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보리스 비앙 지음, 이재형 옮김 / 뿔(웅진)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947년 4월. 파리의 몽파르나스라는 지하철 역 근처에서 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한 남자가 싸구려 호텔방에서 애인의 목을 졸라 살해한 것이다. 살인 사건이 벌어진 이 방에는 소설 책 한 권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소설 속 주인공 리 앤더슨이 진 애스퀴스를 목 졸라 죽이는 장면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자극적인 기사거리에 목말라 있던 파리의 신문들은 이 사건을 톱으로 다루며 이 소설은 순식간에 유명세를 타며 엄청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이 논란의 중심에 있던 책이 바로 20세기 누아르 소설의 고전이라 불리는 보리스 비앙의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이다. 이 책은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도 참 재미있다. 한 신생 출판사의 사장인 장 달뤼앵은 비앙에게 미국의 하드보일드 스릴러를 한 권 찾아내, 번역해 줄 것을 권한다. 이 제안을 받은 비앙은 미국의 작품을 찾는 대신 아예 자기가 직접 그것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 책의 시작부분에 마치 자신이 미국에서 출간이 거부된 책을 프랑스어로 옮겨 번역하는 것처럼 장치를 달아둔다. 이 내용이 프랑스 사회에 가져올 파장을 대비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이런 세상에! 당신 정말 지저분한 남자군요!"
"미안해. 미처 에티켓을 배울 시간이 없어서 말이야."
 
_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79쪽

 
   

 

주인공 리 앤더슨은 흑인지만 혼혈혈통으로 인해 금발에 하얀 피부를 갖고 태어난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백인이다. 그런 그가 백인들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남동생의 복수를 하기 위해 미국 남부의 벅스턴이라는 마을에 들어간다.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서점에서 일을하며 마을의 정태를 파악하고 동생의 복수의 상대를 고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덱스터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애스퀴스 가의 아가씨들인 진과 루 자매에게 복수의 칼날을 겨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회는 완벽한 백인 사회다. 이들은 리 앞에서 서슴치 않고 흑인들에게 경멸의 말들과 조롱을 서슴지 않는다(물론 리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알리가 없기에). 그리고 이런 사회는 리의 복수심만 더 불태울 뿐이다. 단 한 명, 덱스터만이 리가 흑인임을 눈치챈다. 그래서 그는 리를 데리고 흑인들이 있는 사창가로 데려가 사창가의 흑인 아이들에게 인간 이하의 수치심과 모멸감을 주게 강요하지만, 여기서 무너지면 동생에 대한 복수를 끝낼 수 없기에 눈을 감아버린다. 

리의 남동생은 백인 여성을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한다. 그래서 리는 거꾸로 사랑으로 백인들에게 복수를 한다. 더이상 여성을 여성으로 보지 않는 리는 그들과 은밀한 관계를 맺어 데리고 놀다가 가차 없이 버린다. 애스퀴스 가의 두 자매 역시 리의 손아귀에서 무참히 무너져버린다. 리의 앞에서 흑인에 대한 경멸을 숨기지 않았던 진에게 "넌 흑인 남자랑 자도 항상 이렇게 좋니? 왜냐하면 나한테도 흑인의 피가 8분의 1 이상 섞였거든."이라는 말을 남긴채 그녀의 목을 조르는 리는 죽음과 폭력이 뒤섞인 에로티즘을 선보인다.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1949년에 판금되었고, 1950년에는 법원에 의해 10만 프랑의 벌금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출판된 이래로 당시의 말로, 카뮈,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보의 작품들보다 높은 판매를 보이며 50만 부 이상 팔려나갔다고 한다. 이 작품을 보리스 비앙은 청춘의 작가가 되었고, 그의 작품은 훗날 "죽음, 충동, 에로티즘, 폭력, 환상, 즉 삶의 여러 순간들을 특징짓는 이 모든 것이 훌륭하게 생생히 구현되는 거대한 꿈과 같다"는 평을 받았다. 

어떤 작품이 세상에 의미있고, 어떤 것이 가치 있는 글인지는 잘 모르겠다. 때문에 이 책에 대한 평가 역시 내리지 못하겠다. 대신 보리스 비앙이 남긴 말로 이 책에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 "이 작품은 문학적 견지에서 볼 때 거의 관심을 못 끌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이 그것에 관해 호평을 하건 악평을 하건 간에 상관없이 그들이 그것에 관해 말한다는 그 사실 자체로서 이 책은 문학적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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