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과 영향력 - 자기만의 범주를 만드는 글쓰기에 관하여
리디아 데이비스 지음, 서제인 옮김 / 에트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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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가지고 있는 생각 중 하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이다. 하지만 글이라는 것이 11초의 시간을 측정하거나 몇 골을 넣는 것으로 확인이 되는 스포츠와는 다르게 잘 보이지 않는 영역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쓰다보면 잘 쓸 수 있다는 말을 듣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보여 미국의 소설가이자 산문 스타일리스트라고 소개된 리디아 데이비스의 형식과 영향력을 읽게 되었다. 책표지의 자기만의 범주를 만드는 글쓰기에 관하여라는 부제도 읽으려고 마음을 먹은 계기가 되기엔 충분하였다.

 

글을 쓰다보면 자신만의 형식이 생기기 마련이고 어떤 글은 그 영향력을 가지게 되기에 이런 제목이 붙은 것이 아닐까란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리디아 데이비스가 누구이고 그녀의 작품을 한 편도 읽지 않은 소위 처음 만나는 작가가 일러주는 글쓰기에 관한 글은 나에게는 어렵게 다가왔다. 읽다 그만두고 다시 읽기를 반복해서 3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려 읽기는 다 읽었는데 내용을 소화하기는 쉽지가 않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옮긴이의 말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리디아 데이비스의 에세이 1 Essays One에 수록된 글들 가운데 글쓰기에 관한 부분만 따로 모은 책이다. 대부분 데이비스가 육십대 이후에 쓴 글로, 그가 그동안 주로 단편소설을 쓰는 동안 매혹되어온 다양한 형식과 영향받아온 자료들을 소개하는 일종의 문학적 자서전에 해당하는 글들이다. (5쪽)

 

문학적 자서전에 대한 글이기에 그녀가 읽고 쓴 글들이 예시로 많이 실려 있는 것 또한 특징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소설이나 글을 먼저 읽은 독자들에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지만 그들을 처음 보는 나에겐 효과가 조금 반감되는 느낌도 있었다.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렇다.


자신의 본능을 따라 갈 것흔히 소설가들이 작품을 개요를 쓰면 등장인물들이 그글을 이끌어간다고들 하는데 그것과 비슷한 말 같았다. 저자는 글 곳곳에서 이러한 취지의 말을 한다. 그중에서 잘 드러나는 문장을 한 문장 고쳐쓰기에서 찾았다.

 

나는 글을 쓸 때 본능을 따라가는 편이고, 내 충동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글을 고쳐 쓰고 싶으면, 이걸 고쳐 써봤자 쓸 데도 없다고 되뇌지는 않는다. 그냥 본능을 따라간다. 내가 어떤 일을 한다면 거기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는 그 순간에는 나도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해질 것이다. (151쪽)

 

그리고 그 결과로 어떤 글이 쓰든 그것으로 끝이므로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인다.

 

어떤 글이든, 그 글의 청중이나 독자가 되는 사람들은 결국에는 특수하고 한정된 사람들이다. 모든 사람에게 호소하거나 심지어는 해명까지 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199쪽)

 

자신만의 글쓰기가 어떤지를 보여주는 글이 많아 어렵게 느껴진 책이었지만 마지막 장인 좋은 글쓰기 습관을 위한 40가지 조언은 실제 유용한 조언이 많이 있었다. 그 중 가장 도움이 될 것 같은 조언 2가지이다.

 

메모한 것들을 지속적으로 고쳐 써라. 메모들의 듯이 얼마나 잘 통하는지 보기 위해 그것들을 마치 처음 보는 메모처럼 읽는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라. 적어둔 것으로 무언가를 하게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지속적으로 고쳐 쓰기를 하면 애초에 무언가를 적어둘 때 더 잘 적어두는 법도 배우게 된다. (244쪽)

 

글쓰기 시간을 한번 갖고 나서는 뇌에 계속 떠오르는 것들을 적어놓을 수 있도록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가져라. 다시 말해, 글쓰기를 끝내고 나서 곧바로 친구들과 점심을 먹거나 수업에 들어가지 마라. 곧바로 메일이나 휴대폰을 확인하는 것도 안 된다. 적어도 15분은 완전히 비워놓아라. …… 당신의 뇌는 이 시간 동안 훌륭한 아이디어를 몇 가지쯤은 더 제공해줄 것이다. (255쪽)

 

하나는 글쓰기에 필요한 좋은 글감을 제공하는 법이고 다른 하나는 글을 다 쓰고 나서 어떻게 마무리를 할 것인가에 대한 유용한 팁인 것 같았다.

 

같은 장에서 저자는 독창적인 글을 쓰고 싶다면 독창적이려고 애쓰지 마라라는 조언도 건낸다. 마치 도덕경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를 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런 글이기에 이해하기가 이렇게 어려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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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마티아스 뇔케 지음, 이미옥 옮김 / 퍼스트펭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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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태도보다 나를 소모하지 않는이란 제목에 먼저 눈이 간다. 독일의 언론인인 마티아스 뇔케는 이러한 태도로 겸손을 꼽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겸손이 나를 소모하지 않는 방법이 되는지 궁금해진다.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에 대해 다소 극단적으로 표현을 한 점도 없지는 않으나 공감이 되는 주장도 많이 있었다.

 

저자는 지금의 세상과 성공지향형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다음과 같이 한다.

 

과하게 포장된 자랑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고, 무례함이 솔직함으로 둔갑해서 장악하는 세상이 되었다. (19쪽)

 

성공지향형 사람들은 거창하게 보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야 한다. 단순히 안부를 묻는 이야기에도 그들은 자신의 성공을 떠들어댄다. 그런 과장된 행동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26쪽)

 

SNS의 확산으로 자극적인 영상 등이 만연하게 되어 과하게 포장되고 타인의 시선을 끌고 유명해지기 위해 심지어 무례함으로 뭉친 이들도 등장하긴 하지만 저자의 표현대로 장악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은 조금 과장된 면이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뿐만 아니라 성공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거창하게 주위의 끄는 것만은 아닐 것이기에 순수하게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열정적인 이들도 모두 다 매도하는 격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현 실태를 진단한 다음 조용하게 자신의 일을 묵묵히 이루어 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다시 말해 겸손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한마디로 겸손한 사람들을 이렇게 표현한다.

 

소란을 떨지 않고도

과도히 애쓰지 않고도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도

그들은

조용하고 강력하게

자신이 맡은 일을 잘해낸다. (110쪽)

 

이렇게 보면 겸손이 일을 해낸다기 보다는 일을 잘하는 사람 중 겸손한 사람의 특성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저자가 겸손한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로 꼽는 것으로 모든 에너지를 쓰지 않는 것이 있다.

 

앞으로 나서지 않고 스스로를 낮추는 태도가 가져다주는 의외의 기쁨은 또 있다. 나를 다 소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165쪽)

 

앞으로 나서지 않고 낮춤으로써 나를 다 소모하지 않는다는 것도 주객전도가 되어 나를 소모하지 않기 위해 소극적으로 일에 임할 수도 있지 않을까란 염려가 있긴 하지만 번아웃보다 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번아웃이 오기 전 마음이 서서히 타들어가는 것을 뜻한다는 토스트아웃이 확산되고 있다는 요즘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인 것 같다. 어떠한 경우라도 살아남기 위해 도망가야 할 체력은 남겨놓아야 하는 법이니까.

 

책을 읽으며 동의하지 못할 부분도 있는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였으나 겸손의 힘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겸손함이란, 나 자신을 의심할 수도 있는 용기이기도 하다. 나의 견해를 뒤집지 못하는 진실이라고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의 충고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시하지 않고 경청할 수 있는 태도다. 그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는 온화하고 현명한 삶의 태도, 이것이 바로 겸손의 힘이다. (260쪽)

 

나만이 옳고 나와 대척점에 있는 이들은 모조리 다 나쁘다고 제거해야 할 적이라고 여기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요즘이다. 이에 저자의 말처럼 나 자신을 의심할 수도 있고 조금 더 나아가 나도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요즘인 것 같다. 겸손이라는 태도에 대하여 저자의 의견을 읽고 나름 나만의 생각도 할 수 있었던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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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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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과 해양 세력상이에 위치한 반도의 나라라는 지리적인 여건상 외세의 침략이 끊이지 않은 우리나라이나 역사적으로 위기 때마다 마법처럼 영웅이 등장하곤 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는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가 침체되어가는 한국문학 시장을 속된말로 멱살을 잡고 끌고 가고 있는 모양세다. 노벨문학상 발표가 한 달 정도 지났지만 서점가에는 아직도 한강 작가들의 책이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전시되어 있고 사람들을 서점으로 끌어 모으고 있다.

 

하지만 한강 작가의 소설은 나에게는 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예전 작별하지 않는다를 다른 소설보다 어렵게 읽은 기억이 있다. 제주 4.3 사건이나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아픈 현대사를 글과 영상으로만 접했다는 세대라는 어설픈 핑계를 하곤 하지만 내공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원서가 한글인 노벨문학상 작품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고른 소설이 희랍어 시간이다.

 

한강 작가의 소설에는 큰 따옴표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물의 대사 없는 것도 아니다. 작별하지 않는다에도 그렇고 희랍어 시간에서도 그랬다. 대사를 눈에 띄게 구분하지 않아서 인지 그만큼 인물의 내면 심리를 더 잘 살필 수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또한 감정이 고조되는 장면에서는 문장의 행간의 늘리는 등의 표현으로 글을 읽는 것 뿐 아니라 페이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희랍어 시간은 소리를 잃은 한 여자와 빛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여자가 말을 잃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수천 개의 바늘로 짠 옷처럼 그녀를 가두며 찌르던 언어가 갑자기 사라졌다. 말을 배우기 전, 아니, 생명을 얻기 전 같은, 뭉클뭉클한 솜처럼 시간의 흐름을 빨아들이는 침묵이 안팎으로 그녀의 몸을 에워쌌다. (15쪽)

 

또 다른 주인공인 남자는 가족을 독일에 두고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희랍어를 가르친다. 그 수업에 모르는 외국어로 말문이 트인 적이 있는 여자가 수업을 듣는다. 수업 내내 말이 없는 그녀를 이윽고 그가 의식하게 되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안경을 깨뜨려 앞을 보기 힘든 그를 그녀가 도와주게 된다.

 

희랍어 시간의 불안한 모습의 주인공을 보면서 홍콩의 중국 반환 전의 혼란이 가득 담긴 영화 <중경삼림><타락천사>가 떠올랐다. 양조위 배우의 연기가 주로 생각이 나지만 나에게는 지금과는 다른 홍콩이 담긴 영화로 배우들의 눈빛이 무겁게 느껴진 기억이 남아 있다. 이런 영화 속 등장인물과 비슷한 말을 잃어버린 여자와 빛을 잃어가는 남자가 마주하는 그 찰나의 시간이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욕심일까란 생각도 하게 된다..

 

작가의 말에서 한강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소설 속 그와 그녀의 침묵과 목소리와 체온, 각별했던 그 순간들의 빛을 잊지 않고 싶다. (193쪽) 

 

소설을 읽는 나도 오랫동안 그들이 순간의 빛을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소설의 내용과 별도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문장인 희랍어 시간 말미의 한 대목이다.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끊없이 긴 문장들인지도 모른다.

단어들이 보도블록에, 콘크리트 건물의 옥상에, 검은 웅덩이에 떨어진다. 튀어오른다.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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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 미친 반전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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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와 단절 된 고립된 장소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클로즈드서클의 형식을 지닌 방주를 선보인 유키 하루오의 성서 삼부작 중 두 번째 이야기가 바로 십계이다. 이 역시 고립된 외딴 섬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어 클로즈드서클물처럼 보이나 전작인 방주와는 사뭇다른 환경이 펼처져 옮긴이는 이른 역클로즈드서클물이라고 부른다.

 

사건의 무대가 되는 곳은 에다우치지마섬으로 작중 화자인 오무로 리에의 큰아버지가 소유한 무인도이다. 리에의 아버지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큰아버지 오무로 슈죠는 젊은 시절 주식투자 성공으로 많은 재산을 모아 본토와 제법 많이 떨어져 있는 무인도를 구매하여 집과 인프라 정비 후 섬 전체를 개인 별장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예대를 목표로 삼수 중인 주인공 오무라 리에는 초등학교때까지 종종 섬으로 놀러갔으나 중학교로 진학을 하고 동아리 활동이 바빠져 큰아버지와 만남이 뜸해졌다고 한다. 그런 큰아버지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섬의 처분을 의논을 할 겸 바람을 쐬기 위해 관광 개발, 건설 회사, 부동산 회사 사람들과 함께 일박 이일의 일정으로 섬을 향해 떠난다.

 

무인도인 에다우치지마섬에 총 아홉 명의 등장인물이 하루를 보내기 위해 온다는 설정이 사건의 냄새를 물씬 풍기게 만들었다. 등장인물은 관광 개발 사와무라 씨와 젊은 여자 인턴 아야카와 씨, 건설 회사의 사장 50대 남자 구사카 씨와 마흔 살 전후의 여자 건축사 노무라 씨, 부동산 회사 30대 초반 남자 후지와라 시, 40대의 중년 남자 오사나이 씨, 큰아버지의 지인 야노구치와 아버지, 리에까지 아홉 명이다.

 

오랜만에 찾은 섬이지만 나름 정비가 잘되어 있어 일행들은 그럭저럭 만족을 하며 시설을 돌아보는데 방갈로에서 폭탄을 제조한 흔적을 찾으며 상황은 악화되어 간다. 그리고 다음 날 일행 중 한명이 살해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사건과 동시에 일행에게는 범인이 보낸 메시지가 현관문 앞에서 발견된다. 그 메시지에는 10가지 하지 말것이 적혀있는데 구체적으로 사흘간 섬을 떠나지 말고, 섬의 상황을 외부에 전달하지 말고, 통신 수단을 소지 하면 안 되고, 침실 하나당 한 명씩 머물며 범인을 누구인지 알아내지 말 것을 주문한다. 열 가지 항목을 지키지 않으면 방갈로에 있는 폭탄이 폭발한다고 협박을 한다. 소설의 제목이 왜 십계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 사흘 동안 또 다른 살인 사건이 일어나며 범인의 또 다른 메시지도 함께 발견된다.

 

살인범과 같은 공간에 있지만 범인을 발히면 안되는 상황이기에 옮긴이는 이를 역클로즈드서클물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섬에 있는 사람들은 모종의 방법으로 살인범과 의사소통도 하면서 사흘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그 과정을 1인칭 화자인 리에의 눈으로 보고 있으면 스릴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전작인 방주와는 달리 마지막 반전이 아쉬웠다. 범인과 함께 생활을 하지만 범인을 밝히면 안 되는 상황을 조성하는 것까지는 새롭게 느껴졌으나 섬을 빠져 나오는 배위에서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이 너무 밋밋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새로운 형식의 미스터리 소설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시도가 될 수 있는 십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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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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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본성에 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가장 대표적으로 유교사상의 성선설성악설이 있다. 인간본성은 선하다 악하다고 딱 구분할 수 없고 혼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들지만 그 중 성악설은 사람의 본성은 악하여, 날 때부터 이익을 구하고 서로 질투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예의를 배우고 정신을 수련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인간본성이 악하다는 성악설에 따를 때 어디까지 악하면 악하다고 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된다. 매운맛도 단계별로 표시가 가능하기에 10정도의 악함을 볼 때 1정도의 악함은 악하다고 해야 할지 선하다고 해야 할지가 문제된다. 간단하게 말해 인간본성을 수직선이라고 볼 때 0을 기준으로 (+)방향으로 선함, (-)방향으로 악함이라고 하면, 선함과 악함은 끝이 없는 무한대를 향한다. 그리고 그 끝없는 악함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 스티븐 킹의 홀리이다. 그리고 홀리의 뒷 표지에는 '악에는 끝이 없다'는 문장이 있다.

 

끝이 없는 악을 간결한 문체로 긴박하게 잘 표현된 스릴러이기에 섬뜩하게 잘 읽을 수 있는 홀리이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목차이다. 목차는 사건이 일어난 20121017일부터 사건이 해결된 2021818일까지 날짜로 되어 있다. 그것도 시간별이 아닌 주요한 사건 중심인 목차이기에 꼼꼼하게 보지 않으면 사건을 흐름이 뒤섞일 수 있어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목차구성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사건의 범인이 등장한다. 각각 대학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가르친 에밀리와 로드니 해리스 노부부가 그들이다. 서스펜스 스릴러에서 범인과 그들의 수법을 처음부터 밝히고 시작하지만 거의 600쪽이 이르는 긴 이야기를 스티븐 킹은 긴박하게 풀어낸다.

 

때는 코로나가 한창인 2021년 여름 코로나로 어머니를 잃은 홀리 기브니에게 사라진 딸의 행방을 찾아달라는 한 어머니의 의뢰가 들어온다. 그녀의 딸 보니는 도서관 보조 사서로 근무하고 퇴근 후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 실종되었다. 그녀의 자전거는 인적이 드문 길가의 폐건물 앞에 얌전히 주차되어 있었고, ‘더는 못 견디겠다.’라고 적힌 쪽지가 붙어 있었다. 파트너 피터가 코로나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 홀리는 홀로 그 사건에 매달리는데, 그녀가 사라지니 장소부근에서 실종된 이들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홀리가 사건의 범인인 대학 명예 교수인 해리스 부부에게까지 다가가는 과정을 그린다.

 

사건이 해결되고 홀리는 이렇게 말한다.


선을 한 번 넘은 게 전부였을 거야. 이후로 점점 쉬워졌겠지. 그리고 플라시보 효과도 한몫했고.” (587쪽)


그 노부부가 넘은 선을 알게 된 순간 소설 표지가 더 섬뜩해지지만 소설 홀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에 여기까지만 말해야겠다.

 

나에게는 스티븐 킹의 소설이 처음이다. 그렇기에 미스터 메르세데스로 대표되는 빌 호지스 3부작에서 조역으로 등장한 홀리 기브니가 낯설기도 하다. 종종 빌 호지스나 관련 있는 다른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언급되기도 하나 사건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아 나처럼 스티븐 킹 소설이 처음인 독자도 스릴 있게 읽을 수 있다. 왜 스티븐 킹을 이야기의 제왕이라고 말하는지를 알게 된 홀리였다.

 

끝으로 스티븐 킹은 열혈한 민주당 지지자라고 한다. 그래서 소설 곳곳에 코로나19가 한창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는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정치색에 민감한 독자들은 조금 꺼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야기의 진행에는 거의 방해가 되지 않아 소설 흐름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그런 스티븐 킹이 소설의 최대 빌런의 이름을 해리스 부부로 지었는지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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