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 - 의심 많은 사람을 위한 생애 첫 번째 사회학
오찬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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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오찬호의 2018년 신작이다. 오찬호는 '불평불만 투덜이 사회학자'라는 별명답게 일관적으로 사회비판적인 저서를 출간해왔다. 그를 메이저 작가로 만든 '히트작'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부터 2017년 작 <1등에게 박수 치는 게 왜 놀랄 일일까?>에 이르기까지, 그는 사회의 다양한 요소들을 비판하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해왔다. 본작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는 일종의 사회비판 종합 세트이다. 그가 가수였다면 베스트앨범을 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이전까지 비판해왔던 다양한 사회문제들(약육강식의 경쟁 시스템, 여성 혐오 문제, 기업화되는 교육시스템 등)을 포괄하여 다루며, 인간이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없음을 그렇기에 사회시스템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반드시 알아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본인이 자연인(?)이 아닌 이상 자신을 둘러싼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사람들은 종종 이를 망각한다. 본인의 감정, 생각, 행동이 순수하게 본인의 뇌 속에서 창조된 것이라 착각한다. 허나 오찬호의 생각에 따르면 우리는 단 한순간도 사회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마디로 '순수한 내 마음'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원래 그런 사람'도 없다. 우리는 특정 사회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오찬호는 본작의 1~7장에 걸쳐 제시되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마지막 8장에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설명한다.

 '사회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은 없다'라는 오찬호의 주장은 제법 설득력 있게 들린다. 실제로 사람의 행동양식, 사고 구조는 사회마다 차이가 크다. 국가 간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 내에서도 시대별로 지역별로 차이가 크다. 예컨대 한국 남성과 노르웨이 남성, 60대 광주 남성과 10대 서울 청소년, 20대 서울 여대생과 20대 대구 군필 남성의 생각은 얼마나 다르겠는가? 이 차이는 그들을 둘러싼 환경, 즉 사회 모습(사회구조)의 차이에서 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오찬호가 언급한 사례들을 보아도 쉽게 설득이 된다. 그는 특히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을 주로 언급한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일상의 병영화를 통해 시민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며, 수동태 인간을 양성해왔고, 그 결과가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수직적인 기업문화,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 등)이라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결정장애란 말을 생각해보자. 사람의 특성 중 한 가지로 만 생각되는 결정장애에도 사회의 영향은 있다. 문제부터 정답까지 한 가지 길만 알려주는 교육시스템, 샛길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한국의 수많은 결정장애자들을 양산한 게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본작은 괜찮은 책이다. '사회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은 없다'라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잘 풀어냈다. 그러나 무언가 아쉬움도 남는다. 무엇보다 책의 깊이가 얕다. 그는 사회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이 없다는 사실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분명 친절하게,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은 미덕이다. 허나 그 설명의 깊이가 얕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금 확인해보는 수준에 그친다. 본 책의 타깃층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인이 읽기에는 다소 수준이 낮다. 그동안 사회 곳곳의 적폐들을 날카로운 통찰로 분석해왔던 오찬호의 책이라고 보기엔 수준이 한참 낮다. 냉정하게 말해서 사회에 불만 많은 대학생의 리포트 수준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전작들처럼 하나의 테마를 정해두지 않은 것도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겠다. 오찬호는 '여성 혐오', '대학의 기업화', '경쟁을 내면화한 청소년의 모습' 등 특정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책을 써왔다. 그러나 본 책의 주제의식은 너무 단순하다. '의심 많은 사람을 위한 생애 첫 번째 사회학'이라는 단서가 달려있긴 하지만,,, 그런 사람을 위해 쉽게 설명했다기보단,  책 자체가 쉽게 쓰였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본 책은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난 그가 좋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서 보여줬던 그의 통찰력과 비판적인 시각은 아직 살아있음을 믿는다. 그가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것도 아직 하고픈 말이 많다는 것이리라.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달라질 수 있도록 그가 계속 책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번 책 보단 조금 더 나은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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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의 개들 - 제11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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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머릿속의 개들>은 제 11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작으로 이상운 작가가 집필했다. 특유의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문체와, '효율'에 매몰된 현대사회에 대한 실랄한 풍자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주인공 고달수는 백수이다. 어느날 잘나가는 설치미술가이자 그의 절친인 마동수가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고도비만인 자신의 마누라와 이혼하고 싶은데 잘 안되니, 자신의 아내(장말희)를 꼬셔서 이혼하게끔 만들어달라는 것. 만약 성공할 시 1000만원을 준다는 약속도 한다.  스스로를 '존재A'(고달수가 정의한 자신의 상태로서 실업자를 일컫는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세상엔 '존재 A'와 예비 실업자인 '존재B'만이 존재한다)라 칭할 정도로 자존감이 바닥에 이르른 고달수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사건은 시작된다. 

  남의 아내를 꼬신다는 줄거리만 얼핏보면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이나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가 떠오를 지 모르겠으나, 이 책의 메시지는 위의 작품들과 확연히 다르다. 본 소설의 핵심단어는 '구조조정''효율'이다. 우리네 세상이 그렇듯, 본 작품 속에서도 가치있는 것은 '효율'적인 것이다. 비효율적인 것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다. 허세만 가득찬 부르주아 설미치술가 마동수의 논리도 그렇다. 자신의 아내는 모든 면에서(특히 외모) 비효율의 극치이니, 자신은 그저 삶의 효율화를 위해 그녀를 구조조정한다는 것이다. 직장과 연애에서 '구조조정' 된 경험이 있는 주인공이자 실업자인 고달수는 처음에는 그의 논리를 받아들여, 그의 아내 장말희를 꼬시지만 어느새 밀려드는 회의감과 장말희에 대한 연민에 이를 포기한다(그리고  장말희에게 진실로 다가서기 위해 그 자신도 그녀처럼 폭식을 하며 살을 쯰우고, 그녀에게 다가가지만,,,). 여기서 무기력한 백수 고달수와 뚱뚱한 외모로 인해 남편으로부터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장말희는 모두 '존재A'이다. 반면 그럴듯한 논리로 자신의 치졸한 행태를 합리화하는 마동수는 '존재B'이다. 효율의 논리에 의해 인간다운 모습의 '존재A'는 도태되고, 비인간적인 '존재B'는 잘먹고 잘사는 세태. 작가는 현실의 모순된 세태를 세 등장인물의 행태를 통해서 풍자하고 비틀고 있다. 재기발랄한 문체와 놀라운 언어감각은 덤이다.      

결국 정말 중요한 것은 효율따위가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의 존엄과 가치이다. 뚱뚱하다고, 무기력하다고 인간 존엄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 소설 속의 마동수는 우리가 현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하며 비인간적인 구조조정을 합리화하는 존재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소설 <내 머릿속의 개들>은 그런 '개같은' 인간군상들을 전시하며 우리의 무딘 감수성을 일깨워준다. 수없이 많은 잣대들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배제하는 우리네 현실을 생각한다면, 한번쯤 읽어봄직한 하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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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어나더커버 특별판)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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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는 페미니즘 소설집이다. 소설 표지 왼쪽 상단에 '페미니즘 소설'이라 적혀 있듯, 공식적으로 페미니즘을 테마로 한다(아마 국내 최초의 시도가 아닐까 싶다).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쇼코의 미소>의 최은영 등 30~40대 여성 작가 7명이 뭉쳐 만들었다.

 본 소설집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 3편은 각각 '데이트 폭력', '고부갈등', '성희롱 문제' 등 여성이 겪을 수 있는 현실적인 고통들을 다루고 있다. 반면 후반부 네 편은 판타지, 추리, 공포, SF를 차용한 장르소설들로서 보다 은유적으로 페미니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본 소설집의 베스트는 전반부의 <당신의 평화>와 후반부의 <이방인>이다. 먼저 최은영 작가의 <당신의 평화>는 '고부갈등'을 소재로 한다. 흔히 고부갈등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권력다툼 정도로 여겨진다. 즉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이기적이라 그런 사달이 난 것이며, 둘이 화해해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된다. 때문에 남자들은 '하여간 여자들이란...' 이라며 혀를 끌끌차며 문제를 방관해왔다. 허나 <당신의 평화>는 그것이 잘못된 통념임을 보녀준다. '고부갈등'의 근본적인 문제는 여성을 착취하며 유지되는 가부장제 시스템임을, 평생을 남편과 시어머니의 뒷바라지를 해오며 살아온 정순과 그녀를 바라보는 딸 유진의 갈등을 통해 보여준다.   
 
  손보미의 <이방인>은 <당신의 평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페미니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방인>은 느와르물이다. 형사가 동료의 도움을 받아 미제 사건을 해결한다는 평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형사가 여성이며, 그를 돕는 동료가 남자라는 것이 다른 일반적인 느와르물과 다르다. 게다가 본 소설에선 형사가 여자라는 데에 대해서 주변인물들이 어떤 태클도 걸지 않는다. '여자가 무슨 형사야?'류의 대사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보통의 느와르물이라면 대개 중년 남성 형사와 그를 돕는 20대 미녀가 나온다. 손보미는 이를 전복시킨 것이다. 솔직히 <이방인>은 그다지 잘쓴 소설은 아니다. 스토리에 별 개연성도 없고 뚝뚝 끊긴다. 그러나 본 작품은 그런 스토리상의 구멍과 별개로, 성관념에서 벗어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만 하다.  

 <당신의 평화>와 <이방인>을 제외한 다른 작품들도 읽어볼 만하다. 한남충스러운 아들을 바라보며, 엄마로서 혹은 여자로서 느끼는 이중적인 감정을 다룬 김이설 작가의 소설 <경년>도 탁월하다. 허나 몇몇 작품들은 다소 난해하다. 특히 최정화 작가의 <모든 것을 제자리에>는 뭘 얘기하고자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내가 남자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페미니즘 소설집 <한남 오빠에게>에는 수록 소들의 퀄리티만으로는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여혐으로 도배된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페미니스트가 마치 빨갱이 수준의 불순분자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당당히 '페미니즘 소설'을 표방했다는 것만으로도 본 소설은 가치를 지닌다.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놀라울정도로 폭력적이고 모순투성이다. 지금껏 남자들이 편하게 살아온 것은, 남성이 만들어놓은 왜곡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다른 한쪽의 눈을 뜰 차례이다. 페미니즘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가 당신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을 선사해 줄 것이다. 그것이 곧 우리가 이 책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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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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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으로 일하는 사람으로서 내겐 하나의 습관이 있다. 나는 매일 아침 출근하여 컴퓨터를 커면 일단 '네이버책 페이지(http://book.naver.com/)'를 열어본다. 새로나온 책은 무엇이 있는지, 어떤 책이 많이 팔리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함이다. '네이버책'의 메인페이지에서 그 정보들을 한 눈에 찾을 수 있다. 화면의 위쪽에는 '요즘뜨는 새책'이, 그 아래쪽에는 '이번주 베스트셀러'가 보인다. 기억해보면 내가 처음 도서관에 출근한 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약 3년간 '이번주 베스트셀러'에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 책이 있었다. 바로 오늘 소개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메가히트작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드디어 읽어보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야 워낙 유명한 작가니 더 소개할 것도 없지만, 이 책에 대해선 특별히 언급해야 될 부분이 있다. 바로 괴물같은 판매량이다. 우선 이 책은 교보문고 기준 지난 10년간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가장 많이 오른 책에 선정되었다. 비록 베스트셀러 1위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약 129주(2년 6개월)동안 10위 안에 머물렀다. 더불어 본 작품은 지난 10년간 가장 많이 팔린 문학 작품 2위에도 선정이 되었다. 약 29만부가 판매되었는데,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보다 1만부 뒤쳐진 성적이다. 이 통계가 작성된 것이 작년 9월이니 아마 지금조사하면 1위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29만부... 우리나라의 독서율을 생각하면 정말 기적같은 판매량이다. 게다가 한국소설도 아닌 일본소설이 이토록 많이 팔리다니. 도대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길래 이토록 기적적인 판매량을 보이고 있을까?  


좀도둑 3인방 쇼타, 아스야, 고헤이는 차량과 귀중품을 훔쳐 달아다나 차가 고장나 어느 폐가에 숨어있다. 벌벌떨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있던 찰나 난데없이 집에 설치되있던 편지함으로 편지 한 통이 날아든다. 좀도둑 3인방은 그들의 위치가 발각된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에 편지를 집어든다. 편지에는 '달토끼'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의 고민이 적혀있다. "남자친구가 암에 걸렸는데, 운동선수인 나는 곧 해외로 훈련을 떠나야 한다. 남친을 두고 가자니 미안하고, 훈련을 가지 않자니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않을 것 같아 걱정된다"는게 고민의 주 내용이다. 3인방은 호기심반, 연민반으로 답장을 써서 편지함에 넣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곧바로 '달토끼'의 답장이 도착한다. 이해할 수 없는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일단 그들이 숨어든 집 주위에는 그 누구도 없다. 두번째 설령 누군가 있어서 답장을 썼다 하더라도 그토록 빨리 답장을 쓸 수는 없다.무엇보다 편지 내용으로 추정컨대 편지를 쓴 사람은 현재가 아닌 약 40년 전의 사람이다. 즉 그들은 과거의 사람과 편지를 주고받은 것이다. 좀도둑 3인방은 사태파악을 마친 후, 태어나 처음으로 의미있는 일을 해보고자 결심한다. 편지를 보내는 고민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성심성의껏 답장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고민상담은 여러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는다.  

 

 

 

줄거리를 보면 알겠지만 본 소설은 일종의 타임슬립 소설이다. 2016년에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시그널>과 유사한 소재랄까? <시그널>의 무전기가 편지로, '사건해결'이 '고민해결'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소설이 한참전에 나왔으니, 김은희 작가기 이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재미있는 소설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다양한 에피소드 각각이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그 에피소드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짜임새있는 결말을 유도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나미야 잡화점'의 정체와 각 에피소드간의 숨겨진 연결고리를 추리해가는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유치하지 않다. 고민들이 제법 현실적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도 무작정 낭만적이지는 않다(특히 '묵도는 비틀스로'가 그렇다). 덕분에 450쪽에 달하는 분량에도,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 굉장히 쉽게 쉽게 읽힌다. 과연 히가시노 게이고답다. 정말 가독성에선 따라잡을 자가 없다.

그러나 본 책이 과연 29만부나 팔릴 정도로 대단한 소설인가엔 의문이 든다. 분명 재미는 있으나 특별하진 않다. 수작이지만 명작은 아니랄까? 특히 마지막 장 '하늘 위에서 기도를'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바로 직전의 에피소드 '묵도는 비틀스로'와 달리 매우 유치하다. '하늘 위에서 기도를'을 읽으며 영화 <써니>의 결말을 떠올렸다. 그 영화에선 주인공들의 고민이 돈많은 친구의 재력으로 한 방에 해결된다. '하늘 위에서 기도를'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본인의 노력보단 '나미야 잡화점'에서 얻은 인생치트키로 한방에 고민을 해결한다. 이는 그 전까지 일관되게 유지되던 본 책의 교훈('모든 고민의 해답은 너 자신에게 있다. 혹은 상황를 보는 너의 관점을 바꾸면 삶의 달라질 것이다')과 전혀 무관한 내용이라 생각된다. 때문에 본 책에 대한 평가도 다소 내려갔다.

어쨌건 결말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렇지 한 번 읽어볼 만한 소설이긴 하다. 이 책의 메시지대로 결국 모든 고민의 해답은 자신에게 있다. 그것이 양자택일이든 오지선다이든, 더 마음이 가는 선택지가 있기 마련이다. 본 소설 속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마음속에 이미 정답이 있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할아버지는 질문과 공감을 통해 그것을 확인시켜주었을 했을 뿐이다. 지금 여러분의 고민은 무엇인가? 해결되지 않는 고민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정답을 얻을지도 모를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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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면 따져봐 - 논리로 배우는 인권 이야기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최훈 지음 / 창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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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언젠가 나와 내 친구가 '여성인권'을 주제로 말다툼을 하였다. 내 친구는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의 인권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사실이나, 이 문제는 '점진적으로' '천천히'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여성들의 요구사항(?)을 갑자기 다 들어주면 여성상위국(?)인 노르웨이처럼 여성들이 남자들 위에 군림하게된다는 것이 그 주장의 근거였다. 

 장면 2. "동성애가 에이즈를 창궐시켰다.". "동성애자를 엄벌해야 한다." 2017년초 당시 자유한국당의 대통령후보였던 홍준표가 동성애와 관련하여 쏟아낸 발언들이다. 그는 이처럼 동성애와 관련된 근거없은 혐오발언을 쏟아냈고, 덕분에 보수성향의 유권자들로부터 큰 지지를 얻어냈다.

 만약 당신이라면 내 친구와 홍준표의 저 말들에 대해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  준비되지 않은 자라면 쉽사리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지금 소개할 바로 이 책, <불편하면 따져봐>에 그 해답이 담겨있으니. 

 <불편하면 따져봐>는 인권과 관련된 다양한 편견들에 어떤 논리적 오류가 담겨 있는지 설명하는 책이다. "논리로 배우는 인권이야기"라는 부제에 걸맞게 인권을 논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설명한다. 본 책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였으며, 강원대학교 철학과의 최훈 교수가 집필하였다. 영화 속 인권이야기를 풀어쓴 책 '불편해도 괜찮아'의 후속작이기도 하다. 

<불편하면 따져봐>에는 우리가 살면서 마주할 수 있는 인권과 관련된 다양한 편견들이 소개된다. 대표적으로 여성 차별, 동성애 편견, 지역·인종차별, 학력차별, 장애인 차별 등이 있다. 본 책에서 내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동성애 편견에 대한 내용과 학력 차별에 대한 내용이다. 사실 요즘 시대에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여성을 차별하거나, 지역과 인종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장애인 차별도 마찬가지다. 쪽팔려서라도 대놓고 그들을 차별하지는 않는다. 헌데 그렇게 '배운 사람'들조차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거나, 학력에 따라 사람을 차별해도 된다고 주장하곤 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동성애는 자연의 섭리에 반대된다", "동성애는 선천적이 아니다", "동성애는 질병이다", "동성애는 에이즈를 유발한다" "삼류대 출신은 능력이 떨어지므로 채용등에 있어 차별해도 된다" 등등. 많은 사람들이 이런 주장에 대해선 편견이라 여기지 않고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본 책은 이런 주장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틀렸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왜 틀렸는지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 반박한다. 아주 시원시원하게 말이다.

인권을 공부하려는 사람, 혹은 주위 사람들이 뱉어대는 근거없는, 아주 무식한 편견들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온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본 책에서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마지막으로 앞서 소개한 두 가지 장면을 이야기해보자. "여성들의 인권을 갑자기 증진시키면(남성과 동등하게 만들면), 머지않아 여자들이 남자들 위에서 군림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라는 내 친구의 주장엔 어떤 오류가 담겨 있을까? 바로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이다. 내 친구의 주장은 마치 "동물에게 갇혀 있지 않을 권리를 주면 학교에 다닐 권리나 투표할 권리도 줘야 한다"는 주장처럼 극단적이다(실제로 18세기에 집필된 책 <짐승의 권리 옹호>의 저자는 여성에게 남성과 평등할 권리를 준다면 동물에게도 사람과 평등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개소리를 했다). 무언가를 허용했을 때 일어날 미래의 일을 과장·확대하여 예견하는 것.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를 꼭 기억해두자. 홍준표의 말에 담긴 논리적 오류는 본 책에서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가치 있는 책이니 꼭 사서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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