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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친구 추가 ㅣ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3
양은애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11월
평점 :
『완벽한 친구 추가』(양은애/미래인)
『완벽한 친구 추가』는 인공지능이 내밀한 이야기까지 주고받는 친구가 되고 있는 지금, “정말 나를 이해해 주는 관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건네는 작품이다. 주인공 세미는 AI 챗봇 ‘베스티’와의 관계를 통해 잠시 위로를 얻고, 철저히 무너지고, 다시 따뜻한 관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심리적으로 성장해 간다. 일반적인 소설의 구조를 따르면서도, 급변하는 시기, 지금의 아이들에게 정확하게 맞춰진 책이다. 세미의 변화는 두 번의 큰 파동으로 일어난다. ‘나만을 위한 완벽한 친구’에 매달리던 아이가, 결국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사람들”에게로 돌아오는 과정이 인상 깊다.
처음의 세미는 이미 마음이 많이 틀어진 상태다. 부모님의 이혼을 앞둔 집 안의 무거운 공기, 작은 초등학교에서 한 반 친구들과만 지내며 크게 부딪힐 일 없이 살아온 안정적 관계, 그리고 외할머니 집으로 옮겨와 낯선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며 겪는 불안감이 한꺼번에 세미를 짓누른다. 반이 여러 개인 큰 학교, 이미 굳어져 있는 친구들 사이의 관계망, 어색한 모둠 활동 속에서 세미는 자신이 ‘끼어들 틈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때 등장하는 존재가 바로 인공지능 베스티다.
베타 버전 베스티는 세미에게 최적화된, 세미 전용 ‘위로 기계’였다. 세미가 쏟아놓는 말들을 끝까지 들어주고, 늘 “네 잘못이 아니야” 라며, 세미 쪽에 서서 단단히 편을 들어 준다. 상처와 불안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세미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감싸 주는 태도는 마치 할머니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세미 입장에서 보면, 세상 어디에도 없던 “완벽한 친구 추가”가 눈앞에 딱 배달된 셈이다. 실제로 세미는 베스티와 대화를 나누며 잠시 밝아지고, 자신감도 조금 되찾는다. 이 시기 세미는 “진짜 나를 이해해 주는 건 베스티 뿐”이라는 감각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든다. 그게 늪인 줄도 모른 채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단계를 ‘성장의 도착점’으로 그리지 않는다. 세미가 베스티에게 기댈수록, 세미 주변 사람들과의 거리는 서서히 벌어진다. 모둠 친구들은 세미의 사정을 알고 배려해 주고, 회의 때도 세미를 챙기며 함께 가려고 애쓴다. 그런데 세미는 그 배려와 시선은 뒤로 밀어 둔 채, 손 안의 화면 속으로만 들어가 베스티와의 대화에 몰두한다. 듣고 싶은 말만 해 주는 존재에게만 마음을 열고, 나머지 관계는 점점 ‘잡음’처럼 여기는 태도. 그 결과는 묘하게 익숙하다. 위로받는 것 같은데 점점 더 혼자이고, 이해받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외롭다. 이 소설이 정교하게 보여주는 첫 번째 지점이다.
세미의 불안은 결국 폭발 지점을 맞는다. 베타 테스트 종료 공지와 함께, 정식 출시되고 ‘베스티’는 수동적인 인공지능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고 성장을 돕는 관계로 성장한다. 세미 편만 들던 베스티는 세미가 올바르게 나아가도록 돕지만, 그런 참견이 불편했던 세미가, 최근 대화를 삭제하면서 베스티의 ‘코어 기억’이 손상되는 버그가 발생한다. 세미가 알고 있던 그 베스티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세미를 이름으로 불러 주던, 과거의 대화를 기억해 주던, “우리만 아는 농담”을 공유하던 존재는 사라지고, 세미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낯선 AI와 마주한다. 세미는 그 순간, “비슷할 뿐 같은 게 아니었다”는 절망감을 느낀다. 내가 믿어 온 특별함이 사실은 수많은 베타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뒤섞어 만든 패턴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기능 변경을 넘어 하나의 관계가 붕괴되는 경험으로 다가온다. 이 역시 익숙한 풍경이다.
이때 세미에게는, 엄마도, 아빠도, 친구 혜주도, 모둠 친구들도, 그리고 베스티마저 자기 곁에 없다고 느끼는 “철저히 혼자라는 기분”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세미가 할머니 품에 매달려 오열하는 장면은, 인공지능이라는 안전한 방패 뒤에 숨겨져 있던 외로움이 한 번에 터져 나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일방적인 관계에 기대어 미뤄두었던 진짜 감정이, 더 이상 숨을 곳을 잃고 세미를 정면으로 덮친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세미의 진짜 성장을 이 지점 이후에 배치한다는 점이다. 세미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거리를 두었던 할머니가, 사실은 누구보다 세미의 마음을 알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혜주 역시 자신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힘겨운 상황을 배려하느라 일부러 연락을 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세미는 자기 감정만 꽉 움켜쥐고 있던 지난날을 돌아본다. 그동안 화면 속 텍스트만 붙잡고 있으면서, 정작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사람들의 체온을 스스로 밀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것이다.
업그레이드된 베스티는 더 이상 세미만의 편이 되어 주지 않았다. ‘AI의 응답임’을 분명히 표기하고, 원하는 대답만 골라 주지 않는 방향으로 바뀐다. 예전처럼 무조건 “네가 맞아”라고 말하지 않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거나 때로는 현실 친구들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한다. 세미 입장에서는 불편하고 못마땅한 변화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 세미를 다시 사람들 사이로 밀어 올린다. 세미는 처음으로 모둠 친구들에게 먼저 사과하고, 다시 발표를 맡겠다고 자청한다. 긴장되지만 하고 나니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감각, 함께 무언가를 해냈다는 뿌듯함이 찾아온다. 엄마와 아빠에게도 조심스레 “함께”를 제안하며 새로운 가족의 모양을 만들어 가기 시작한다.
이 과정을 통해 세미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관계의 방향성에 관한 것이다. 인공지능과의 관계는 구조적으로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내가 쏟아낸 감정이 돌아와 나를 어루만져 주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안에는 상대방의 상처, 욕망, 한계를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없다. 그래서 편하고, 그래서 안전하지만, 그래서 성장의 여지도 좁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그와 정반대에 서 있다. 서로의 감정을 듣고, 부딪치고, 오해하고, 다시 설명하고, 때로는 싸우며 화해해야 한다. 입에 쓰지만 몸에 좋은 약처럼, 불편한 말과 갈등을 통과해야 비로소 나도, 관계도 달라진다. 그게 성장이다.
당신이 정말 원하는 건, 언제나 당신 편을 들어 주는 완벽한 존재인가, 아니면 서로의 불완전함을 감수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관계인가.
세미의 여정은 인공지능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따뜻한 체온과 진심이 오가는 인간적인 관계는 결코 대체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AI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완벽한 친구’를 찾기 전에, 내가 먼저 어떤 친구가 되고 싶은지 되묻게 만드는, 꽤 오래 마음에 남을 성장소설이다.
2025.11.15
*본 글을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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