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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숲에는 누가 살까 ㅣ 웅진책마을 96
송언 지음, 허지영 그림 / 웅진주니어 / 2019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0야~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알지?”
“응”
“무슨
이야기인데?”
“토끼랑 거북이랑
달리기하는데 게으름뱅이 토끼가 잠자다가 거북이가 이겨.”
“그래? 그 뒷얘기
들려줄까?”
“응!”
“달리기 경주에서 이긴
거북이는 으뜸 거북이가 됐대. 빠른 토끼를 이겼으니까~ 그리고 온 동네에 소문이 나서 결혼까지 하게 됐어. 그런데 토끼는 멍청한 토끼가 되었단
말이지. 억울했던 토끼는 으뜸 거북이에게 가서 다시 시합을 하자고 해. 그리고 이번에는 낮잠을 자지 않고 힘껏 달려야지 생각하고 정신 바짝
차리고 연습을 했단다. 그런데 으뜸 거북이는 연습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했지. 으뜸 거북이 색시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 그런데 으뜸 거북이가
귓속말로 뭔가 얘기하니 배꼽을 잡고 웃는 거야. 그리고 달리기 시합하는 날이 되었지. 토끼는 달리기 시작했어. 한참을 달려도 거북이 모습이
보이지 않자 이쯤에서 잠이나 자고 갈까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끝까지 열심히 뛰었지. 그런데 저 멀리 결승선 앞에 거북이가 보이는
거야.”
“진짜?”
“토끼도 궁금해서
거북이에게 물어봐. 그러자 거북이는 네가 헐레벌떡 뛰어올 때, 나는 한순간에 하늘을 날아서 왔지~ 하는 거야.”
“거북이가 어떻게
날아?”
“사실은 결승선에 있던
거북이는 으뜸 거북이 색시였대. 토끼는 원래 눈이 나빠서 잘 안 보이거든. 세 번째 경주도 있는데 그건 한~참 뒤에 했대. 토끼가 너무 충격을
받아서 토끼의 손자와 거북이 손자들이 시합을 하게 된단다.”
마지막 세 번째 경주는
어떻게 되었을까. 원래 이야기는 적당한 때에 끊어야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법이라 내일 밤 나머지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송언 우화집 거북이의 지혜(?)가 탐탁지 않은 분도 있을 것이다. 큰 아이는 대번에 거북이가 정정당당히 시합한 것이 아니라고 얘기했다. 어른의
시선에도 송언 작가가 얘기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고개가 갸우뚱할 것이다. 그러나 토끼와 거북이는 전혀 다른 종이다. 그들의 경주는 시작부터
공정한 게임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동화에서나마 느림보 거북이를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 경주에서 으뜸 거북이 손자는 재치를 넘어
상상을 현실화하며 멋진 승리로 대미를 장식한다. 타고난 능력만 믿고 있던 토끼의 완패였다.
송언 작가는 '2학년
3반 아이들과 털보 선생님' 시리즈 중 <잘한다 오광명>을 읽고 책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를 살펴보며 관심을 가졌던
작가였다. <이야기 숲에는 누가 살까>는 털보 선생님이 주는 이야기 선물 보따리다. 놀이를 좋아하는 아이, 친구가 필요한 아이,
가족을 아끼는 아이,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 상상력이 뛰어난 아이, 새 세상으로 향하는 아이. 털보 선생님 반에도 똑같이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으니 각각의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책을 만든 것 같았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
편에 나오는 메꽃과 나팔꽃 이야기가 좋았다. 메꽃보다 늦게 피는 나팔꽃은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니라, 메꽃이 주목받을 시간을 주며 느긋하게
핀다는 얘기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만약 메꽃보다 나팔꽃이 먼저 핀다고 혀 봐. 훨씬 예쁜 나팔꽃을 본 다음에
어떤 밝은 눈이 있어 덜 예쁜 메꽃을 보고 반기겠는가 말이여.”
집에서도 밖에서도 늘
주목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기다림과 배려의 의미를 먼저 피는 메꽃과 늦게 피는 나팔꽃으로 깨닫게 해 주었다. 식물은 저마다 필 시기를 알고
꽃을 피우는데 사람은 더 크고, 더 빨리 피우려 애쓴다. 사람처럼 고단하게 살아가는 이는 아마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털보 선생님이 곁에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책 내용도 읽고 들려주기에 부담 없는 양이라 한 편을 읽으면 옆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어졌다. 옛이야기는 익숙지 않아 잘 기억나지 않는데 한번 읽었어도 들려주기 어렵지 않은 내용이었다.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는 겨울바람이 아직고 차갑지만 꽃은 꽃망울을 터트리고 봄을 맞이한다. 아이들도 그렇다. 실컷 놀고먹고 자고 이야기하면서도 쑥쑥 자라고
있다. 이제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도 괜찮다는 아이의 말이 귓가에 매미소리처럼 앵앵거린다. 나도 그런 마음을 가질 때가 있었는데. 매일 밤
이야기가 고파 잠들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밤참으로 들려주기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