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집사 백 년 고양이 2 래빗홀 YA
추정경 지음 / 래빗홀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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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집사, 백 년 고양이 2』(추정경/래빗홀)는 2권을 읽는 내내 웃다가 놀라고, 경건해지다가 마지막엔 숙연해지는 경험을 안겨준다. 고양이 이야기인데도 푹 빠져 읽게 된다. 1권과 마찬가지로 흥미롭고 재미있으면서도 고양이와 인간의 관계, 생명과 세상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처음엔 어디까지 이야기가 이어질지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고 나니 앞으로 3권과 4권에는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기대가 커졌다.


2권에서는 고양이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풍성해진다. 이집트 신화와 한국적 서사가 어우러지며 고양이와 인간, 생명 사이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진다. 인간의 역사가 고양이보다 오래됐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스치듯 든다. 고양이들의 존재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2권을 읽으면서도, 이런 책은 처음이라고 또 되뇐다. 불교 철학과 고양이 이야기라니. 그런데 둘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고양이들은 윤회의 흐름 속에서 삶을 거듭하며 경험과 책임을 담담하게 쌓아간다. 자신을 돌아보고 인간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면서 말이다. 집사로 인정한 인간에게 보여주는 진심, 자식을 위한 어미 고양이들의 마음은 읽는 동안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야기 곳곳에는 풀리지 않은 비밀들이 여전히 많다. 이집트에서 온 라의 전사들이 왜 천 년 집사를 방해하려는지, 고덕 집사의 고양이 ‘분홍’의 정체는 무엇인지, 고덕과 테오 중 누가 천 년 집사의 길을 걷게 될지 궁금증이 이어진다. 피아노 학원 앞 저울 가게, 투썸띵 동물병원에서 감도는 묘한 긴장감, 고덕의 어머니가 지키려던 고양이 ‘째째’, 눈먼 고양이 할멈, 대장 고양이 ‘존남’까지 이야기의 흐름이 고양이 걸음처럼 한 걸음씩 다가온다. 이야기 후반부에 이르러 모든 떡밥과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전개가 정말이지 쫄깃하다. 그만큼 이야기 구조가 촘촘하고, 1권과 2권에서 스쳐 지나갔던 인물들의 인연이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읽다가 결국 다시 1권을 뒤적여보게 된다. 이야기가 고양이 발자국처럼 한 길로 가지런히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복수는 제곱이고 보은은 루트를 씌워 갚는다.”


고양이들만의 질서와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말이다. 작은 생명 하나하나를 쉽게 지나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남는다. 읽는 내내, 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관점으로 세상을 보아왔는지 돌아본다.


2권을 덮고 나니 이제 막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 것 같은 느낌이다. 고양이들의 회차, 천 년 집사의 역할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천천히 기다려 보고 싶다. 한국적 고양이 판타지가 이렇게 아름답게 펼쳐지는 점이 반갑고, 다음 이야기가 몹시 궁금하다.


한국적 고양이 판타지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후 이야기에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없다.


2025.05.31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천년집사백년고양이2

#추정경

#래빗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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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집사 백 년 고양이 래빗홀 YA
추정경 지음 / 래빗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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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집사, 백 년 고양이』 (추정경/래빗홀)


『천 년 집사, 백 년 고양이』는 낯설고 매혹적이다. 고양이의 시점으로 열리는 프롤로그는, 우리가 살던 세상의 중심을 뒤집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인간이 고양이를 돌보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그 반대의 가능성은 전혀 없는가. 고양이의 존재 방식이 인간보다 더 오래되고 정교하다면, 우리가 주인이라고 여긴 감정은 얼마나 일방적인 것인가. 이것은 1권을 읽는 내내 자문하게 될 질문이다.


추정경 작가는  『열다섯의 곰이라니』를 통해 인간과 동물, 그 생태와 관계의 결을 다루는 데 탁월함을 보여준 바 있다. 이번 책에서 작가는 인간이 동물화 되는 경험을 넘어, 인간의 세계가 생물들의 세계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는데, 그 과정을 묘사하는 작가의 강점은 여전하다. 아홉 번 인생을 살며 모든 능력을 얻은 백 년 고양이, 그리고 천 년에 한 번 태어난다는 ‘집사’를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 존재와 기억, 관계와 책임이라는 주제를 작가가 구성한 새로운 세계관 속에서 풀어낸다.


이 책은 고양이들만의 규칙과 언어, 문화와 의례, 권력 구도까지, 판타지적 세계가 촘촘히 짜여 있다. 고양이 세계는 자족적이고 독립적이며, 인간에 대한 감정 역시 단순한 애착이나 복종이 아닌 역사와 선택의 결과물이다. 고양이 공동체를 하나의 사회로서 기능하는 조직으로 생명을 부여한다. 고양이의 세계라는 씨줄과 고덕을 중심으로 한 인간 사회의 날줄로 촘촘한 이야기를 만든다. 


인간 주인공 경찰 ‘고덕’은 새끼 고양이의 죽음을 방관한 죄책감을 끌어안은 채 살아간다. 어느 날, 캣맘인 엄마가 살해되는데, 함께 처참히 죽은 새끼 고양이를 통해 고덕은 우연히 고양이 세계의 문을 마주한다. 사건의 진상을 쫓는 과정에서 고양이 ‘분홍‘을 입양하고, 엄마 정여사를 따르던 고양이들과 부딪치며, 고덕은 점차 인간 중심적인 시선을 거두고, 다른 존재들의 고통과 기억에 귀 기울인다. 그가 천 년 집사의 운명을 타고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그의 내면 변화와 맞물려 그의 성장과 변화, 서사의 중심축이 된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것은 다양한 고양이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생의 무늬다. 유기묘, 상처 입은 고양이, 인간과의 관계에서 상반된 기억을 지닌 고양이들까지, 각각이 인간 사회에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삶의 궤도를 가진 존재로 등장한다. 인간만이 아니라 고양이들을 서사의 중심에 위치시킨 점이 훌륭한데, 단지 귀엽거나 슬픈 존재가 아닌, 고통받고 사랑하며 선택하는, 그리고 책임을 지는 생명으로 그려진다. 물론 복수와 보은까지도.


이 책은 유기동물 문제, 동물 실험, 인간의 무책임한 감정 소비 같은 현실적 문제들을 이야기 속에 담아 지적한다. 매우 현실적이며 구체적이다. 백호 티그리스의 실험이나 유기묘 문제는 그 어떤 가감 없이 호소력 있게 풀어낸다. 그러나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독자가 무엇을 느끼고 책임져야 할지를 책장을 넘길 때마다, 조용히 묻는다.


고양이들의 시선을 통해 본 인간 세계는 낯설고, 때로는 아프게 다가온다. 그들 눈에 보인 인간이 얼마나 어설프고 부족한지 반성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존재의 위계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1권은 세계관의 토대를 다지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다소 장황한 설명이 많고 주요 사건이 본격화되지 않았다는 인상이다. 그러나 고양이 세계의 법칙과 인물들 간의 관계, 서사적 긴장의 씨앗은 이미 충분히 심어졌다. 그런 신경을 쓰지 않아도, 고양이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정말이다.


후속 권에서는 갈등의 심화와 인물들의 선택이 더욱 도드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공감, 성장, 생태를 주제로 아이들과 나눌 주제가 많다. 고학년 어린이들부터 청소년, 영어덜트까지 두루 읽을 만한 책이다. 추천한다.


2025.05.27



#천년집사백년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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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거리 - 1980년대 2 생생 현대사 동화
남찬숙 지음, 김선배 그림 / 별숲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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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거리>(남찬숙/별숲)


별숲의 생생 현대사 동화는, 최근 가장 눈여겨 보는 어린이 동화다.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동화로 만드는데, 역사를 보는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부끄럽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다. 최근 읽을 책이 많아, 출판사 서평에 참여하지 않으려 하는데, 이 책은 뿌리치기 힘들었다.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가장 기뻤던 것은 사실 작가였다. 이 책에 관한 소개와 출판사만 생각했는데, 책을 받고 보니 남찬숙 작가님이다. 세상에, 이 작가님인 줄 책을 받고서야 알았다니, 반갑고 죄송했다.


물론 내가 작가님을 잘 알지는 못한다. 그저 이메일로 한두 번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다. 그것도 십여년 전 쯤. 가르치는 아이들과 <괴상한 녀석>과 <니가 어때서 그카노>책을 읽고 한참 재미있게 나누었는데, 작가 소개에 작가님의 이메일 주소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아이들과 작가님께 쓰는 편지로, 글을 쓰자고 했는데, 그 중 몇몇 아이들이 진짜로 작가님께 메일을 보낸 거였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작가님이 아이들의 편지에 - 조금은 장난도 섞여 있었는데 - 정성스런 답장을 남겨주신 거였다. 그 다음부터는 작가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아이들에게 작가님께 쓰는 편지 수업을 몇 번 진행했는데, 작가님은 늘 귀찮아 않으시고 답장해주셨더랬다. 고마운 마음에 나도 작가님께 감사 인사를 드렸는데, 작가님은 젊은 시절 나와 같은 일을 하셨다며, 감사한 내 마음을 깊이 챙겨주셨던 것이 여전히 기억난다. 몇몇 아이들은 작가님과 자주 연락하고 직접 만나 뵙기도 했었다.


작가님과의 아주 가느다란 인연이 계기가 되어, 작가님 책은 빠짐없이 읽고 소개하는 편이다. 물론 작가님 책이 너무나 훌륭하기에, 자신있게 소개하는 것이 더 크다. 감히 말하지만, 남찬숙 작가의 책을 아이들에게 소개할 때 실패한 적이 없다!


서론이 길었는데, 작가님이 반가워서 그랬으니 이해 부탁드린다.


<유월의 거리>는 1987년 6월 항쟁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미리 이야기하지만, 이 책을 6월 항쟁 공부를 위한 도서로 이해해선 안 된다. 87년 당시의 사회상과 분위기, 그 시대를 살아간 한 가족이 겪는 일이 중심이며, 그 배경과 이야기 가지가 6월 항쟁과 밀접하게 엮여 있다. 그래서 당시의 현실적인 장면은 많이 윤색되었지만, 타오르는 당시의 열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사회의 변화가 체감된다.


이 책의 화자는 미경이다. 큰오빠와 언니와 사는 열세 살 막내 딸인데, 산동네 무허가 건물에서 살다가 철거 위기로 최근 이사했다. 친구인 경미네도 이사하지만 사고로 다친 아빠로 가세가 기울어 양옥집 반지하에 산다. 두 가족은 이웃사촌인데, 사건은 미경이 언니 미숙이가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시작한다. 얌전히 공부할 줄 알았던 미숙이가 데모에 참여하면서 경찰서 유치장을 들락거리자, 아빠는 혼을 내고 휴학을 강요하고, 이에 언니는 가출해버린다. 언니가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위장취업하겠다고 하자, 위장취업으로 경찰에 잡혀 고문을 받은 여대생을 떠올리며, 아빠는 언니의 뜻을 받아들인다. 한편 미경이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회초리를 드는 6학년 교사에게 대항한 반장 태준이에게 큰 인상을 받는다. 반 아이들은 백지 시험지를 내며 선생님에게 맞서는데, 학부모들까지 나서서 학생들의 인권을 위해 싸운다. 이렇게 사회 곳곳에서 인권이 신장되기 시작하고 민주화의 열망이 고조된다.


대학생들의 데모에 반대하던 아빠는 데모에 참여하는 언니를 통해 광주의 진실을 전해듣고, 개헌을 취소하는 정부의 입장에 화를 낸다. 언니는 호헌 철폐 독재 태도를 외치며 친구들과 시위하다, 전경에 쫓겨 명동성당으로 도망치고 그곳은 포위된다. 백골단이 시위대와 충돌하고, 시위는 격해지며 최루탄이 터지고 혼란이 지속된다. 미경이는 경미와 함께 명동성당으로 향하는데, 과연 이들은 포위된 언니를 만날 수 있을까? 한국의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손에서 이뤄질까?


민주주의는 피로써 완성된다. 언제나 그랬다.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 운동,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들의 선혈 위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탄생했다. 특히 6월 항쟁은 나에게도 의미가 깊다. 부산 중구에서 벌였던 대학생들의 시위, 미문화원 주변에서의 충돌, 백골단의 진입과 중앙성당으로 도망쳤던 대학생들, 정의구현 사제단 신부님들이 가톨릭 센터에서 벌였던 단식투쟁, 시위대와 백골단의 충돌 때 터졌던 매캐한 최루탄과 눈썹 밑에 발랐던 치약, 아침에 등교할 때 항상 깨져 있었던 학교 교실 유리창, 그리고 남포동 부산 시청에서 자갈치까지 모여들어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를 외쳐 불렀던 그때를 여전히 기억한다. 고작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이었지만, 이 책 속 미경이처럼 어른들 틈을 비집고 여기저기 다니며 구경했었다. 아빠 심부름으로 가톨릭 센터에 들어갔던 것까지. 나에겐 6월 항쟁은 어린 시절의 일부다.


그래서 이 책이 반가웠다. 당시의 생활상 위에,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순수한 청년들의 모습이 엿보이고, 불의에 맞서는 작은 용기가 모여 변화를 이끌어내는 현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쪽의 정의를 강요하는 책은 아니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그 역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보여준다. 결과론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수많은 이들의 피와 진실한 노력, 그리고 작은 희망과 열망이 모여 만들어진 민주주의임을 뜨겁게 보여준다.


남찬숙 작가님은 이 이야기를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으셨다. 그러나 역사를 단단하게 그려낸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단호하게 알리고 설득하는 미숙이의 모습, 선생님의 잘못에 자기만의 올바른 방법으로 대항하는 반장 태준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백지 답안지를 내며 선생님의 독재에 평화적으로 뜻을 전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배울 점이 많다. 그때 나는 왜 그러지 못했는지, 뺨을 때렸던 3학년 선생님에게 왜 아무 말도 못했는지.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해맑게, 그렇지만 당연하게 할 말을 하고 그것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아이들이 되길 바라게 된다.


별숲의 생생 현대사 동화는 늘 옳다. <1995, 무너지다>를 읽으며 품었던 기대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군부독재와 5.18, IMF와 촛불혁명까지, 별숲 출판사가 가야 할 길이 보인다.


이 책은, 초등 고학년 학생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2025.06.02


#6월의거리

#남찬숙

#별숲

#6월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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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길 - 소년공에서 대선후보까지, ‘그들의 악마’ 이재명이 걸어온 길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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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물이 살아온 길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혐오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데, 이 책을 통해 그의 진정성이 밝혀지길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정치를 시작 하려던 그의 뜻이 변하지 않기를 기대하며, 결실을 맺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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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 금지 가족 다봄 어린이 문학 쏙 6
켈리 양 지음, 장한라 옮김 / 다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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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 금지 가족> (켈리 양/다봄)



이제는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코로나19 시기. 초등학생들조차 그 시절을 이야기할 때면 “라떼는 말이야”를 꺼내니, 벌써 시간이 꽤 흐른 듯하다. 하지만 조금만 돌아보면,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마스크를 구하려 약국에 줄을 서고, 확진자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던 일, 코로나에 걸려 집 안에 갇혀 지내던 며칠은 누구에게나 선명한 기억일 것이다.


그 시기를 더욱 힘겹게 보낸 이들이 있다. 의지할 가족이 없던 이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병원에 머물러야 했던 환자들, 그리고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 그 가운데서도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진실 하나는, 바로 코로나 시기에 전세계로 심각하게 확산되었던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다.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정 국가나 지역, 종교를 향한 낙인과 혐오가 분명 존재했다.


이 책은 그 혐오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한 가족의 이야기다. 미국인 아버지와 중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녹스는 형 보웬, 여동생 레아와 함께 홍콩에서 지내다, 확진자가 증가하자 안전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팬데믹 상황은 이 가족의 귀국길조차 순탄치 않게 만든다. 엄마의 온라인 근무 계획은 해고로 이어지고, 미국에 도착한 첫 순간부터 이들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위협을 마주하게 된다.


학교에서는 ‘전염병 놀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인 아이들을 조롱하고, 산책길에 만난 사람들은 아시아인에게 대놓고 악의를 드러낸다. 늘어난 코로나 확진자 수만큼 아시아인을 향한 시선도 차가워진다.  팬데믹과 인종차별이라는 이중고가 녹스 가족을 덮친다.


특히 ADHD를 앓고 있는 녹스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 홍콩에서는 릴리 선생님과 잘 지냈지만, 미국에서는 충동적 행동이 많아지고, 엄마와 형 보웬과의 갈등도 자주 생긴다. 외모로도 아시아인 정체성이 뚜렷한 보웬 역시 학교생활이 쉽지 않다.


<접근 금지 가족>은 이런 위기의 시기 속에서 가족이 어떻게 서로를 붙들고 견디는지를 따뜻하지만 선명하게 그려낸다. 인종차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ADHD를 가진 아이의 내면을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다룬 점이 인상 깊다. 무엇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말한다. 혐오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백신은 바로 사랑이라고.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이 작가가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실’이라는 점이다. 켈리 양은 실제로 아들과 함께 팬데믹 시기에 미국으로 돌아왔고, 그 과정에서 인종차별과 배제를 직접 마주했다. 녹스의 이야기에는 그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래서일까, 인물들의 감정은 더욱 생생하고, 장면 하나하나가 실제처럼 다가온다. 단지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현실이었기에 더 묵직하게 마음에 남는다.


누구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삶은 우리를 흔든다. 특히 그것이 낯선 땅에서의 일이라면 더욱 외롭고 힘들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랑과 연대가 큰 힘이 된다. 이 책은 평범한 가족이 겪는 비범한 시간의 기록이자, 함께 지지하며 성장해 나가는 진정한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읽기를 권한다. 제법 글밥이 많은 편이지만, 천천히 읽으며 함께 고민하고 느낄 만한 책이다.


2025.04.15


#켈리양 #접근금지가족 #다봄 #초등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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