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신부 저학년의 품격 25
은세주 지음, 유준재 그림 / 책딱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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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신부>(은세주/책딱지)


 『오! 나의 신부』는 내가 좋아하는 책딱지 출판사의 ‘저학년의 품격 스물다섯 번째 책이다. 최근 저학년 아이들과 함께할 일이 많아지면서, 책딱지의 도서를 더 많이 챙겨보는 중이다. 이 시리즈의 인기가 꽤 높은데, 국회도서관이나 부산도서관 등, 굵직한 도서관에 시리즈가 쫙 있는 게 보이면 괜히 내가 뿌듯하다.


 이 책은 학교생활에서 늘 사고의 중심에 서 있는 주인공 동민이가 자신의 신부가 될 아이가 반에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동화다. 사실 동민이는 그야말로 ‘왕똥’이라는 별명이 딱 어울리는 아이이다. 급식 줄에서 1등으로 서려고 앞사람을 밀쳐 넘기고도 당당하고, 친구들이 싫어한다는 말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에서 장난기 많고 자기밖에 모르는, 또래 아이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래서 책을 펼치자마자 ‘저런 아이와는 친구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아이가 어떻게 달라지고,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변해 가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책에 빠져들게 된다. 그것이 책을 읽는 묘미와 이유 아니겠는가.


 아빠의 고향 친구 김호덕 아저씨가 집에 찾아온다. 아저씨와 아빠가 커서 자식을 낳으면 결혼시키자고 했던 약속을 말하며, 그 아이가 동민이 반에 있다는 걸 알려준다. 이때부터 동민이의 상상은 점점 더 커진다. 동민이는 자신과 매번 다투고 관계가 껄끄러운 친구들―로아, 별하, 채윤―을 만나며 ‘혹시 내 신부가 저 아이일까?’라는 생각을 품는다. 그러면서 장차 신부가 될 아이에게 함부로 대할 수도 없고, 뜻하지 않게 신사답게, 다정하게, 용기있게 행동한다.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볼 법한 황당한 상상을, 동민이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너무나 재미있다.


 이 책에서 ‘누가 신부일까?’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동민이가 친구들과 부딪히고, 오해하고 그러다, 신부일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다정하게 대하며, 친절하게 말하고 비밀을 지켜주는 등,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또 위험한 순간에 용기를 내며, 자기 스스로도 달라진 모습에 놀란다. 처음에는 남을 배려할 줄 모르던 동민이가 로아의 아픔을 살펴주고, 별하의 그림을 칭찬하고, 채윤이의 시험지를 지켜주는 장면들은 동민이의 변화를 실감나게 보여 준다. 작은 말 한마디와 사소한 행동이 친구 관계를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 우리 어린 독자들도 자연스레 느낄 것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동민이가 무서운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는 순간이다. 겉으로는 큰소리치고 장난만 치던 아이였지만, 막상 친구들이 위험에 빠지자 가장 먼저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고 몸으로 막아 선다. 그러면서도 사건이 해결되고 선생님 품에 안겨 우는 장면은, 아이들이 용기를 내기가 얼마나 큰 마음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용기는 무서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무서워도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임을 자연스럽게 보여 주는 것이다.


 책 속에서 동민이는 ‘관심’, ‘친절’, ‘칭찬’, ‘비밀 지키기’, ‘이름 부르기’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를 차례로 배워 간다. 그동안은 친구들의 이름조차 잘 불러주지 않았던 아이가, 한 걸음씩 친구로 다가오고, 관계를 배우고 행동으로 실천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얻는 과정이 유쾌하게 펼쳐진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동민이처럼 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따라올 것이다. 그래, 왕똥도 변하는데, 우리 아이들이라면!


 『오! 나의 신부』는 읽는 내내 장난 많고 허술한 에피소드에서 깔깔 웃다가도, 어느 순간 동민이가 보여 주는 따뜻한 마음과 용기에 가슴이 찡해진다. 또한 독자가 ‘진짜 중요한 건 누가 내 신부가 되는지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라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결말 부분에서 이야기는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가며 진짜 신부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결말을 직접 확인하는 순간 독자는 더욱 큰 재미와 감동을 얻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초등 저학년 학생들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다. 읽는 동안 신나게 웃고, 주인공을 따라 함께 고민하고, 마지막에는 ‘나도 더 좋은 친구가 되어야지’라는 다짐을 품길 바란다. 어린 독자들이 쉽게 읽으면서도 마음속에 오래 남을 메시지를 얻을 수 있는 책, 바로 『오! 나의 신부』다.



2025.08.23


*이 글을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소중한 도서를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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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키메라의 땅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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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땅』 (베르나르 베르베르 / 열린책들)



서평 도서를 받고 행복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도서에 넘버링 가제본이라니! 54번이 적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책이다. 원래는 2권으로 출간된 작품을 한 권으로 묶어낸 형태라 읽는 내내 특별함과 뿌듯했다. 이런  독서는 늘 즐겁다 


얼마 전 도서모임에서 『퀸의 대각선』을 함께 읽고 토론하며, 역시 베르베르라는 생각을 나눴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두 아이가 세상을 체스판 삼아 다투던 이야기였다. 그 작품이 현대사와 현실의 그림자를 드리웠다면, 이번에 읽은 『키메라의 땅』은 시선을 미래로 돌려, 우리가 곧 맞이할지 모르는 세상을 예고한다.


베르베르의 『키메라의 땅』은 생명의 다양성과 인류의 미래를 펼친다. 공상과학 소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도래한 생명공학의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 인류가 직면한 환경 위기, 기후 변화, 종의 존속이라는 본질적 질문을 집요하게 묻는다. 읽는 내내 불편했지만 동시에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책장을 덮는 순간 머릿속에 맴도는 문장은 단순하다.


“사피엔스는 결코 지구의 주인이 아니다.”




생물 다양성과 인간의 불안정한 자리


진화의 핵심은 다양성이다. 유전자의 풍부함이 생존의 힘을 만든다. 개미와 바퀴벌레는 수많은 세대를 거쳐 끊임없이 적응하며 살아남았다. 반면 단일한 DNA 구조만 지닌 바나나는 작은 병 하나에도 멸종의 벼랑에 몰렸다.


인간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지금 지구에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단일 종만이 존재한다. 우리는 변화하는 기후와 생태계 앞에서 과연 얼마나 견고할까? 무자비한 변화는 이미 현실이며, 적응하지 못한 종은 반드시 사라진다. 『키메라의 땅』은 이 불안한 운명에 대해 새로운 대안과 방향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과연 마지막 승자인가?”




혼종의 탄생과 인간 중심 사고의 전복


주인공 알리스가 창조한 혼종은 위 질문의 실험적 답이다. 인간과 두더지가 합쳐진 땅속의 ‘디거’, 인간과 박쥐의 혼종인 하늘의 ‘에어리얼’, 인간과 돌고래가 결합된 바다의 ‘노틱’. 각각의 혼종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해 살아간다. 이후 도롱뇽과 인간의 혼종 ‘악셀’까지 등장하며, 베르베르가 상상하는 진화의 가능성은 확장된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여전히 위태롭다. 알리스가 우주에서 연구를 이어가는 동안 지구에는 제3차 세계대전과 핵전쟁이 발발한다. 인류는 몰락하고, 살아남은 자들은 오염된 환경 속에서 근근이 생존한다. 반대로 혼종들은 오히려 그 척박한 환경에서 새로운 종으로 자리잡으며 번성한다.


역사는 언제나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더 잘 적응한 종이 주도권을 차지하고, 그렇지 못한 종은 퇴화한다. 결국 사피엔스는 열등한 존재로 전락하고, 마침내 동물원에 갇혀 전시되는 운명을 맞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혼종을 창조한 알리스조차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알리스는 끝까지 공존의 길을 찾으려 한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모색하며,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다. 혼종들 역시 인간의 본성을 이어받아 지배하려는 욕망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공존을 갈망하기도 한다. 이는 곧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 했던 오만의 거울이자, 새로운 가능성의 단초이기도 하다. 공존 없는 진화는 퇴화일 뿐이라는 메시지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중반 이후 펼쳐지는 혼종 사회의 모습과 알리스의 고뇌는, 인간이 이 세계의 유일한 주인이 아님을 환기한다. 지구는 인간 없이도 살아남는다. 이 단순하지만 차가운 진실은 인간이 늘 잊고 살아온 사실이다. 지구는 인간의 소유가 아니며, 오히려 인간이 지구를 필요로 할 뿐이다.




남겨진 질문


결국 사피엔스의 역할은 무엇일까? 알리스가 꿈꾸던 혼종들의 공존은 결국 갈등과 충돌로 치닫는다. 그 모습은 지금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경쟁하고, 협력하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인간에서 진화한 그들도 인간의 궤적을 닮아간다.


“멸종은 피할 수 없지만, 진화는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은 언제 오만을 내려놓고, 모든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우리리 인간의 위치와 미래를 다시 고민하게 된다.



2025. 08. 20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자유롭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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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
도리 힐레스타드 버틀러 지음, 이도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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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도리 H.바틀러/미래인)


최근 학생들 글쓰기를 위한 웹사이트를 새롭게 만들었다. 원래 만든 사이트가 16년이 넘어가니 보안 문제가 불거져서 새로운 사이트를 만들었는데, 예전과 달리 보안과 인증, 웹사이트 규칙과 포인트 보상 등 고려해야 할 점이 너무나 많아서, 이번 휴가는 이때문에 많은 시간을 썼다.


그럼에도 16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웹사이트에 학생들이 쓰는 글은 반드시 실명으로 게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글은 자신을 드러내고 쓰는 것이어야 하고, 그럴 때라야만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다시 읽은 이 책은, 시대가 변했지만 여전히 가치있는 주제를 드러내는 책이었다.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은 2008년에 출간된 이후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청소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사이버 폭력과 익명성, 그리고 학교폭력이라는 주제를 다루며, 정보환경이 크게 변한 17년이 지난 지금도  책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제이비와 아무르가 있다. 제이비는 눈에 띄지 않는 성격이지만, 학교 신문에서 진실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교사의 제재를 겪으며, 결국 학교신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아무르는 아랍계 무슬림으로, 종교적 이유로 하루 다섯 번 기도를 드린다. 

그 때문에 편견과 조롱을 받기도 하지만, 컴퓨터에 능숙하여 제이비와 함께 ‘트루먼의 진실’이라는 웹사이트를 만든다. 


“이 사이트의 규칙은 단순하다.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고, 그 글은 사실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규칙은 곧 심각한 허점을 드러낸다. 익명성은 누구나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게 하지만, 동시에 허위와 왜곡이 사실처럼 퍼져 나갈 위험을 안고 있다. 검증이나 책임의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사이트에는 릴리를 표적으로 한 악성 게시물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어릴 적 제이비, 아무르와 친했던 릴리는 인기 있는 무리에 속하지만, 과거 부모의 이혼과 폭식으로 체중이 늘던 시절의 사진이 트루먼의 진실 사이트에 유포되고, 릴리의 성적 지향에 대한 루머까지 퍼진다. 심지어 릴리가 만든 것처럼 꾸민 가짜 블로그까지 만들어져 그녀를 조롱한다.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파탄 나고, 결국 릴리는 등교를 중단한다.


이런 상황을 목격하면서도, 운영자인 제이비와 아무르는 글을 삭제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실’과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들었지만, 이는 사실 운영 책임을 회피하는 선택이었다. 결과적으로 사이트는 진실을 밝히는 공간이 아니라 폭력을 증폭시키는 통로가 된다. 이 과정에서 릴리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과거에 다른 친구를 상처 준 가해자였음이 드러난다. 학교폭력의 가해와 피해는 고정된 역할이 아니라 상황과 관계 속에서 변할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작품 속에는 릴리뿐 아니라, 작품을 빼앗기고 찢기는 모욕을 당한 트레버, 피부 트러블로 놀림을 받는 사라, 아랍계라는 이유로 낙인찍힌 아무르 등 다양한 피해 사례가 등장한다. 이는 학교폭력이 한 개인과 집단,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교차하며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책이 출간된 2008년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거의 없었고, PC로 접속하여 웹사이트나 카페, 블로그 활동이 주류였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가 꽤나 심각했다. 그런데 2025년의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유튜브, 인스타그램, X 같은 SNS로 더 복잡한 환경 속에 살고 있다. 익명 계정과 우회 접속, 해외 서버 문제 등, 가해자를 추적하기 어려운 현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책이 던지는 질문, 즉 ‘자유와 책임의 균형’은 여전히 유효하다.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규칙과 선의로 시작한 공간도, 질서있는 운영과 책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누군가를 해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 자유가 다른 사람의 존엄을 파괴하는 순간, 반드시 개입하고 조정해야 한다. 


기술이 발전해도 관계는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폭력에 노출될 위험이 커졌다. 초등 고학년과 청소년들에게 정보윤리, 익명성의 문제점, 학교 폭력과 사이버 폭력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나누며, 함께 고민할 만한 책이다. 


2025.08.15


*이 글은 미래인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트루먼스쿨악플사건

#미래인

#도리힐레스타드버틀러

#청소년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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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딱지 얘기를 하자면
엠마 아드보게 지음, 이유진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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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딱지를 얘기하자면』 (엠마 아드보게 글·그림, 이유진 옮김, 문학동네)


미술관 한쪽에서 난해한 그림을 바라보던 중, 오랫동안 아끼던 제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제는 성인이 된 아이였지만, 목소리 속에는 여전히 어릴 적 그 아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가족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듯, 울먹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 또한 그 나이 무렵, 몸만 자라 있었을 뿐 세상과 상황을 통제하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였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느껴질 막막함과 무력감이 얼마나 큰지, 그 속에서 버티는 일이 얼마나 고단한지, 고스란히 이해되었다. 그 아이가 앞으로 겪게 될 아픔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비록 시간이 지나면 치유되고 흔적만 남겠지만, 지금 이 순간의 고통은 피가 철철 흐르듯 생생하고 아릴 터였다. 그 상처 앞에, 나의 가슴도 함께 시렸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알았다. 아이 역시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털어놓고, 누군가와 나누고, 울고, 하소연하고, 그러는 사이에 조금씩 회복하게 될 것임을. 주변의 사랑과 관심이 그 과정을 지탱해 줄 것임을.


그때 떠오른 것이, 얼마 전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 『내 딱지를 얘기하자면』이었다. 책의 제목 속 ‘딱지’라는 단어를 처음 봤을 때는 아이들이 노는 네모난 종이딱지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기서의 ‘딱지’는 상처 위를 덮고 치유를 돕는, 말 그대로 피가 굳어 생긴 피딱지다.


주인공은 쉬는 시간, 친구들과 탁구대 주변을 돌며 뛰놀다가 크게 넘어져 왼쪽 무릎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피가 운동장 바닥에 번질 만큼 깊은 상처. 선생님은 아이를 안아 교사 휴게실로 데려가 소독을 하고 커다란 밴드를 붙인다. 그 순간부터 상처와 통증은 반 친구들 모두의 관심과 화제가 된다. 글쓰기 시간에는 상처에 관한 시를 쓰고, 수학 시간에는 서로의 상처 개수를 세며, 미술 시간에는 빨간 크레파스로 상처를 그린다. 다친 아이를 위해 아이들은 ‘가마 태우기’ 놀이를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연필을 대신 깎아준다.


이 상처는 주인공에게 고통이면서 동시에 즐거움이었다. 아픔 속에서도 친구들의 관심과 배려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처가 다 나을 즈음, 아이는 묘한 불안을 느낀다. 상처가 사라지면 이 특별한 시간과 관심도 함께 사라지는 건 아닐까. 밴드를 떼어내자 딱지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딱지는 여전히 친구들의 놀라움과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체육 시간, 수영장 다이빙 후 그 딱지는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린다. 아이의 무릎에는 분홍빛의 새살만이 남았다. 선생님은 이 자국이 오래 남을 것이라 말했고, 아이는 그 자리를 만지며 “좋네요.”라고 답한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깊다. 상처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성장시킨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타인의 관심과 위로를 받으며 상처만큼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주인공의 무릎 상처는 친구들과의 우정, 함께 웃고 도운 시간,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품은 ‘기억의 훈장’이 된다. 딱지가 떨어진 자리는 상실이 아니라, 회복과 성장을 증명하는 표식이 된다.


『내 딱지를 얘기하자면』은 일상의 상처를 통해 인생의 보편적인 진리를 그려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다. 때로는 그 상처가 아물기를 바라지 않을 만큼, 그로 인해 얻게 된 관계와 배움이 소중하다. 결국 시간은 상처를 메우고, 우리는 그 과정 속에서 한 뼘 더 자란다. 그리고 언젠가, 그 자리를 어루만지며 “좋네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오랜만에 연락 온 제자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동시에 이 책 속 주인공을 생각했다. 무릎의 상처가 친구들의 관심과 위로를 불러왔듯, 지금 이 아이의 상처 또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손길 속에서 조금씩 회복될 것이다. 언젠가 이 아이도 오늘의 눈물과 아픔을 지나, 그 자리의 흔적을 어루만지며 말하리라.


“좋네요.”


2025.08.15


*본 글은 뭉끄5기로 활동하며,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한 솔직한 감상임을 밝힙니다.


#내딱지를얘기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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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었다
나카가와 히로타카 지음, 초 신타 그림, 오지은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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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었다』 (나카가와 히로타카 글, 초신타 그림, 오지은 옮김)


어릴 적, 우리 집에도 나를 닮은 인형이 있었다. 텔레비전 위에 올려져 있던 울보 인형. 하루 종일 눈물을 머금은 표정이었는데, 돌이켜보면 나도 다르지 않았다. 작은 실수에 당황해서 울고, 혼이 나면 서러워서 울고,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하면 떼를 쓰며 울었다. 그때의 울음은 억울함과 서운함, 그리고 세상과 맞서기 위한 가장 솔직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최근 내가 울었던 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맺히지 않고, 장례식 같은 ‘당연히 울어야 할 자리’에서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억지로 감정을 끌어올리려 애쓰는 내 모습이 오히려 더 서글프다. 부끄럽게도, 이제는 감동보다 웃음 끝에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만이 남았다.


나카가와 히로타카의 『울었다』는 제목처럼 ‘우는 일’을 중심에 둔 그림책이다. 주인공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울음을 터뜨린다. 넘어져서, 부딪혀서, 혼나서, 길을 잃어서, 무서워서, 슬퍼서, 기뻐서… 이유는 끝이 없다. 심지어 텔레비전 속 전쟁 장면을 보고 있는 또래 아이를 보며 함께 울고, 키우던 강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한참을 운다. 이쯤 되면, 무언가 특별한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울고 싶은 마음’이 하루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울다 말고, 아이는 문득 궁금해진다. “어른들은 왜 울지 않을까?” 아빠가 우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엄마가 눈물을 훔치는 장면을 몇 번 목격했지만, 대개는 ‘아니’라고 부인한다. 아이의 눈에는 하루에 한 번쯤 우는 일이 당연한데, 어른이 되면 눈물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의 모습과 어릴 적 나 자신이 겹쳐졌다. 학예회 무대에 오르기 전, 무대 뒤에서 손바닥이 땀에 젖고 목이 메어 울었던 기억. 사소한 말에도, 짧은 이별에도 울었던 나였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그 모든 순간을 겪어도 눈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감정을 밖으로 흘려보내는 대신, 속으로 눌러 삼키는 데 익숙해졌다. 잘 큰 아이였는데, 영 못큰 어른이 된 듯하여 부끄럽다.


“금세 울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일이야. 매일 울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야.”


책장 마지막에 작가가 풀어낸 그 문장이 오래 남았다. 울 수 있다는 건 자기 마음에 솔직하다는 뜻이고, 아직 마음이 딱딱하게 굳지 않았다는 증거다. 아이들은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며, 그 감정을 가리지 않는다. 그 자연스러움이야말로 어른이 잃어버린 가장 부러운 특권일지도 모른다.


그림책 『울었다』는 ‘아이의 울음으로 채워진 하루’를 그린 듯하지만, 사실은 울음을 통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힘, 그리고 그것이 주는 위로와 성장을 이야기한다. 울음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느끼고 살아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오히려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우는 아이였기에 다행이다.”


울 수 있을 때는 마음껏 울어야 한다. 울음을 잃어버린 어른의 세계가 때로는 더 슬플 수 있으니까.


2025.08.16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도서를 읽고 작성한 솔직한 감상입니다.


#뭉끄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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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가와히로타카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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