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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가족 ㅣ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이귤희 지음, 이경석 그림 / 우리학교 / 2025년 1월
평점 :

<가짜 가족>(이귤희/우리학교)
삶은 선택과 책임의 연속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책임의 연속이다. 그 책임이 나에게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다. 선택은 신중해야 하지만 생각보다 쉽고, 책임은 진중하지만 피하기 쉽다. 어른들에게도 그러한데, 아이들에게 책임을 가르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오랫동안 아이들과 책을 읽고 나누지만, 이것을 알려주는 책을 만나기란 참 어렵다.
<가짜 가족>은 편하게 살기를 바라던 가족이 실패를 경험하며 무책임하게 야반도주를 벌이다, 자신의 삶을 되찾는 이야기다. 한 마디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는, 성장 스토리다.
이 책에는 자신의 삶에 무책임한 이들이 나온다. 바로 찬영이 가족인데, 찬영이는 희준이의 드론을 망가뜨리고 그걸 들킬까 봐 삶이 리셋되길 바란다. 일이 잘 되지 않고 돈을 빌려서까지 주식에 투자했는데 실패한 찬영이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인생은 한방이라며 요행을 바라고 시작했던 주식이 망하자, 찬영이 부모님은 자신들이 벌인 일에 책임지기보다는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한다. 이런 가족 앞에 우연히 나타난 것이 바로 ‘이사 전문 업체 야반도주’다. 아무도 모르게 이사해서 새 인생을 설계해 준다는 이 회사는, 지금 자신의 삶을 모조리 다 버리면, 원하는 새 삶을 준다고 한다. 이 어려움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찬영이 가족은 ‘야반도주’ 업체의 설명을 듣고 선뜻 계약하는데, 이들에게 다가올 위험을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생각해 보면 내가 벌인 일에 책임지지 않았던 경험이 무척 많다. 옆집 쌍둥이에게 코피를 터뜨리고 다락방에 숨었던 일, 친구의 꾀임에 빠져 비행에 가담했다가 혼자서 빠져나온 일, 즐거워서 시작했지만 예기치 못한 어려움 앞에 부끄럽게 도망쳤던 일. 삶은 온통 도망과 무책임으로 도배된 벽지를 보는 듯하다. 그것은 아이들도 다르지 않다. 숙제를 안 했는데 집에 두고 왔다거나, 친구 물건에 손을 대고선 우연히 주웠다고 하거나, 폭력을 노는 거였고 하는 핑계는, 단순이 모면을 넘어서서 무책임을 학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 찬영이 가족은 그토록 원하던 2층 벽돌집에 살며, 원하는 모든 것을 누리며 산다. 단지 하루에 세 시간은 희멀건 반죽을 치대야 하는 역겨움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 덕에 받는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평생 가져보지 못한 돈이 생기는데, 그걸 쓸 데가 없다. 찬영이네는 지난 모든 삶을 포기했고, 이제는 신분조차 없기에 그 많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매일 걱정없이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지만, 그것이 행복이 아님을 머지 않아 깨닫는다.
찬영이가 야반도주에, 친구 소명이와의 비밀을 말하지 않은 것이 밝혀지고 이사 업체에 뭔가 문제가 생긴다. 찬영이는 집안에 몰래 들어와 청소하는 이를 만나고, 그를 통해 이사 업체 야반도주에 대해서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찬영이가 원래 살던 동네로 돌아가는데, 그곳에서 만난 엄청난 진실 앞에 찬영이는 큰 충격을 받는다. 찬영이와 부모님은 삶에 찾아온 이 두 번째 위기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무책임한 이 가족은 변할 수 있을까?
삶은 선택이고, 일상은 내 선택에 책임지는 과정이다. 매 순간 일어나는 선택에서 그 선택을 존중하고 책임지는 일, 우린 그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한다. 그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경험 앞에서 어렵지 않게 선택하지만 의도치 않은 결과 앞에 도망치거나 책임진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서서히 깨닫는다. 도망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그걸 깨닫지 못하고 어른이 된다면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그 모든 걸 경험할 수 없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읽기다.
찬영이 가족이 책임을 회피한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토록 바라던, 편안하고 걱정없는 삶이 행복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을 잃어가게 만들었다. 역설적이게도, 찬영이 가족이 일하고 청소하고 힘든 시간을 보낼수록 자신을 되찾고 보람을 느낀다. 사는 재미를 편안함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 찾은 것은 무척이나 인상 깊은 전개다. 아이들이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말하는, 돈 많은 백수가 꿈이라는 말은, 그저 돈 걱정 없이 편안한 삶을 말하지만, 그것이 행복을 주지는 않는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걱정없는 편안함과 행복을 구분짓는 돈오의 순간이 찾아온다.
재미있는 동화적 요소가 풍부한 책이다.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주인공들이 겪는 시련과 고통, 그 이후의 변화와 성장에 이르기까지 레퍼토리가 자연스럽다. 거기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적당한 허구적 요소까지, 어디 뺄 데가 없는 좋은 동화다. 읽는 순간, 아이들과 나눠볼 만한 책이겠다, 느껴진다.
초등 중학년 아이들에게 추천한다. 독특한 소재와 함께 책임감을 기를 만한 도서다. 회피와 핑계가 아니라 어려움과 맞설 때 진짜 자신을 찾고 행복할 수 있음을, 마음에 와닿게 알려준다. 무엇보다 재미있어서 추천한다.
202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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