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곰 포포 - 촛불을 밝혀 줘! 저학년의 품격 21
검은빵 지음, 봄하 그림 / 책딱지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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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곰 포포(촛불을 밝혀줘!)> (검은빵/책딱지)

동화책을 읽을 때는 가슴졸일 일이 별로 없다. 이미 끝을 알고 본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결말로 가는 여정이 슬픈 책은 많다. 눈물을 한바가지 흘리고 나서야 따뜻한 위안을 건네는 그런 책 말이다. 이번에 ‘책딱지’의 <저학년의 품격>에서 나온 이 책은 따뜻한 아픔을 각오하고 읽어야 한다. 아프고 힘든만큼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아이스크림 곰 포포>의 작가는 ‘검은빵’이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책날개를 보니, 곽윤숙, 김태호, 박남희, 이여니 동화 작가가 함께 만드는 이야기라고 한다. 아하, 이렇게도 동화를 만들 수 있구나, 생각했다. 여러 작가의 손길을 거치면서, 책 속에 담긴 의미와 가치는 더 깊어진 듯하다.


빨간 지붕 집에 ‘아이스크림 곰 포포’가 찾아온다. 무슨 뜬금없는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건너편 고물상의 냉장고 문이 빼꼼히 열리며, 정말 아이스크림 곰이 뿅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냉장고에서 떨어지며 왼쪽 머리를 부딪치는 바람에, 포포는 자신이 여기에 왜 왔는지 잊어버린다.


빨간 지붕 집에는 강아지 둥둥이와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는 아이인 ‘테이’가 있다. 아빠는 테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방문 앞에 두고 가지만 테이는 먹지도 않고 문밖으로 내놓는다. 포포는 테이가 왜 나오지 않는지 궁금해한다. 강아지 둥둥이는 그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아마도 포포가 알고 있는 듯한데, 포포는 기억을 잃었으니 이걸 어쩐다.


신비로운 아이스크림 곰 포포와 방에서 나오지 않는 테이, 방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강아지 둥둥이. 이 셋은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그걸 밝히면 중요한 누설이 될 테니, 간지러운 입을 얼른 다물겠다. (그러나 아래의 글에서 힌트가 있다!)


밤에 방에서 잠깐 나온 테이는 냉장고에 있는 포포를 보고 화를 낸다. 모든 게 포포 때문이라고 집에서 나가라고 한다. 안 그래도 여기까지 오느라 포포는 점점 작아졌는데, 포포도 화를 내며 집 밖으로 나간다. 그러다 도로에서 달려오는 차와 마주하고, 급기야 차에 치일 뻔한다. 그때 포포는 잊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무리 좋은 말로도 아이들을 이해시키지 못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상실이다. 매일 보는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그 상실감을 아이들에게 이해시키기가 힘들다. 상실을 겪은 아이에게마저도 그렇다. 그런데 그 상실을 자기 탓으로 돌린다면, 상실은 상처가 되고 말할 수 없는 그 죄책감은 아이의 마음을 닫는다. 이 책의 ‘테이’처럼 말이다. 지난 생일, 테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가져오는 길에 일어난 끔찍한 교통사고를, 테이는 자기 탓이라 생각한다. 엄마를 잃은 상실감을 오롯이 자기 탓으로 여기며, 테이는 작은방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작은방 밖은 모두 엄마와 연결된 곳이며, 엄마가 생각나고, 그러면 결국 죄책감은 점점 부풀어 자신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테이는 자기 탓을 하고, 아이스크림 곰을 탓한다. 사실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말이다.


아이들은 그렇다. 잘못된 일이 일어나면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한다. 부모님이 싸울 때 ‘내가 잘할게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저민다. 부모의 다툼이, 어른들의 사건이, 운이 나빠 일어난 일에 대해서, 아이들은 그 상황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기에 자기 잘못으로 돌린다. 착하디착한 아이들은 자신이 더 잘하면 될 거라 생각하고, 이미 일어난 상실은 자기 탓이라 생각하여 자신을 벌준다. 순수하고 착하기에 일어나는 일에 마음이 아프다.


당연하게도, 이 책은 상실감을 겪는 아이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따뜻하게 말해준다. 그 말을 해주는 것이 아이스크림 곰 포포가 아니라는 점이 의미 있다. 자신을 가둔 작은방에서 벗어나고, 자신에게 드리운 그늘을 쓸어내며, 따뜻한 사랑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친다. 엄마와 아빠의 따뜻한 사랑과 가족과 친구의 포근한 품 안에서 테이는 그 상실을 극복한다. 따뜻해지는 만큼 아이스크림 곰 포포는 점점 작아진다. 테이의 상실과 아픔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책이 생각났다. 리사 톰슨의 <골드피쉬 보이>(6학년), 곽유진의 <꽝 없는 뽑기 기계>(3~4학년), 이현지의 <도둑의 수호천사>(5학년)다. 모두 상실로 인해 아픔을 겪고 힘든 여정을 통해 이겨내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아이스크림 곰 포포>는 1, 2학년 아이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필연적으로 아픔과 시련, 상실과 고통을 겪을 우리 아이들의 마음에, 따뜻한 촛불을 밝혀줄 작품이다.


2024.12.11


*본 서평은 ‘책딱지’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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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이 달려온다 - 1960년대 생생 현대사 동화
은이결 지음, 이장미 그림 / 별숲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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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이 달려온다>(은이결/별숲)

별숲에서 ‘생생 현대사 동화’를 출간 중이다. <1995, 무너지다>를 통해 아이들과 질곡의 현대사를 마주하였는데, 우리 아이들은 다른 현대사 동화를 읽고 싶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 별숲에서 보내주신 <봄날이 달려온다>는 제1공화국의 4.19 혁명을 다룬 책으로, 한국전쟁 직후 우리나라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으면서도 4.19 혁명의 원인과 과정을 알려주는 무척 깊이 있는 동화다.

이북에서 내려온 기홍이네 가족은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줄 알았지만 북으로 갈 수 없는 실향민이 되었다. 오갈 데 없이 청계천변 판자집에 자리잡은 기홍이 가족은 전후 시대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겪는 가족이다. 게다가 이승만과 자유당의 독재가 심화되고 반공이 주요 이념이 되면서, 이북 사람인 기홍이네는 말 한 마디도 조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런 중에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청계천 정비 사업이 시작되고, 기홍이네는 집이 헐릴까 봐 조마조마 한다. 기홍이 형 기철이는 자신이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막중하다. 그러나 1960년 4사5입 개헌과 이승만과 이기붕의 선거 운동에서 여러 부정이 목격되며, 기철은 자신이 옳은 일을 위해 행동해야 하지만, 이북 사람이라 빨갱이로 몰려 가족 모두가 곤욕을 치르게 될까 두려워한다.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가 시작되고 곳곳에서 부정한 일이 일어난다. 기철이와 기홍이, 그리고 가족들은 무사할 수 있을까?

같은 판자촌에 사는 선주와 윤주, 종길이와 상호, 슈샤인보이 일남이 등, 한국전쟁 직후 학생들의 모습이 엿보이고, 당시의 가족과 생활, 학교, 문화상도 잘 보인다. 팍팍하지만 온정이 넘치던 이웃들의 모습이 정감있고, 좌우를 구분하며 이념에 따라 상대를 공격하며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반공청년당의 행동에는 화난다. 지금의 시선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는데, 현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해진다.

이 책에서 목적하는 주제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4.19 혁명의 불씨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3.15 부정선거와 김주열 열사 사건, 그리고 4.19 혁명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데, 정부통령 선거 유세 때부터 일어난 부정의 모습, 선거일의 부정행위, 마산에서의 시위, 부산 문화방송, 그리고 서울에서 시민들의 항의가 이승만의 하야로 이어지는 과정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4.19 혁명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역사동화로서 충실한 도서다.

두 번째는 당시의 사회상이다. 한국전쟁 직후 팍팍했던 생활상이 그대로 엿보인다. 판자촌에서의 생활과 주변에서 벌어지는 건축붐, 커지던 빈부격차가 그대로 엿보인다. 또한 반공 이념으로, 빨갱이로 몰릴까 봐 기홍이 가족이 얼마나 조심하는지, 완장을 찬 이들의 폭력을 통해 당시의 반공 이념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이승만에 대한 신격화, 창경원 구경, 여전히 천막에서 공부하는 국민학교 아이들과 반의 모습 등이 정겹게 나온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세 번째는 변화와 성장이다. 기홍이는 둘째라서 형에 밀려 늘 뒷전이고 선주는 넷째 딸이라 막내 남동생을 돌봐야 한다. 여전히 남존여비가 남아 있던, 그리고 장남만 우대하던 시대의 모습, 그 안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배우고 나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그것은 개인의 성장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족과 국가 공동체 모두가 변화와 성장의 기로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그 변화를 모두가 반기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민주주의의 봄날이 어떻게 우리에게 달려왔는지를 생각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그들의 작은 용기와 간절한 바람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다. <봄날이 달려온다>는 그 시절의 뜨거운 순간을 통해, 여전히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날의 봄날이,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을 통해, 오늘 우리의 봄날로 이어질 수 있길 희망한다.

특히나 어렵고 까다로운 현대사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초등 4학년 이상에게 추천한다.

2024.11.25


*이 글은 ‘별숲’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한 서평임을 밝힙니다.


#봄날이달려온다

#생생현대사동화

#별숲

#은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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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다를 나이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강경수 외 지음 / 우리학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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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그럴 나이>

#강경수 #강지영 #이민항 #조서월 #청예

(우리학교)



제목을 보면, 열세 살에게는 왠지 어렵게 느껴질 것 같고, 열일곱 살에게는 또 유치할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읽으니, 철없는 내 이야기로도 느껴지는데, 제목의 ‘열다섯’을 단정 짓지 않고 책의 세계에 발을 들인 독자들에게만 허락된 특별하고 소중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 책에 실린 다섯 작품은 모두 열다섯 남학생의 이야기다. 각기 상황이 다르고 봉착한 문제 역시 제각각이다. 그 속에 지금 청소년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문제와 살을 맞대며 살아가는 현재의 느낌이 그대로 느껴진다.


—-


<나의 아놀드>는 ‘살인자의 쇼핑몰’을 쓴 강지영 작가의 단편이다. 고도비만 서율은 우연히 ’아놀드’의 유튜브를 보는데, 자신과 비슷한 상황의 아놀드가 헬스를 시작하면서 변화하는 모습에 영감을 받는다. 엄마의 재봉틀부터 중고 컴퓨터까지 중고거래로 팔아가며 돈을 마련해 헬스를 시작한다.


*변화하는 몸에 관한 서사라고 예상했지만, 결말에서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이어지며, 몰입과 중독에 관한 결말로 넘어간다. 작가가 청소년 문학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그 깊이에 감탄하게 된다. 그 속에 청소년 또래 문화와 중고거래, 중독 문제까지 풀어내는 수작이다. 무척이나 인상적인 작품으로, 왜 첫 번째로 들어갔는지 충분히 이해된다. 


<더비>(이민항)은 축구를 좋아하는 열다섯 두 소년의 이야기다. 같은 지역 연고를 둔 멘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좋아하는 주인공과 멘체스터 시티를 좋아하는 범준은 팀처럼 서로가 경쟁하는데, 둘은 더비 전에 내기를 해 상대의 유니폼을 사주기로 한다.


*<더비>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축구에 친구관계만이 아니라 해외직구 이야기를 더했다. 그 얼거리 위에 승자와 패자를 아우르는 방식, 결과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룬다.


<안전하고 완벽한 기억 보존을 위한 영원중 갓기의 시크릿 플랜>은 정말이지 독특한 SF작품이다. 주인공 현준은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기억하는 것을 하나하나 되뇌는데, 그것은 요즘 자신이 자신같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걸 좋아하고, 당연한 걸 모르는 일이 많은데, 현준은 자신을 잃지 않으려 한다.


*이 작품은 반전의 묘미가 있다. 이외에 우리 자신은 누구인지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흥미로운 해답을 찾는 현준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형태 마음의 형태>는 꽤 마음이 아팠던 작품이다. 친구와의 관계를 잘 이어가지 못하는 형태가 게임팩 중고 거래로 우연히 만난 형과 친해지면서 생기는 변화를 다룬다. 부모와 생긴 문제, 친구 관계의 어려움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알아가며, 결국 형태는 자기 마음의 형태와 마주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무척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인간관계에서 얻는 기쁨과 사랑만큼이나, 때로는 그로 인해 겪는 아픔과 좌절 역시 크다는 점을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것을 어루만지고 회복하게 만드는 것 역시 관계이며, 정답은 이미 우리 마음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은 이 책에서 가장 따뜻하고 깊었다.


잘 알려진 강경수 작가의 <개의 시간>은 무척 상징적인 작품이다. 열다섯 즈음이 되면, 아이들에게 ‘개의 탈’이 배달되는데, 그것을 쓰면서 아이들은 더이상 순수한 아이가 아니라 세상에 물든다. 세상이 요구하는 모습과 자신의 본성 사이에서의 갈등을 개의 탈이란 소재로 상징적으로 다룬다. 열다섯이라는 시기에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고 새로운 사회적 규칙을 익히며, 자신만의 본질을 잃어가는 아이들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성장하며 사회를 배우고 익히면서 자신의 본질을 잃어가는 열다섯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수작이다. 이 작품을 소개할 때, 강경수 작가를 먼저 써놓을 만했다.


—-


다섯 작품은 교과서에 실려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훌륭하다. 열다섯 청소년들이 점차 성장해가는 모습을 인상 깊게 그린다. 개의 탈을 쓴 사회적 압박 앞에, 아이들은 스스로 해법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며, 그 과정에서 겪는 여러 시련과 고통은, 틀림없이 아이들을 성장시킨다. 


청소년 문학을 좋아하는 모든 독자에게 추천할 만하다. 개성있는 다섯 작가가, 지금 바로 이곳을 살아가는 이 나라 청소년들을 어떻게 풀어내는지, 청소년 문학의 현재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2024.11.19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열다섯그럴나이

#우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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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리그
이소영 지음 / 사계절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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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리그>(이소영/사계절)


몇 달 전, <알래스카 한의원>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아픔에 관한 깊은 통찰, 알래스카의 바다와 빙하, 눈덮인 산과 야생에 관한 묘사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작가의 책이 새로 나왔는데, 바로 <슈퍼리그>다. 저자를 밝히지 않았다면 같은 작가 책이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할 만큼, 새로운 소재와 독특한 설정, 깊이 있는 이야기다. <알래스카 한의원>이 개인의 고통을 다루었다면 <슈퍼리그>는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아픔을 다룬다.


<슈퍼리그>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인공지능, 로봇, VR이 발달하여 인간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회다. 그러나 그 조화도 빈부격차가 큰데 빈곤층은 끼니를 얻기 위해 노숙을 하고, 그마저도 얻지 못한 이들은 죽음을 맞는데, 시신이 도심 곳곳에 방치되어 별독수리의 먹이가 된다.  주인공 ‘서만주’는 별독수리마저 처리하지 못한 시신을 처리한 청소일을 하면서, 마더하우스라는 종교단체에서 봉사하며 끼니를 겨우 해결하고, 좁은 고시원에서 살아간다.


매우 고도화된 과학 기술 사회에서, 모두가 바라는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한 ‘슈퍼리그’가 열리는데, 그 중에서도 경쟁률이 가장 높고 치열한 ‘선화그룹’에 입사하려는 사람이 많고, 서만주 역시 10년째 이곳에 매달리고 있는데, 총 3차까지 있는 시험에서 만주는 1차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어느 날 만주는  쓰러진 노숙인 ‘우삼’을 마더하우스로 데려오는데, 우삼은 만주에게 구하기 힘든 최신형 VR 장비인 ‘무토’를 준다. 서만주는 이 무토를  통해 가상 현실에 접속해 가상의 우삼을 만나 선화그룹의 슈퍼리그 훈련을 받고, 진짜 슈퍼리그에 참가한다. 과연 만주는 선화그룹에 입사할 수 있을까?


슈퍼리그 참가 과정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무척 경이로우면서도 회사가 바라는 직원상이 왜 그래야 하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뽑고자 하는 인재의 모습과 목적은 무엇인지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작품의 끝에 나온다. 슈퍼리그에서 참가자가 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이 가진 의미를 곱씹다 보면, 우리가 직장인이 되는 일이 바로 그런 것이라 느껴진다. 자신의 감정을 없애고 철두철미하게 이익을 따지며, 주어진 목표를 향해 단호히 나아갈 수 있는 의지.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를 깎고 포기하고, 외면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주인공 서만주는 현실의 어려움을 슈퍼리그를 통해 단번에 극복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가상현실 장비인 무토로 트레이닝까지 받으면서 슈퍼리그에 도전하는데, 아버지의 죽음과 사라진 여동생에 대한 죄책감은 이 모든 걸 단번에 극복할 수 있는 슈퍼리그에 참여하는 가장 큰 이유다. 모든 걸 걸고 하는 마지막 도전을 통해, 서만주는 가장 소중한 걸 포기해야 한다.


 이 책에서 인간들은 모두 기계적이었다면 기계들은 인간적이었다. 쿠처럼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로봇도 있었고, 선화그룹의 인공지능처럼,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여 인간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모습도 보인다. 그에 반해 사람들은 대기업에 입사하여 기계처럼 일하길 바란다. 사실 이는 지금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가상현실을 넘나들며 진행되는 취업 리그라는 독특한 세계관과 설정이 가장 돋보인다. 그러면서도 현대 사회의 취업 경쟁과 계층 구조를 적나라하게 반영하며,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만주의 모습이 우리 자신에게 투영된다. 20대는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또한 <알래스카 한의원>처럼 몰입감 높은 전개 과정이 인상 깊다. 또한 입체적인 인물 묘사는 드라마나 영화로 내어놓아도 좋을 만큼, 캐릭터 특징을 정말 세심하게 다듬었다.


SF 작품으로서, 이 책은 가상현실과 인공지능의 윤리적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경제와 과학의 발전 속에 환경 파괴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우리 사회의 암울한 자화상으로 보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마치 게임처럼 극한의 경쟁으로 치닫게 만드는 현대 사회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다. 경쟁이 극대화되고, 이에 열광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이는 우리가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잃고 있다는 방증이다.


SF가 현실과 문학의 옷을 입으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고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두루 추천할 만하다.


2024.11.04


*본 서평은 출판사 ‘사계절’에서 받은 도서를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슈퍼리그

#이소영

#사계절

#가상현실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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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아직 좌절하지 마 - 인공 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다움에 대하여
김재인 지음 / 우리학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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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아직 좌절하지 마>(김재인/우리학교)


학생들이 읽을 만한 인공 지능 관련 도서가 나와서 참 반갑다. 챗GPT의 새로운 버전이 나올 때마다, 그리고 그림과 음악을 하는 다채로운 인공 지능이 나올 때마다 아이들과 그에 대해서 나누고 고민한다. 인공 지능이 인간을 능가할 수 있는지, 그렇다면 어떤 부분을 능가할 수 있는지 하는 고민부터, 인공 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는 있는지, 인공 지능이 흉내낼수 없는 인간만의 특징은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그것이 앞으로 아이들이 나아가야 할 길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책 <인간은 아직 좌절하지 마>는 그런 고민에 대해 꽤나 명쾌한 답을 내려준다. 철학자인 김재인 교수가 쓴 이 책은 인공 지능의 발전과 특징을 통해, 인공 지능이 할 수 있는 것과 아직 어려운 것, 그리고 결코 해낼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를 아주 쉽게 알려준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드는 여러 사례와 예시, 에피소드는, 각 꼭지마다 나오는 어려운 주제를 무척 쉽게 이해하게 돕는다.


이 책은 인공 지능의 발전과 한계를 통해,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본질적 역할을 강조한다. 책의 초반에는 생성형 인공 지능에 대해서 알려주면서,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여러 결과물의 빈틈이 무척이나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언어를 제대로 학습한 인공 지능이지만, 인간의 모든 세계가 언어로만 되어 있지 않기에 인공 지능이 인간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책의 중반에는 인공 지능에 비추어 인간의 특징을 설명한다. 언어의 맥락을 이해하는 인간, 자의식을 가지고 판단을 내리며, 가치를 부여하는 인간다운 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후반부에서는 인공 지능이 발전하면,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고민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아무리 일반 인공 지능이 발전한다고 해도, 인간다운 삶, 사고방식, 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는 여전히 배우고 익히고,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창의적인 발견과 사유는 반드시 외우고 익힌 공부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 지능이 나오면, 이제 공부는 끝, 지긋지긋한 글쓰기도 안녕일 줄 알았겠지만, 인공 지능의 발전과 별개로 우리가 항상 배우고 익히고 글을 통해 사유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게도,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목적을 갖고 생존하며, 삶을 살아가는 생명체다. 인공 지능과 로봇은 스스로의 삶에 목적을 부여할 수 없고, 오직 인간만이 그 목적을 부여하기에, 인공 지능은 인간처럼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될 수 없고 오로지 패스트 폴로워(Fast Follower)가 될 뿐이다.


다 읽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돌이켜 보니, 이 책은 인공 지능에 대한 책인 척하면서, 결국 인간이 무엇인지를 사유하게 하는 철학책이었다. 인공 지능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왜 사람인지를 알게 한다. 그 어떤 기계도 할 수 없는 일, 말의 맥락을 이해하고 상대의 표정을 통해 감정을 느끼고 공감하며, 어떤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 판단을 내리는 일, 평가하고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는 일, 너무나 인간적인 그 일을, 우리가 별로 배우지 않아도 당연히 해내는 그 일들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다. 거기서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배우고 익히며, 세상이 정해놓은 틀을 조금씩 넘어서며 발전하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의 목적인 것이다.


초등 고학년에서 중학생까지, 두루 추천할 만한 책이다. 인공 지능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고민하고 싶은 선생님과 어른들이 읽어도 좋다. 그저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철학자의 깊이 있는 사유를 통해, 인공 지능과 인간다움에 대해서 깊이 사유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2024.10.22


*본 서평은 ‘우리학교’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인간은아직좌절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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