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민은행 이야기 - 착한 자본주의를 실현하다
데이비드 본스타인 지음, 김병순 옮김 / 갈라파고스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결국 부는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꾸준하고 냉정하게 가난한 사람에게서 부자에게 흘러간다


방글라데시 치타공 마을. 어떤 남자가 인력거를 끌면서 하루에 지불해야 하는 인력거의 임대료는 8타카(약 0.2달러). 1년이면 약 2,500타카를 내는 셈이다. 그런데2,500타카면 인력거 한 대를 살 수 있는 돈이다. 날마다 인력거 주인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나면 겨우 먹고살 정도의 돈만 손에 쥐는 그에게는 한번에 그만큼의 돈을 지불할 능력도, 은행에서 그 돈을 대출할 능력도 없기 때문에 그렇게 인력거 주인의 착취 속에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며 살아간다.

여성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로 수공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그녀들이 재료를 사서 마음 놓고 일하기 위해 맨 처음 필요한 돈은 856타카(약 27달러). 하지만 그 자본금이 없는 그녀들은 장사꾼들의 횡포와 자본가들의 착취로 하루에 고작 2센트 정도만을 벌 수 있었다. 그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다른 자본가들의 배만 불려줄 뿐 자신들에게 남는 건 벗어날 수 없는 가난 뿐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고객인 은행, 그라민은행 

   
 

가난한 사람들을 수혜자가 아니라 고객으로 생각하고,
그들이  자영업을 통해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수단을 제공한다.

_ <그라민은행 이야기>, 37쪽 중에서

 
   

 

세계의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하는 피터 싱어의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에는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의 소액금융 사례가 등장한다. 돈을 빌려줌으로써 그들이 가난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점 하나! 담보가 없이도 은행은 대출을 해주는가? 은행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꾸준히 들어오는 월급, 부동산, 부모님의 탄탄한 직업 혹은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다면 절대 불가다. 은행의 고객은 담보가 있는 부자들이다. 은행의 대출 역시 부자들이 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여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빌려주는 은행이 있다. 지난 25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방글라데시의 땅 없는 농촌 사람들이 자영업을 할 수 있도록 79억 달러 이상을 빌려주었고, 2544개가 넘는 지점을 통해 780만 명이 넘는 고객에게 돈을 빌려준 곳. 고객 가운데 98%가 여성이고 대출금 상환율은 98퍼센트로 체이스맨해튼은행의 상환율과 비견할만한 은행. 바로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이다.

'그라민'은 벵골어로 '그람gram'에서 온 단어로 '마을'을 뜻한다. 그 이름 그대로 그라민은행은 농촌 마을에만 있다. 이 은행의 특징은 주로 여성들에게 소액으로 단기 대출을 한다는 것이다. 고객 대부분은 그 어디에서도 대출을 할 수 없는 빈곤층이다. 하지만 자선사업이 아닌 이상 이들에게 돈을 값을 것이라 약속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그라민은행이 주목한 지점은 바로 전통적 의미의 담보인 금전적 담보가 아닌 '신용'이라는 사회적 담보였다. 

그라민은행에서 돈을 빌리려면 그 여성은 5명의 채무자로 구성된 모임과 이런 모임 8개가 모여 40명의 채무자로 구성되는 센터에 무조건 가입해야하고 , 일주일에  한번씩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그 구성원의 한 사람이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그 구성원 전체가 앞으로 돈을 빌릴 수 없다. 때문에 자동적으로 상호 감시가 되며, 서로가 돈을 갚아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가 되는 것이다. 농촌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서로간의 유대가 강하고 비밀이 없는 공간이라 서로를 관찰하는 데 유용했다. 또한 자그마한 마을에서는 서로간의 '신용'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 지점을 바로 '담보'라는 것으로 연결해 사람들이 약속을 지켜낼 수 있도록 끌어냈다.
 

사람들이 굶어 죽는데, 도대체 경제학이란 학문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건 모두 동화에 지나지 않았어요. 모두 정말인 척하는 것들뿐이었죠.
스스로 환멸을 느끼는 것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어요?
나는 나를 둘러싼 환경과 내가 하는 일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애썼습니다." 
_ <그라민은행 이야기>, 45쪽 중에서

 
   

이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자신의 고향 방글라데시로 돌아온 유누스는 치타공대학의 경제학과장으로 들어갔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던 그에게 1974년 방글라데시에 닥친 기근은 그의 인생을 바꿔버렸다. 기근이 닥치자 유통업자들은 쌀을 사재기 하기 시작했고 수만 명의 농촌 사람들은 굶어죽어갔다. 밖에서는 사람이 굶어 죽는데 치타공대학 건물 안에서는 평화롭게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강의실 안에서는 사람들은 오직 상상하는 세상만 보고 있었다. 유누스는 세상에 필요한 경제학을 만들고 싶었다. 

시작은 대학 안에서 대학원생들과 함께 만든 신용대출 프로그램에서였다. 재료를 살 돈이 없어,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소액대출로 그들의 삶의 기반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학교에서 시작된 그의 연구는 시범 그라민은행의 설립, 나아가 그라민은행을 탄생하게 만들었고 3년 만에 500여 가구가 절대 빈곤에서 탈출하게 했으며 지금은 2천여개가 넘는 지점이 운영되고 있다.

무함마드 유누스의 이 성공적인 사례는 그 지역에 대한 이해와 빈곤층에 대한 철저한 연구, 그리고 학자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확신과 열정에 기반한다. 유누스는 그 지역과 지역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인터뷰 했으며, 그들이 어떤 부분에서 얼만큼의 도움이 필요한지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농촌'이라는 마을의 특성과 그 안에서 유대 관계에 포착했으며 작은 마을 안에서 '신용'이라는 것이 가지는 중요도도 알아냈다. 포드 재단과 크리스은행 임원을 직접 만나 끊임없이 설득했으며 자신을 담보로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하는 등 대범함과 열정을 보이기도 한다.

'착한 자본주의를 실현하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 <그라민은행 이야기>는 그라민은행의 탄생과 그것이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세계 빈곤을 해결하는데 얼만큼의 영향을 미쳤는가를 보여준다. 유누스의 이야기에 호기심을 느낀 한 저널리스트가 방글라데시에 직접 찾아가 유누스를 비롯해 그가 만났던 사람들, 그라민은행이 탄생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만나 그라민은행의 역사와 그 찬란한 업적을 추적했다. 낯선 영역의 이야기이지만 '세계 빈곤'과 '소액 금융'이라는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저널적 관점에서 그 사건이 사회적으로 가지는 가치과 의미를 짚어가며 잘 풀어냈다. '착한 자본주의'가 불가능한 일은 아님을, 희생이 아닌 조그마한 도움으로 우리 사회가 풍요로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희망의 이야기였다.

2006년 그라민은행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사람은 그라민은행의 창시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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