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정석
장시영 지음 / 비얀드 나리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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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년마다 다이어리 결심 항목에 '영어 공부'가 빠졌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회화가 아니라 동화 원문을 읽어보고 싶어 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솝우화 <The Man, the Boy, and the Donkey>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자연스럽게 해석이 되나요? "Please all, and you will please none." (모든 걸 가르쳐주세요, 아니면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말던가) 동화 정도는 읽을 수 있는 수준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었습니다. 단순한 구조의 문장인데 해석을 보지 않으면 알쏭달쏭 확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정석'대로 영어를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가 영어를 배우려면 꼭 사는 책이 있었습니다. 바로 <Basic Grammer in use>입니다. 문법을 위한 문법 '성문 기본 영어'에서 생활 영어 문법으로 들어가는 신세계였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다만 자세한 해설이 없어서 예문을 통해 '느낌적 느낌'으로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왕초보가 영어의 기본을 배우려면 이 책만 한 교재가 없다는 생각은 변함없었지요. 그런데 독학으로 공부했었기 때문에 늘 내가 이해한 내용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해 줄 해결사가 이 책 <영어의 정석>입니다.

 

 

기초 편 첫 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영어의 문장은 주어로부터 가장 가까운 순으로 확장해 나간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그렇게 이해하니 '조동사'라는 말보다 주어의 심리적인 마음 상태를 나타낸다는 말이 훨씬 이해하기 쉽습니다. 영어 학원에 다니는 초등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문법 용어입니다. 영어 문장 구성의 일정한 방식을 알려주고 확장하는 법을 말해주니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아이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한 설명과 예문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영어 어순은 원어민의 사고를 보여줍니다. 어순 그대로, 주어로부터 주어의 마음, 행위, 행위가 영향을 미치는 대상을 그대로 읽어내는 방식을 영어의 정석을 가르쳐줍니다.

The Wizard of OZ>에 나오는 대화문입니다. 마법사에게 각자의 소원을 얘기하는 부분입니다.

"I'd like a brain," said the scarecrow.-'뇌를 가지고 싶어요." 허수아비가 말했어요.

"I'd like a heart," said the tin man.-'전 심장을 가지고 싶어요." 깡통 남자가 말했어요.

"And I'd like some courage," said the lion.-'그리고 전 용기를 가지고 싶어요." 사자가 말했어요.

"And what about you?" the Wizard asked Dorothy. "What do you want?"

-"그리고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마법사가 도로시에게 물어봤어요. "뭘 원하니?"

"I just want to go home to Kansas," said Dorothy.

-"전 그냥 캔자스의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 도로시가 말했어요.

"I will help you," said the Wizard. -"너희들을 도와주겠다." 마법사가 말했어요.

동화 내용을 알고 있으니 대충 봐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기초 편에 나오는 조동사의 의미를 되새겨보면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would like'는 숙어로 '~하고 싶다'라고 외웠기에 해석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왜 마법사는 will을 쓰고 등장인물들은 would를 썼을까? 기초 편 조동사를 보니 will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할 수 있다는 can을 넘어선 느낌적 느낌이랄까요?

 

예전에는 어순을 외우고 단어와 숙어를 외웠다면, <영어의 정석>은 영어를 모국어처럼 쓰기 위한 본능적 느낌을 배운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문법을 시작하는 아이에게도 유용한 책인 것 같습니다. "엄마 조동사가 뭐야?"라고 물었을 때, "주어를 도와주는 동사인데.. 음. 설명하기 어렵네~" 이랬다면, 이 책을 읽고 나면 조동사는 이야기하는 사람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주는 말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눈여겨볼 부분은 전치사 부분의 설명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 것입니다. 영어책으로 꽤 많은 책이 팔렸던 <영어 한 달만 다시 해봐! ENGLISH RE*START>에 나오는 이미지 기법처럼 전치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잉글리시 리스타트에서 뭉뚱그려진 이미지를 더욱 확실하게 짚어줍니다. 집요할 정도로 많은 예문을 들어 전치사의 느낌을 심어주려 노력한 부분이 보입니다. 요약하고 마지막 예문으로 해석이 안되면 돌아가서 다시 읽어보는 구성은 전치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고 있는 듯합니다. 즐겨보던 미드 <House of card>의 뜻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네요.

 

그리고 영문 해석할 때 가장 골치 아프게 만드는 명사절이나 명사구의 기초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어는 주어가 먼저 인식한 사물을 먼저 언급하고 구체적 설명을 뒤에 붙이는 것이다"라는 점을 잊지 않고 시작한다면 헤매지 않고 기본 문장을 구분하기 위한 가지치기를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좋은 영어 교재가 많이 나와 있지만 참 어렵게 배웠던 기억이 나서 자세한 설명을 읽다 보면 감동이 밀려옵니다.

<심화 편>은 조동사의 내용이 첨부되고 일반적인 문법 교재에서 보던 공식들이 많이 보입니다. 기본 문장의 형식을 알아야 내용이 확 들어온다는 것은 진리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다 알고 있다고 해도 기본 편을 정독하시기를 권합니다. 뒤에 나오는 현재분사나 과거분사도 결국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문법서라고 보기에는 너무 좋은 반질거리는 종이 재질감입니다. 형광펜이 미끄러지듯 그려지고 볼펜 필기감이 좋지 않네요. 양장본으로 꾸민 멋진 표지와 맞춘 것 같지만 내지의 폰트가 획일적인 점도 아쉽습니다. 예문을 설명하는 부분은 귀여운 글씨체로 변화를 주었다면 생동감이 들어 집중력이 향상되었을 것 같습니다.

늘 영어 공부를 결심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많기에 영어 기본서는 쏟아지듯 출판되고 있습니다. 흥미 위주로 만들어졌거나 기본 설명이 부족한 책들이 많은데 <영어의 정석>은 기본에 충실한 책입니다. 처음 문법 공부를 시작한 아이들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책입니다. 지금까지 배웠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분들께 영어의 정석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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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을 보면 밖을 보면 웅진 모두의 그림책 18
안느-마르고 램스타인.마티아스 아르귀 지음 / 웅진주니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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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작가 안느 마르고 램스타인&마티아스 아르귀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듀오 작가입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장식 미술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하며 친구가 되어 ‘전과 후’로 나누어 작업한 <시작 다음>으로 2015년 볼로냐 라가차상 논픽션 부분 대상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번역된 <시작 다음>이라는 책 제목보다 ‘before after’라는 제목이 그림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림책의 노벨문학상이라는 볼로냐라가차 상을 수상했고 <안을 보면 밖을 보면>과 비슷한 구성이라 잠깐 소개해 봅니다.

 

<시작 다음>

아이들에게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시간도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요. <시작 다음>은 나 중심의 시간을 세상 밖으로 옮겨 놓습니다. 내가 잠을 자는 동안 거미는 밤새 거미줄을 만들고, 애벌레는 나비가 되기 위해 나뭇잎을 갉아먹습니다. 파도가 실어다 주는 것은 물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환되고 있음을 책은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시간의 흐름속에서 자연을 설명하지 않아도 느끼게 됩니다.

<시작 다음>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었다면 <안을 보면 밖을 보면>은 각자의 공간 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다각도로 넓혀 주고 있었습니다. 책 속에서 우리는 시간뿐만 아니라 각자의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안을 보면 밖을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수많은 은하 중에서 지구라는 행성 안입니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에서 '푸른 점'이라고 표현되었던 티끌만 한 세계지요. 각자 보이는 세상이 다름에도 살다 보면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림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이죠.

철창 안 새들이 바깥만 쳐다보는 모습이 마음 아팠습니다. 보이지 않은 철창 속에 갇혀 넓은 세상으로 날아오르고 싶은 사람들 마음과 비슷해 보였으니까요. 눈발이 날리는 스노볼을 보면서 그 모습을 상상할 수만 있다면 일상에서도 눈 내리는 모습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잠시 일탈하여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미술가 르네 마그리트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미술가였지만 철학적인 메시지가 가득한 그림을 그렸던 그의 그림이 생각난 이유는 알을 보고 새를 그렸던 그의 그림 때문입니다. 이미 그의 눈은 시공간을 아우르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그림의 제목처럼 '개인적 가치'에 따라 물건의 크기가 다르게 그려진 그림 속에서 우리의 상식과 관념은 깨어집니다.

 

<르네 마그리트>

독후 활동은 아니지만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와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려보았습니다. 아이는 이불 속에서 공주님이 되어 또 다른 세상을 꿈꾸나 봅니다. 엄마가 모르는 세상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작가님께 다음 책을 권한다면 이런 내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이 되돌려 놓는 자연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요? 인증샷으로 즐기기 위한 것이라도 이런 인증샷이 늘어나 인간이 훼손한 자연을 되돌려 놓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 권의 책으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즐거운 여행이 되었습니다. 책을 보는 사람들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자연법칙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느낄 수 있는 넓은 안목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내가 보지 못한 세계가 더 많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작가님의 다음 책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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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시스터 10 - 장미의 예언 벽장 속의 도서관 15
시에나 머서 지음, 김시경 옮김 / 가람어린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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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상상을 해 봤을 것입니다. ‘나와 똑같이 생긴 쌍둥이가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명랑한 치어리더 소녀 올리비아는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뱀파이어 쌍둥이 자매 아이비를 만납니다. 둘은 쌍둥이지만 하루가 낮과 밤으로 나누어져 있듯 올리비아는 빛을 상징하고 아이비는 어둠을 상징합니다. 서로의 다름과 같음을 느끼며 성장하는 두 소녀의 이야기는 책을 읽으면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듯 펼쳐져 아이들은 늘 새로운 시리즈를 기다립니다.

작가인 시에나 머서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나 외동딸로 자랐습니다. 혼자였기에 언제나 형제자매가 있기를 바랐던 것일까요? 비 오는 날 응원단 연습이 취소되면서 시작된 글쓰기가 현재의 <뱀파이어 시스터> 시리즈에 이르렀다니, 작가의 길은 멀고 험한 것이 아니라 상상력만 있다면 가능하다는 것을 그녀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책 속 장면이 눈앞에 그대로 펼쳐지게 하는 점이 그녀의 책이 가진 장점인 것 같습니다.

뱀파이어 시스터 열 번째 이야기 장미의 예언에서는 쌍둥이 자매가 트란실바니아에서 열리는 알렉스 왕자와 테사의 결혼식에 초대받아 생기는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잭슨과 떨어져 지내며 힘들어 하고 있었던 올리비아에게 결혼식을 취재하는 일은 힘겹게 다가옵니다. 게다가 결혼식은 알 수 없는 불안한 기운으로 순탄치 않은 출발을 보였고,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의 등장으로 결혼식이 취소될지도 모르는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아이비는 트란실바니아의 명문 학교인 왈라키아 아카데미를 방문하지만, 마치 중세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한 뱀파이어들의 모습에 실망하고 올리비아를 떠나지 않으려 합니다. 아이비는 왈라키아 아카데미에 들어갈까요? 아니면 올리비아와 함께 돌아가게 될까요? 또 올리비아는 아이돌 남자 친구 잭슨과 영영 이별하게 되는 것일까요? 흡혈 쐐기풀 다리를 긁혀 사고를 당한 올리비아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요? 푸른빛의 장미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요? 수많은 궁금증을 일으켰다 풀어내는 이야기는 끝날 때까지 아이들이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듭니다.

시리즈로 나오는 책들의 매력이 무엇일까요. 인기에 편승해 나오는 책일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뱀파이어 시스터를 보니 아이들이 기다리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이미지를 그리듯 상상하는 것은 집중력이 없으면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뱀파이어 시스터는 책 내용을 상상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뱀파이어 시스터 시리즈를 기다리는 아이도 그 점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습니다.

이번 편에서 걸림돌로 등장한 인물을 보며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이란 으레 부끄럽기 짝이 없는 존재인 것 같아. 그게 그들의 임무인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삼촌이 정말로 나쁜 사람일까? 아니면 가끔 좀 어리석고 과장되게 행동하는 것뿐일까?” 올리비아의 물음은 가족에 대해 테사가 갖고 있었던 생각에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아이들도 늘 지켜보는 가족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각자의 공간에서 자립하게 될 두 자매 올리비아와 아이비의 성장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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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힘이 들 때 그림책을 읽는다 - 소중한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림책 이야기
강지해 지음 / 마음의숲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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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힘이 들 때 그림책을 읽는다'라는 책 제목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육아를 하는 엄마라면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가물가물해진 아이들과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잘 한 일보다 잘못한 일이 많았던, 마음처럼 잘되지 않았던 인생을 다시 마주 보는 일은 쉽지 않다. 모든 해답을 알고 있는 육아의 달인이나 화목한 가정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엄마의 모습은 부족하고 모자란 나를 위축시킨다. 그러나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부족한 나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때로는 위로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반성하기도 하며 나도 그림책에 위로받았다.

"살아오면서 내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에 집중하지 못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로 알고 나면 사랑받지 못할까 봐, 인정받지 못할까 봐. 아이들과 함께하며 내 안의 모든 감정들을 다양하게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더 깊이 파고들어 꺼내어 보듬어주고, 토닥여준다. 아이들을 통해 진정한 내 모습을 만난다." 27

아이들과의 만남, 남편과의 만남, 어릴 적부터 숨겨두고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은 그녀의 이야기였지만 또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두렵고 무서워서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모습은 그림책을 만나며 슬슬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어둠에 빛을 밝혀 주었던 <그날, 어둠이 찾아왔어>는 그래서인지 내게도 어둠을 뚫고 나올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아이들은 어둠을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우주를 꿈꿀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림책은 그런 힘을 주는 비밀 원료가 되었다.

"어둠과 마주하고 나면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바로 볼 수 있게 된다. 용기를 내어 어둠과 마주하는 순간, 그 어둠은 두려움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어둠'일뿐이다. 어둠이 나를 힘들게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나를 공포로 밀어 넣은 것이다." 180

어린 시절 그림책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상상하게 해 주었다. 세상과 나를 알만큼 안다고 생각할 때 그림책이 다시 내게 말을 걸어온다. 네가 바라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너와 비슷한 인생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다양한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었다. 한 권의 책과 깊이 만나게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그림책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책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의 감동을 나누고 싶어진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내 모습이 담겨있었다.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인생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그림책의 매력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그림책 외에도 세상에는 만나지 못한 책들이 너무나 많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의 인생 서랍에 넣고 싶은 책들은 어떤 책들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림책을 읽으니 어제와는 다르게 다가온다. 그림책은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목에서 무심코 지나쳐야 할 것과 유심히 바라봐야 할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마음이 헛헛해지면 다시 그림책을 읽게 된다. 예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보물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만 알고 있고 싶은 보물을 선뜻 사람들에게 나눠 준 저자에게 독자로서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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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독 - 애니메이션 원작
오성윤.유승희 지음, 오돌또기.유승배 그림 / 가연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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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의 제작진이 오똘또기와 의기투합해 만든 애니메이션이라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책이 나왔다. 국산 애니메이션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작화가 눈길을 끌었다. 다른 애니메이션 관련 책처럼 만화로 되어있지 않고 장편 소설책처럼 나온 점도 좋았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일본 애니메이션만큼 자연스러운 동세와 작화의 맛을 '언더독'에서 느꼈을 것이다. 책에서는 무엇보다 오똘또기 원안을 볼 수 있어 영화와는 다른 맛이 났다. 책을 읽어보니 영상을 볼 때와는 달리 등장인물들의 심리도 엿볼 수 있었다.


<언더독>은 투견 시합을 볼 때 아래에 깔린 개(언더독)를 응원하게 되는 현상에서 비롯된 말이다. 흔히 경쟁에서 ‘약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책 내용을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제목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저자는 책 제목을 ‘언더독’이라 정했을까. 주인에게 버려져 상대적으로 약자로 설정된 주인공에게 심리적 애착을 갖게 하는 언더독 효과를 노린 설정이 아니었을까라는 얄팍한 생각은 자유를 향한 그들의 처절함에 숙연해졌다. 그리고 ‘탑독(topdog)’의 입장이라 생각했던 인간은 자연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책은 묻고 있었다.

 

<언더독>은 하루아침에 주인에게 버림받는 뭉치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산속에서 주인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고받던 공을 찾으러 갔다 돌아오니 주인은 그를 버리고 떠난다. 그곳에는 뭉치처럼 버려진 개들이 익숙한 일이라는 듯 그를 맞이한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떠돌이 개의 인생은 먹을 것을 동냥하거나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일상의 연속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무자비하게 개를 잡아가는 개 장수를 피하는 것은 필수다. 그러나 그곳에는 뭉치처럼 버려졌지만 인간과 등지고 사는 또 다른 개들이 있었다. 진돗개 부부와 새끼 진돗개, 그리고 검정 사냥개 '밤이'였다. 그들은 사냥을 하며 완전히 야생에 적응해 살아가는 들개 무리였다.

 

뭉치는 동네 아래에서 유기견들과 살면서 적응해 갔지만 우연히 마주친 들개 무리를 보며 마음속에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고 그들의 삶을 동경한다. 하지만 무리에 속하기 위해 무리하게 염소농장의 염소를 데리고 오면서 들개들의 보금자리를 잃게 만든다. 들개들의 조언에 따라 몰아온 염소를 돌려놓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역인 염소농장에 '침범'한 들개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들은 추적장치가 달린 마취총을 맞고 개 농장으로 끌려가게 된다.

 

개 농장에는 이전 무리에서 만났던 비르켄이 있었다. 인간에게 기대어 사는 떠돌이 개 무리와 등진 들개 무리, 그리고 철창 밖에 인간에게 복종하는 사냥개들은 다 같은 개였다. 지금은 다르게 보이는 그들의 운명의 끝이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삶의 아이러니였다. 들개들의 도움으로 함께 개 농장을 탈출한 개들은 그들만의 안전지대를 찾아 떠난다.

읽는 내내 김태호 작가의 <네모 돼지>가 떠올랐다. 공장에서 시제품처럼 만들어진 돼지들이 서로 힘을 모아 뛰쳐나간 곳에서 행복했을지 늘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사료를 주는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먹이를 찾아야 할 텐데 자유를 찾아 떠난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그러나 <언더독>의 뭉치는 자신의 몸에 심어진 추적장치를 물어뜯으며 온몸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신이 ‘선택’한 자유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그리고 누구나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나를 죽이고 살리고는 저놈 손에 달려 있지만 내가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내 맘에 달려있다고.

<언더독 p.109>

이게 내가 책임지는 방식이야. 우리 들개만의 방식이기도 하고. 나는 이것을 자유의 대가라 생각해. 그리고 그 대가를 우리 모두 기꺼이 지불할 생각이고.

<언더독 p.132>


 

 

영화 끝에 등장하는 이효리와 이상순 부부의 모습은 <언더독>이 전하려는 메시지와 맞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부 애견인들은 개들이 사냥을 하고 자유를 찾아 떠나는 모습을 불편하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마지막에 카메라가 그들을 비춘 이유는 인간과 개는 자연 속에서 공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뜻을 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짱아가 자유가 아닌 인간에게 돌아간 것처럼 누구나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살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게 동물이라도 말이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의 완성도에 늘 아쉬움이 많았던 사람으로 한국의 풍경을 담은 <언더독>만의 작화와 탄탄한 이야기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중간에 투자가 중단되어 펀딩으로 자금을 모아 어렵게 영화관에서 상영되었는데 사람들이 책도 많이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약자인 듯 보였지만 승리하는 언더독 효과를 진심으로 바라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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