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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탕 ㅣ 웅진 모두의 그림책 71
권정민 지음 / 웅진주니어 / 2025년 3월
평점 :

시계탕(권정민 / 웅진주니어)
“시계가 되어버린 엄마, 자유를 찾은 아이, 그리고 시작된 진짜 여행”
어릴 적 시간은 참 너그러웠다. 얼마 전 친구들과 초중고 시절 쉬는 시간 10분 동안 뭘 했는지 수다를 나누다, 웃음이 빵빵 터졌다. 라면 한 그릇을 우걱우걱 해치우고, 커피 한 캔을 따서 홀짝이며, 화장실도 다녀오고, 옆반 친구와 근황토크까지 나누고, 교실에 들어와 앉았는데도 선생님은 아직 복도에 계시던 그 시절.
그런데 그때의 10분과 지금의 10분은 똑같지 않다. 아니, 사실 10분은 여전히 그 600초일 텐데, 그 시간을 바라보는 내 눈이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릴스 몇 개만 봐도 순삭, 양치질 하나도 10분이면 모자란 요즘. ‘10분이면 뭘 할 수 있지?’라는 질문 앞에서, 나도 모르게 멍해진다.
이건 시간 활용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을 대하는 자세, 아니, 시간을 마주하는 내 마음의 속도에 관한 이야기다. 늘 무언가를 해야 하고, 해내야 하며, 끝내야 하는 하루들. 그 일상에 쌓여 가는 불안과 조급함이 시간의 얼굴을 바꿔 놓는다. 나이가 들어서 시간이 빨라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자꾸 다그쳐져서 시간의 걸음이 헛디디는 건지도.
<시계탕>은 그런 불안한 시간 속에서 엄마와 딸이 겪는 기이하고도 따뜻한 사건을 그린 그림책이다.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사는 엄마.
“그만 좀 해!“를 속으로 외치는 딸.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진짜로 ‘시계’로 변해버린다. 놀라기는커녕, 딸은 여유 있게 밥을 먹고, 느긋하게 학교에 가고, 지각도 해 본다.
그런데, 이상하게… 엄마가 사라진 일상은 처음엔 시원했지만, 이내 낯설고 불안해진다.
119도, 시계병원도 손을 놓은 이 상황. 어쩌다 엄마는 시계가 되어 버린 걸까?
이야기의 실마리는 ‘엄마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빨라야 한다고, 서둘러야 한다고 믿었던 조급함.
그게 딸의 일상에도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런데, 지각해도 아무 일 없었다. 하굣길도 평온했다. 결국 무너진 건 시간도, 일정도 아닌… ‘마음의 여유’였던 것이다.
이 책은 말한다. 시간은 도구가 아니라 관계의 온도라고. 시계는 흘러가지만, 마음은 멈출 수도 있다는 사실. 어른도, 아이도 시간에 등 떠밀려 거리만 멀어지는 요즘. 진짜 필요한 건 통제가 아니라 이해, 조급한 독촉이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걸 아이의 상상력으로 보여준다.
시계가 된 엄마를 돌리려는 딸의 이야기 속에서 시계가 된 엄마 역시 그 속에서 다시 ‘사람’이 되어간다. 엄마는 시계탕의 따뜻한 물속에 몸을 누이고 눈을 천천히 뜬다. 그 사이 아이는 오랜만에 ‘시간’을 맛본다. 달리의 그림처럼 길게 늘어진 시간 속에서, 둘은 처음으로 같은 시간 안에 있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의 톱니바퀴 몇 개가 툭, 하고 빠진다. 엄마가 시계가 된 후에야,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진짜 여행’을 시작한다.
그제야 깨닫는다. 시계가 가르쳐주지 못했던 것을. 통제 대신 손을 내밀어주는 감정,
재촉 대신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따스함. 시간을 멈추니, 비로소 사랑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림책 한 권이 말해준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잠깐 멈춰 서도 된다고. 그동안 너무 단단히 조여 있었던 나사 하나쯤은 풀어도 된다고. 꽉 끼어 있던 톱니 하나쯤은 빼놓아도 된다.
앞으로 오래오래 함께 가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 이건 결국 나에게 보내는 편지다.
2025.03.22
*웅진주니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읽고 느낀 바를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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