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 네모난 얼음이 하나 있다. 따뜻한 햇빛이 비추고 방 안의 온도가 올라 간다. 얼음은 녹아 물이 된다. 어떤 모습일지 예상할 수 있을까? 정확히 예상할 수는 없어도 대충 그 모습을 그려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반대로 책상 위에 물이 고여 있다. 얼음이 녹아 이렇게 되었다고 누가 알려준다. 그렇다면 녹기 전의 얼음의 모약을 우리는 예상할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역사를 탐구하는 일은 이런 일이다. 결과를 보고 그 옛날의 모습을 예상해야 하는 일이다. [삼국지]는 동아시아 사람들에게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학습해야 하는 고전이다. 여기에서 파생된 수많은 고사성어를 알아야 하고 소설, 게임, 영화, 만화, 드라마 등 거의 모든 매체를 통해 재생산되는 파생상품을 즐겨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는 나관중의 [삼국연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말그대로 소설이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역사서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 제갈공명이 제사지내서 바람을 일으켜 조조군을 섬멸한다고 하는데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진수의 [삼국지]는 역사서로 인정을 받는다. - 우리가 국사시간에 배우는 서기 200년 즈음의 한반도 상황이 바로 이 [삼국지]에 수록된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부여, 옥저, 민며느리제 등등... 삼국지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이것 때문에 논란이 많다.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를 역사적 진실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또 기록에 따라 인물에 대한 평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간웅 조조를 시대의 영웅으로 보거나 오호장군의 한사람인 조운(조자룡)이 사실은 오호장군도 아니었거니와 그리 인정받은 장수도 아니었다는 의견까지 논란거리는 다양하다. 이중톈(易中天)의 삼국지강의(品三國)은 그런 논란을 정면으로 통과하는 책이다. 국내에도 나관중의 [삼국연의]와 진수의 [삼국지]를 비교분석한 책들이 있어 왔지만 이중톈의 책만큼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한 책은 없는 것 같다. TV강의를 책으로 옮겨 놓아 반복되는 말도 많고 집중하기도 어렵지만, 1000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기도 하지만 삼국지 매니아들은 한번 읽어 볼 만 하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과거의 결과물을 갖고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책에도 나오지만 이중톈 역시 이것의 어려운 점에 대해 토로한다. 그의 말처럼 직접 그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는 한 진실이 무엇인지 어찌 알겠는가? 그래서 책의 방점을 찍는 그의 마지막 나오는 글이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글이다. 나오는 글에서 그는 사실 관계의 확인보다 삼국시대의 상황을 계급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 그는 사회주의 국가의 학자다. 그동안 이런저런 삼국지들을 읽어 보고 여러가지 해석을 보아왔지만 그의 이런 해석은 정말 대단히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