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 금지 가족 다봄 어린이 문학 쏙 6
켈리 양 지음, 장한라 옮김 / 다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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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 금지 가족> (켈리 양/다봄)



이제는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코로나19 시기. 초등학생들조차 그 시절을 이야기할 때면 “라떼는 말이야”를 꺼내니, 벌써 시간이 꽤 흐른 듯하다. 하지만 조금만 돌아보면,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마스크를 구하려 약국에 줄을 서고, 확진자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던 일, 코로나에 걸려 집 안에 갇혀 지내던 며칠은 누구에게나 선명한 기억일 것이다.


그 시기를 더욱 힘겹게 보낸 이들이 있다. 의지할 가족이 없던 이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병원에 머물러야 했던 환자들, 그리고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 그 가운데서도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진실 하나는, 바로 코로나 시기에 전세계로 심각하게 확산되었던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다.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정 국가나 지역, 종교를 향한 낙인과 혐오가 분명 존재했다.


이 책은 그 혐오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한 가족의 이야기다. 미국인 아버지와 중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녹스는 형 보웬, 여동생 레아와 함께 홍콩에서 지내다, 확진자가 증가하자 안전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팬데믹 상황은 이 가족의 귀국길조차 순탄치 않게 만든다. 엄마의 온라인 근무 계획은 해고로 이어지고, 미국에 도착한 첫 순간부터 이들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위협을 마주하게 된다.


학교에서는 ‘전염병 놀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인 아이들을 조롱하고, 산책길에 만난 사람들은 아시아인에게 대놓고 악의를 드러낸다. 늘어난 코로나 확진자 수만큼 아시아인을 향한 시선도 차가워진다.  팬데믹과 인종차별이라는 이중고가 녹스 가족을 덮친다.


특히 ADHD를 앓고 있는 녹스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 홍콩에서는 릴리 선생님과 잘 지냈지만, 미국에서는 충동적 행동이 많아지고, 엄마와 형 보웬과의 갈등도 자주 생긴다. 외모로도 아시아인 정체성이 뚜렷한 보웬 역시 학교생활이 쉽지 않다.


<접근 금지 가족>은 이런 위기의 시기 속에서 가족이 어떻게 서로를 붙들고 견디는지를 따뜻하지만 선명하게 그려낸다. 인종차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ADHD를 가진 아이의 내면을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다룬 점이 인상 깊다. 무엇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말한다. 혐오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백신은 바로 사랑이라고.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이 작가가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실’이라는 점이다. 켈리 양은 실제로 아들과 함께 팬데믹 시기에 미국으로 돌아왔고, 그 과정에서 인종차별과 배제를 직접 마주했다. 녹스의 이야기에는 그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래서일까, 인물들의 감정은 더욱 생생하고, 장면 하나하나가 실제처럼 다가온다. 단지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현실이었기에 더 묵직하게 마음에 남는다.


누구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삶은 우리를 흔든다. 특히 그것이 낯선 땅에서의 일이라면 더욱 외롭고 힘들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랑과 연대가 큰 힘이 된다. 이 책은 평범한 가족이 겪는 비범한 시간의 기록이자, 함께 지지하며 성장해 나가는 진정한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읽기를 권한다. 제법 글밥이 많은 편이지만, 천천히 읽으며 함께 고민하고 느낄 만한 책이다.


2025.04.15


#켈리양 #접근금지가족 #다봄 #초등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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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탕 웅진 모두의 그림책 71
권정민 지음 / 웅진주니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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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탕(권정민 / 웅진주니어)


“시계가 되어버린 엄마, 자유를 찾은 아이, 그리고 시작된 진짜 여행”


어릴 적 시간은 참 너그러웠다. 얼마 전 친구들과 초중고 시절 쉬는 시간 10분 동안 뭘 했는지 수다를 나누다, 웃음이 빵빵 터졌다. 라면 한 그릇을 우걱우걱 해치우고, 커피 한 캔을 따서 홀짝이며, 화장실도 다녀오고, 옆반 친구와 근황토크까지 나누고, 교실에 들어와 앉았는데도 선생님은 아직 복도에 계시던 그 시절.


그런데 그때의 10분과 지금의 10분은 똑같지 않다. 아니, 사실 10분은 여전히 그 600초일 텐데, 그 시간을 바라보는 내 눈이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릴스 몇 개만 봐도 순삭, 양치질 하나도 10분이면 모자란 요즘. ‘10분이면 뭘 할 수 있지?’라는 질문 앞에서, 나도 모르게 멍해진다.


이건 시간 활용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을 대하는 자세, 아니, 시간을 마주하는 내 마음의 속도에 관한 이야기다. 늘 무언가를 해야 하고, 해내야 하며, 끝내야 하는 하루들. 그 일상에 쌓여 가는 불안과 조급함이 시간의 얼굴을 바꿔 놓는다. 나이가 들어서 시간이 빨라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자꾸 다그쳐져서 시간의 걸음이 헛디디는 건지도.


<시계탕>은 그런 불안한 시간 속에서 엄마와 딸이 겪는 기이하고도 따뜻한 사건을 그린 그림책이다.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사는 엄마.

“그만 좀 해!“를 속으로 외치는 딸.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진짜로 ‘시계’로 변해버린다. 놀라기는커녕, 딸은 여유 있게 밥을 먹고, 느긋하게 학교에 가고, 지각도 해 본다.


그런데, 이상하게… 엄마가 사라진 일상은 처음엔 시원했지만, 이내 낯설고 불안해진다.

119도, 시계병원도 손을 놓은 이 상황. 어쩌다 엄마는 시계가 되어 버린 걸까?


이야기의 실마리는 ‘엄마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빨라야 한다고, 서둘러야 한다고 믿었던 조급함.

그게 딸의 일상에도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런데, 지각해도 아무 일 없었다. 하굣길도 평온했다. 결국 무너진 건 시간도, 일정도 아닌… ‘마음의 여유’였던 것이다.


이 책은 말한다. 시간은 도구가 아니라 관계의 온도라고. 시계는 흘러가지만, 마음은 멈출 수도 있다는 사실. 어른도, 아이도 시간에 등 떠밀려 거리만 멀어지는 요즘. 진짜 필요한 건 통제가 아니라 이해, 조급한 독촉이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걸 아이의 상상력으로 보여준다.


시계가 된 엄마를 돌리려는 딸의 이야기 속에서 시계가 된 엄마 역시 그 속에서 다시 ‘사람’이 되어간다. 엄마는 시계탕의 따뜻한 물속에 몸을 누이고 눈을 천천히 뜬다. 그 사이 아이는 오랜만에 ‘시간’을 맛본다. 달리의 그림처럼 길게 늘어진 시간 속에서, 둘은 처음으로 같은 시간 안에 있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의 톱니바퀴 몇 개가 툭, 하고 빠진다. 엄마가 시계가 된 후에야,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진짜 여행’을 시작한다.


그제야 깨닫는다. 시계가 가르쳐주지 못했던 것을. 통제 대신 손을 내밀어주는 감정,

재촉 대신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따스함. 시간을 멈추니, 비로소 사랑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림책 한 권이 말해준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잠깐 멈춰 서도 된다고. 그동안 너무 단단히 조여 있었던 나사 하나쯤은 풀어도 된다고. 꽉 끼어 있던 톱니 하나쯤은 빼놓아도 된다.


앞으로 오래오래 함께 가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 이건 결국 나에게 보내는 편지다.



2025.03.22


*웅진주니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읽고 느낀 바를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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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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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 - 제15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75
이로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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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이로아/문학동네)


잊혀진 이름들을 위한 위로


이로아 작가의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는 제15회 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깊은 상처와 소통의 부재를 세밀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주인공 연서가 왝왝이와의 만남을 통해 잊혀진 기억을 되찾고 상처를 치유하며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과정을 그리는데, 이 속에 10대들의 불안과 함께 참사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희망을 끝내 잃지 않는다.


과거 버스 침수 사고를 엮은 연서는, 이 사고에서 겨우 생존했고, 그 과정에서 친구를 잃었다. 그런데 자신만 살았다는 깊은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자신과 주변인들로로부터 단절된다. 생존자 트라우마라는 타이틀로 학교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고, 이제는 이겨내야 한다고 여기는 아빠와의 관계도 어색하기만 하다. 그런 연서에게 하수구에서 우연히 만난 ‘왝왝이’는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게 해준다. 왝왝이와의 만남을 통해, 연서는 잊고 지내던 내면의 상처를 떠올린다. 연서가 잊고 지냈던 친구 김재선, 조금씩 떠오르는 수연이와의 추억을 되살리고, 외면했던 정든 감정들을 다시 마주한다. 그리고 왝왝이의 정체에 점차 다가간다. 연서는 과거의 상처를 직면하고, 내면의 성장을 이루어내며, 세상과 소통하려는 의지를 갖는다.


연서는 울음소리에 이끌려 하수구 안을 탐색하다 인간의 눈을 발견한다. 도시 괴담에 나올 법한 반인반파의 존재를 떠올리며 혼란스러운 것도 잠시, 왝왝이에게 점점 이끌린다. 하수구는 연서에게 단절된 현실 세계와 이어지는 통로이자, 고통과 상처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반면 왝왝이에게 하수구는 아픔으로부터의 도피처였다. 왝왝이는 그곳에서 과거의 기억을 잃은 채,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며 살아간다. 참사의 생존자로서 살아야 하는, 도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벗어날 수 없는 감옥과도 같은 공간이 바로 하수구인데, 이곳을 오가는 과정을 통해, 사회가 개인의 트라우마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자문하게 된다.


연서의 친구 호정은 연서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참사를 잊지 않으려 헌신적으로 노력한다. 호정은 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제 준비에 앞장선다. 혜미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연서의 아픔을 잊도록 한다. 방법은 다르지만, 둘 모두에게 트라우마를 이겨내도록 돕는 따뜻한 지지가 느껴진다. 상처 입은 이들에게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연서는 침수 사고 이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학교는 그녀의 고통에 무관심하다. 학교는 추모 공간을 철거하고, 외부 인사의 추모제 참여를 막는 등 사건에 대한 관심을 의도적으로 끊는다. 세월호든 버스 침수든, 그저 교통사고일 뿐이라며, 참사를 덮으려고만 하는 무책임한 모습이 작품 곳곳에 드러나는데, 보는 내내 울화가 치민다. 우리는 타인의 아픔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는가? 공감할 준비는 되어 있는가? 이는 교육과 연습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모두 학생들이다. 피해자도, 생존자도, 따스한 손을 내미는, 그러나 잊은 것도 학생들이었다. 왝왝이가 있었던 것조차 잊었고, 편안한 일상을 위해 상처를 덮는다. 그걸 조장하는 건 어른들이었다. 편향적인 교사들은 추모 공간을 없애고, 학교는 무관하다며 추모를 막는다. 용기 있는 몇몇 선생님들의 배려가 힘이 되지만, 결코 주류가 될 수 없는 현실이 암울하게 그려질 뿐이다. 이것이 현실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작품과 현재를 살아간다.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는 상처와 고립을 극복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아이들에겐 다소 불편한 전개일 수 있다. 피해자와 생존자, 유가족과 주변인이 보여주는 감정과 회피, 갈등과 연대가 의미심장하지만, 흥미로운 시작과 달리 결말에 적응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 자체가 참사 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이기에, 어떤 참사를 여기에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다. 이 작품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이, 연대의 시작이며 공감의 발판이다.


기억하고, 소통하고, 연대하라. 잊혀진 이름들을 기억하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함께 손을 잡을 때,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2025.02.19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한 주관적 서평임을 밝힙니다.


#왝왝이가그곳에있었다

#문학동네

#청소년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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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문경민 지음 / 우리학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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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문경민/우리학교)


삶은 무겁다. 해낸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늘 많다. 그래서 버겁다. 새학년 새학기가 되면 좀 낫겠지, 어른이 되면 좀 나아지겠지, 안정을 찾으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바람은 늘 어긋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피엔스로 살아가는 이상 미래에 대한 불안과 경쟁 속에서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혼란은 가늠하기 힘든 무게가 되어 우릴 짓누른다. 이 책을 현악기 현의 무게를 떠받치는 브릿지를, 삶이 짓누르는 시련에 대해 이야기한다.


<브릿지>의 주인공 인혜는 예고에서 첼로를 전공하는데, 가족의 기대와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길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런데 그만 실기시험에서 5등 중에 5등을 한다. 5등이라서가 아닌 공정하지 못한 실기시험과 자기 실력과 연습에 대한 불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옥죄어 온다. 그것은 같은 첼로반인 연수와 대호도 다르지 않다. 브릿지가 첼로의 네 현을 지탱하듯, 인혜와 연수, 대호는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버티려 한다. 무거운 현실 앞에서 자주 쉽게 흔들리고, 이제는 정말 첼로를 사랑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인혜가 가진 자신에 대한 몰이해는 여러 원인이 있었다. 예중에 들어가도록 가르쳐 준 엄정현 선생님과의 레슨은 실력을 높이는 계기였지만, 인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는 과정이기도 했다. 엄 선생과의 힘들었던 과정은 인혜의 삶을 짓누르지만, 한편으로는 분노를 양분으로 삼아 현실을 이겨내는 노력의 근원이기도 했다. 부모님의 응원과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은 힘든 과정을 중화시키지만, 엄 선생과 레슨을 끝내고 정단아 선생님과의 새로운 레슨, 그리고 할머니의 죽음을 거치며, 인혜는 정말 자신이 첼로를 좋아하기나 하는지 의문을 품는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엄정현 선생님이 초빙되고, 인혜는 실기 시험에서 불공정한 일이 일어난 걸 알게 된다.


브릿지는 현의 압력을 견디지만, 너무 오래 버티면 결국 휘어지고 만다. 얼마 전 겪은 할머니의 죽음과 그로 인한 상처, 불공정한 실기 시험 결과에 대한 압박감은 인혜를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브릿지는 휘어질지언정 곧바로 부러지지 않는다. 휘어지는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삶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는다.


휘어진 채로 멈춰 있을 수도 있었지만, 인혜는 다시 마음을 먹는다. 브릿지는 단순히 버티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울리게 한다. 이처럼 인혜도 자신의 삶에서 진정한 소리를 찾아 나간다. 연수와 대호, 동우, 그리고 가족들의 응원과 기다림은 흔들리지 않고 현을 받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힘든 시기를 지나는 서로에게 이들 모두 브릿지가 되어 준다.


이 책의 큰 줄기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의문과 엄정현 선생님, 그리고 늘지 않는 실력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이 네 가지 현을 떠받친 인혜가 첼로를 연주하듯 삶을 버티어내는 이야기다. 좋아하는 일을 해내는 노력과 용기, 서로에 대한 사랑과 응원은 그것 떠받치는 원동력이다. 


아울러 이 책에서 음악을 다루는 점이 인상 깊다. 소리 하나 나오지 않지만, 읽는 틈틈이 ‘재클린의 눈물’과, ‘리베르 탱고’, 그리고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프렐류드’를 들었다. 이 책에서 음악은 그저 배경이나 기교가 아니라, 감정과 삶을 담아내는 과정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에겐 어떤 브릿지가 있을지 생각했다. 현과 통을 잇는,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잇는 어떤 의미의 브릿지든, 그것을 버티어내는 힘은 무엇인지 고민했다. 아픈 사랑일지, 아직 알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찾는 여정일지, 부끄럽게도 돈일지. 이 책을 읽은 모든 독자는 책을 덮으며 자신만의 브릿지를 찾는 여정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휘어지는 건 브릿지만이 아니라 사람도 누구나 휘어진다. 그러나 그것이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휘어지며 버티고, 버티며 자기만의 길을 찾는다. 이 책이, 나를 버티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울러 나는 무엇을 사랑하며 살 것인지를 찾는 여정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참 깊고 따뜻한 책이다. 자신에 대한 불신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짓눌넜던 시간을 보낸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특히 청소년들이 읽고 크나큰 위안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2025.02.17


#브릿지

#문경민

#우리학교

#청소년권장도서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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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부탁해 - 2024년 제30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114
설상록 지음, 메 그림 / 비룡소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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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부탁해>(설상록/비룡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은 빠짐없이 매년 읽어 본다. 아이들에게 책과 글을 가르치면서 ‘황금도깨비상’ 수상작만으로도 한 학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내용과 주제와 의미도 시간이 흐를수록 함께 성장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따뜻한 마음과 성장, 그리고 공감과 치유의 과정이다.


<호랑이를 부탁해>는 우리 동화의 현주소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에, 이제는 성장과 변화, 학습까지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이 현시대 어린이의 숙명이랄까. 이 책은 어린이 필수 영양소를 빼곡히 담아 놓은 느낌이다.


5학년 4반에서 달걀 부화 실험을 하고 있기에, 우주는 아침일찍 등굣길에 나선다. 교실에 들어선 순간, 우주는 검은 모자를 쓴 그림자가 급히 달아나는 모습을 포착한다. 교실은 아크릴 물감에 얼룩지고, 아수라장이 되어 있다. 우주는 지수진과 달걀이 부화중인 협의실을 둘러보는데, ‘호랑이’라고 이름붙인 달걀이 땅에 떨어져 깨어져 있었다. 우주는 사건 현장 사진을 찍고 아이들에게 알리는데, 선생님은 CCTV와 현장을 면밀히 분석해 범행 시각과 단서를 모은다. 과연 검은 모자는 누구인가? 왜 그렇게 황급히 도망쳤을까?


5학년 4반 교실은 마치 탐정극의 한 장면처럼 긴장감 넘치는 미스터리로 전개되다, 흥미로운 학교 생활로 이어진다. 깨진 달걀이 무정란이라는 게 밝혀지며, 검은 모자의 행동이 잘한 건지 아닌지 논란이 생긴 것도 잠시, 곧 병아리들이 부화하는데, 병아리를 사육하는 과정에서 반 아이들은 수없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수학문제를 풀어 병아리 집을 완성하고, 과학시간에 배운 내용과 백과사전을 찾아가며 병아리를 키우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성장과 책임감이 함께 그려진다. 화자인 이우주와 함께 절친 노하민, 그리고 지수진, 고은별, 임리아 등 친구들 사이에 얽힌 애정과 오해, 그리고 숨겨진 작은 비밀들이 차츰 드러난다. 닭이 된 호랑이(병아리 이름을 ‘호빵’과 ‘사랑이’라고 지으면서 합쳐진 이름)를 입양보내는 과정을 통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따스한 여운을 남기며 이야기는 끝난다.


이 책은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다. 초반의 긴장감이 극에 달하고, 그것을 이완하는 과정이 노련하다. 등장인물의 특징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특히 행동과 함께 심리를 충분히 들여다 보도록 한다. 추리소설처럼 1인칭으로 전개되며 반 아이들을 관찰자로서 바라보는 우주의 따뜻한 시각이 흥미로운데, 그것은 삽화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바라보며, 정의롭고 순수하며 따뜻한 모습이 익숙하지만, 입체적이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쉽다. 그러나 편안하다.


초반에 휘몰아치듯 이어진 사건과 현장, 그리고 처참하게 깨진 달걀을 묘사하는 장면이 인상 깊다. 달걀 프라이로 늘 보는 달걀이지만, 이런 모습으로 볼 때는 굉장한 상실감이 느껴진다.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끔 하는 신선한 발상이 돋보인다. 또한 상실로 인한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선생님의 지혜와 기다림의 시간은 무척 큰 함의가 있다. 상실감과 분노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둘을 함께 볼 수 있는지 구분하며, 차분히 생각하고 기다릴 시간을 독자에게도 준다. 흙탕물에서 눈알을 잃어버린 하마에게, 흙이 가라앉을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라고 충고한 새처럼,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다르게 비튼다.


깨진 달걀이 무정란이란 것이 밝혀졌을 때, 그로 인해 다른 달걀이 살 수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을 때, 아이들은 검은 모자를 칭찬해야 할지 고민한다. 세상 일이라는 게 이렇게 복잡하다. 이런 판단에 대해서 함께 논의할 시간을 갖는다면, 독서의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실수, 혹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해야 할 충분한 책임과 진솔한 사과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물론 이를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과 공감도 따뜻하게 전해진다. 그 모든 걸 차치하더라도 재미와 감동이 충분한 작품이다. 읽고 나면 달걀을 부화시키고 싶은 충동이 들기에, 그 과정이 책에서처럼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주지시킬 필요가 있겠다.



명불허전이다. ‘황금도깨비상’다운 좋은 작품이다.

아이들에게 자신있게 권할 만한 책이다.

생각할 거리가 있는 책 추천해달라고 하면, 짜잔 하고 보여줄 책이다.


2025.02.23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임을 밝힙니다.


#호랑이를부탁해

#서상록

#비룡소

#황금도깨비상

#초등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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