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의 웅성임 - 한 인문학자가 생각하는 3.11 대재난 이후의 삶
이소마에 준이치 지음, 장윤선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벌써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지 5주년!

세월은 빠르게 지나가고 그와 함께 많은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망각하게 되지만, 수없이 많은 죽은 자들과 살아서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 책은 죽은 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고향을 떠날 수 없는 산자들을 위로하는 깊은 사색과 공감의 결과물이다단순히 죽은 자들을 애도하는 선에서 머무르지 않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점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분석도 빠지지 않는다.

 

동일본 대지진이 보여준 현실은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시스템이 전후 일본사회의 번영을 지탱해왔다는 것. 많은 일본인이 인정하기 어려운 추한 사실이었습니다. 한국사회도 예외는 아니겠지요”(8~9)

 

저자는 이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죽은자들의 소리를 듣기위해 끊임없이 귀를 기울인다. 사자의 원통함을 끌어올려줄 힘 있는 말이야말로 미래를 향한 희망의 빛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산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책 곳곳에 그의 깊은 사색의 흔적이 뚜렷이 드러난다.

 

“........ 사자는 말이 없다는 현실이다. 그것은 살아남은 증언자들에게 깊은 고통을 남긴다.”(60)

 

인간은 너무 무참한 현실을 겪으면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침묵의 바닥으로 가라앉아 말을 잃는다. 그렇게 생긴 마음속 구멍은 살아남은 자들의 일상을 파먹는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이 사자를 향한 마음의 빚이다.”(82) 

 

그러나 저자는 청빈한 농민의 삶을 살았던 시인 야마오 산세이(山尾三省)의 말을 인용해 희망을 말한다.

 

진정한 어둠이 없는 곳에는 빛도 없다. 어두운 절망의 바닥에는 희망의 빛이 있다.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도 깊다”(100)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큰 고통을 당한 사람들 곁에 승려를 포함한 종교인들이 함께 하는데, 저자가 그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경청이다.

 

바른 답을 줄 수 없지만 최소한 곁에 있어주고 싶다는 것. 그렇다면 경청은 상대의 아픔을 말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 할 수 없는 기분과 감정의 덩어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112)

 

신뢰의 기본은 바른 답을 일방적으로 가르치거나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무력함 앞에 선 사람끼리 서로 감정을 나누는 것이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로 그의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 이상의 기쁨은 없다. 경청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유일한 바람으로 생각하고 활동한다.”(113) 

 

다음으로 저자는 원전의 구조적 문제, 천황제, 국민국가 등의 문제점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데, 몇 구절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전후 일본 사회는 거대 도시 도쿄의 경제활동이 후쿠시마에서 온 전력으로 유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난이 벌어졌을 때 그 위험이 전부 후쿠시마에 전가된다는 불평등을 보려하지 않았다. 이런 의존적인 지역 격차의 구조는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오사카나 교토 근방의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153)

 

네게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후쿠시마는 식민지였고 지금도 식민지다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도호쿠 지방은 도쿄로 쌀과 병사, 창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식자재와 부품, 전기를 공물로 보내고 보조금과 함께 유해시설을 받아들이는 곳이 되었습니다....

 

“..... 가혹한 현실이 일상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지배와 학대 속에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이 놓인 비참한 현실을 인식하기 괴로워서 그것이 폭력과 학대가 아닌 애정과 우정에서 오는 친밀감의 표현이라고 현식을 왜곡하면서 살아간다.”(155)

 

내셔널리즘은 국민을 순사(殉死)로 몰아넣는 죽음의 공동체에 지나지 않는다. 이 국민국가와 사자를 묶는 역할을 한 것이 제사왕이자 현인신인 천황이었다...... 쇼와천황은 미국의 점령국 방침으로 무죄가 되었다. 그럼으로써 천황을 모시면서 전쟁에 종사한 일본 국민도 무죄가 되어 용서 받는다. 전후 천황제 내셔널리즘은 이런 천황과 국민의 공범관계에서 재출발했다.”(214~215)

 

한편 이렇게 천황과 국민이 하나가 된 국민국가의 그늘에는 반드시 비국민으로서 배제된 존재가 있다. 비인이나 천민으로 불려온 피차별 부락민들, 일본 제국이 버린 재일외국인,.....배제된 이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국민 개념은 실질적으로 산 자 사이에 차별과 배제를 만들어 냈다. 그럼에도 천황이라는 상징으로 국민을 동일화하고 내부에 있는 국민에게 차별과 배제가 없는 국민 공동체로 오인시킨 점에 근대 천황제의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218 ~ 220)

 

 

이렇듯 이 책은 단순히 어느 분야의 책이라고 구분 짓기 쉽지 않은데, 참혹한 대참사를 겪은 일본의 여러 현상과 문제점들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비쳐볼 수 있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하는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읽으며 세월호, 밀양, 제주의 강정등이 떠오르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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