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하는 일
채수아 지음 / 모모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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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흔한 달콤한 로맨스나 완벽한 가족 화목을 노래하는 에세이가 아니다. 이 책은 오롯이 '사랑하는 쪽'에 서서 써 내려간 한 여성의 고백이자,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영혼의 자서전'과도 같다. 88편의 짧은 글 속에는 오랫동안 교직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1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시집살이를 견뎌온 한 사람의 삶의 무게가 조용히 녹아 있다.

 

저자는 사랑의 아름다운 면만 부각하는 '힐링'에 매몰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이 동반하는 고통과 가혹한 의무의 지점들을 솔직하게 꺼내 놓는다.

 

"어머님은 죽고 싶었지만, 죽지 않으셨다. 어머님은 도망가고 싶으셨지만, 가족을 끝까지 먹여 살리셨다." (18)

 

시어머니를 모시며 건강을 잃고 정든 교단마저 일찍 내려놓아야 했던 저자에게, 사랑은 화려한 수식어가 아닌 '그 자리를 지켜낸 삶' 그 자체였다. 이론이 아니라 뼈아픈 경험에서 길어 올린 문장들이기에 그 울림은 더욱 깊고 묵직하다.

 

상처를 통과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저자가 포착하는 사랑의 장면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만원 전철에서 친절을 베푼 낯선 학생에게 읽던 책을 건네주는 찰나, 우는 아이의 이야기를 지나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는 시간, 사랑은 거대한 희생이 아니라, 이렇게 잠시 멈춰 서서 누군가를 '그냥 봐주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저자는 자신의 삶으로 증명한다.

 

결국, 타인을 향하던 사랑의 시선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타인을 위해 헌신하다 텅 비어버린 자신을 직면할 때, 비로소 진짜 회복이 시작된다.

 

"알겠다. 점점 알아진다. 그냥 좋은 마음으로 매 순간을 사는 거다. ... 지금 이 자리에서 사랑을 심는 거다. 사랑을 선택하는 거다." (262)

 

수십 년의 세월을 통과하며 지식이 아닌 '지혜'로 나아가는 저자의 고백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고민하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책의 문장들은 유려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소박하고 담담하다. 하지만 가르치려 들거나 설교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살아낸 것들을 담담하게 꺼내 놓기에, 마치 어머니가 차려주신 따뜻한 집밥처럼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다. 무거운 고민이 있더라도 "오늘 하루만 잘 살자"는 다짐으로 씩씩하게 일어서는 저자의 태도가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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