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에 깨닫는 주역 - 4상으로 쉽게 이해하는 주역
한수산 외 지음 / 삶과지식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역 혁명> 개정판 <하룻밤에 깨닫는 주역>이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인 동시에 가장 난해한 글로 일컬어지는 주역을 하룻밤만에 깨닫는다니, 눈이 번쩍 뜨이는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주역>은 일반 사람들에게 '점'을 치는 도구쯤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공자가 받들고 주희가 ‘역경(易經)’이라 이름하여 숭상한 이래로 오경의 으뜸으로 손꼽히게 된 '학문'이다. 주역이 점을 치는 도구가 된 것은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역’의 성격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역의 원리에 따라 흉한 기운을 막고 길한 기운을 찾았다. 한대의 학자 정현은 “역에는 세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으니 이간(易簡)이 첫째요, 변역(變易)이 둘째요, 불역(不易)이 셋째다”라고 하였다. 이간이란 알기 쉽고 따르기 쉽다는 뜻이고, 변역이란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뜻이며, 불역은 변하는 것 중에서도 하늘의 높고 땅의 낮음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주역>은 점을 치는 도구를 넘어 한 세계를 아우르는 철학이 담긴 대경대법인 것이다.

주역은 8괘(八卦)와 64괘, 괘사(卦辭)·효사(爻辭)·십익(十翼)으로 되어 있다. 역은 양(陽)과 음(陰)의 이원론으로 이루어진다. 하늘은 양, 땅은 음, 해는 양, 달은 음, 강한 것은 양, 약한 것은 음, 높은 것은 양, 낮은 것은 음 등 상대되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을 양·음 두 가지로 구분하고 천지만물은 그 위치나 생태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 주역의 원리이다. 일반적인 주역의 해석은 8괘가 두 번 겹쳐(8x8) 64괘가 생성되었다고 보는 반면, 4상으로 쉽게 이해하는 주역에서는 강한 것을 양효( ― ) 약한 것을 음효( ­­‥ )로 표현해 4상으로 표현하고, 4상이 세 번 겹쳐(4x4x4) 64괘가 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4상으로 나눠서 설명하는 방법은 엠페도클레스가 주장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지했던 '4원소설'과 묘하게 비슷했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물, 불, 공기, 흙의 4가지 원소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의미의 '4원소설'은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4원소 가변설'로 변형되었는데, 물질의 특유한 성질인 건, 습, 온, 냉이 배합되어 만물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4상의 태양, 소양, 소음, 태음의 성격을 자세히 살펴보면 4원소설과 4기질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는 현재를 이룰 수 있는 기반이며, 미래는 현재의 연장선상이다. 현재의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며 '역'의 의미처럼 늘 변화하고 있다. 선인들은 과거와 현재를 두루 살핌으로써 미래를 예측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현재, 미래의 3가지 모습으로 변화(4x4x4) 하여 하나의 괘를 완성한다는 4상 주역의 64괘는 4상의 양괘가 세 번 연속되는 것을 뜻한다. 기존에 주역 책을 몇 권 보았으나 중간에 읽기를 그만둔 이유는 8괘의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는데 4상으로 나눠서 살펴보니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주역 카드가 있어서 예를 들어 설명해 본다. 올해는 제가 일할 수 있을까요?라는 물음에 아래 사진과 같은 괘가 나왔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주역 타로>

뽑은 괘는 17번 수괘(隨掛)다. 수(隨)는 따르다, 추종하다, 뒤쫓는다는 뜻으로 실력을 쌓아가는 상황에서 행운이 찾아와 실력과 능력 이상으로 대박을 터트리지만, 이후 운의 기운이 사라진다. 엇박자이고 중간의 행운이 미래 행운까지도 가져다 쓴 것으로 볼 수 있다. 재능이 있으면서 자존심이 강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섬으로써 행운과 멀어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p.194

4상의 괘가 세 번 겹치는 모양으로 생각해보면 과거는 ‘소음’의 상태로 실력에 비해 운이 따르지 않아 때를 기다리며 정진에 힘썼고, 실력보다 인정받고 있는 현재 ‘소양’은 드디어 일할 때가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겸손함을 잃지 않아야 하며, 운이 다하여 제자리인 소음의 상태로 돌아가는 미래를 대비해 더욱더 실력 기르기에 정진해야 함을 보여주는 카드라 생각되었는데 책 속의 해석을 보니 비슷했다. 억지로 괘를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4상이 세 번 겹치는 방식으로 이해하니 쉽게 이해되었다.

주역에 관한 책을 읽으려고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한 사람이라면 이 책은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책 판매를 위한 과장된 문구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책을 읽어보니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로 하룻밤에 다 읽을 수 있었고 쉽게 이해되었다.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에도 4괘가 들어가 있다. 우리는 태극을 중심으로 음과 양이 변화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국기로 삼은 민족인 것이다. 점을 치는 것을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에 중점을 두면 미래는 불안한 것이 된다. 그러나 나의 운명의 흐름을 알고 시시각각 일어나는 일을 '순리'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면 불안해하며 운명을 따라가는 삶과는 분명히 다른 삶이 될 것이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그저 눈앞에 있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닌, 내가 선택하고 걸어가는 삶. 하룻밤만에 읽는 주역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줄 것이다. 더 이상 남에게 자신의 인생을 묻지 마라. 각자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은 다르며 그 누구도 내 삶에 정답을 줄 수는 없다. 내 삶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기반이 되어야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삶이 주는 메시지를 제대로 읽고 따라가기만 해도 다행인 것이 인생이다. 어쩌면 모든 학문은 내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주역을 읽으며 올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쁜 소년은 없다
월터 딘 마이어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책담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괜찮은척하지만 괜찮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는 모든 청소년들에게 지지와 응원을"

뉴베리 아너상을 두 번, 코레타 스콧 킹 상을 다섯 번이나 수상한 작가 월터 딘 마이어스의 자전적 회고록 형식의 책이다. 월터는 두 살 때 어머니를 잃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양부모 밑에서 자랐다. 언어 장애로 놀림을 당하며 걸핏하면 싸움을 하고,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열여섯 살 때 학교를 중퇴하고 열일곱 살 때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스무 살 때 사회로 복귀하고 작가의 길을 선택, 한 번도 글을 써서 돈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한 소년은 그렇게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쁜 소년은 없다>는 책 제목은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목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프로그램에는 혈통과 종에 상관없이 다양한 문제를 가진 개들이 등장한다. 한 가지 특이했던 점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던 개들보다 견주에게 더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저마다 각자의 삶을 사는 거라고 해도 먼 과거에 있었던 일, 즉 내력은 언제나 우리에게 영향력을 발휘한다."라고 시작하는 첫 장에서 월터는 자신의 문제가 오롯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항상 무엇인가가 맴돌았다. 상상 속의 삶, 내가 읽은 책에서 나온 세상이었다. 책을 읽고 있으면 일종의 안도감이 느껴졌다. 책을 몰랐을 때는 경험한 적 없는 감정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무조건 뭔가로 메우려고 덤벼들었던 빈 공간을 이제는 책이 채워 주었다. p57

월터는 온갖 문제를 일으키는 소년이었다. 흑인의 주거지로 분류된 '할렘'에서 자란 월터에게 매를 맞고 때리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인종 간의 차별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히며 자라는 모습은 요즘 아이들이 경제적 차이에 따라 차별에 익숙해지는 것과 비슷했다. 절대로 백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인종과는 상관없는 존재가 되고 싶었고, 검둥이와 결부시키지 않으려 일부러 관련 책을 읽지 않았던 월터의 이유 있는 방황이 공감되었다. 청소년기의 방황은 기존의 나를 거부하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고 싶은 열망에서 시작된다. 월터는 아빠, 엄마처럼 백인들의 공간을 청소하는 예정된 '검둥이'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청소년기의 방황 속에 그를 지켜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그의 현재의 겉모습보다 미래의 모습을 보고 지지해 주었던 주변 사람들이었다. 월터의 엄마는 글을 읽고 싶은 욕망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월터의 거짓말과 장난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믿음으로 그를 기다려 준다. 아버지는 삶에서 뭔가 얻어 내고 싶다면 스스로 구해야 한다는 말로 현실감각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해준다. 레셔 선생님은 말하기 교정 치료를 받게 해주고, 무슨 일이든 책임지는 연습을 하게 한다. 따라야 할 계율만 지키면 천국행이 보장될 것이라 생각했던 천진한 소년 월터는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자신이 사실은 세상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천천히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의 곁에서 묵묵히 그를 지켜봐 준 사람들 덕분에 버텨낼 수 있었다.

내 안의 무언가는 싸움이라는 것에 끌렸다. 삼대일의 싸움이라든가, 상대가 체인을 들었다든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싸울 때 느낌이 중요했다. 싸움을 시작하면 나를 집어삼킬 것 같던 무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특별한 삶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삶에는 사고와 사람이 있어야 했고 사람은 사고를 받아들여 힘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하루하루 고립되어 갈수록, 그런 삶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내 존재라는 대로에서 한쪽으로 비켜서 있는 느낌이었다. 쇼윈도 너머로 좋은 삶이 보이는데 들어가는 문을 찾을 수 없었다. 유리창을 깨면 환영은 못 받지만 적어도 내가 거기 있다는 것은 알릴 수 있었다. p137

애초에 자신을 반기지 않는 사회라는 것을 적시했을 때 아이들은 미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애써 괜찮다고 말하고 있지만 전혀 괜찮지 않은 상황과 이상에 맞지 않는 세상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까지 방황하며 군대에 자진 입대하고 방황하는 모습이 걱정되면서도 그의 무모함이 한없이 부러웠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다시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계기였다. "상황이 어찌 되든, 글은 계속 써라."라고 말해 주었던 국어선생님 말 한마디가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누군가의 지지와 응원은 언젠가 그 빛을 발하게 된다. 연일 말썽을 피우고 거짓말을 일삼는 아이를 책망 없이 기다려 준 엄마와 그의 주변에서 그를 이끌어 주었던 많은 사람들의 말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날 가슴에서 피어나는 순간이 꼭 찾아온다는 것을 월터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수많은 위인전을 읽으며 그들과 비슷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녹록지 않은 현실의 벽에 좌절하며 자랄수록 꿈은 현실에 맞춰 변형된다. 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는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월터는 글을 쓰며 현실 세계에서는 존중받을 수 없었던 자신을 존중하게 된다. 작가 월터 딘 마이어스의 자전적 소설 <나쁜 소년은 없다>는 방황하는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내가 선택한 일들이 모여 삶이 되듯, 나를 떠나서는 어떤 글도 쓰지 못한다. 삶이 주는 경험에서 나는 무엇을 찾을 것인가. 대체로 멋진 여정이었다는 마지막 장을 보니 힘겨워 보이기만 했던 그의 인생도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분명한 사실은 좋은 말들은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 힘을 발휘한다는 것과 좋은 것을 선택하려고 노력하면 삶은 정말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덧붙임>> 중간중간 월터가 어릴 때 읽었던 책 목록이 나오는데 <작은 아씨들>을 최악으로 꼽는 걸 보니 남자아이들의 세계는 여자아이들과는 또 다른 모양이다. 그가 읽었던 책 목록을 보는 재미도 꽤나 쏠쏠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한 아이 옆에 또 이상한 아이 - 떠드는 아이들 2 노란 잠수함 4
송미경 지음, 조미자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알아요. 우리 반에는 이상한 아이들만 모였으니까요. p.82

"별별 이상한 사람들이 다 모여서 살고 있어서 더욱 재미있는 지구별"

"엄마, 쟤 좀 이상한 것 같아."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는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쟤는 더럽게 코딱지를 파서 먹어. 또 얘는 파는 절대로 먹지 않고."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면 특별히 이상한 행동이 아닌데도 아이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너도 당근만 빼고 먹잖아? 엄마가 듣기에는 다른 애들이 보기에 너도 만만찮을 것 같은데?"라고 말하니 금세 입이 쌜쭉해져서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상한 아이 옆에 또 이상한 아이>는 자신과 달라서 이상하게 보이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유리'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 하는 언니와 자기를 괴롭힐 궁리만 하는 남동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리는 이모네 늦둥이 딸 시하와 같은 달에 태어나고 함께 자라 뭐든지 시하와 함께 한다. 그런데 늘 자신만 쫓아다니는 시하 때문에 학교에서 자유롭게 놀지 못하게 되자, 쉬는 시간만 되면 자신의 근처를 맴돌고 껌 종이 구길 때 내는 작은 소리로 웃는 시하를 모른체하고 싶은 때가 점점 많아진다. 또 한가지 고민은 학교 입학식 날 도움을 준 우성이를 좋아하기로 결심했는데, 우성이는 소꿉놀이를 좋아해서 쉬는 시간마다  소꿉놀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2학년 때도 우성이와 같은 반이 되었지만 인형놀이를 좋아하는 우성이와 시하 때문에 인형놀이 노예가 된 유리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우성이는 다정하게 말하며 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유리는 그렇게 놀기가 싫다. 간신히 우성이의 좋은 점을 생각하며 그 순간을 견뎌 보지만 유리는 점점 착하고 잘생긴 우성이가 싫어지고 같이 놀면 놀수록 기분이 나빠진다. 하기 싫은 인형놀이를 해야 하는 쉬는 시간보다 수업 시간이 기다려지는 이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유리는 아프다고 보건실에 누워버릴까 하고 생각하거나, 우성이가 전학을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성이 덕분에 훌륭한 배우가 될지도 모른다. 기쁘지도 않은데 상냥한 말투와 표정 짓는 법을 익혀 버렸기 때문이다. p.38"


곤드레 선생님은 유리가 영어를 못 알아듣는 줄 알면서도 영어 잘하는 애들을 놔두고 언제나 유리에게 말을 건다. 서로 다른 생각과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내뱉는 말은 영어 선생님과 나누는 대화와 같다. "What's your name?"이라고 말했는데 상대는 "Thank you"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영어 선생님은 언젠가는 말이 통하는 날을 희망한다는 듯 전혀 다른 대답을 하는 유리에게 자꾸 말을 건다. 시하와 우성이 때문에 훌륭한 배우가 되어가는 유리 입장이었으면 차라리 상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일부러 상대에게 맞추려는 마음을 내기 위해 힘들이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함께 어울려 지내는 것은 아이들 세계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유리에게는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죄다 이상하게 보인다. 간섭하기 좋아하는 이현빈, 언제나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는 영혜. 하지만 선생님이 뒤를 봤다는 이유로 뒤로 나가 서 있으라고 했을 때 영혜가 창밖을 보며 한숨을 쉬는 이유를 이해하듯 살짝 비스듬히 들여다보면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찾아내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한다. 전학 갔으면 했던 우성이가 실제로 전학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듯 슬퍼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형 놀이는 싫었지만 우성이는 지우개가 없을 때 선뜻 지우개를 반으로 잘라 빌려주고, 싫어하는 반찬도 먹어주고, 화장실에서 휴지도 가져다준 좋은 친구였던 것이다.

유리네 교실에는 알 수 없는 일만 일어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처럼. 개성은 '나눌 수 없는 것(indivisible)'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체로 보았을 때 다른 것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개성을 갖고 있다. <이상한 아이 옆에 또 이상한 아이>를 보며 유리의 눈에 비친 아이들의 모습이 비단 아이들만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 씹어 먹는 아이>에서는 다소 무겁고 숨길 수밖에 없었던 각자의 개성이 학교생활로 옮겨지면서 가볍고 산뜻한 이야기로 펼쳐진 듯하다. 조금 더 연기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차이가 있을 뿐 어른들 세상도 마찬가지다. 자기답게 웃고, 자기답게 침묵하고, 자기답게 투덜거리는 아이들 모습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게 되고 그 속에서 또 다른 나와 만난다. 별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기에 더욱 재미있는 지구별 속에서 아이들이 자신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힘을 갖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뇌는 춤추고 싶다 - 좋은 리듬을 만드는 춤의 과학
장동선.줄리아 크리스텐슨 지음, 염정용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들이 기어갈 때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기 시작하지만 누워있던 아이가 기어가기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불완전한 다리의 흔들림에 따라 머리도 함께 흔들린다는 것이다. 기어갈 때 머리가 규칙적으로 흔들리면서 뇌가 발달하기에 아기에게 기어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뇌는 춤추고 싶다>라는 제목을 봤을 때 열심히 바닥을 기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기기 시작한 것이 춤을 추기 위한 워밍업 같았다고 할까.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장동선 작가는 디제잉을 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알려진 사람이다. 최근에는 안쓸신잡에서 뇌과학자로 얼굴이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전작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에서 개개인의 뇌 속에는 타인, 즉 '사회적 뇌'를 갖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연구한다고 했다. 개인의 뇌는 온전히 개인의 것이 아닌, 주변 사람들과 상호 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었다. <뇌는 춤추고 싶다>라는 책 제목과 표지를 바라본 순간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는 책 제목이 동시에 연상되었다. 서로 다른 색깔로 움직이고 있는 다리는 신경전달 물질을 가진 뉴런의 가지돌기처럼 보였고 그것은 춤으로 융합된 하나의 뇌처럼 보였다.

 
책 내용은 온통 춤에 대한 찬양으로 도배되어 있다. 뇌과학자가 왜 춤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모든 뇌의 행복이 '리듬'에 있기 때문이다. 서로 함께 하기를 원하지만 또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수많은 뇌를 가진 사람들의 관계에 윤활유가 되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춤이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할지가 중요해져서 부끄러움 속에 감춰버린 숨겨진 내면의 리듬을 찾는 유일한 비법이 바로 '춤'을 추는 것이다. 저자는 삶 속에서 좋은 리듬을 만들고 행복해지기 위해 춤추기를 강력하게 권하고 있었다.

 
호두를 쥐는 사람의 움직임만을 보고도 원숭이의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되었다면 움직이는 누군가를 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신경세포는 활성화될 수 있다. "당신의 몸동작은 당신의 기분이 어떤지를 나에게 보여 준다. 나의 뇌가 당신의 상태를 내 몸속에 반영해서 보여 주고, 그 때문에 나는 당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p.86" 내 몸을 움직이는 것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며, 움직이는 상대의 몸을 바라보며 상대를 이해하려는 뇌의 움직임은 뇌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한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이다.

아이와 엄마의 따뜻한 접촉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신뢰하는 틀을 제공한다. 그리고 사랑이 깃든 모든 신체 접촉은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여러 물질들을 발산하도록 해 준다. 사회적 유대를 촉진하고, 기분을 좋게 해 주고, 면역 기능을 높여주는 물질들은 오직 춤을 통한 신체 접촉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춤은 생명의 묘약이자 생명수인 것이다.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위해 불로초를 찾아 나섰는데 저자의 춤에 대한 예찬을 읽고 나니 당장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몸 따로 음악 따로라도 춤을 춰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쓸쓸하고 무기력한 일상이라면 당장 춤을 추러 나가라.

 
책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줌바댄스를 배웠던 적이 있다. 그야말로 첫 수업은 혼돈의 도가니였다. 머리에서 생각하고 상상하던 동작들은 무참히 거울 속에서 산산이 부서져 사라졌다. 그렇지만 몸치 중에 몸치도 차차 리듬에 익숙해지게 되었고 슬슬 리듬을 타게 되었다. 리듬에 익숙해지고 음악에 따라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게 되었을 때 거울 속 나는 예전의 나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심장이 일정한 리듬으로 뛰고, 숨을 내쉬고 들이쉬며 서서히 몸의 감정을 추스르고 다른 사람의 호흡을 주시하는 모든 활동은 뇌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연결 회로를 불러온다고 한다.  독서, 십자말풀이, 카드놀이, 악기 연주와 비교했을 때 오직 춤만이 치매를 효과적으로 막아 주었다고 하니 어찌 춤추지 않을 수 있을까.

"감정을 움직임으로 바꾸는 법을 많이 배울수록 다른 사람의 움직임에 포함된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더 정교하게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p.81"라는 말은 자신의 몸이 감정에 충실해지면 타인의 몸에서 풍기는 감정을 잘 인식할 수 있음을 뜻한다. 책 속의 다양한 사례에서 춤을 추는 것은 몸이 감정에 충실해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임이 분명하며, 춤을 통해 공감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책에는 내게 맞는 춤을 고르는 법부터 다양한 춤의 종류까지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제대로 리듬감을 익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게 맞는 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내게 맞는 춤을 선택하는 것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고 나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당신! 지금 당장 춤을 추기 시작하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문학 콘서트 (개정증보판) - 우리가 살면서 한 번은 꼭 읽어야 할 천문학 이야기
이광식 지음 / 더숲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K-pop 열풍의 주인공 방탄소년단의 <DNA> 뮤직비디오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우주의 초신성 사진이 그룹 멤버의 눈으로 들어가는 인트로가 인상적이었다. 1572년 카시오페이아자리에 출현한 초신성은 항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관념에 충격을 주며 등장했다. 당시 사람들에게 새로운 별의 등장과 소멸은 큰 충격이었다고 했다. 방탄소년단의 등장은 새로운 별의 등장, 초신성의 등장과 같은 것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튀코를 최고의 전문가 반열에 올려놓은 초신성은 신성이 아니었다고 한다. 늙은 별의 암종, 연료를 다 태우고 나면 더 이상 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게 되어 내부의 압력과 중력의 균형이 무너짐으로써 급격한 중력 붕괴를 일으켜 대폭발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이때 내뿜는 빛은 온 은하가 내는 빛보다 더 밝다고 했다. 새로운 별의 등장인 줄 알았는데 암종이었다니 실망하려는 순간, 책 속의 문장은 우주의 법칙에 따라 또 다른 세계가 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장대하고 찬란하며 격렬한 별의 여정은 초신성이 최후를 장식하면서 우주공간으로 뿜어낸 별의 잔해는 성간물질이 되어 떠돌다가 다시 같은 경로를 밟아 별로 환생하기를 거듭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원소들 곧, 피 속의 철, 이빨 속의 칼슘, DNA의 질소, 갑상선의 요오드 등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는 모두 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그대로 실화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의 개수는 9475.41 mol이다. 그리고 체중의 10%는 빅뱅 우주에서 만들어진 수소이고, 나머지 90%는 적색거성에서 만들어진 산소, 탄소, 질소, , 철 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버이 별에게서 몸을 받아 태어난 별의 자녀들인 것이다. 우리는 메이드 인 스타인 셈이다." - <천문학 콘서트> 인간은 별의 자녀들이다 p. 270

첫눈에 널 알아보게 됐어/서롤 불러왔던 것처럼/내 혈관 속 DNA가 말해 줘/내가 찾아 헤매던 너라는 걸/우리 만남은 수학의 공식/종교의 율법 우주의 섭리/내게 주어진 운명의 증거/너는 내 꿈의 출처/Take it take it/너에게 내민 내 손은 정해진 숙명/걱정하지 마 love/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니까/우린 완전 달라 baby/운명을 찾아낸 둘이니까/우주가 생긴 그날부터 계속/무한의 세기를 넘어서 계속/우린 전생에도 아마 다음 생에도/영원히 함께니까/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니까/운명을 찾아낸 둘이니까/DNA -방탄소년단 <DNA>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은 우주에 대한 인류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근대과학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무한하고 광활한 우주 속에 티끌 같은 존재로 태어난 개인의 운명은 우주의 법칙과 전혀 무관하지 않았다. 이 세계 안에 우연이란 것은 없었다. 방탄소년단이 노래한 DNA는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신의 사랑'을 넘어서 나라는 존재 의미를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갈릴레오는 "성경은 하늘에 어떻게 가는지를 말해줄 뿐, 하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p.111"라고 했다. "뉴턴의 중력 법칙은 우주 어디에서나 성립하는 보편 법칙이다. 뉴턴은 이 법칙 하나로 하늘과 땅을 통합한 것이다. 우주 안의 만물은 이 공식으로 서로 감응한다. ''라는 존재도 온 우주의 만물과 서로 중력을 미치고 있다. 우리 집 마당에 사과 한 알이 떨어져도 온 우주가 그 사실을 아로 감응한다는 말이다. p.132"  이처럼 <천문학 콘서트> 속에는 문명사 6천 년 만에 비물질적이며 완전하고 불변하는 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우주를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된 천문학자들의 모습이 가득 담겨있었다.

허셜은 최초로 이 우주가 진화의 한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맨눈으로 바라본 하늘에 지금도 볼 수 있는 수없이 반짝이는 별들. 영원히 그 자리에서 빛날 것 같은 별들도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소멸하게 된다. 지금의 이 세계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칸트의 성운설에 따르면 공간에 채워진 원소들은 서로를 움직이게 하고 형태를 이루려고 분투하며, 밀도가 가벼운 원소들은 끊임없이 밀도가 높은 원소들 주위로 몰려들어 형태를 짓는다고 했다. 무한할 것 같았던 우주의 한계와 우주공간을 채우고 있는 천체들의 움직임은 인간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코스모스(조화)'를 추구하는 우주의 아름다움을 인간은 본능적으로 쫓아 닮아가고 있었다.

우주는 공간뿐 아니라 시간까지 포함되어 있는 다차원적인 공간이다. 인간은 성간물질이 되어 떠돌다 생성되는 별처럼 우주의 성분을 그대로 갖고 태어났다. 방탄소년단이 누리는 인기는 그들의 노래 가사처럼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 우주의 신비 속에 태어난 소중한 존재들임을 상기시켜주니까. 우리가 우주를 사색하는 것은, 인간이 우주 속에서 얼마나 티끌 같은 존재인가를 깊이 자각하고, 장구한 시간과 광막한 공간 속에서 자아의 위치를 찾아내는 분별력과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다.'라는 저자의 서문은 장황하고 어렵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신비로운 우주의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태어난 소중한 존재다. <천문학 콘서트>는 보이지 않는 신의 사랑보다 현실적이며, 실증적이고, 구체적으로 인간과 우주의 상호 연관성을 설명해 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며,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그대로 실화라는 사실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