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집사 백 년 고양이 래빗홀 YA
추정경 지음 / 래빗홀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 년 집사, 백 년 고양이』 (추정경/래빗홀)


『천 년 집사, 백 년 고양이』는 낯설고 매혹적이다. 고양이의 시점으로 열리는 프롤로그는, 우리가 살던 세상의 중심을 뒤집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인간이 고양이를 돌보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그 반대의 가능성은 전혀 없는가. 고양이의 존재 방식이 인간보다 더 오래되고 정교하다면, 우리가 주인이라고 여긴 감정은 얼마나 일방적인 것인가. 이것은 1권을 읽는 내내 자문하게 될 질문이다.


추정경 작가는  『열다섯의 곰이라니』를 통해 인간과 동물, 그 생태와 관계의 결을 다루는 데 탁월함을 보여준 바 있다. 이번 책에서 작가는 인간이 동물화 되는 경험을 넘어, 인간의 세계가 생물들의 세계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는데, 그 과정을 묘사하는 작가의 강점은 여전하다. 아홉 번 인생을 살며 모든 능력을 얻은 백 년 고양이, 그리고 천 년에 한 번 태어난다는 ‘집사’를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 존재와 기억, 관계와 책임이라는 주제를 작가가 구성한 새로운 세계관 속에서 풀어낸다.


이 책은 고양이들만의 규칙과 언어, 문화와 의례, 권력 구도까지, 판타지적 세계가 촘촘히 짜여 있다. 고양이 세계는 자족적이고 독립적이며, 인간에 대한 감정 역시 단순한 애착이나 복종이 아닌 역사와 선택의 결과물이다. 고양이 공동체를 하나의 사회로서 기능하는 조직으로 생명을 부여한다. 고양이의 세계라는 씨줄과 고덕을 중심으로 한 인간 사회의 날줄로 촘촘한 이야기를 만든다. 


인간 주인공 경찰 ‘고덕’은 새끼 고양이의 죽음을 방관한 죄책감을 끌어안은 채 살아간다. 어느 날, 캣맘인 엄마가 살해되는데, 함께 처참히 죽은 새끼 고양이를 통해 고덕은 우연히 고양이 세계의 문을 마주한다. 사건의 진상을 쫓는 과정에서 고양이 ‘분홍‘을 입양하고, 엄마 정여사를 따르던 고양이들과 부딪치며, 고덕은 점차 인간 중심적인 시선을 거두고, 다른 존재들의 고통과 기억에 귀 기울인다. 그가 천 년 집사의 운명을 타고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그의 내면 변화와 맞물려 그의 성장과 변화, 서사의 중심축이 된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것은 다양한 고양이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생의 무늬다. 유기묘, 상처 입은 고양이, 인간과의 관계에서 상반된 기억을 지닌 고양이들까지, 각각이 인간 사회에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삶의 궤도를 가진 존재로 등장한다. 인간만이 아니라 고양이들을 서사의 중심에 위치시킨 점이 훌륭한데, 단지 귀엽거나 슬픈 존재가 아닌, 고통받고 사랑하며 선택하는, 그리고 책임을 지는 생명으로 그려진다. 물론 복수와 보은까지도.


이 책은 유기동물 문제, 동물 실험, 인간의 무책임한 감정 소비 같은 현실적 문제들을 이야기 속에 담아 지적한다. 매우 현실적이며 구체적이다. 백호 티그리스의 실험이나 유기묘 문제는 그 어떤 가감 없이 호소력 있게 풀어낸다. 그러나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독자가 무엇을 느끼고 책임져야 할지를 책장을 넘길 때마다, 조용히 묻는다.


고양이들의 시선을 통해 본 인간 세계는 낯설고, 때로는 아프게 다가온다. 그들 눈에 보인 인간이 얼마나 어설프고 부족한지 반성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존재의 위계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1권은 세계관의 토대를 다지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다소 장황한 설명이 많고 주요 사건이 본격화되지 않았다는 인상이다. 그러나 고양이 세계의 법칙과 인물들 간의 관계, 서사적 긴장의 씨앗은 이미 충분히 심어졌다. 그런 신경을 쓰지 않아도, 고양이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정말이다.


후속 권에서는 갈등의 심화와 인물들의 선택이 더욱 도드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공감, 성장, 생태를 주제로 아이들과 나눌 주제가 많다. 고학년 어린이들부터 청소년, 영어덜트까지 두루 읽을 만한 책이다. 추천한다.


2025.05.27



#천년집사백년고양이

#추정경

#래빗홀

#어린이추천도서

#청소년추천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