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되기에는 아직
사사하라 치나미 지음, 유태선 옮김 / 요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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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를 벗어던진 존재를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바람이 되기에는 아직이 던지는 가장 근원적인 물음이었다.


소설은 정보 인격이 보편화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인간은 자신의 뇌 정보를 데이터로 변환해 디지털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다. 죽음은 더 이상 절대적인 끝이 아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러한 기술적 가능성보다, 그 선택이 불러오는 감정의 균열과 인간성의 문제를 섬세하게 파고든다.

읽는 내내 느껴지는 것은 이 세계가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더 고요하고, 더 쓸쓸하다.


신체에서 분리된 건축물은 공허하다. 거기서 지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291)


정보로 살아가는 세계는 완벽하지 않다그리고 그 불완전함이 이 소설을 더욱 인간적으로 만든다.


이 작품에서 바람이 된다는 표현은 자유가 아니라 소멸을 의미한다.

정보 인격은 영원하지 않으며, 관계가 끊어질 경우 정체성을 잃고 흩어진다.


정보 인격은 흩어지거든요. 누구의 것인지 판별할 수 없을 정도로” (28)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제목의 의미가 선명해졌다바람이 된다는 것은 형태를 잃고 사라지는 일이다그리고 등장인물들은 아직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정보 인격으로 이행하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였다.

그 과정은 기대나 희망보다 두려움에 더 가깝다.


기계로 재현된 인격이 정말 나일까.” (25)


이 질문은 곧 테세우스의 배와 같은 철학적 문제로 이어진다.

기억과 성격이 동일하다면, 그것은 나인가 아닌가란 질문으로 이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육체를 버린 존재들이 오히려 신체를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감각, 접촉, 온기 등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뒤늦게 깨닫게 된다영생의 대가로 잃어버린 것들이 무엇인지, 이 소설은 조용히 드러낸다.


이 소설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가족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떤 형태라도 좋으니까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 (144)


죽음을 앞둔 할머니가 손녀에게 말하는 이 문장에는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담겨 있다사람은 어떤 형태로든사랑하는 이 곁에 있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동시에, 남겨진 사람들의 부담 역시 외면하지 않는다.

정보 인격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의 가족은 계속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그 관계는 여전히 사랑이지만, 동시에 무게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가장 깊이 남은 문장은 다음이었다.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이 세상이 복잡하다는 증거다.” (252)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정보 인격이든, 인간이든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그럼에도 우리는 관계를 맺고, 기대하고, 함께 살아간다이 소설은 그 불완전한 공존을 긍정한다.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더욱 현실적인 질문이 등장한다.


소멸한 정보 인격의 데이터를 삭제해야 하는가.


이는 단순한 SF적 상상이 아니라오늘날의 SNS 계정, 디지털 유산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사라진 사람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또 한 번의 죽음일까.

소설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대신 독자가 그 불편함을 끝까지 느끼게 만든다.


바람이 되기에는 아직SF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본질은 철저하게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죽음이 선택이 된 세계에서도 사람은 여전히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후회하고, 그리워한다.

기술은 변하지만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그 사실이 이 소설을 더 깊고, 더 쓸쓸하게 만든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다루는 작품으로 김초엽 작가의 관내분실이 떠올랐다.

인격의 데이터화, 그리고 그것이 인간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두 작품을 함께 읽으면 더욱 흥미로운 대비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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