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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거리 - 1980년대 2 ㅣ 생생 현대사 동화
남찬숙 지음, 김선배 그림 / 별숲 / 2025년 5월
평점 :

<유월의 거리>(남찬숙/별숲)
별숲의 생생 현대사 동화는, 최근 가장 눈여겨 보는 어린이 동화다.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동화로 만드는데, 역사를 보는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부끄럽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다. 최근 읽을 책이 많아, 출판사 서평에 참여하지 않으려 하는데, 이 책은 뿌리치기 힘들었다.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가장 기뻤던 것은 사실 작가였다. 이 책에 관한 소개와 출판사만 생각했는데, 책을 받고 보니 남찬숙 작가님이다. 세상에, 이 작가님인 줄 책을 받고서야 알았다니, 반갑고 죄송했다.
물론 내가 작가님을 잘 알지는 못한다. 그저 이메일로 한두 번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다. 그것도 십여년 전 쯤. 가르치는 아이들과 <괴상한 녀석>과 <니가 어때서 그카노>책을 읽고 한참 재미있게 나누었는데, 작가 소개에 작가님의 이메일 주소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아이들과 작가님께 쓰는 편지로, 글을 쓰자고 했는데, 그 중 몇몇 아이들이 진짜로 작가님께 메일을 보낸 거였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작가님이 아이들의 편지에 - 조금은 장난도 섞여 있었는데 - 정성스런 답장을 남겨주신 거였다. 그 다음부터는 작가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아이들에게 작가님께 쓰는 편지 수업을 몇 번 진행했는데, 작가님은 늘 귀찮아 않으시고 답장해주셨더랬다. 고마운 마음에 나도 작가님께 감사 인사를 드렸는데, 작가님은 젊은 시절 나와 같은 일을 하셨다며, 감사한 내 마음을 깊이 챙겨주셨던 것이 여전히 기억난다. 몇몇 아이들은 작가님과 자주 연락하고 직접 만나 뵙기도 했었다.
작가님과의 아주 가느다란 인연이 계기가 되어, 작가님 책은 빠짐없이 읽고 소개하는 편이다. 물론 작가님 책이 너무나 훌륭하기에, 자신있게 소개하는 것이 더 크다. 감히 말하지만, 남찬숙 작가의 책을 아이들에게 소개할 때 실패한 적이 없다!
서론이 길었는데, 작가님이 반가워서 그랬으니 이해 부탁드린다.
<유월의 거리>는 1987년 6월 항쟁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미리 이야기하지만, 이 책을 6월 항쟁 공부를 위한 도서로 이해해선 안 된다. 87년 당시의 사회상과 분위기, 그 시대를 살아간 한 가족이 겪는 일이 중심이며, 그 배경과 이야기 가지가 6월 항쟁과 밀접하게 엮여 있다. 그래서 당시의 현실적인 장면은 많이 윤색되었지만, 타오르는 당시의 열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사회의 변화가 체감된다.
이 책의 화자는 미경이다. 큰오빠와 언니와 사는 열세 살 막내 딸인데, 산동네 무허가 건물에서 살다가 철거 위기로 최근 이사했다. 친구인 경미네도 이사하지만 사고로 다친 아빠로 가세가 기울어 양옥집 반지하에 산다. 두 가족은 이웃사촌인데, 사건은 미경이 언니 미숙이가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시작한다. 얌전히 공부할 줄 알았던 미숙이가 데모에 참여하면서 경찰서 유치장을 들락거리자, 아빠는 혼을 내고 휴학을 강요하고, 이에 언니는 가출해버린다. 언니가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위장취업하겠다고 하자, 위장취업으로 경찰에 잡혀 고문을 받은 여대생을 떠올리며, 아빠는 언니의 뜻을 받아들인다. 한편 미경이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회초리를 드는 6학년 교사에게 대항한 반장 태준이에게 큰 인상을 받는다. 반 아이들은 백지 시험지를 내며 선생님에게 맞서는데, 학부모들까지 나서서 학생들의 인권을 위해 싸운다. 이렇게 사회 곳곳에서 인권이 신장되기 시작하고 민주화의 열망이 고조된다.
대학생들의 데모에 반대하던 아빠는 데모에 참여하는 언니를 통해 광주의 진실을 전해듣고, 개헌을 취소하는 정부의 입장에 화를 낸다. 언니는 호헌 철폐 독재 태도를 외치며 친구들과 시위하다, 전경에 쫓겨 명동성당으로 도망치고 그곳은 포위된다. 백골단이 시위대와 충돌하고, 시위는 격해지며 최루탄이 터지고 혼란이 지속된다. 미경이는 경미와 함께 명동성당으로 향하는데, 과연 이들은 포위된 언니를 만날 수 있을까? 한국의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손에서 이뤄질까?
민주주의는 피로써 완성된다. 언제나 그랬다.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 운동,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들의 선혈 위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탄생했다. 특히 6월 항쟁은 나에게도 의미가 깊다. 부산 중구에서 벌였던 대학생들의 시위, 미문화원 주변에서의 충돌, 백골단의 진입과 중앙성당으로 도망쳤던 대학생들, 정의구현 사제단 신부님들이 가톨릭 센터에서 벌였던 단식투쟁, 시위대와 백골단의 충돌 때 터졌던 매캐한 최루탄과 눈썹 밑에 발랐던 치약, 아침에 등교할 때 항상 깨져 있었던 학교 교실 유리창, 그리고 남포동 부산 시청에서 자갈치까지 모여들어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를 외쳐 불렀던 그때를 여전히 기억한다. 고작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이었지만, 이 책 속 미경이처럼 어른들 틈을 비집고 여기저기 다니며 구경했었다. 아빠 심부름으로 가톨릭 센터에 들어갔던 것까지. 나에겐 6월 항쟁은 어린 시절의 일부다.
그래서 이 책이 반가웠다. 당시의 생활상 위에,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순수한 청년들의 모습이 엿보이고, 불의에 맞서는 작은 용기가 모여 변화를 이끌어내는 현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쪽의 정의를 강요하는 책은 아니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그 역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보여준다. 결과론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수많은 이들의 피와 진실한 노력, 그리고 작은 희망과 열망이 모여 만들어진 민주주의임을 뜨겁게 보여준다.
남찬숙 작가님은 이 이야기를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으셨다. 그러나 역사를 단단하게 그려낸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단호하게 알리고 설득하는 미숙이의 모습, 선생님의 잘못에 자기만의 올바른 방법으로 대항하는 반장 태준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백지 답안지를 내며 선생님의 독재에 평화적으로 뜻을 전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배울 점이 많다. 그때 나는 왜 그러지 못했는지, 뺨을 때렸던 3학년 선생님에게 왜 아무 말도 못했는지.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해맑게, 그렇지만 당연하게 할 말을 하고 그것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아이들이 되길 바라게 된다.
별숲의 생생 현대사 동화는 늘 옳다. <1995, 무너지다>를 읽으며 품었던 기대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군부독재와 5.18, IMF와 촛불혁명까지, 별숲 출판사가 가야 할 길이 보인다.
이 책은, 초등 고학년 학생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2025.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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