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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거짓말
라일리 세이거 지음, 남명성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10월
평점 :
<마지막 거짓말>(라일리 세이거 / 밝은세상)
자기 전에 보통은 책을 읽는다. 굉장히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시리즈를 읽는데, 독서를 위해서 읽는다기보다 잠에 들기 위한 나만의 알고리즘, 매커니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길고 지루하지만, 그러면서 적당히 흥미로운 책을 읽는다. 최근 2년 간 꾸준히 읽은 수면용 시리즈는 <영웅문>과 <잭 리처> 시리즈다. <잭 리처>는 거의 모든 작품을 다 읽었고, <영웅문>은 이제 1부의 마지막인데, 어릴 적 읽은 책이라 느린 속도로 읽는 중이다. 매일 밤 2~3쪽을 읽다 잠이 들기에, 영웅문은 내후년까지는 읽을 예정이다.
그런데 지난 주부터 어제까지는 밤에 다른 책을 읽었다.
@밝은세상 에서 선물로 보내주신 <마지막 거짓말>이다.
밤에, 자기 전에 읽으면 안 되는 책이 있다. 뒤가 궁금해서 읽다보면 밤새 책장을 넘기다 새벽에 가까워지고, 다 읽고 나서도 그 감흥과 여운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하는 책. <마지막 거짓말>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아유, 어제는 밤을 꼴딱 샜다.
이 책은 재미있다. 설정과 상황, 인물과 배경이 흥미롭고,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은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긴장을 놓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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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재산을 가진 해리스 가문의 ‘프레니’가 세운 ‘나이팅게일’ 캠프. 그곳은 미드나잇 호수에 자리잡고 있는데, ‘나이팅게일’ 캠프는 부잣집 여자 아이들만 참가할 수 있는 캠프다. 40일간 진행하는 캠프에서 여자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친구를 사귀고 여러 활동을 하며 여름을 즐긴다. 캠프에는 전기도 전화도 없기에, 온전히 자연과 나, 친구들과 교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다.
15년 전, 13살 에마는 캠프에 뒤늦게 합류했고, 16살 언니들과 ‘층층나무’ 나무집을 함께 쓴다. 리더십이 있고 캠프의 여왕벌인 ‘비비안’과 비비언의 친구인 ‘내털리’, ‘앨리슨’을 만나는데, 묘한 분위기의 세 사람과 금세 친해지며 캠프를 누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층층나무 나무집에서 에마를 제외한 세 여자 아이들이 실종되고, 대대적인 수색이 이뤄지지만 아이들을 발견하지 못한다. 에마는 캠프의 주인인 프레니 여사의 양아들 ‘테오’를 범인으로 지목하는데, 경찰은 테오에게서 아무런 혐의도 찾지 못한다. 도대체 캠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15년 후, 트라우마를 겨우 극복한 에마는 프레니의 초대를 받아, 다시 열린 ‘나이팅게일 캠프’에 미술지도를 위해 합류하는데, 이번에 에마는 세 여자 아이들과 한 방을 쓴다. 그런데 이 방 아이들에게도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과연 진실을 말하는 자는 누구이며, 누구의 거짓말로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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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중에도 입이 근질근질하다. 식스센스 급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며, 단언컨대 독자가 예상하는 모든 시나리오는 맞지 않는다. 예상치 못하게 허를 찔리며 책을 읽은 후에도 한동안 멍했다. 숨겨진 진실과 거짓, 눈으로 본 것이 다가 아님을 이해하는 순간, 그 속에 깊이 숨겨진 이야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 자기 전에 읽지 마시길.
화자는 주인공인 에마인데,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지금과 당시의 사건을 비교하고 분석한다. 독자는 에마가 한꺼풀씩 벗겨내는 작은 단서와 상황을 따라 책 속에 점점 몰입한다. 책을 읽는 내내, 층층나무 나무집에 머물다가, 미드나잇 호수를 헤엄치고 카누를 타고 비밀의 장소의 지하 창고로 들어간다. 작가는 독자에게 매우 천천히, 작은 단서를 하나하나 쥐어준다.
이 책에서 진실에 가까이 가는 방법으로 쓰는 장치가 있는데 바로 독특한 진실게임이다. 에마와 비비언, 내털리와 앨리슨은 두 진실 한 거짓말 놀이를 하는데, 세 가지를 말할 때 한 두 가지는 진실, 한 가지는 거짓을 말하고, 그 거짓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뻔한 거짓말을 하나 넣는다면, 놀이인 척 진실을 밝힐 수 있고, 혹은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당연하게 여겨지는 인물들의 말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과졍 진실일까,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걸까, 생각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진실과 거짓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쩌면 그 결과가 사뭇 다를 수 있음을 알고 적잖이 놀란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매우 다채로운 인물이다. 작가가 이 책을 쓰면서 인물 설정에 큰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트라우마와 환영으로 괴로워하지만 진실을 찾으려 하는 ‘에마’, 너무나 매력적이고 사람을 녹이는 마법같은 아이이지만, 뭔가 감추고 있는 ‘비비안’, 그리고 비비안과 친하지만 적당한 각을 세우는 ‘내털리’와 ‘앨리슨’, 대단한 부호이지만 그 이면에 뭔가를 감추고 있는 ‘프레니’, 잘생기고 멋진 남자이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테오’와 ‘챗’,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실을 수집하는 ‘리베카’. 이 책속에 나오는 멋진 인물들을 하나하나 만나는 일이 즐겁다. 그 때문에, 이 책을 한 번만 읽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참, 그리고 비비안은 책 마지막장까지 우리를 놀래킨다.
책의 제목인 <마지막 거짓말>은 무엇일까? 이 단순한 제목을, 다 읽고 나서도 그 의미가 복잡해 보인다. 마지막 거짓말을 누가 했느냐에 따라서 상황은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것은 에마일 수도, 비비안일 수도, 테오 혹은 프레니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사소한 거짓말은 15년의 터울을 두고 엄청난 사건을 일으킨다.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은 그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지을 수 없다. 진실이 괴로움을 주지만 거짓이 목숨을 살리기도 하며, 선한 행동이 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악과 복수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도 한다. 악이라 규정했던 수많은 투쟁은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다. 어쩌면 진실과 거짓을 구분짓는 아이들의 놀이는, 사실 그것을 구분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한 단계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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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미있는 스릴러 작품을 읽었다. 아주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듯하다. 읽고 나서 통쾌하거나 혹은 괴롭지는 않다. 다만 마음이 따스해지고 좀 아파오지만, 그래도 이쯤 되면 괜찮은 결말이라는 안도가 나온다. 무서운 것을 싫어하는 독자들도 과감하게 도전하며 스릴러 면역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작품이다.
국내에 소개된 라일리 세이거의 작품이 하나 더 있다고 한다. 그것도 찾아봐야겠다.
좋은 책을 선물해주신 밝은세상 출판사에 감사를 표한다.
202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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