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아, 나를 꺼내 줘 - 제15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110
김진나 지음 / 사계절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진나 작가의 장편소설 <소년아, 나를 꺼내줘>는 제15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참고로 사계절문학상은 사계절 출판사에서 시상하는 상으로 청소년 소설을 대상으로 한다.

<소년아, 나를 꺼내줘>는 감성적인 표지디자인 만큼이나, 아련한 소설이다. SF나 스팩터클한 재난물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과 달리 내용은 감성적이며, 소소하다. 주인공은 18살 여고생 '신시지'이다. 그녀는 그 나이대의 여느 소녀들처럼 반항적이고 까칠하다. 딱히 하고싶은 것도 없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우연히 10년 전에 친구로 지냈던 동갑내기 소년 '얼'과 마주한다. '신시지'는 '얼'과 재회한 순간 변한 그의 모습에 반하고 만다. '얼'은 '신시지'와 헤어지며, "언제 한번 같이 서촌으로 놀러가자. 연락할게"라고 말하는데, 그 한마디가 신시지의 세계를 뒤흔들어 놓고 만다. 신시지에게 아주 모질고 지독한 상사병이 찾아온 것이다.  

앞에 서술한 줄거리가 사실상 본 소설에서 '사건'이라 칭할만한 것의 전부다. 이후로는 '얼'의 연락을 기다리는 '신시지'의 내밀한 심리묘사가 이어진다. 첫만남 이후 연락없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더욱더 괴로워하고, 온갖 망상과 자책에 빠져드는 시지의 심리가 마치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듯 자세히 묘사된다.

"얼은 모르겠지만 지금 내 세상에선 얼이 가장 힘이 세다. 얼은 내가 선망하는 그 어떤 아티스트보다 어떤 정치인보다 어떤 재벌보다 더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얼은 신화 속 신들처럼 내 운명을 쥐고 있다. 언제라도 나에게 "안녕 시지야"하고 말해서 나를 구할 수 있다."

"나는 비굴했다. 나는 얼을 봐야했다. 얼이 보고 싶었다. 얼이 말하는 걸 듣고 싶었다. 얼이 웃는 걸 보고 싶었다. 그래서 뭘 어쩌겠다고? 모른다. 얼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싫지만 않다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얼을 만나고 싶었다..."

지독한 짝사랑을 한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아마 위와같은 그녀의 심리에 공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소년아, 나를 꺼내줘>는 짝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녀의 심리와 성장통을 세밀한 묘사를 통해 전달하는 좋은 책이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서 재미가 없다. 별다른 사건없이 심리묘사로 200여 페이지가 이어지니, 읽다가 지치고 말았다.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권했을 때, 끝까지 읽을 만한 학생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 재미(가독성)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스마트폰 세대들에겐 특히 중요하다. <소년아, 나를 꺼내줘>는 훌륭한 소설이지만 재미는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어쩌면 내가 청소년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둔해진 공감능력에 슬퍼하며, 리뷰를 마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허리 아래 고민에 답변 드립니다 -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의 명쾌한 처방
우에노 지즈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뮤진트리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의 저자 우에노 지즈코의 신작이다. 아사히 신문의 인기 코너였던 <고민의 도가니>에 실렸던 글들을 정리하여 엮은 책이다. 아사히 신문의 <고민의 도가니>는 우에노 지즈코를 비롯한 몇 명의 전문가들이 독자들이 보내오는 고민들에 답해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고민을 보내는 독자들은 자신의 고민에 답해줄 전문가를 지목할 수 있었는데, 유독 성적인 고민들은 우에노 지즈코에게 향했고, 결국 위와 같은 다소 야릇한 제목의 책이 탄생하게 되었다.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이 책을 선택했다. 첫째로 야릇한 제목에 끌렸다. 익명이 사람들이 보내오는 성적인 고민이라니. 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둘째는 이 책을 쓴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를 쓴 우에노 지즈코라는 사실이었다. "성욕이 너무 강해 공부를 할 수 없습니다.", "젊은 남자애가 귀엽습니다.", "다가오는 상사에게 불쾌감이 들지 않습니다."같은 내밀하고 은밀한 질문에 그녀는 어떤 답을 해줄까? 너무 궁금했고, 때문에 곧바로 이 책을 질렀다. 막상 책을 접해보니 실제 내용은 내 생각과 조금 달랐다. 성적인 고민은 책이 수록한 다양한 주제의 고민들 중 일부에 해당했다. 책에는 부모와의 문제, 직장에서의 문제, 자식과의 트러블 등 인생 전반의 다양한 고민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우에노 지즈코는 이런 다양한 고민들에 성실히 답변을 해주었다.


그녀의 답변 중에는 인상깊은 것도 있었고, 의아한 것도 있었고, 실망스러운 것도 있었다. 우선 인상깊었던 것은 부모와 트러블을 느끼는(혹은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자식들의 고민에 대한 그녀의 답변이었다.  예컨대 이런식이다. 부모가 사는 동네에 큰 지진이 발생하여, 그들이 나의 집으로 이사를 왔다. 나는 우리집으로 갑자기 들어온 부모가 불편하다. 얼마 안있어 부모의 동네에 가설주택이 들어섰고, 나는 부모를 그곳으로 돌려보냈다(쫓아냈다).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잘못한 것일까?라는 질문에 우에노 지즈코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한다. 그녀는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 정상적인 것이라 진단하며, 더이상 착한 자식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결국 중요한 것은 나의 인생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의아한 답변은 '불륜'을 꿈꾸는 몇몇 사람들의 고민에 대한 그녀의 답변이다. 그녀는 의외로(?) 불륜에 긍정적,,, 아니 부정적이지 않다. 그녀는 불륜을 불륜이라 말하지 않는다. '혼외 연애'라 표현한다. 그녀가 '혼외 연애'에 부정적이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녀는 결혼을 "단 한 사람의 이성에게 배타적 또는 독점적으로 자신의 신체를 성적으로 사용할 권리를 평생에 걸쳐 양도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녀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이런 인위적인 계약으로 제약하는 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일명 '혼외 연애'의 욕구가 생기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결혼 제도에 부정적이며, 비혼주의자의 삶을 살 고 있다.


 마지막으로 실망스러웠던 답변은 '성욕을 주체할 수 없다'는 어느 중학생의 고민에 대한 것이다. 그녀는 해당 중학생에게 성적으로 연륜이 많은 여자(?)에게 부탁해보라 말한다... 열 명에게 부탁해보면 한 명 정도는 허락(?)해 줄 지도 모르며, 실제로 과거 일본에는 '와카모노구미'라 하여, 청년들의 동정을 깨주는 일을 담당했던 여성이 존재했다고 언급한다... 이와 같은 그녀의 답변을 보며, 그녀가 정말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를 썼던 우에노 지즈코인지 의심이 생겼다. 성적 연륜이 많은 여자에게 부탁해보라니... 지금은 와카모노구미가 존재했던 20세기가 아니거늘...


결론적으로 바로 위에 적어 놓은 실망스러운 답변 때문에 이 책에 대한 내 신뢰가 확 내려갔다. 그래서 읽자 마자 바로 중고서점에 팔아버렸다. 물론 이 책에는 도움이 될 법한 답변도 많지만, 그것들이 딱히 특별하거나 인상깊지는 않다.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평범한 답변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모든 고민에 대한 답은 질문 자체에 있지 않나 싶다. 우리의 내면에는 고민에 대한 답이 정해져 있다. 단지 상담자가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더해주길 바랄뿐. 결국 중요한 것은 상담사의 목소리보다 우리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이리라. 글을 마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연히 "2018년 '신소설'이 나타났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접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212112005)  3월 21일자 경향신문에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가 작성한 글이다. 칼럼은 한국문단에 홀연히 등장한 단편집 <회색인간>을 예찬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그 유명한 1907년 작 이인직의 <혈의누> 이후, 110년만에 '신소설'이라 칭할만한 작품이 등장했다고 표현하였다. '신소설'이란 간단히 말해서 '기존의 소설과 다른 소설'을 말한다. 문체든, 작법이든, 스토리든 무엇이든 기존 양식과 다르다면 그것은 신소설이라 말할 수 있다. 김동식의 <회색인간>은 도대체 무엇이 다르길래, 김민섭 평론가가 그토록 예찬하고 있을까?

 

 

직접 읽어본 단편집 <회색인간>은 확실히 달랐다. 지금껏 읽어본 국내의 어느 소설집에서도 접해보지 않았던, 쉽사리 규정할 수 없는 김동식만의 색채가 강하게 느껴졌다. 굳이 비슷한 작가를 찾자면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언급할 수 있겠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중에서도 <나무>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나무>보다 빠르고 경쾌하다. 보다 재미있고 쫄깃쫄깃하다. 군더더기가 없는 짧은 분량 속에 공포, 스릴, 코믹, SF 등 온갖 장르적 요소에 충격적인 반전까지 담겨있다. 약 14년전  <나무2 문예공모>를 통해 선발된 31명의 아마추어 작가들이 해내지 못한 것을(그들은 나무2라는 희대의 졸작을 만들어냈다...), 김동식은 홀로 해냈다.


 단편집 <회색인간>에는 표제작인 <회색인간>을 포함하여 총 24편의 초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작품마다 스토리가 다르지만, 대체로 SF를 기반으로한 디스토피아적인 색채를 띄고있다. 기술진보의 시대에 나타나는 인간성의 상실(<아웃팅>, <디지털 고려장> 등), 극한의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운석의 주인>, <협곡에서의 식인> 등) 혹은 그 안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연대(<회색인간> 등) 등의 그의 주된 관심사로 보인다. 놀라운 것은 수록된 24편 모두가 독특한 개성과 뛰어난 상상력(SF적인)을 가지고 있고, 작품의 질이 고르다는 점이다. 


<나무>이후 제대로된 SF단편집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이 소설집을 추천한다. 참고로 김동식은 <회색인간>외에도 총 4편의 단편집을 연달아 냈다. 1년에 5편의 작품집을 낸 것이다. 가히 괴물같은 작가라 할 만하다. 사실 그가 기존의 소설들과 차별화되는 신소설을 쓸 수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는 소설쓰기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 그는 고졸이며, 글쓰기와 아무 관련없는 '주물공장'에서 11년을 근무했다. 그의 글은 오로지 그의 삶의 경험과 머릿속 상상에서 탄생했다. 그의 글이 기존의 작가들의 것과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앞으로 읽을 수 있는 그의 단편집이 네 개나 더 있다는 사실이 나를 즐겁게 한다. 하루빨리 그의 글을 접하고 싶다. 당신에게도 '강추'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짓말이다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실은 다를 수 있지만, 상황은 정확히 얘기를 해야죠, 상황은. 욕을 먹더라도."
- 故 김관홍 잠수사의 말

<거짓말이다>는 세월호 사건 당시 투입되었던 민간잠수사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소설이다. 주로 장르물을 써왔던 김탁환 작가가 집필하였다. 김탁환 작가에게 세월호 사건은 굉장한 충격으로 남은 듯 하다. 그는 사건 이후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사회성 짙은 작품만 무려 네 편을 집필했다. 장편소설 <목격자들>(2015), <거짓말이다>(2016)와  단편집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2017), 에세이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2017)가 이에 해당한다. 이 중 <거짓말이다>와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는 지금까지 어느 작가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민간잠수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故 김관홍 잠수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거짓말이다>는 장편소설이지만,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소설보단 인터뷰에 기반한 르포르타주에 가깝다. 가명을 썼지만, 소설 속 모든 등장인물들은 어느 특정 인물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김탁환 작가는 세월호 사건 이후 팟캐스트에서 <416의 목소리>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2017년 4월에 종영). <416의 목소리>는 세월호 사건 유가족의 목소리를 듣고자 기획되었던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 민간잠수사인 故 김관홍씨가 나왔다. 그는 장장 4시간 동안 민간잠수사로서 세월호안에서 작업을 하며 경험한 것(온갖 거짓말들과 부조리)들을 이야기 했는데, 김탁환 작가는 그의 증언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이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소설은 나경수 잠수사의 탄원서로 시작된다. 그의 탄원서는 업무상과실치사죄로 불구속 기소된 류창대 잠수사를 위한 것이다. 민간잠수사인 류창대 잠수사는 나경수 잠수사를 비롯한 약 20명에 달하는 동료들과 함께 세월호 사건 현장에서 약 3개월간 시신 수습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작업 과정에서 민간잠수사였던 동료 한 명이 죽었는데, 검찰은 민간잠수사 중 실질적 리더 역할을 했던 류창대 잠수사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나경수 잠수사는 류창대 잠수사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탄원서를 썼다. 그리고 그 내용에는 고통과 좌절, 눈물로 점철된 약 3개월간의 이야기가, 마치 지옥같았던 현장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처럼 <거짓말이다>는 상당히 무거운 공기로 뒤덮혀있다. 결코 쉽게 읽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나는 소설을 제법 빨리 읽는 편이지만, 이 소설을 읽는데는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분노, 슬픔, 우울 등 온갖 감정이 뒤엉켜 만들어진 무언가가 가슴 아래쪽에서 붇받쳤기 때문이다. 힘겹게, 힘겹게 읽었다. 나는 나름 세월호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고, 잊지 않고자 노력해왔다. 하지만 민간잠수사의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민간잠수사들은 너무나도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일했다. 제대로된 장비도, 휴게공간도, 식사도 없었고, 인력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험한 맹골수도에서 하루에 네 다섯번은 바다에 들어가야 했다. 물론 의료지원 따위는 없었다. 바다 속은 어떠했는가. 시야는 20~40cm에 불과했다. 선내에는 온갖 부유물들이 떠돌아 다녔다. 그것들은 민간잠수사와 연결된 생명줄을 꼬이게 만들거나, 그들을 다치게 만들었다. 이런 환경속에서 민간잠수사들은 시신과 마주했다. 그리고 민간잠수사가 시신을 수면 위로 끌어오는 방법은 단 한가지였다. 바로 포옹이다. 어두컴컴한 바다 속에서 희생자를 안고 뭍으로 올라오는 민간잠수사의 심경은 어땠을까? 민간잠수사들은 이같은 환경 속에서도 약 3개월간 시신을 수습했다. 그러나 국가는 문자 한 통으로 그들을 돌려보냈다. 대부분의 민간잠수사가 잠수병에 걸려 대형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음에도 치료지원은 얼마 되지 않아 끊겼다. 더욱이 검찰은 민간잠수사 사망사고의 책임을 그들에게 떠넘겼다. 사건이후 민간잠수사를 영웅시했던 여론은 반전되었다. 민간잠수사들은 한탕하러 간 돈벌레들로 매도되었다. 고 김관홍 잠수사는 이런 부당한 상황속에서 목소리를 내었으나, 그는 곧 좌빨로 손가락질 받았다. 이는 소설 속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실제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인공 나경수 잠수사의 실제 모델은 故 김관홍 잠수사이다. 그는 소설이 출간되기 약 한 달 전인 2016년 6월 17일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얼마나 큰 괴로움을 느꼈을지는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망가진 몸보다 그를 괴롭게 한 것은 세상에 떠도는 온갖 악의적 거짓말들과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의 태도였을 것이다.  다행히도 그의 죽음 이후 세상은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무너졌고, 사건을 은폐하고 진상규명을 방해했던 악인들은 대부분 처벌받았다. 세월호는 인양되어 전남목포신항만에 거치되어 있다. 허나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세월호 사건이 민간잠수사와 유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혔는지 말이다. 자식들을 잃은 부모와 그 자식들을 구하러간 민간잠수사들의 구멍난 가슴을 한 번 더 후벼 판 것은, 사람들이 퍼뜨린 온갖 악의적 소문과 거짓말, 막말들이었다. 만약 사람들이 사건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그런 폭언을 할 수 있었을까? 김탁환의 <거짓말이다>는 막말을 퍼붓던 사람들에게 말한다. 모두 거짓말이라고, 제대로 알라고 말이다. 세월호 4주기를 얼마 안남긴 지금, 우리가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할 이유이다. 고 김관홍 잠수사의 명복을 빌며 글을 마친다.  

"저는 잠수사이기 전에 국민입니다. 국민이기 때문에 달려간거고, 제 직업이, 제가 가진 기술이, 그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간 것일 뿐이지, 애국자나 영웅은 아니에요."
- 故 김관홍 잠수사의 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체로키 2018-05-0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어요.
너무 답답하고 터트리고 싶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느끼는 감정을 글로 적기에는 제 글이 너무 미비하여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맨얼굴님의 글을 읽으니 사이다 마신 듯 합니다. 민간잠수사의 이야기..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네요.

맨얼굴 2018-05-10 20:59   좋아요 0 | URL
변변찮은 글에 좋은 댓글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거짓말이다>를 감명깊게 읽으셨다니, 이후에 나온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도 추천드립니다. <그래서 ~>에는 고 김관홍 잠수사의 삶과 <거짓말이다>의 집필과정이 담겨있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되시길!
 
맨박스 -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
토니 포터 지음, 김영진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검은 바탕에 노란 글씨로 큼지막하게 써진 제목이 인상적인 책 <MAN BOX>. 이 책은 화제의 TED 강연 'A Call To Men(남성들에게 고함)'을 바탕으로 집필된 책이다.  저자인 토니 포터는 미국의 사회운동가이다. 사회단체 ACTM(A Call To Men)의 창립했으며, 가정폭력범 및 성폭력범을 대상으로 교화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펴낸 화제의 책 <MAN BOX>는 남성다움에 갇힌 남자들에게 고하는 책이다. 남성다움이라는 굴레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까지도 옭아메고 있으며 그로부터 벗어나야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파한다.

 


과연 'MAN BOX'란 무엇일까?! MAN BOX는 간단히 말해 '우리 사회에서 권장되는 남성다움'이다. 남성다움의 예시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감정적이지 말 것(함부로 감정을 드러내지 말 것)", "울지 말 것", "약한 모습이나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 것", "보호자가 될 것", "리더가 될 것", "게이처럼 굴거나 계집애처럼 굴지 말 것",  "도움을 요청하지 말 것", "여성들을 대상화하고 소유물로 바라볼 것" 등이 남성다움(맨박스)에 해당된다. 


맨박스에는 다양한 문제점이 있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남성들은 "계집애처럼 굴지 말라", "여자애처럼 울지 마라", 혹은 "네가 여자들을 보호하고 책임져야 한다"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이 말을 듣고 자라난 남자아이들은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여성처럼 행동하는 것(이 또한 편견이지만)이 부끄럽고 죄스러운 일이며, 그들은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할 약한 존재라 배우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남성들의 이와 같은 가르침으로 인해 수많은 여성폭력이 용인되었고, 묵인되었다. 여자들은 하등한 존재이고, 남자들의 보호가 필요한 존재이며, 남자들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은 부부간에, 연인 간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폭력을 방관하게 만들었다.


 맨박스는 속에선 남성들도 괴롭다. 맨박스는 남성들의 자유로운 감정 표현을 옭아맨다. 남성다움의 세계 속에선 슬픈 일에 우는 것도 부끄러운 짓으로 격하된다. 특정 감정을 과하게 표출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분노는 예외이다...). 다음으로 맨박스는 남성들에게 '여성 혹은 성적인 것(섹스와 연관된 것)'을 쿨하게 받아들이길 강요한다. 남성들 사이에선 성적인 농담도 할 수 있고 여성 비하적인 표현(김치녀 등)을 쿨하게 사용해야 하며 불편하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 또한 섹스를 싫어하는 것은 남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이러한 굴레들은 '착한 혹은 올곧은' 남성들을 괴롭게 만든다. 

 토니 포터는 궁극적으로 남성들에게 맨박스에서 벗어날 것이며, 맨박스에 갇힌 남성들의 여성 폭력을 용인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가 말하듯 대부분의 남성은 여성 폭력과 관계없는 선량한 사람이다. 허나 세상의 수많은 여성 폭력은 그들의 묵인 속에서 벌어진다. 만약 착한 남성들이 가해 남성에게 책임을 묻고, 그들을 비판한다면 여성 폭력은 줄어들지도 모른다. 일상 속에서도 이를 실천할 수 있다. 만약 자신의 곁에 있는 남성들이 여성비하적인 표현을 쓰거나, 여성들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발언을 할 때, 그들을 제제하는 것만("왜 그런 표현을 쓰는 거야?". "너의 딸이(여자친구가, 누나가, 어머니가, 여동생이)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라고 말하는 식으로)으로도 큰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 책은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책이다. 나는 학교에서 일하며 매일 남자 고등학생들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항상 안타까움을 느껴왔다. 남학생들 사이에 퍼져있는 여성 혐오적 문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며 진행되는 그들의 천박한 대화 내용이 나를 괴롭게 했다. 실제로 작년 우리 학교에서 맨박스로 인한 피해사례가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작년 연말 학교 축제에서 교내 댄스팀이 공연을 했다. 당시 많은 학생들이 그 공연을 관람했는데, 몇몇 남학생들이 그들을 보며 음담패설을 주고받았다. 그 소리가 컸는지 주위에 있던 여학생들이 그 말을 들었고, 그들을 신고했다. 이후 여학생들이 말이 진실인지 학교 측에서 조사를 벌였는데, 용기 있는 몇몇 남학생들이 내부고발을 했다. 여학생들의 말은 진실이었다. 음담패설을 주고받은 남학생들은 징계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떤 계기로 남학생들 사이에서 내부고발자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 내부고발 학생은 남성들 무리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혔고, 왕따가 되었다. 결국 그 학생은 괴로움에 못 이겨 전학을 갔다... 나는 이 사건에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남성들 사이의 기괴한 연대의식이 여성 혐오 문화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자로서 그들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이 바로 이 책이다. 때문에 본 책 <MAN BOX>는 매우 지루하고 재미없었지만, 내겐 큰 의미로 다가왔다. 


글을 마무리하며,
토니 포터처럼 나 또한 남성들에게 고하고자 한다. 남성들이여 맨박스에서 벗어나자. 자라날 우리 딸, 내 여자친구, 혹은 어머니를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