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남 오빠에게 (어나더커버 특별판)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현남 오빠에게>는 페미니즘 소설집이다. 소설 표지 왼쪽 상단에 '페미니즘 소설'이라 적혀 있듯, 공식적으로 페미니즘을 테마로 한다(아마 국내 최초의 시도가 아닐까 싶다).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쇼코의 미소>의 최은영 등 30~40대 여성 작가 7명이 뭉쳐 만들었다.

 본 소설집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 3편은 각각 '데이트 폭력', '고부갈등', '성희롱 문제' 등 여성이 겪을 수 있는 현실적인 고통들을 다루고 있다. 반면 후반부 네 편은 판타지, 추리, 공포, SF를 차용한 장르소설들로서 보다 은유적으로 페미니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본 소설집의 베스트는 전반부의 <당신의 평화>와 후반부의 <이방인>이다. 먼저 최은영 작가의 <당신의 평화>는 '고부갈등'을 소재로 한다. 흔히 고부갈등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권력다툼 정도로 여겨진다. 즉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이기적이라 그런 사달이 난 것이며, 둘이 화해해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된다. 때문에 남자들은 '하여간 여자들이란...' 이라며 혀를 끌끌차며 문제를 방관해왔다. 허나 <당신의 평화>는 그것이 잘못된 통념임을 보녀준다. '고부갈등'의 근본적인 문제는 여성을 착취하며 유지되는 가부장제 시스템임을, 평생을 남편과 시어머니의 뒷바라지를 해오며 살아온 정순과 그녀를 바라보는 딸 유진의 갈등을 통해 보여준다.   
 
  손보미의 <이방인>은 <당신의 평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페미니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방인>은 느와르물이다. 형사가 동료의 도움을 받아 미제 사건을 해결한다는 평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형사가 여성이며, 그를 돕는 동료가 남자라는 것이 다른 일반적인 느와르물과 다르다. 게다가 본 소설에선 형사가 여자라는 데에 대해서 주변인물들이 어떤 태클도 걸지 않는다. '여자가 무슨 형사야?'류의 대사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보통의 느와르물이라면 대개 중년 남성 형사와 그를 돕는 20대 미녀가 나온다. 손보미는 이를 전복시킨 것이다. 솔직히 <이방인>은 그다지 잘쓴 소설은 아니다. 스토리에 별 개연성도 없고 뚝뚝 끊긴다. 그러나 본 작품은 그런 스토리상의 구멍과 별개로, 성관념에서 벗어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만 하다.  

 <당신의 평화>와 <이방인>을 제외한 다른 작품들도 읽어볼 만하다. 한남충스러운 아들을 바라보며, 엄마로서 혹은 여자로서 느끼는 이중적인 감정을 다룬 김이설 작가의 소설 <경년>도 탁월하다. 허나 몇몇 작품들은 다소 난해하다. 특히 최정화 작가의 <모든 것을 제자리에>는 뭘 얘기하고자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내가 남자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페미니즘 소설집 <한남 오빠에게>에는 수록 소들의 퀄리티만으로는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여혐으로 도배된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페미니스트가 마치 빨갱이 수준의 불순분자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당당히 '페미니즘 소설'을 표방했다는 것만으로도 본 소설은 가치를 지닌다.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놀라울정도로 폭력적이고 모순투성이다. 지금껏 남자들이 편하게 살아온 것은, 남성이 만들어놓은 왜곡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다른 한쪽의 눈을 뜰 차례이다. 페미니즘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가 당신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을 선사해 줄 것이다. 그것이 곧 우리가 이 책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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