때마다 곁에서 사라지는 친구들을 본 실험실의 원숭이는 실험자가 자신에게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추론하고 두려워했던 반면에 고양이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인간의 고통스러운 삶은 현재에 머물러 있지 못하는 뇌의 사고 과정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인간의 추론 능력으로 세상은 발전하게 되었고 위험에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양면을 가진 동전처럼 인간은 고통과 결핍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컴퓨터를 사면 컴퓨터 안에 세팅되어 있는 기본 프로그램처럼 고통과 불안이 인간에게 부수적으로 존재하는 부속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보았을 때 느끼는 다양한 감정의 결은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휴대폰이나 카메라의 해상도에만 관심을 갖는 현대인들이 진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삶의 해상도라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이 책을 통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뇌(또는 자아)의 매뉴얼을 살펴보았다. 가전제품을 살 때 어떻게 작동되는지 가장 먼저 살펴보던 것을 우리는 이제야 조금 들춰보게 된 것이다. 우리들 뇌가 예측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아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면 영원불멸의 꿈은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존재는 뇌에서 만들어지므로 뇌의 정보를 읽어(브레인 리딩) 다른 뇌로 심어주면(브레인라이팅) 계속 존재할 수 있다는 가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때때로 내가 하는 모든 행동과 생각들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그러나 몸은 사라져도 머리 이식을 통해 나라는 존재는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은 희망적이고 놀랍고 아름답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며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아름답고 창의적인 삶은 인공지능을 눈앞에 둔 우리 세대의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볼 때면 과학 책 같기도 하고, 삽입된 삽화나 그림을 볼 때면 미술책 같기도 하며, 존재, 의미, 영생, 영원이라는 말들을 보면 철학 책 같기도 하다. 사실 인간의 삶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며 창조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을 관장하는 뇌를 다루는 책에서 그런 것을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자기계발서에서나 내놓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더라도 그 의미와 목적은 판이하게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 왜 과학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과 목적을 가져다준 책. 그리고 무엇보다 예쁜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집 없이도 월세 받는다 - 부동산 투자의 뉴 패러다임, 돈 없이도 월세 부자가 될 수 있다
함께하는 삶 지음 / 예문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셔터맨이 꿈이다.

'아버지, 이번 달 월세는 얼마에요?' 나는 셔터맨이 꿈이다.  남들 눈치 보고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야 하는 직장생활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생 때 3층 건물을 지어 임대 중이다. 원래 1층은 식당을 하셨다.  그런데 재작년이었던가, 전세가가 매매가를 역전하는 시점에 과감히 식당을 정리하고 1층을 리모델링해 전 층을 월세로 돌렸다.  그리고 집 근처 건물 경비를 하고 계신다.  아버지가 받는 월세만 해도 중소기업 직원 월급 정도는 되는 듯하다.  경비 월급과 국민연금까지. 아버지의 기본적인 노후대책은 어느 정도 끝났다.  공돈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월세가 들어오는 것을 보면 부럽다.  그냥 취미생활이나 하면서 여유롭게 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월세 날짜가 기다려지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벌써 월세 낼 날짜야' 하면서 한숨 쉬는 사람이 될 것인가 p.24

연예인들 중에 대출로 아파트를 산 뒤 바로 전세를 주는 방식으로 큰 종잣돈 없이 돈을 번 사람들을 많이 봤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리 돈이 없다고 해도 이미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이라 은행에서 대출받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은행 대출 창구는 갑중에 갑이다. 그런데 저당 잡힐 집도 없이 월세를 받는다?  리스크 제로? 한 달 월급만 투자해서 매달 수입이 보장되는 시스템이 있다고?

저자는
상가 임대나 아파트 전세 주는 방법보다는 적은 수입이지만, 적은 돈으로 시작할 수 있고 꾸준히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으로 월세 받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한국 특유의 전세제도는 은행 금리 인하로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전셋값이 매매가에 육박하는 광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때 광풍처럼 유행했던 경매시장이 재작년부터 월세 시장으로 전환되는 모양새다. 그런데 몇 개 안되는 방을 임대하는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본 경험으로 보면 월세를 받아 원하는 수익률을 달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월세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실과 체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공실은 그야말로 그달 수입을 공치는 일이고, 월세가 체납되면 보증금에서 차감하기는 하겠지만 그만큼 수익 실현 시점이 늦어지기 때문이다.  월세 체납 부분에서 저자는 섣부른 낙관론을 이야기했지만 적은 돈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전대차 부분의 얘기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부분이라 솔깃했다. 하지만 전세권 설정 부분에서는 임대인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집주인들은 전세권 설정을 해주지 않는 편이라 조금 회의적인 생각이다.

임차인을 고객으로 생각하고 손품, 팔품을 팔아야 한다

부동산 관련 일을 하려면 정말 많이 다녀봐야 한다는 것을 경매를 배우며 알게 되었는데 공실 관리도 마찬가지다. 십 년 전 결혼을 하면서 가전 가구를 정리했던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사이트는 여전히 국내 최대 부동산 카페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듯 손품을 팔아야 하는 여러 사이트 중 하나로 등장한다.  예쁘게 치장하고 사람이 많이 있는 사이트에 글을 올려 임차인을 끌어모았던 법은 누구나 알고 있던 방식이라면, 저자는 셰어하우스를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는 사이트를 구축해 예비 임차인을 위한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하겠다.  모든 일들이 그렇겠지만 재테크도 관심 있고 해본 사람이 잘한다. 가계 지출을 개별 통장을 발행해 체크카드로 관리하는 것처럼 월세 관리도 따로 통장을 개설해서 관리하는 방법을 추천했다.  그밖에 월세만 따로 관리하는 사이트도 소개되어 있다.

이제는 쉐어하우스 시대?!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본론, 내가 관심 있는 부분은 '쉐어하우스' 부분이다.  지금 막 부상하는 라이징 스타는 아니지만 지금 시작해도 어느 정도 수익 실현이 가능함을 여러 가지 검색 데이터 결과와 수치로 보여준다.  눈먼 돈이라고 불리는 국가지원정책까지 있다는 사실은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자는 쉐어하우스를 할 수 있는 위치조건과 주택의 형대, 평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수익 실현 모델을 구현할 수 있도록 분석해 놓았다.  일본의 쉐어하우스 같은 경우는 부동산 붕괴 이후 정착이 꽤 잘 된 경우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어차피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N 포 세대에게 미래를 누군가와 함께 '계획' 할 수는 없지만 '공유'한다는 것은 아주 멋진 생각이 아닌가.  그러나 개인적으로 한국인의 특성상 쉐어하우스를 한다는 것에 아직까지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그렇지만 다양한 경로로 유입되는 외국인들과 다문화 정책으로 쉐어하우스에 대한 필요성은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월세 맞벌이 시스템'이라고 했지만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 시작할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이며 그렇게 시작하는 누군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평소 자신이 부동산에 안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필독할 만하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내 독서는 딱히 읽는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P. 10

35년 동안 지하에서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하는 한탸. 그는 수백 톤의 폐지 속에서 그만의 눈으로 가치 있는 책의 소리를 듣고 모습을 가려낸다. '태양만이 흑점을 지닐 권리가 있다'라는 문장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첫 장. 태양만이 흑점을 지닐 권리가 있다는 말은 '생각하는' 인간만이 의미 있는 문자로 표현된 책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태양 내부의 격동으로 거대한 자장 고리가 형성됐다 사라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흑점.  태양 내부에 자장 고리가 생성되지 않는다면 흑점은 점점 감소할 것이다. 인간이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책은 필요성을 상실하고 점점 소멸할 것이다.  세상에 쌓여가는 폐지는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는 세상의 이념, 생각, 관념들이다.  쥐들만 들끓는 아무도 없는 지하실, 그는 그런 생각들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압축기에 넣어 가공한다.  그리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지식들의 종말을 지켜본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의 소멸을 위해 일하며 그것을 지켜보는 심정은 어떠할까.  그는 자신만의 공간에 은밀하게 숨겨놓은 책들을 은퇴 후 압축기에 넣어 자신만의 꾸러미를 만드는 꿈을 꾼다.  그래도 그때는 희망이 있었다.  

사람에게서 남는 건 성냥 한 갑을 만들 만큼의 인과, 사형수 한 명을 목매달 못 정도 되는 철이 전부다. p. 25

세상이 변했다.  이제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게 되었다.  더 이상 세계는 다양한 지식 따위는 관심이 없다.  압축기는 거대해지고 한탸처럼 책을 선별하는 사람도 없다.  순식간에 책들은 의미 없는 육면체로 재빠르게 압축된다.  사랑하는 것들이 아무 의미 없는 종말을 맞이하는 순간을 묵도한 절망에 빠진 사내.  언젠가 자신의 책을 압축해 꾸러미로 만들고 싶어 했던 사내의 작은 소망은 사라졌다.  물을 뿌려 되직한 하나의 종이죽처럼 되어버린, 시끄러운 쥐들로 들끓던 지하실은 더 이상 그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새로운 곳으로 가야 한다. 잉크로 얼룩진 폐지가 아닌 백지를 다루는 곳.  더 이상 무엇을 발견할 수 없는 세대를 이야기했던 장강명 작가의 표백세대처럼 백지를 다루는 곳은 생각하기를 포기하는 것, 그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영원과 무한을 추구한 돈키호테 같은 한탸.  나만의 책 꾸러미를 만들며 의미를 찾아 발버둥 치는 내 모습은 또 다른 한탸다.  밥을 먹듯 책을 읽고 똥이든 거름이든 무엇이든 결과를 만들어 내는.  옮긴이는 '연민'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나자마자 엄마 품을 파고들어 젖을 무는 아이처럼 본능적인 지에 대한 사랑, 앎에 대한 욕망만이 어제와 같은 내일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닐까.  조금씩 아껴가며 갉아먹듯 읽은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첫번째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 - 과학적 사고의 탄생
카를로 로벨리 지음, 이희정 옮김 / 푸른지식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아낙시만드로스는 공룡이 아니다

<모든 순간의 물리학>으로 '제2의 스티븐 호킹'으로 평가받는 카를로 로벨리.  그가 다시 조명한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만드로스는 공룡이 아니다'라는 경향신문 [책과 삶] 칼럼의 첫 문장을 보고 혼자 배꼽을 쥐며 웃었다.  그렇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새로운 공룡 이름이 아니다.  그는 신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신비적 세계관으로부터 과학적 사고로의 전환을 꾀한 자연주의 과학자이다.

근현대의 과학을 뒤엎은 아인슈타인, 그가 시작한 과학 혁명의 의미
    

빛이 에너지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는 광양자설, 물질이 원자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브라운운동의 이론, 물리적 시공간에 대한 특수 상대성 이론, 광전 효과에 관한 연구로 노벨물리학 상 수상,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성을 발견하여 원자 폭탄의 가능성을 예언한 아인슈타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물, 흙, 공기, 불이라는 4개의 실체로 우주가 구성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 수많은 과학자들이 측정과 실험을 통해 뉴턴이 운동 법칙으로 정리하였다.  하지만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생각은 세계가 단순히 특정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라플라스의 결정적론 세계관이 잠식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바로 '과학적 사고'의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그러했듯, '세계를 재발견'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을 뒤엎는 재정립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과학은 잔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아낙시만드로스는 해, 달, 별들이 완벽한 원을 그리며 뜨고 지는 모습을 보고 하늘이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그가 생각했던 지구의 모습이 구가 아니라 수레바퀴 모양의 원통형이었다 할지라도 관점을 재정립하고 그것을 발견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이제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보면 아낙시만드로스가 지구가 어떻게 생겼을까 고민하던 모습이 떠오를 것 같다.  과학의 발전을 배에 비유해서 설명한 부분에서 '천공의 섬 라퓨타'가 떠올랐다.  지구라는 행성이 하나의 작은 우주 라면, 하늘에 떠 있는 라퓨타는 작은 지구다.  마지막 장면에서 낙원의 섬 라퓨타를 버리고 동력없이 바람만으로 움직이는 글라이더로 라퓨타를 빠져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홀가분한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과제를 가지고 떠나는 숙연한 모습이었다.  '이제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가 탐구한 세상은 아주 조그만 부분에 불과하다.  

과학의 힘은 확실성 아니라 우리의 무지가 어디까지인지를 날카롭게 인식하는 데서 온다.  과학이 내놓는 대답들이 확정적이어서 믿을 만한 게 아니다.  지식의 기나긴 역사 가운데 한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나은 대답이므로 믿을 만한 것이다.

세계를 '이해하는'것이 과학적 사고의 목적이다

밀레토스는 고대 제국들과 오래된 문화에 가장 열린 도시국가였다.  쉬운 문자 체계는 시민의 참여와 자유로운 토론을 가능하게 하였고 그것은 민주적 사고의 발판이 되었다.  그리스인들이 지구가 천공에 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이유는 그들의 '다양성'에 있었다.  문명들은 만나고 뒤섞여 발달하고 진보한다.  미래는 우리의 자유로운 꿈에서만 태어날 수 있으며, 새로운 미래는 자유로움 속에서 자라난다.  가장 확실해 보이는 것이 틀린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  종교나 신비, 그리고 신을 근거로 삼지 않더라도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불확실한 미지의 세계가 있음을 알고 즐거워하는 것.  과학적 사고는 세계를 이해하는 첫 번째 계단이며, 오늘날 그런 사고를 갖게 해준 첫 번째 과학자, 최초의 과학적 사고를 가진 '과학적 사고의 아버지'로 아낙시만드로스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